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2011.04.04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52) - 개항이후

<마산포의 길과 땅>

-마산포의 길-

포구를 끼고 발생한 마을의 경우, 마을 규모가 작을 때는 한 개의 선창을 중심으로 단순하지만 마을 규모가 클 때는 몇 개의 선창을 연결하는 주도로를 중심으로 여러 갈래의 길들이 형성됩니다.

마산포의 경우는 후자처럼 창원가도(昌原街道)를 중심으로 수계(水系)와 능선 그리고 등고선에 따라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된 얼개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지난 회에 올렸지만 다시 한 번 마산포 복원도를 보겠습니다.



남성동 파출소 일대, 즉 조창지 부근지역은 조창과 관련한 관리들 거주지 혹은 조창관련 건물들 탓에 계획된 도로로 보이는 직교격자형이 많았습니다.
이 지역은 한일병합 이후 근대식도로가 개설되면서 금융 등을 비롯한 새로운 산업시설을 담당하는 마산포의 중심공간으로 변하게 됩니다.

이와 달리 인구 증가와 함께 동쪽(그림에서 오른쪽, 지금의 아구찜 거리와 코아양과점 뒷편)으로 취락이 확산되면서 소규모 토지에 불규칙한 미로(迷路)형 세도(細道)가 많았습니다.

1908년에 제작된 마산지도 중 마산포(원마산)의 도로를 표기한 것과 복원도에서 골목길 부분을 확대한 것이 다음의 두 그림입니다.
비교해 보면 당시 마산포 골목길의 상황을 짐작할 수 있을 겁니다.


마산포를 통과하는 창원가도의 위치를 비정해 보았습니다.

아래 그림(1902년 제작된 지도)을 통해 산호동 해안을 끼고 창원읍과 연결되었음을 알 수 있는데 이런 관점에서 보면, 복원도의 ●지점과 ●지점을 잇는 도로가 이른바 창원가도(昌原街道)로 보입니다.
 

진주와 창원을 연결하면서 마산포를 관통하는 창원가도(昌原街道)의 형태는 마산포 생성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결과인 것으로 보입니다.

아래 그림은 당시 마산포가 외부와 연결되는 도로체계를 도로의 형상과 인근지역의 위치를 감안하여 정리해본 도면입니다. 회원․성호․교방․석전지역이 마산포 와 연결되는 주도로라고 보면 됩니다.
그림에서 굵은 점선으로 그려진 길이 당시에 가장 번화했던 길입니다.

 

-마산포의 땅-

복원도에서 확인된 1910년 경 마산포의 면적은 약 170,000㎡(51,000평)이었습니다.

각 필지별 대지의 규모는 작았습니다.
총 1,157필지 중 50(15평)미만이 20%, 50-100(15-30평)이 33%, 100-200(30-60평)이 28%로 60평 이하의 땅이 81%를 차지했습니다.

좁고 꾸불꾸불한 골목길에 조그만 집들이 다닥다닥 이어져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마산포에서 가장 면적이 넓은 대지는 그림에서 녹색으로 표시된 마산창(현 제일은행 마산지점과 남성동 파출소 일대) 부지였는데 면적은 5,097.52㎡(1,530평)였습니다. 사정(査定) 당시의 지번은 '원정(元町, 남성동) 142번지'였습니다. 

아래 그림의 점선 내 토지 형태를 유심히 보면 동굴강을 감싸고 있는 대지 중 어선창 쪽으로 나가는 길가에 일정한 폭의 전면부를 가진 소규모 필지들이 군집해 있습니다.


이 토지형태에서 착안, 이곳에서 마산포 시장이 발원한 후 시간이 흐르면서 조창주변의 상권과 연결되었다고 추정하기도 합니다.

추정 이유는 유독 이곳의 대지 형태가 이질적이라는 점과 이 지역이 민간인 전용굴강으로 추정되는 동굴강과 연근해 어선들이 모여들었던 어선창, 그리고 창원가도 변에 있으면서 오산진(현재의 산호동 용마산아래 마을)과 연결되는 오산선창이 이어지는 지역이기 때문입니다.

초기에는 길을 따라 장이 열렸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장터로 사용되었던 길가에 점포가 상설화된 것이라는 이야깁니다.

한편, 마산창을 기준으로 선창에 이르는 일대의 도로는 반듯한 직교격자형이고 토지도 정형이며 규모도 큽니다.

이러한 공간 구성은 마산창을 중심으로 의도적으로 계획된 도시구조체계라고 볼 수 있으며 부지의 용도는 마산창과 관련된 관리들의 가옥이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된다.

박희윤은 이 지역을 큰 곡물(穀物) 객주와 선어물(鮮魚物) 객주들의 건물이 들어서있던 상업 및 업무지역이라고 추정했습니다만 부지의 위치나 형태, 그리고 인근의 다른 토지 중 관리가 거주했을만한 부지가 발견되지 않는다는 점 때문에 관리들의 가옥으로 추정한 것입니다.

아무튼 이 지역은 개항기부터 금융기관이 들어서는 등 도시의 중심지로서 기능했지만 한일병합 후에 근대식도로가 개설되면서 마산포의 중심기능을 점점 강화하게 되었고 이런 현상은 최근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손수레나 지게만 통행이 가능했던 마산포 골목길,,,, 그리고 다닥다닥 붙어 앉은 작은 집들,,,,
길을 넓히고 건물을 지으면서 변한 곳도 있지만 대부분 지금까지 그 모습 그대로 존속해 오고 있습니다.

없는 것도 만들어서 ‘이것입네’하는 세상인데,
조선시대부터 내려온 이 골목길과 오래된 동네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없을까요?<<<

 


2010/10/04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26) - 개항이후
2010/10/11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27) - 개항이후
2010/10/18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28) - 개항이후
2010/10/25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29) - 개항이후
2010/11/01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30) - 개항이후
2010/11/08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31) - 개항이후
2010/11/15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32) - 개항이후
2010/11/22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33) - 개항이후
2010/11/29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34) - 개항이후
2010/12/06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35) - 개항이후
2010/12/13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36) - 개항이후
2010/12/20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37) - 개항이후
2010/12/27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38) - 개항이후
2011/01/03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39) - 개항이후
2011/01/10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40) - 개항이후
2011/01/17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41) - 개항이후
2011/01/24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42) - 개항이후
2011/01/31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43) - 개항이후
2011/02/07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44) - 개항이후
2011/02/14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45) - 개항이후
2011/02/21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46) - 개항이후
2011/02/28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47) - 개항이후
2011/03/07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48) - 개항이후
2011/03/14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49) - 개항이후
2011/03/21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50) - 개항이후
2011/03/28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51) - 개항이후

Trackback 0 Comment 1
  1. business logo design 2011.08.06 18:09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한 번 해보고 싶어지네요ㅎㅎ
    초보블로거라서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경남지역의 주거변천사 - 6 / 해방 후부터 제4공화국(1970년대)까지

3) 해방 후부터 제4공화국(1970년대)까지 - 1 1945년 일제의 압제에서 벗어나면서 비로소 주체적인 주거문화를 창달할 수 있는 계기를 맞게 되지만 경제 사회적 제반 여건이 불비하여 주체적인 역량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었..

경남지역의 주거변천사 - 5 / 개항기부터 일제강점기

2) 개항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 2 일제하의 중·상류계층의 주택 유형으로는 양식주택과 절충식(개량식)주택·개량 한옥·문화주택·공동주택·영단주택 등을 들 수 있다. 양식주택은 서양식주택을 말하며, 절충식 주택은 과도기적 상황에..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 4 / 개항기부터 일제강점기

2) 개항기부터 일제시기까지 - 1 구한말(舊韓末)까지도 조선 사람들이 살았던 보편적인 주거 유형은 한옥이었다. 1882년 그리피스(W. E. Griffis)가 쓴 한국에 관한 역사서 『은자의 나라 한국』에는 당시 전통 한옥을..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 3 / 조선시대 이전

1) 고대에서 조선시대까지 - 3 조선시대는 우리나라 주거문화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시기이다. 반상(班常)을 철저히 구분한 신분사회였기 때문에 신분에 따라 주택의 크기나 형태를 규제하는 가사규제(家舍規制)가 있었다. 신..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 2 / 조선시대 이전

1) 고대에서 조선시대까지 - 2 주거사(住居史)에서 청동기시대와 초기철기시대를 구분하는 또 하나의 지표는 구들의 시작이다. 한국 주거문화의 정체성을 압축적으로 나타내는 구들은 난방기술의 획기적인 발전인 동시에 지상주거로의 변..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  1 조선시대 이전

오늘부터는 <경남지역 주거변천사>를 포스팅하겠습니다. 6~7년 전에 『경남도사』에 싣기 위해 간략히 쓴 글인데 출판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 블로그에 올립니다. 어차피 공유하기 위한 글이니 이해하리라 생각합니다. 한반도 동남부에 ..

기억을 찾아가다 - 25 (마지막 회)

25. 3·15의거에 대한 기억 「그날 나는 ‘극장 구경 시켜주겠다’는 주무돈이란 동네친구의 호의에 끌려 10리 가까이 되는 길을 걸어 ‘시민극장’으로 갔다. 그때 나는 대학입시에 낙방한 직후라 의기소침해 있던 상황이었다. 우..

기억을 찾아가다 - 24

24. 이승만 행사 - 독립협회와 청년 이승만, 노인잔치...... 내 고등학교시절의 어느날 동회 서기가 들고온 책자를 잠시 훑어본 기억이 남아있다. ‘한국 정치인 99인집’이란 제목이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이승만편이 현격히..

기억을 찾아가다 - 23

23. 떠돌이들, 좀도둑 전쟁이 끝나자 대다수의 사람들은 고향으로 돌아들갔지만, 상당수의 사람들은 남아있었다. 좌우갈등의 와중에 있었던 몸이라 돌아갈 수 없는 처지였다고 들은 문씨 같은 사람들도 있었는가 하면, 가봤자 땅뙈기 ..

기억을 찾아가다 - 22

22.기합, 주먹자랑, 몸단련 중학교시절에도 조금은 의식되었지만 신경을 곤두세울 정도는 아니었었는데, 고등학교에 들어가자 그 문제들은 신경의 상당부분을 자극하여 행동거지의 상당부분을 조종하고 지배할 정도로까지 작용했다. 소위 ..

공간의 재탄생 - 재생 건축 '선유도' 02

지난주에 이어 녹색 기둥의 정원 에서부터 선유도 이야기를 이어 나가보도록 하겠습니다. - 녹색 기둥의 정원 정수지의 콘크리트 상판 지붕을 들어내 기둥만을 남겨 만들어진 이 정원은, 선유도 이야기관 의 설명에 의하면 ‘휴식과 ..

기억을 찾아가다 - 21

21. 동(洞) 대항 줄다리기대회 ‘마산시 동 대항 줄다리기대회’가 시작된 건 초등학교 때였던 것 같은데, 내가 몇번 구경한 건 중학교 때였다. 대회 장소는 주로 무학초등학교였다. 마산의 30여 동이 토너먼트로 겨루어 하루에 ..

공간의 재탄생 - 재생 건축 '선유도' 01

서울 한강변의 대표적 공원 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곳 중에 선유도가 빠지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원래 거기에 그렇게 있었던 장소로 기억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아직 직접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선유도 공원이 ..

기억을 찾아가다 - 20

20. 아이스케키 아이스크림이나 팥빙수도 있었지만 수요가 많지는 않았었다. 학교 앞이나 시장 입구 등에 리어카를 세워놓고 수제로 만들어 파는 정도였다. 소금 뿌린 얼음 통을 손으로 돌려 냉각시킨 아이스크림은 즉석에서 고깔과자 ..

안상수 시장은 철거민의 눈물 닦아주시라

설 연휴가 끝난 다음 날, 나는 한 언론사의 취재에 동행해 재개발로 철거 중인 마산 회원동 일대를 다녔다. 내가 태어난 곳이고 서른까지 산 곳이었다. 지금도 매일 두 번씩 지나는 곳이기도 하다. 그날 나는 몰상식과 몰염치의 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