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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19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5) - 개항기


<마산개항의 배경>

한국 개항의 효시인 부산에 일본단독조계가 설치된 이후 전국의 여러 도시에 조계(租界)가 계속 설치되었습니다.

1876년 부산에서 시작된 조선의 개항은 1880년대에 원산·인천·서울(*)·용산(*)·경흥(*), 1890년대에는 진남포·목포·평양(*)·마산·군산·성진, 1900년대에 들어 의주(*)·용암포·청진까지 모두 15곳을 개방하였습니다. (*)표는 개시장(開市場)입니다.

아래 그림은 전국개항장의 위치도(1890년대 이전 , 1890년대 , 1900년대 )입니다.



다음 사진은 대표적인 개항도시였던 인천개항장의 근경(위) 및 부산개항장의 원경(아래)입니다.




1890년대에 접어들자 조선은 강대국들의 이권쟁탈외교 각축장이 되어갔습니다.
특히 철도․광산․은행․통신․어업 등에서 이권을 독점하기 위한 경쟁이 격렬했고, 이러한 왜곡된 외교정세 때문에 국내 사정은 점차 악화되어 갔습니다.

대한제국 정부는 이런 상황을 조정하는 한편 경제적 불이익을 최소화하기 위해 강제로 개항장이 된 부산․원산․인천과 달리 1897년에 자발적으로 목포와 진남포를 개방하였습니다.
단독조계를 두었던 과거와 달리 목포와 진남포에는 각국공동조계지 만을 두어 열강들의 상호견제로 인한 세력균형 속에서 실익을 도모했습니다. 
하지만
대한제국 정부의 이런 의도와는 달리 목포와 진남포에 설치된 공동조계에서 러시아와 일본의 토지이권다툼이 노골적으로 나타났습니다.

마산포는 그로 부터 2년 뒤인 1899년에 군산․성진과 함께 개항되었습니다.
마산.군산.성진
 개항은 앞의 목포․진남포와 같이 외견상으로 자발적이었고 그 형식과 절차도 목포.진남포와 같았습니다.
그렇지만 개항이 결정되기까지 마산포를 둘러싼 러시아와 일본의 세력다툼은 목포와 진남포보다 더욱 치열했습니다.

개항직후인 1900년에 제정러시아 대장성이 발행한『조선에 관한 기술(記述)』에서 ‘마산포와 군산을 일찍이 영국에서도 장래성 있는 항구라고 평가했다’ 고 하면서 군산만(群山灣)은 자연적인 조건이 편리하지 못한데 반해 마산포는 그렇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마산항의 상세(商勢)와 입지를 극찬하고 그들이 일본보다 마산항을 선점해야하는 당위성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마산포는 부산에서 서쪽으로 60베르스트(verst, 핀란드의 옛단위, 1베르스트는 0.6641마일 또는 1.069k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오래 전부터 조선의 남쪽에서 가장 활발한 상업지였다.
외국상업을 위해서 개방되자 이로 인해 현저한 타격을 받았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부산과 함께 상당한 양의 무역을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자연적인 조건이 우세하여 개항 이후 현재 부산항에 위협을 주는 경쟁지로 되었다.
만약 부산에 커다란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일본인들이 지금의 우세를 보전하기 위해 노력을 경주하지 않는다면 심지어 부산의 모든 상업상 가치를 빼앗아 버릴지도 모른다.

이러한 생각은 단지 러시아뿐만 아니라 19세기말 모든 제국주의국가들에 깔려있었던 마산에 대한 인식이었습니다.



마산 개항에는 '러시아의 남하정책'과 이를 견제한 '일본의 대륙정책'이 많은 작용을 했습니다.

'러시아 남하정책'은 위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한반도 남쪽에 부동항(不凍港)을 건설하여 자국의 블라디보스토크과 중국 요녕성의 여순을 해상으로 연결하려고 했던 정책입니다.

'일본의 대륙정책'은 이와 같은 러시아의 해양세력 확장계획에 대한 견제와 한반도와 중국 대륙을 향한 자국 세력 확장을 위한 거점으로서 마산포를 수중에 넣으려한 정책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러시아와 일본 두 나라 각축의 먹잇감이 마산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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