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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21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10) - 강점제2시기

<1920년대는 마산포에 근대식 도로망이 확산기>

먼저 1930년 원마산 상황과 1920년 상황을 비교해 보겠습니다.

 

 

두 도면을 통해 이 시기 마산포에 엄청난 변화가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근대식 도로가 여기 저기서 뻥뻥 뚤렸습니다.

지금의 코아양과 앞 도로, 오동동  문화의 거리가 그 때 생겼습니다.

두 도면의 내용을 비교 검토하여 10년이라는 기간 동안 발생한 도시 구조의 변화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①∼⑧까지의 번호는 1930년 토지이용도에 표기된 도로번호와 일치합니다.

① 먼저 현재의 창동 네거리를 동서방향으로 관통하는 도로, 즉 부림시장에서 코아양과점으로 연결되는 도로와 남북방향의 삼성생명 앞에서 현 대신증권까지의 도로가 1923년 개설되었다.

② 이어 1924년에는 코아양과점에서 오동동으로 내려가는 도로가 개설되었다.

③ 1926년, 삼성생명에서 대신증권까지로 이어진 도로가 아직 매립이 안됐던 동굴강까지 이어졌다.

④ 1913년 신마산에서 조창을 관통하며 개설된 현 남성동파출소 앞 도로는 그림4-20에서 추정할 수 있듯이 정차장을 끝으로 막다른 형태의 도로였으나 이 도로가 1927년 오산선창이 있던 오동동 해안까지 연결 개통되었다.

⑤ 토지이용도의 우측 상부 모퉁이, 즉 현재의 「프라자일번가」 건물 앞에서 오동교까지에 이르는 도로가 확장되었다.
이 도로공사를「부군연선도로개수(府郡連線道路改修)」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당시의 마산부 경계가 오동교까지였고 오동교를 넘어서면 창원군이었기 때문에 이런 표현을 한 것이다.

⑥ 1927년에는 동굴강이 부분적으로 메워지면서 대신증권에서 내려오는 도로와 매립지의 도로망이 연결되었다.

⑦ 같은 해 코아양과점에서 오동동 해안으로 연결된 도로와 남성동파출소에서 해안까지 연결된 도로가 이어졌다.

⑧ 1930년에는 오동동 파출소 앞을 남북으로 지나는 도로가 개통되었다.

⑨ 토지이용도에는 나타나지 않지만 현 로얄호텔에서 전(前) 북마산파출소에 이르는 도로가 1924년에「구마산시구개정인가(舊馬山市區改正認可)」신청을 하여 이후 시행되었다.

이 도로공사는「停車場連線道路新設」이라고 했는데 이 도로가 교차하고 있는 현재의 육호광장이 바로 구마산 역(철도정차장)이었으며 이 길이 북마산 역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당시 날로 늘어나는 구마산 역의 통행량 때문에 도로가 개설된 것으로 보인다.

정부기록보존소 문서「도시토목공사(구마산시개정인가)」의 「문서번호 87-702, 필름번호 87-747」에 의하면, 이 도로 개설계획을 하는 이유에 대해 ‘구마산 시가는 대체로 도로가 협소하고 꾸불꾸불한 것이 심하며 차마(車馬)가 다니는 노선이 겨우 2-3개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창원군 웅남면에 통하는 부군연선도로(府郡連線道路) 연장 309칸(間) 및 구마산 역과 북마산 역과의 연선도로(連線道路) 연장 207칸(間)은 그 일대의 교통상황을 고려해 볼 때 시공이 급하다고 판단되어 1924년 실행한다’는 기록이 있고, 이어서 도로의 세부적인 구조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이 도로는 위치상 당시 구마산 역과 북마산 역을 연결하는 도로였는데 이를 보아 두 역세권의 정도를 가늠할 수 있다.

이처럼 도로가 신설 혹은 확장되면서 도로를 중심으로 새로운 상권이 형성되었습니다.
또한 위 두 그림을 비교해보면 도로 개설 이후 토지 소유권 변화가 생겼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①에서 설명한 창동 네거리를 동서방향으로 관통하는 도로, 즉 부림시장에서 코아양과점으로 연결되는 도로변(현재 마산에서 가장 번화한 도로 중 하나)의 일본인 소유 대지가 1920년에 비해 1930년의 토지이용도에서는 늘어나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두 그림에서 알 수 있듯이 1920년대의 원마산은 근대적 도로의 확산기였습니다.

1910년대가 창동과 남성동 지역에 한해서 도로망이 건설된 시기였다면 1920년대는 중성동․오동동․동성동으로 도로망이 확산되면서 원마산 외곽으로 계획도로가 뻗어나간 시기였습니다.

이로써 이전까지 근대식 도로로 구획된 지역의 외부에 머물렀던 동성동이 구획 내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이런 결과는 동성동에서 오동동으로 연결되는 지역, 즉 현재의 오동동파출소 부근까지 원마산의 도심권이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회사령 철폐 이후 급증한 도시인구에 부응하고 자동차라고 하는 유통기구에 적절하도록 도시구조가 변화하기 시작한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

앞에서 이미 밝힌바와 같이 1910년대 초반에 매립을 비롯한 도로개설사업이 집중적으로 진행된 원마산에는 그 뒤 1910년대 후반에 이르러 수성동에 일부 도로의 폭이 확장된 것 외 큰 변화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1923년 이후부터 급속히 도로개설공사가 시작된 것입니다. 이유는 당시 전국적으로 시행되었던 시구개정사업 때문이라 봅니다. 이런 현상에 대해서『마산시사』를 비롯하여 여러 문헌에서도 많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당시 마산부윤이던 사도리구(寺島利久)가 원마산의 도로망 건설이 시급하다고 판단하여 대대적인 원마산 도로 개설공사를 시행하였으며 이 시기가 원마산 도로 개설의 절정기였다는 것이 주된 내용입니다.
『마산시사』,『마산개항백년사』,『마산관련 논문』 등 여러 자료에서 이와 같이 설명하고 있는데, 이 주장의 근거는 추방사랑이『마산항지』에서 「마산부윤으로 사도리구 씨가 부임한 이래 도시가 현저히………그의 치적은 영구불멸…(馬山府尹寺島利久氏の着任以來の顯著なる․․․․․․寺島府尹の治積は永久不滅たり…」라는 내용 때문입니다.

물론 이 주장이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1920년도의 토지이용도와 1930년도의 토지이용도를 비교해 보면 이미 1910년대에 이미 가장 중요하고도 중심이 되는 도로가 개설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창동과 남성동지역에 근대식 도로가 개설되고 이 도로들이 매립지역의 신설도로와 연계되어 격자형의 도로구성이 시작된 것이 1910년대였습니다.

이런 점에서 1920년대를 도로개설 절정기로 보는 견해는 무리가 많다고 봅니다. 도로개설의 절정기로 보기보다는 오히려 1910년대에 개설된 근대 도로망이 확산된 시기로 보는 것이 적절할 것입니다.

1930년 기준으로 마산포의 도로율은 23.24%로 1910년의 14.57%, 1920년의 21.42%에 비해 급격히 증가했습니다.
부윤 寺島利久의 의지로 시행된 원마산의 집중적인 도로망 확산이 이런 결과를 낳은 것입니다.

위 도면에 나타난 지역의 현재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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