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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12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4) - 개항기

'개항기'에 대한 글은 모두 10편으로 나누어 올릴 예정입니다.
도시문제에 시각을 맞추겠습니다만 개항이라는 역사적 사건에 대한 이야기도 간략히 싣겠습니다.
이 글은 마산개항 직전의 국내외 상황을 소략하게 쓴 글입니다.


<개항 전야>

19세기 중엽, 서구 열강들은 식민지 확보를 위해 동아시아로 진출하기 시작했습니다.
프랑스는 19세기 중엽에 베트남을 지배하고 캄푸치아를 보호령으로 하였고, 일찌감치 인도를 병합한 영국은 19세기 전반기에는 동남아시아로 진출하여 미얀마와 말레이반도를 수중에 넣었으며 아편전쟁을 계기로 홍콩을 얻었습니다.
홍콩을 내 준 중국은 그 후 프랑스·러시아·미국 등에도 문호를 개방하였습니다.

이 무렵 일본은 태평양을 건너 온 미국에 의해 강제로 개항되었습니다.
그 때까지 강경했던 쇄국정책을 포기하고 1854년 카나카와(神奈川)조약을 시작으로 영국․러시아․네덜란드 등 여러 선진 국가들도 받아드렸습니다.

1868년 일본은 하급 무사계급의 주동으로 명치유신을 단행하고 천황제 전제국가를 수립하였습니다. 그들에게 시급한 과제는 빠른 시일 내에 자국의 후진성을 극복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양이쇄국정책(壤夷鎖國政策)이 대세였습니다.
19세기를 지나면서 구미각국의 여러 차례 통상요구가 있었고 이로 인한 갈등과 충돌도 많았지만 대원군의 쇄국정책은 여론을 등에 업고 굳어 갔습니다.

명치유신 후 일본정부는 덕천막부가 폐지된 사실을 조선정부에 통고합니다. 그러나 대원군의 조선정부는 문서의 격식과 인장이 옛 것과 다르다 하여 이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 후 고종 9년(1872년)에 일본은 외무대신 화방의질(花房義質)을 부산에 파견하여 교섭을 추진했으나 조선정부는 이도 거절했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는 동안 일본지배층 내부에서 정한론(征韓論)이 대두되었습니다.
아래 그림은 일본의 각료회의에서 조선침략에 대한 찬반논쟁을 하는 장면을 그린 「
정한논쟁도(征韓論爭圖)」입니다.


정한론에 힘입어 일본지배층은 장차 조선 침략에 필요한 조사도 시작하였습니다.
조선침략 초기에 사용된 조선관련 문헌 중 대표적인 저작 『조선사정(朝鮮事情), 1876』도 이 때 나왔습니다.

정한계획의 실체는 1875년에 일어난 「강화도 사건」으로 나타납니다.


일본은 그들이 당했던 것과 똑 같이 군함 운양호(위 사진)의 무력시위로 조선을 위협하여 강화도조약 혹은 병자수호조약으로 불리는 불평등한 조일수호조약을 체결하였습니다.
그 결과 조선은 부산·원산·인천의 3개 항구를 일본에 개방했고 치외법권을 인정했으며 일본화폐의 통용과 무관세 무역을 인정하게 됩니다.

서구제국의 개항압력에도 불구하고 쇄국정책을 견지한 조선은, 서구제국에 의해 강제로 개방된 일본에 의해 강제로 개항되었습니다.

일본에게 문을 연 조선정부는 그 뒤 미국·중국·영국·독일·이태리·러시아·프랑스·벨기에·덴마크와도 수호조약을 맺고 전국 주요 도시의 문을 개항(開港) 혹은 개시(開市)라는 이름으로 열었습니다. 
마산포 개항도 그 산물이었습니다.<<<


2010/04/08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여는 글)
2010/04/12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 - 통일신라 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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