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2009.06.18 09:08

지구 반대편, 꿈의 도시를 찾아가다

꾸리찌바 이야기 1 (프롤로그)

‘꿈의 도시’로 알려진 브라질의 꾸리찌바에서 보고 느꼈던 것들을 소개한다.

지구 대척점에 위치한 이 도시를 굳이 경험해보고 싶었던 이유는 박용남선생이 쓴 '꿈의 도시 꾸리찌바'라는 책 때문이었다.  그 책을 통해 우리의 도시가 꿈꾸어야될 가치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되었고, 특히 ‘경제’라는 명분아래 점점 사정이 나빠지는 이 도시가 미래에 어떤 방향으로 발전되어야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의식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한 도시를 불과 며칠동안 주마간산으로 둘러보고 그 내용을 소개한다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일이지만, 본 만큼 느낀 만큼만 소개하려 한다.





2002년, 시민단체의 초청으로 창원에 온 박용남 선생을 직접 만나 꾸리찌바 이야기를 들어보기도 했고, 당시에 내가 칼럼위원으로 있던 경남도민일보에 ‘꾸리찌바를 아시나요’라는 제목의 글을 쓰기도 했다.

2003년, 박용남 선생은 책의 그림을 흑백에서 칼라로 바꾸고 내용도 보완하여 증보판을 냈다. 이 책을 사서 또 한 번 읽었다. 꾸리찌바에 직접 가서 내 눈으로 보고 와야겠다는 생각을 굳힌 것은 증보판을 읽고난 이후다.


이 글의 내용 중 객관적인 자료를 설명한 것은 모두 박용남 선생님의 책에서 옮긴 것임을 밝힌다. 글은 내가 경험한 각 시설 별로 정리하였다.



출발

김해공항에서 출발한 여행경로는 인천 - 런던 - 상 파울로 - 꾸리찌바로 이어졌는데 혼자 떠난 길이라 엄청 지루했다. 
런던까지는 대한항공을 이용했지만 런던에서 브라질 살 파울로 까지는 
BA(브리티시 에어라인) 항공으로, 상 파울로에서 꾸리찌바까지는 브라질 VARIC항공을 이용했다.

브라질의 1월은 한 여름이어서 날씨 적응이 쉽지 않았다.


꾸리찌바(Curitiba)

꾸리찌바 시는 상 파울로에서 남서쪽으로 약 400k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빠라나 주의 주도이다. 평균 고도 908m의 아열대 지방에 자리 잡은 이 도시는 총면적이 432㎢(대략 남북 35㎞, 동서 20㎞)로 우리나라의 대전시보다 100㎢ 정도 작지만 이용 가능한 토지는 대전보다 약간 큰 도시다. 인구는 270만 명(광역 도시권 인구)이다.


16세기 중엽 포르투칼 식민주의자에 의해 형성되기 시작한 꾸리찌바는 원주민과 비싼 금속을 찾아 상 파울로 주에서 온 개척자들이 탐험을 하는 곳이었다. 그 후 1693년 남부로 가는 전략적 요충지라는 이유로 포르투칼 당국에 의해 소 도읍으로 분류되었다가 1842년 공식적인 시로 승격되었고 시의 인구가 6천여 명에 이르렀던 1853년에 빠라나 주의 수도가 되었다. 이때부터 유럽 인들이 대거 몰려들기 시작했다.


유럽 인들에 이어 1915년부터는 일본인들이 들어오기 시작했으며, 뒤를 이어 레바논과 시리아인들도 들어 와 20세기 중반까지 경제가 호황을 이루었다. 자국인 이주는 1950년 이후부터 시작되었는데 그들은 현재 시 인구의 약 31%를 차지하고 있다. 1950년 당시 인구는 18만 명이었다.
 

 


군사독재 정권 시절이었던 1964년부터 1979년까지는 정권의 속성상 해외자본의 영향을 받았는데 이로 인해 도시지역에 상당한 투자가 이루어졌다. 이 때 대부분의 브라질 도시들이 고속도로를 건설했으며 자가용 통행을 위해 육교가 건설되는 등 자가용 이용이 조장되는 상황이었다. 꾸리찌바 역시 1960년대 초반까지는 이런 상황이 지속되었다. 심지어 도심의 사적지까지 훼손될 위기에 직면하였다.



이런 도시적 위기상황이 자이메 레르네르의 출현으로 1962년부터 역전되기 시작했다.

그는 꾸리찌바 도시의 산 증인이자 연출자이다. 한 도시를 보존하면서 가장 아름답고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오랜 세월을 봉사했던 그의 헌신적이고 창조적인 노력은 현대 도시사의 빛나는 예다. 그렇게 되기까지에는 세 번이나 시장을 역임했던 그의 능력만이 아니라 관료제에 물든 기존의 관행을 과감히 벗어 던지고 언제나 시민과 함께 하려는 공직자들의 헌신과 꾸리찌바 시민들의 능동적인 참여가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유에스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는 1998년 6월 8일자에서 꾸리찌바를 세계에서 가장 ‘현명한 도시(Smart Cities)’ 가운데 하나로 선정하기도 했다.

많은 전문가들이 흔히 진보의 기준으로 내세우는 1인당 소득수준이나 소득 분포를 이용하여 우리나라 도시와 비교해 본다면 꾸리찌바는 그다지 내세울만한 도시가 아니다. 게다가 꾸리찌바는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처럼 아름다운 해변은 물론이고 위대한 문화유산을 가지고 있는 도시는 더더욱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도시가 꿈과 희망의 도시라는 애칭을 얻으면서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것이 꾸리찌바에 대한 나의 질문이다.

 




도착

꾸리찌바 공항에 도착했을 때는 낮 12시 경이었으며 호텔까지는 미니버스를 이용했다.

모든 도시경관이 낯설었지만, 한 가지 눈에 익은 광경은 책에서 본 파인 너트였다. 나무의 아래 부분은 몸통만 수직으로 올라가다가 윗부분에만 가지와 잎이 달린 잘 생긴 나무다.


빠라나 주에 많이 서식하는 그랄라 아줄(Gralha Azul)이라는 까마귀 과의 새가 겨울먹이를 저장하기 위해 여름 내내 땅 속에 이 나무의 씨를 묻고는 정작 필요할 때 자신이 묻었던 위치를 찾지 못해 여기저기서 솟아 자라나는 나무다.

1971년 꾸리찌바 시장에 당선된 자이메 레르네르는 시민들에게 그랄라 아줄과 같이 행동할 것을 제안하며 시 전역에 6만 그루의 나무를 심고 가꾸면 시원한 그늘과 깨끗한 물을 얻을 수 있다면서 ‘그늘과 신선한 물’이라는 프로그램에 착수한 바 있다.


숙소는 도심 한 복판의 로얄그랜드 호텔로 정했는데 유명한 ‘24시간 거리’ 는 호텔 바로 옆  길이었으며 ‘꽃의 거리’도 가까운 곳에 있었다.

여장을 푼 뒤 나의 꾸리찌바 도시여행은 바로 시작되었다.


계속...



Trackback 0 Comment 0
얼음장수의 뜨거웠던 하루 : 3.15의거 한 참여자에 관한 미시사적 분석 - 3

Ⅱ. 얼음장수의 정체, 증언 및 평가 2. 녹취와 증언록 다음은 하상칠이 2010년 7월 21일 14시 3 15의거기념사업회 회의실에서 당시 백한기 회장 앞에서 2시간여에 걸쳐 진술한 증언 녹취록을 풀어 그해 말 동 사업회에서..

얼음장수의 뜨거웠던 하루 :  3.15의거 한 참여자에 관한 미시사적 분석 - 2

Ⅱ. 얼음장수의 정체, 증언 및 평가 1. 연구 대상자 프로필 (이 부분은 연구 대상자가 필자의 장인이어서 평소 필자가 그에게 들어서 알고 있는 사항과 그의 사망 후 필자가 이 글을 쓰기로 마음먹은 후 그의 가족, 일가, 지인..

얼음장수의 뜨거웠던 하루 : 3.15의거 한 참여자에 관한 미시사적 분석 - 1

이 글은 1960년 3․15의거 당일 야간 시위에 주도적으로 참가했던 한 개인의 증언을 바탕으로 그의 개인사를 하나의 창으로 삼아 역사적 사건을 재조명한 경남대학교 경제금융학과 서익진 교수의 논문이다. 연구는 사적 기록이나 증..

걸작 - 이집트 룩소르 구르나 마을 - 4

구르나 마을이야기 - 2 《극장》 극장은 아름다운 내부공간과 무대를 가지고 있었다. 햇빛을 가리기 위해 담쟁이가 덥혀있었다는 객석 회랑 목조 파고라 위의 담쟁이는 이미 찾아볼 수 없었지만 흙으로 빚어진 구조물은 모두 원형대로 ..

걸작 - 이집트 룩소르 구르나 마을 - 3

구르나 마을 이야기 - 1 일행이 나일강변에 자리한 경관 좋은 호텔에서 휴식을 취하던 오후. 안내자와 함께 조그만 배를 타고 나일강을 건너 구르나 마을로 향했다. 구르나 마을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은 현지 안내자 덕분이었다. 그..

걸작 - 이집트 룩소르 구르나 마을 - 2

위대한 건축가 하싼 화티(Hassan Fathy) - 2 하싼 화티가 구르나 마을을 건설할 1940년대 중반, 그 당시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고 있던 이집트는 서양식 건축이 판을 치고 전통적인 이집트 양식의 건물들은 사라져가고..

걸작 - 이집트 룩소르 구르나 마을 - 1

위대한 건축가 하싼 화티(Hassan Fathy) - 1 (이 글은 이집트 여행 중 우연히 만났던 하싼 화티의 구르나 마을 경험담이다. 오래 전 일이다. 지금 생각해도 그 우연은 내게 축복이었다. 울렁이는 감격으로 구르나를 둘..

걸작 - 중국 사천성 도강언(都江堰) - 4

도강언(都江堰)에 올라 이빙(李冰)을 생각하다 저명한 중국의 역사학자 위치우위(余秋雨)는, 중국역사상 가장 감동적인 건축물은 만리장성이 아니라 도강언이라고 했다. 도강언의 외관상 규모가 만리장성처럼 거대한 것은 아니지만, 많은..

걸작 - 중국 사천성 도강언(都江堰) - 3

위대한 목민관 이빙(李冰) 도강언 주변 일대는 성도나 인근 지역 사람들이 쉴 수 있는 아름다운 공원이기도 했다. 울창한 숲 속에서는 특유의 목소리를 내는 사천 매미가 왕왕거리며 울어댔고, 서북쪽의 산록에서는 시원한 고원 바람이..

걸작 - 중국 사천성 도강언(都江堰) - 2

5백 갈래로 나누어진 민강(岷江) 도강언의 시설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어취(魚嘴)와 비사언(飛沙堰), 보병구(寶甁口)가 그것이다. 이 세 시설은 따로 있으나 서로 긴밀하게 연관되어 결과적으로 하나의 유기체적 결합..

걸작 - 중국 사천성 도강언(都江堰) - 1

천부지국(天府之國) 언젠가 중국 사천성 일대를 여행하였다. 그 동안 십 수차례 중국을 드나들었지만, 보면 볼수록 놀라운 것은 수천수만 겹 녹아있는 역사의 층위다. 대륙은 깊고 넓었으며 언제나 새로운 것을 보여 주었다. 지구상에..

노회찬의 추억
노회찬의 추억 2018.07.30

노회찬 의원과 저의 인연은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매체를 통해 저만 그를 알았을 뿐 그는 저를 몰랐습니다. 노회찬 의원을 직접 만난 것은 2016년 2월쯤이었습니다. 그해 4월 선거를 앞두고 창원에 내려왔을 때였습니다. 처음 만..

북한건축 - 건축은 건축의 눈으로 보아야

(지난 5월 29일 「건축사신문」에 실렸던 글입니다. 글 중 '우리'는 건축사를 말합니다.) 남북 정상이 판문점에서 손을 맞잡은 그 날, 이 나라 모든 국민은 TV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만찬장에서 제주도 소년 오연준의 목소리..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14 - 1980년대 이후

5) 1980년대 이후 - 4 아파트의 대중화는 주거설비의 획기적인 변화를 불러왔다. 아파트 사용자들은 첨단시설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가장 큰 변화는 주방시설에서 비롯되었다. 주부의 가사노동을 줄여줄 뿐 아니라 세련된 디자인과..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13 - 1980년대 이후

5) 1980년대 이후 - 3 2002년 말 우리나라 주택 보급률은 100%를 넘었다. 1인 가구를 포함하는 신주택보급률 역시 2008년에 100%를 상회(100.7%)함에 따라 주택의 양적 공급이 부족한 상태는 아니라고 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