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2011.05.27 00:29

'창원'하면 떠오르는 도시이미지는?

얼마전 인터넷을 검색하던 후배가 재밌는 그림을 발견했다며 아래의 그림을 보여주었다.
세계각국의 도시들을 상징하는 랜드마크를 엠블럼으로 만든것이었다.

어느나라 사람이 보더라도 공감할수 있을 정도로 잘 표현했다고 생각했으나, 마지막에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랜드마크를 보고 참 묘한 생각이 들었다.

기막히게 잘 표현했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지만 반만년 역사를 자랑하는 문화국가의 이미지가 이래서야 되겠냐는 탄식이 뒤따랐다.

이미지의 출처를 찾아보려고 애썼으나 결국 알아내지 못했고, 다른 이미지는 모두 도시명인데 우리만 국가로 표기된점을 보아 한국의 이미지는 국내 네티즌의 자폭이 아닐까 추측만 할 뿐이었다.
 





아파트숲과 교회십자가...
안타깝지만 부정할수 없는 우리 도시의 이미지이다.

홍콩의 건축거장 '아론 탄'이 지난3월 여수엑스포에 참여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했을 때 "서울의 야경은 십자가 뿐"이라며 "도시야경속에 빛나는 십자가가 가장 인상적이다"라고 특색없는 한국도시의 풍경을 꼬집어 말했다고 한다. 

이런 이미지가 부각되는것도 문제지만, 모든 도시들이 개성을 잃고 닮아가는것도 큰 문제이다. 
서울은 말할것도 없거니와 부산, 대구, 광주, 창원 할 것없이 모든도시가 그 도시만의 고유색을 잃고 점점 닮아가고 있다.
건물은 물론 가로나 공원등  도시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들이 모두 유사해지고 있어 도시의 모습만 보고는 어느 도시인지 분간하기가 쉽지않다. 


많은 도시들이 그 지역을 상징하는 랜드마크나 고유색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창원하면 떠오르는 도시이미지는 무엇일까?
시청광장, 공단, 시티세븐, 해안과 돝섬 등 몇가지 떠오르긴 하지만 딱히 내세울 만한것이 없다.

며칠전 "꿈의 도시 꾸리찌바"의 저자 박용남 교수가 강연중에 한 말이 오랜 울림을 준다.
창원은  지속가능한 도시가 아니며. 아무리 환경수도라고 떠들어도 누구도 인정해주지 않는다고...
이 도시는 보행자 중심이 아닌 전형적인 자동차중심의 도시라며, 사람이 편하게 걸을 수 있는 도시가 인간중심의 살기좋은 도시라고 강조했다.

창원시에서 많은 예산을 들여 추진하는 통합 상징물이 시민들의 삶에 어떠한 도움을 줄것인지 깊이 생각해봐야 한다. 

환경수도 창원의 랜드마크는 인공적인 구조물 보다 녹음이 우거진 걷고 싶은 거리에서 찾는것이 올바르지 않을까? 


Trackback 0 Comment 3
  1. 연세 2012.10.09 00:26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안녕하세요. 인상깊게 봤습니다. 이미지좀 얻어갈께요^^

  2. 은경 2014.11.18 02:59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창원에 사는 시민으로서 많은 부분 공감이가네요~ 잘봤습니다^^

  3. 오동 2014.12.19 16:23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촌철살인의 심블입니다.

경남지역의 주거변천사 - 6 / 해방 후부터 제4공화국(1970년대)까지

3) 해방 후부터 제4공화국(1970년대)까지 - 1 1945년 일제의 압제에서 벗어나면서 비로소 주체적인 주거문화를 창달할 수 있는 계기를 맞게 되지만 경제 사회적 제반 여건이 불비하여 주체적인 역량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었..

경남지역의 주거변천사 - 5 / 개항기부터 일제강점기

2) 개항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 2 일제하의 중·상류계층의 주택 유형으로는 양식주택과 절충식(개량식)주택·개량 한옥·문화주택·공동주택·영단주택 등을 들 수 있다. 양식주택은 서양식주택을 말하며, 절충식 주택은 과도기적 상황에..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 4 / 개항기부터 일제강점기

2) 개항기부터 일제시기까지 - 1 구한말(舊韓末)까지도 조선 사람들이 살았던 보편적인 주거 유형은 한옥이었다. 1882년 그리피스(W. E. Griffis)가 쓴 한국에 관한 역사서 『은자의 나라 한국』에는 당시 전통 한옥을..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 3 / 조선시대 이전

1) 고대에서 조선시대까지 - 3 조선시대는 우리나라 주거문화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시기이다. 반상(班常)을 철저히 구분한 신분사회였기 때문에 신분에 따라 주택의 크기나 형태를 규제하는 가사규제(家舍規制)가 있었다. 신..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 2 / 조선시대 이전

1) 고대에서 조선시대까지 - 2 주거사(住居史)에서 청동기시대와 초기철기시대를 구분하는 또 하나의 지표는 구들의 시작이다. 한국 주거문화의 정체성을 압축적으로 나타내는 구들은 난방기술의 획기적인 발전인 동시에 지상주거로의 변..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  1 조선시대 이전

오늘부터는 <경남지역 주거변천사>를 포스팅하겠습니다. 6~7년 전에 『경남도사』에 싣기 위해 간략히 쓴 글인데 출판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 블로그에 올립니다. 어차피 공유하기 위한 글이니 이해하리라 생각합니다. 한반도 동남부에 ..

기억을 찾아가다 - 25 (마지막 회)

25. 3·15의거에 대한 기억 「그날 나는 ‘극장 구경 시켜주겠다’는 주무돈이란 동네친구의 호의에 끌려 10리 가까이 되는 길을 걸어 ‘시민극장’으로 갔다. 그때 나는 대학입시에 낙방한 직후라 의기소침해 있던 상황이었다. 우..

기억을 찾아가다 - 24

24. 이승만 행사 - 독립협회와 청년 이승만, 노인잔치...... 내 고등학교시절의 어느날 동회 서기가 들고온 책자를 잠시 훑어본 기억이 남아있다. ‘한국 정치인 99인집’이란 제목이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이승만편이 현격히..

기억을 찾아가다 - 23

23. 떠돌이들, 좀도둑 전쟁이 끝나자 대다수의 사람들은 고향으로 돌아들갔지만, 상당수의 사람들은 남아있었다. 좌우갈등의 와중에 있었던 몸이라 돌아갈 수 없는 처지였다고 들은 문씨 같은 사람들도 있었는가 하면, 가봤자 땅뙈기 ..

기억을 찾아가다 - 22

22.기합, 주먹자랑, 몸단련 중학교시절에도 조금은 의식되었지만 신경을 곤두세울 정도는 아니었었는데, 고등학교에 들어가자 그 문제들은 신경의 상당부분을 자극하여 행동거지의 상당부분을 조종하고 지배할 정도로까지 작용했다. 소위 ..

공간의 재탄생 - 재생 건축 '선유도' 02

지난주에 이어 녹색 기둥의 정원 에서부터 선유도 이야기를 이어 나가보도록 하겠습니다. - 녹색 기둥의 정원 정수지의 콘크리트 상판 지붕을 들어내 기둥만을 남겨 만들어진 이 정원은, 선유도 이야기관 의 설명에 의하면 ‘휴식과 ..

기억을 찾아가다 - 21

21. 동(洞) 대항 줄다리기대회 ‘마산시 동 대항 줄다리기대회’가 시작된 건 초등학교 때였던 것 같은데, 내가 몇번 구경한 건 중학교 때였다. 대회 장소는 주로 무학초등학교였다. 마산의 30여 동이 토너먼트로 겨루어 하루에 ..

공간의 재탄생 - 재생 건축 '선유도' 01

서울 한강변의 대표적 공원 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곳 중에 선유도가 빠지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원래 거기에 그렇게 있었던 장소로 기억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아직 직접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선유도 공원이 ..

기억을 찾아가다 - 20

20. 아이스케키 아이스크림이나 팥빙수도 있었지만 수요가 많지는 않았었다. 학교 앞이나 시장 입구 등에 리어카를 세워놓고 수제로 만들어 파는 정도였다. 소금 뿌린 얼음 통을 손으로 돌려 냉각시킨 아이스크림은 즉석에서 고깔과자 ..

안상수 시장은 철거민의 눈물 닦아주시라

설 연휴가 끝난 다음 날, 나는 한 언론사의 취재에 동행해 재개발로 철거 중인 마산 회원동 일대를 다녔다. 내가 태어난 곳이고 서른까지 산 곳이었다. 지금도 매일 두 번씩 지나는 곳이기도 하다. 그날 나는 몰상식과 몰염치의 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