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2012.03.05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99) - 강점제2시기

<마산포와 신마산이 연결되다 - 중앙마산의 형성>

3) 각종 문헌에 나타나는 '중앙마산'의 철도용지

‘중앙마산’이라는 용어는 이 글에서 처음 사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일제기에 간행된 마산관련 몇몇 자료에서「중앙마산(中央馬山)」혹은「중앙방면(中央方面)」「중앙부」라는 용어가 사용되었습니다.
이것은 이 지역이 신마산과 원마산의 두 영역에 포함되지 않으면서 두 지역 사이에 있는 다른 성격의 도시공간이라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서는 1920년대 일본인이 발간한 문헌에 나오는 '중앙마산' 관련 기록들을 모아 소개하겠습니다.
내용을 간추려 번역한 것이며 명칭은 현재 사용하는 용어로 고쳐 적습니다.

①『馬山港誌(마산항지, 1926)』- 諏方史郞(추방사랑)

a. 위치와 지세(p.3)


마산부의 대체적인 지세는 본래 마산포 즉 마산포 방면과 이전의 각국거류지 및 군영, 군 관사 소재의 신마산 방면, 그리고 그 중간인 철도용지 즉 중앙부 방면의 크게 세부분으로 성립된다.
그 중 마산포 방면은 한인(韓人)을 상대하는 상점이 많으며 미곡, 해산물의 집산지다. 신마산은 정비된 가로와 좋은 가옥이 많고 군인 관리를 상대로 하는 상점이 대부분이며 중앙부는 관아․학교․사원․철도소재지가 있기 때문에 그 곳 관계자의 주택이 많이 있은데 중앙부 중 일부 신마산에 접한 곳은 상황(商況)이 오히려 신마산을 능가하고 있다. 그렇지만 중앙부 대부분은 철도용지를 빌린 전답들이다.
마산부는 중앙부에 대한 도시 및 거리조영(造營) 계획을 지금 시행한다면 세 도시가 합쳐져서 하나의 대도시로 되는 것이 먼 장래의 일 만은 아닐 것이다.

b. 신․구마산의 공칭 (pp.91-92)
․․․․․․․․따라서 그 중간인 신월천에서 장군천을 통해 척산교(尺山橋)에 이르는 철도용지 내 시가를 중앙부라 칭하였고․․․․․․․

c. 중앙 방면 (pp.202-203)
중앙방면은 신마산의 동북경계인 신월천부터 동북으로 나아가 장군천(將軍河)을 건너서 마산포의 서남부분의 척산교(尺山橋)에 이르는 사이를 총칭하는 것이다․․․․․․․․․․․․․․․그 부근에서 번영하는 중앙동거리를 지나 거류지의 위쪽으로 나있는 대 가로를 따라 창원군청, 자혜병원, 경찰서, 고녀고(高女校, 마산여고의 전신인 마산고등여학교를 말함
) 등이 큰 면적을 차지하고 있는 점은 상점가로서 번영하는 외관을 저해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이 방면의 중앙을 관통하는 하천을 장군천이라고 한다. 상류 장군교 북쪽 일대는 전중손(田中遜) 백작의 농사경영과 관련되어 있는 월포원의 식림지인데 고려말의 처사 장장군(張將軍)이 왜구와 싸우다 충성스런 전사를 한 명예를 기리기 위하여 하천의 이름을 그렇게 붙였고 장군은 월포원 내에 영면해 있다. 이 하천의 중앙동 지역에 놓여진 다리는 월포교라 하고 장군동에 놓여진 것은 장군교라 한다.
장군교 부근에서 옆으로 비스듬히 중앙동에 이르는 가로는 1906년 초겨울에 개통되어 당시 거류지인 마산포의 유일한 연락도로가 되었고 1910년에 마산, 진주간 일등도로가 마산 역전까지 개통을 보게 되면서 두 개의 길을 얻어 척산교에서 서로 만나 한 도로가 되어 마산포로 들어가게 되었다.
 이 때까지 마산 역전에 높이 50척의 한 언덕이 있어 그 꼭대기에 정자를 지어 역무원들이 달을 보고 더위를 식히는 위안소가 되어 月見丘(월견구, 스키미오카)라고 불렀는데 아래 가장자리의 도로는 가끔 물에 잠겨 통행두절 상태가 되기도 했다. 마진도로개통과 함께 월견구도 평탄하게 깎아 도로로 만들었고 그 언덕자리는 현재 상반여관에서 丸二(환이, 마루니)운송점 창고가 있는 일대의 지역이다.
장군천 하류의 동쪽지역에는 1911년 5월 23일부터 전(全) 항구를 전기로 밝힌 일한와사전기회사의 후신인 경성전기회사 마산지점이 있었다․․․․․․․․
․․․․․․․․중앙방면, 반월동에서 부터 장군동의 전부 남측, 즉 중앙동, 월포동을 거쳐 해안에 이르기까지 인가의 유무를 불문하고 부설한 철도용지이며, 완월, 신월 두 개 동을 합하여 일본인 3백60호 1,500명, 한국인 약 750호 4,000명이 된다. 한마디로 말해서 당 방면을 평하자면․철도․은행과 회사․관리․교원들의 동네나 대서인(代書人), 변호사 및 은급자들이 거주하는 동네이며 사찰 동네가 될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대부분은 가옥건축을 허용한 철도용지의 전답으로서․․․․․․․

d. 신시가의 실현이 가까웠다 (pp.220-221)
마산부는 원래 신마산과 마산포와 중앙부 철도용지로 세 영역으로 크게 구분된다. 중앙부의 신마산에 가까운 방면 및 마산 역과 그 관사․마산소학교․마산고등여학교․마산자혜의원․창원군청․마산지방법원지청소재 부근 등 약 3분의 1로는 민가 가옥이 줄지어 있지만 중앙공설운동장 방면, 장군천과 월포교를 지나 척산교에 이르는 사이에는 광막한 철도용지가 자리 잡고 있어서 동서(東西) 마산은 모든 분야에서 다른 생활을 하였던 것이다.
그 때문에 발전상 종종 장애를 가져오고 있음으로 부(府)에서는 누누이 이를 부협의회(府協議會) 회원에 자문하여 이미 이 용지를 불하하여 시구에 대 개정을 실시하여 기본 조사를 마치고 총공사비108,471원65전을 계상(計上)하였다. 그 불용경지(不用耕地) 총면적 11,189평 9홉을 철도국에서 불하받아 이를 삭지성토(削地盛土)하여 도로 및 택지를 개설하였다.
그 신개(新開)도로의 연장 3,074칸5푼을 공제한 이외는 모두 택지로 구획하여 일반 공중에 매각하는 성산(成算)을 세우고 총독부에서 청원할 것이라고 전해져 그 실현이 먼 장래가 아니라 2-3년 이내라고 예상된다.

e. 마산민중의 소리 - 마산부청의 위치에 대하여 (pp.222-223)
마산부청은 정확히 마산의 중앙에 위치할 뿐만 아니라 이를 인간에 비유한다면 체구의 중앙에 있으며 각 장기와 신경기관 그 외 신체 전부를 활동시키는 최고기관의 심장이다. 그 기관인 부(府)가 서북 모퉁이에 위치한 것은 반드시 부치(府治)를 건전히 발달시키지 못하고 있다.
다수의 공무원이 이전을 원치 않는다 라고 해서 안 된다는 것은 치자(治者)의 생각인데 부민(府民)의 입장에서는 과연 어떠한지․․․․․․․․
공과의 체납도 이것 때문이며․․․․․․․․형무지소 소재는 옛날 논밭이었던 한가로운 지역이었지만 지금은 큰 가로에 접하여 상점이 즐비하고 크게 발한 지역이 되었다. 마산포 방면의 민중은 이것 또한 다른 곳에 이전하는 것을 희망한지 여러 년․․․․․․․․마산부청이 중앙으로 이전하면 신구(新舊)마산 사이의 감정도 스스로 융화될 것이 아닌가.

 

②『朝鮮と建築(조선과건축, 1929)』- 朝鮮建築會

a. 마산부청 신축과 공회당(3월호, p.39)

현 마산의 시가는 바다에 면한 무학산록 일대 완만한 경사면에 위치하고 있어 남북으로 길어 마치 띠의 모양을 하고 있다.
또한 마산부청의 위치는 남방 신마산의 구석에 치우쳐 있음과 동시에 약간 높은 언덕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서 시가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특히 구마산 방면은 매우 불편을 느끼고 있다. 현 부청사는 메이지 41년 마산이사청 당시 신축된 콘크리트건물로서, 그 후 두 차례에 걸쳐 증축된 견고한 건물인 까닭에 아무리 부민의 절박한 희망이 있다고는 하나, 건축비로 10만 엔 내외가 필요하기에 즉각 해결할 문제는 아니나․․․․․․․․ 부청이전문제가 대두하여 그 위치를 중앙부에 선정한다는 것은 부민의 편리에는 이 이상 좋은 일은 없고 나아가 시가의 발전에도 커다란 이익이 있을 것이라․․․․․․․․

b. 마산우편국 개축에 착수(12월호, p.32)
경남 마산우편국은 전 영사관 옆의 건물인데, 현 청사는 협소하고 위치가 매우 치우쳐있기에 일반 민중의 불편이 적지 않고, 현재의 발전에 부응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으며, 개축 이전문제가 민중 사이에 소리 높여 제기되어 오랫동안 현안이 되어왔기에 우편당국 역시 이 점을 고려하여 이전 철도국 용지인 마산 역전의 공지를 빌려서 부지로 예상하고 그 곳으로 이전할 계획이다․․․․․․․․

c. 마산부 소유 주택지 매각(1931년 10월호, p.54)
마산부는 신마산과 원마산 사이에 있는 부(府) 소유지 약 5천 평을 이번에 매각하는데 희망자가 선택 시 그 편의를 고려, 30여 필지로 분할하여 오는 9월 30일 마산부청 재무계에서 경쟁 입찰에 붙인다.
마산은 남지교(南旨橋)의 공사가 착수된 것과 함께 최근에 중앙마산(금회 경매에 나온 부근 일대)의 해면 약 5만 평 매축공사도 착수할 것이라고 결정했다.
그렇기 때문에 동 지역은 상업적으로, 또 관공서거리로서도 마산의 중앙부를 형성하게 될 것으로서 그 급속한 발전을 예측하고 지방민뿐만 아니라 부산․대구․진주방면에서도 이 경매지에 관한 소개가 있어서 희망자가 많다.

③『馬山現勢錄(마산현세록, 1929)』- 長田 純(장전순)․高須瑪公(고수마공)

a. 중앙마산의 매축 정비 (p.156)
마산의 시가구(市街區) 구성은 종래 신구 양(兩) 마산으로 나뉘어져 있어서 자연스런 시가구(市街區)의 연결이 좋지 않았다. 마산 발전의 암과 같았던 중앙 마산의 경지(耕地, 철도용지)가 부에 불하되어 여러 가지 문제가 원만히 해결되었으며 그 결과 최근 더욱 더 시가지로서 모습을 갖추기에 이르렀다.
즉, 종래의 경전(京電)마산지점을 위시하여 도립마산의원, 부산법원마산지청은 이미 장려한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으며 남선일보사, 부산일보사 등도 그 새로운 모습을 뽐내고, 마산부청과 공회당의 부지도 결정되어 머잖아 그 당당한 건축이 드러날 것으로 예상한다.
중앙마산시가구(中央馬山市街區) 구성과 관련해서는 뭐니뭐니해도 중앙마산 지선(地先)의 공유수면 매축사업을 간과할 수 없다․․․․본 사업의 완성은 더욱 마산항 발전의 기폭제를 이루는 것으로 많은 기대를 걸고 있다.

보신 것 처럼 여러 문헌에서 '중앙마산'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이 기록을 통한 당시 중앙마산의 상황과 형성과정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2011/11/21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85) - 강점제2시기
2011/11/28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쳔사 (86) - 강점제2시기
2011/12/05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87) - 강점제2시기
2011/12/12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88) - 강점제2시기
2011/12/19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89) - 강점제2시기
2011/12/26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90) - 강점제2시기
2012/01/02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91) - 강점제2시기
2012/01/09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92) - 강점제2시기
2012/01/23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93) - 강점제2시기
2012/01/30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94) - 강점제2시기
2012/02/06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95) - 강점제2시기
2012/02/13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96) - 강점제2시기
2012/02/20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번천사 (97) - 강점제2시기
2012/02/27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98) - 강점제2시기
 

Trackback 0 Comment 0
경남지역의 주거변천사 - 6 / 해방 후부터 제4공화국(1970년대)까지

3) 해방 후부터 제4공화국(1970년대)까지 - 1 1945년 일제의 압제에서 벗어나면서 비로소 주체적인 주거문화를 창달할 수 있는 계기를 맞게 되지만 경제 사회적 제반 여건이 불비하여 주체적인 역량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었..

경남지역의 주거변천사 - 5 / 개항기부터 일제강점기

2) 개항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 2 일제하의 중·상류계층의 주택 유형으로는 양식주택과 절충식(개량식)주택·개량 한옥·문화주택·공동주택·영단주택 등을 들 수 있다. 양식주택은 서양식주택을 말하며, 절충식 주택은 과도기적 상황에..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 4 / 개항기부터 일제강점기

2) 개항기부터 일제시기까지 - 1 구한말(舊韓末)까지도 조선 사람들이 살았던 보편적인 주거 유형은 한옥이었다. 1882년 그리피스(W. E. Griffis)가 쓴 한국에 관한 역사서 『은자의 나라 한국』에는 당시 전통 한옥을..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 3 / 조선시대 이전

1) 고대에서 조선시대까지 - 3 조선시대는 우리나라 주거문화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시기이다. 반상(班常)을 철저히 구분한 신분사회였기 때문에 신분에 따라 주택의 크기나 형태를 규제하는 가사규제(家舍規制)가 있었다. 신..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 2 / 조선시대 이전

1) 고대에서 조선시대까지 - 2 주거사(住居史)에서 청동기시대와 초기철기시대를 구분하는 또 하나의 지표는 구들의 시작이다. 한국 주거문화의 정체성을 압축적으로 나타내는 구들은 난방기술의 획기적인 발전인 동시에 지상주거로의 변..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  1 조선시대 이전

오늘부터는 <경남지역 주거변천사>를 포스팅하겠습니다. 6~7년 전에 『경남도사』에 싣기 위해 간략히 쓴 글인데 출판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 블로그에 올립니다. 어차피 공유하기 위한 글이니 이해하리라 생각합니다. 한반도 동남부에 ..

기억을 찾아가다 - 25 (마지막 회)

25. 3·15의거에 대한 기억 「그날 나는 ‘극장 구경 시켜주겠다’는 주무돈이란 동네친구의 호의에 끌려 10리 가까이 되는 길을 걸어 ‘시민극장’으로 갔다. 그때 나는 대학입시에 낙방한 직후라 의기소침해 있던 상황이었다. 우..

기억을 찾아가다 - 24

24. 이승만 행사 - 독립협회와 청년 이승만, 노인잔치...... 내 고등학교시절의 어느날 동회 서기가 들고온 책자를 잠시 훑어본 기억이 남아있다. ‘한국 정치인 99인집’이란 제목이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이승만편이 현격히..

기억을 찾아가다 - 23

23. 떠돌이들, 좀도둑 전쟁이 끝나자 대다수의 사람들은 고향으로 돌아들갔지만, 상당수의 사람들은 남아있었다. 좌우갈등의 와중에 있었던 몸이라 돌아갈 수 없는 처지였다고 들은 문씨 같은 사람들도 있었는가 하면, 가봤자 땅뙈기 ..

기억을 찾아가다 - 22

22.기합, 주먹자랑, 몸단련 중학교시절에도 조금은 의식되었지만 신경을 곤두세울 정도는 아니었었는데, 고등학교에 들어가자 그 문제들은 신경의 상당부분을 자극하여 행동거지의 상당부분을 조종하고 지배할 정도로까지 작용했다. 소위 ..

공간의 재탄생 - 재생 건축 '선유도' 02

지난주에 이어 녹색 기둥의 정원 에서부터 선유도 이야기를 이어 나가보도록 하겠습니다. - 녹색 기둥의 정원 정수지의 콘크리트 상판 지붕을 들어내 기둥만을 남겨 만들어진 이 정원은, 선유도 이야기관 의 설명에 의하면 ‘휴식과 ..

기억을 찾아가다 - 21

21. 동(洞) 대항 줄다리기대회 ‘마산시 동 대항 줄다리기대회’가 시작된 건 초등학교 때였던 것 같은데, 내가 몇번 구경한 건 중학교 때였다. 대회 장소는 주로 무학초등학교였다. 마산의 30여 동이 토너먼트로 겨루어 하루에 ..

공간의 재탄생 - 재생 건축 '선유도' 01

서울 한강변의 대표적 공원 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곳 중에 선유도가 빠지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원래 거기에 그렇게 있었던 장소로 기억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아직 직접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선유도 공원이 ..

기억을 찾아가다 - 20

20. 아이스케키 아이스크림이나 팥빙수도 있었지만 수요가 많지는 않았었다. 학교 앞이나 시장 입구 등에 리어카를 세워놓고 수제로 만들어 파는 정도였다. 소금 뿌린 얼음 통을 손으로 돌려 냉각시킨 아이스크림은 즉석에서 고깔과자 ..

안상수 시장은 철거민의 눈물 닦아주시라

설 연휴가 끝난 다음 날, 나는 한 언론사의 취재에 동행해 재개발로 철거 중인 마산 회원동 일대를 다녔다. 내가 태어난 곳이고 서른까지 산 곳이었다. 지금도 매일 두 번씩 지나는 곳이기도 하다. 그날 나는 몰상식과 몰염치의 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