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2011.08.31 00:00

욱일승천기를 모방했다는 진해 중원광장

제국주의 일본 군부가 강압적으로 건설한 계획도시진해(구 진해시청 부근, 서부지역)가 탄생한지 100여년이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로 근대적인 도시계획기법이 적용된 도시이지만 설계자가 누구인지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일본군부가 외부전문가에게 의뢰했지 않았겠느냐' 라고 추정하는 정도입니다.

당시 설계된 진해시가지 계획도입니다. 

보는 것처럼 진해는 방사형가로구조를 가진 도시입니다. 북원(北苑)·중원(中苑)·남원(南苑)광장을 두고하는 말입니다.
강점기에는 이 세 광장을 북십(
北辻) 中辻(중십) 南辻(남십)이라 했습니다. 십(辻, 쯔지)은 우리나라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는 한자인데 '네거리, 큰길'이라는 뜻입니다.

방사형가로구조로 설계된 도시가 또 있습니다.
진해와 비슷한 시기인 1907년 시작된
함경북도 나남시입니다.
아직 원형광장이 남아 있을까 싶어서 위성사진에서 확인해 보았더니 나남시에는 방사형가로구조의 원형이 없어져버렸습니다.

따라서 비록 일제에 의한 도시계획이었지만 진해는 근대기 초에 디자인된 방사형가로구조를 가진 한반도 유일의 도시입니다.
그 자체만으로도 도시사적 가치가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래 그림이 20세기초에 일제가 계획한 나남시의 도시계획도면(재 작도)과 며칠 전 제가 확인해본 '같은지역의 위성사진'입니다. 광장의 흔적은 조금 남아 있습니다. 


진해 도시설계의 특징을 두고 다양한 설명이 있습니다.

그 중 재미있는 것은 중원광장에 모이는 8개의 도로, 즉 방사동심원형광장(放射同心圓形廣場)이 일본군의 깃발 욱일승천기(旭日昇天旗) 모방했다는 해석입니다.

일제시기에 건설된 진해도시계획을 설명하는 사람에게서 가장 흔하게 듣는 말이며, 많은 사람들이 별 생각 없이 그냥 그렇게 알고 있고 그냥 그렇게 전하고 있는 이야깁니다.

최근에 진해도시를 주제로 논문을 한편 쓰다가 이 문제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고 제 나름의 결론을 얻었습니다.

이 글은 ‘진해중원광장의 욱일승천기 모방설’에 대한 제 생각입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건 ‘너무 심한 비약’입니다.

아래 사진은 현 진해 탑산 정상에 일본해군이 세운 러일전쟁 승전기념탑입니다. 해방될 때까지 있었습니다.
일본인들이 자랑스러워했던 욱일승천기가 탑꼭대기에서 펄럭이고 있습니다.


우리 눈에는 혐오스럽기까지한 깃발입니다만 제가 생각하는대로 의견을 개진해 보겠습니다.

중원광장과 같은 방사동심원형광장은 도시가로망계획에서 흔히 나타나는 기법으로 유럽의 도시가 근세에 들어와서 많이 채택한 형식입니다.

대표적 도시로서는 파리를 들 수 있으며 유럽전원도시에서 이 형식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러시아가 동방에 건설한 중국의 대련과 심양에도 이런 원형광장이 나타나며, 계획도시 뉴델리와 캔버라에도 방사동심원형이 나타납니다.
멀리는 로마시대에서도 이 형태를 찾을 수 있습니다.

방사동심원형광장의 디자인은 욱일승천기와 비슷하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원형광장을 중심으로 도로를 뚫으면 이 모양 외에 어떤 그림이 나오겠습니까?

굳이 따져보면 욱일승천기는 깃발 중심에서 뻗어나가는 선이 16개라 도로가 8개 밖에 안 되는 중원광장과는 차이도 많습니다.
오히려 개선문이 자리잡고 있는 파리의 드골광장이 욱일승천기와 더 가깝습니다.

각 도시의 원형광장과 욱일승천기를 비교해 보았습니다. 
순서는
욱일승천기  / 진해중원광장
파리 드골광장 /  로마의 광장
뉴델리의 광장 / 워싱턴 뒤폰트 광장 입니다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을 하게된 결정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일본제국주의 군부의 상징인 욱일승천기는 태양을 중심에 두고 그 빛이 세계를 향해 뻗어나가는 형상입니다.

그런데 그 중심, 즉 태양의 한복판 지점에 일본인들이 진해에 군항을 건설하기 전부터 존재하고 있었던 당산목 팽나무가 강점기 내내 심겨져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위 진해시가지도에 나타나는 중원광장에도 자세히 보면 이 나무가 그려져 있습니다.
 




다음 사진이 중원광장에 심겨져있던 팽나무입니다. 1920년 경 찍은 사진 같습니다.

 

 
중원로터리 디자인이 욱일승천기를 모방했다면, 
한국사람들이 조상대대로 신목(神木)이라고까지 부르며 제를 올리기도 했던 당산목 팽나무를 왜 그 한복판에 두었을까요?
설명이 참 어렵습니다.

중원광장이 욱일승천기와 비슷한 건 사실입니다만 그렇게 된 이유는, 단순히 도시디자인을 방사동심원형광장형식으로 선택했기 때문이었다고 봅니다.

일제의 악의를 포장해주고 싶어서 쓰는 글이 아닙니다.
지금에 와서 그 진실여부를 밝힐 수도 없을 겁니다.
하지만 사건이든 사물이든 인과관계에 대해서는 감정개입 없이 사실(fact)에만 근거해 설명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올리는 글입니다.
역사에 감정이 개입되면 ‘아팠던 역사’조차 극복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Trackback 1 Comment 9
  1. 양재종 2011.08.31 20:51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저도 좀 찜찜했는데 읽고보니 정리가 되었습니다.

    • 허정도 2011.08.31 23:45 신고 address edit & del

      감사합니다, 사실은 사실대로 보아야겠다는 생각에서 올려보았습니다.

  2. 2011.09.14 11:50 address edit & del reply

    비밀댓글입니다

  3. 타논 2015.03.27 14:55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당산나무를 그대로 둔 이유가.. 혹 없앨 경우 조선인들의 예상되는 반발, 일본이 그래도 조선의 마지막 정신을 배려한다는 위장술의 일종이거나, 또 자신들 스스로를 위한 종교상의 호신책 등으로 일정 시간 그냥 놔둔 것은 아닐까요? 아무 생각없이 당산나무를 그냥 놔두었다고는 보이지는 않습니다만.. 치밀한 것으로는 일본인을 못 따라가니 말이죠.

    • 허정도 2015.03.30 10:27 신고 address edit & del

      당연한 말씀입니다.
      말슴하신대로 '예상되는 반발' 때문이었을 겁니다.

  4. 홍이표 2016.05.25 15:02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일본에서 공부하고 있는 홍이표라고 합니다. 흥미로운 블로그 내용 잘 읽었습니다. 많이 배웁니다. 이 글에 대한 개인적 의견을 조금 적을까 합니다. 물론 서양의 도시 계획 모델이 비슷한 게 많으니, 그것들과 유사하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일본은 규정돼 있지 않던 천황의 상징인 국화의 잎 수를 1868년 경, 메이지 유신 직후 '16엽'으로 공식 제정합니다. 욱일승천기가 총 16개 빛줄기로 뻗어나가게 설계된 것도, 천황의 상징인 국화 잎 숫자와 관련돼 있습니다. 그렇다고 16개의 방사형을 도시계획에서 구현하기는 쉽지 않지요... 그 상징을 보완하는 개념이 바로 '핫코우이치우'(八紘一宇) 이념입니다. 천황의 세계가 동서남북사방팔방으로 뻗어나가 '하나의 집, 하나의 세계'를 구축한다는 일본제국의 무한팽창 이념입니다. 여기서는 '팔'(八)이 명확히 강조되어 있지요... 진해의 해양기지로서의 상징성은, 도시계획 때에도, '4', '8', '16'으로 이어지는 일본인들의 팽창 욕구가 반영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가운데 당산나무를 가운데에 살려 둔 것은, 그들이 절대자로 모신 '천황'이란 존재도 신도의 오야붕이라는 점을 상기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원시신도가 근세에 이르러 '복고신도', '근대에 이르러 '국가신도'(근대천황제)로 변화돼 왔지만, 그 뿌리는 결국, 자연물(동식물)을 숭배하는 '토테미즘'과 정령숭배의 '에니미즘' 등을 기반으로 하였던 것입니다. 따라서 그 지역에서 오랜 세월 숭배되어 온 자연물에 대한 경외는 '신도'라는 종교 체계 안에서는 본능적으로 자연스럽게 수용할 수 있었던 겁니다. 그건 '조선민족', 혹은 '대한제국의 국가상징'이 아니기 때문에, 받아들이는 순간, 곧바로 '국가신도'의 하나의 자산으로서의 '영물'이 되는 것입니다. 제 의견이 참고가 되시면 좋겠습니다. 저도 근현대의 다양한 종교상징과 국가상징, 민족상징의 상호 역학관계를 역사적으로 고찰하고 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https://www.facebook.com/yipyo.hong.5

    • 허정도 2016.05.27 06:42 신고 address edit & del

      방문 감사합니다.
      홍 선생님의 글을 읽고보니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제가 이 글을 쓴 까닭은 극일을 위해서는 역사를 과대포장해서도 안되고 과대해석을 해도 안된다는 소박한 생각 때문입니다.
      진해중원광장에 여덟 길이 만들어진 까닭을 지금 정확하게 알기는 힘들겠죠?

  5. 숧봉-진용옥 2017.06.08 00:27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동아시아 유학의 중심사상인 태극론은 음양오행과 4상과 8괘의개념이 있습니다 중국의 4해 동포나 천원지방처럼 네거리에 중앙을 두는 오행 개념이 기봉이며 대체로 4거리 로타리를 두든개념과 유사 합니다 태극기는 8괘에서 4괘만 이용하고 그보다 3태극을 선호했습니다 상세보다 포괄성을 중시하나는 성향으로 보입니다 이에 비해 일본은 상세 분석을 선호하여 일장기에 8괘를 구현한 것이 욱일 승천기이고 8굉 일우도 같은 맥락으로 보입니다

  6. 숧봉 진용옥 2017.06.08 00:58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도시의 발생은 환웅 한를에서 신단수에 내려와 신시를 여는데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할 있습니다 그리스 로마에서는 아라고[광장]가 원형으로 보입니다 마차와 자동차가 다니면서 도로가 나타나고 교차로가 나타나며 로나리가 생기는 으로 볼수 있고요. 서양에서 먼저 로타리 구조가 생긴다 해서 일본을 모방했다가보다는 인류의 보편적인 도로 진화과정이라고 볼수 있습니다 며 다만 선호하는 성향에 따라 4괘 로타리 또는 5행 로타리를 구성되며 8괘 로타리로 세분화 될 수 있겠습니다

    그러므로 진해 한들[중평] 노타리는 지형 구조로 보아 자연스레 8괘 로타리로 조성되고 이는 일본인의 의식 구조와 한국인의 의식구조에도 별도 거부감이 없는 로나리 구조였다고 보여 집니다
    제나가 도천초등하교에 다닐때 충무로가 욱일승천기의 깃대이며 북원로타리[이순진장군 동상] 는 깃대의 봉으루라 했습니다 그럴싸 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까 음모론적 시각이 강한 것 같으며 욱일 승천기를 가상하여 의도적으로 설계했다는 근거를 찾기가 힘든다고 생각합니다 허선생님의 견해에 동의하지만 좁 다른 관점에서 보았습니다

기억을 찾아가다 - 14

14. 정전 후의 체험들 Ⅴ - 마부 버스, 화물차 군용차 아닌 것들을 그때 우리들은 ‘개인차’라 불렀는데, 개인 승용차는 당시로선 하루에 한두 대 보기도 어려웠고, 거의 모두가 화물차와 버스였다. 거의 모두 일제가 두고 간 ..

건축의 외형 - ‘새둥지’ (Bird's Nest)

동굴에서의 삶을 시작으로 인간의 주거는 자연을 모방하는 단계를 거쳐 현재는 완전히 인공적인 삶의 공간을 만들어 내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자연적 형태들은 완전한 인공물인 건축의 형태에 영향을 주고 있으며, 의도되었든 ..

기억을 찾아가다 - 13

13. 정전 후의 체험들 Ⅳ - ‘이용범 다리’ ‘용베미 다리’란 말을 언제 쯤 부터 들었는지를 정확하게 기억할 수는 없지만, 이용범(아래 사진 / 1905~1968)이란 인물의 이름이 널리 퍼진 계기로 미루어보면, 1954년..

건축의 외형 - ‘원통’ (cylinder)

일상에서 마주할 수 있는 수많은 도형들 중에, 언제나 주변에 있어서 오히려 존재감이 낮은 경우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일상에서의 '원통' 이 그런 것 중 하나일 것입니다. 우리는 수많은 원통형 물체와 함께 살아가고 있으며, ..

기억을 찾아가다 - 12

12. 정전 후의 체험들 Ⅲ - 귀환, 상이군인들 정전 얼마 후에 전장에 갔던 아저씨들이 속속 돌아왔다. 함께 끌려가서(그땐 그렇게들 표현했다) 내내 한 부대에 있다가 함께 돌아온 우용 아저씨와 내 당숙은 상이용사가 되어 돌아..

건축의 외형 - ‘타공판’ (perforated board)

사람이 건축의 외형을 인지하고 기억할 때에 여러 가지 요소들을 보고 듣고 느끼게 됩니다. 개개인의 차이는 있겠으나, 일반적으로 특정 건물은 가장 부각되는 특정 요소로 기억하게 되는 듯 합니다. 규모나 재질, 기하학적 형태, 조..

2018년 새해인사

새해 인사드립니다. 꿈 꾸는 것과 희망하는 것들이 모두 이루어지는 해가 되기 바랍니다.

건축의 외형 - ‘액자’ (frame)

미술의 역사 만큼이나 액자의 역사는 오래 되었을 것입니다. 회화의 전시, 보존 등을 위한 보조적인 위치에서 출발한 액자는 사진의 등장과 기술의 발달 등으로 현재는 picture frame 만이 아니라 photo frame, d..

기억을 찾아가다 - 11

11. 정전 후의 체험들 Ⅱ - 수학여행 전쟁이 막바지로 갈 때쯤 해선 민간자동차도 많이 다니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주로 화물차가 많이 보였는데, 마산 부산 간에만 다니던 버스 숫자도 상당히 불어난 걸 느낄 수 있었다. ..

건축의 외형 - ‘계단’ (Staircase)

오늘은 이전 포스팅들 보다는 조금 더 인공적인 형태라 할 수 있는, '계단' 이라는 주제를 가져와 보았습니다. 계단의 역사는 생각보다 오래 되어, 이미 BC3000년 경 메소포타미아의 지구라트 에서부터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

기억을 찾아가다 - 10

10. 정권 후의 체험들 Ⅰ- 깡통문화, 총탄 정전 반대를 외치는 집회와 행진이 전국적으로 있었고 마산에서도 무학초등학교 운동장에서 궐기대회가 열렸었다는 이야기를 어른들이나 형들로부터 엿들었던 기억은 있으나 거기에 관심을 기울..

건축의 외형 - ‘초승달’ (crescent)

달은 태양과 마찬가지로 여러 문화권에서 신화나 종교와 연결지어서 생각되었습니다. 초승달은 달이 뜨지 않는 삭 다음에 나타나기 때문에 서양권 에서는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 하여 new moon 이라고도 불리죠. 오늘은 이슬람의 ..

기억을 찾아가다 - 9

9. 한국전쟁기의 학교생활 Ⅲ - 용의검사, 학력경쟁 가교사생활 직후부터 실시된 용의검사는 생활환경이 좋은 도회지 넉넉한 집 아이들에겐 별 부담이 안 되었겠지만, 누추한 환경에서 생활하거나 항상 흙을 묻히고 살아야하는 농촌 아..

건축의 외형 - ‘삼각형’ (Triangle)

피라미드와 삼각형, 그게 그것 아닌가 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만, 입체도형과 평면도형 이라는 근본의 차이때문에 여러 분야에서 접근 또는 적용 방식 또한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피라미드와 삼각형 은 겹치는 부분도 있지만 확..

기억을 찾아가다 - 8

8. 한국전쟁기의 학교수업 Ⅱ - 떠돌이 수업 초등학교 5학년 때였던 1952년의 학교생활엔 참 변화가 많았다. 담임선생님도 세 번이나 바뀌었고 교실도 다섯 번이나 옮겨 다녔다. 그리고 전입생도 그 해에 갑자기 불어났다. 처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