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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04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12) - 강점제2시기

<일본인의 마산포 토지 소유>

1920년에 비해 10년 후인 1930년에는 가용지가 186,119㎡에서 182,406㎡로 약 3,700㎡가 줄었습니다. 이 차이는 1920년대에 새로 개통된 다수의 도로 때문입니다.

일본인들의 토지 소유는 1920년 기준으로 필지수로는 274필지에 21.3%, 면적으로는 65,000.11㎡에 35.0%였으며 필지 당 평균면적은 237.23㎡였습니다.

그러나 1930년에는 필지수가 365필지에 26.5%, 면적은 70,812.08㎡에 38.8%이었고 필지 당 평균면적은 194.01㎡이었습니다.

필지수와 면적은 늘어난 반면 필지 당 평균면적은 오히려 줄어든 것입니다.

이에 반해 한국인들의 토지소유 상태는 1920년 981필지에 76.3%, 면적 116,320.88㎡에 62.5%, 필지 당 평균면적 118.57㎡이던 것이 1930년에는 916필지에 66.5%, 면적 100,749.45㎡에 55.2%, 필지 당 평균면적은 109.99㎡이었습니다.

일본과 한국 모두 필지 당 평균면적이 줄어든 것은 도로개설로 인한 자투리땅의 영향이 컸을 것입니다. 하지만 필지 수에서 한국인의 것이 줄어든 반면 일본인의 것은 늘었던 겁니다.

면적 역시 한국인 소유는 15,571.43㎡ 7.3% 줄었지만 일본인의 토지소유는 면적으로 5,811.97㎡, 비율로 3.8% 증가했습니다.

이 변화는 개인소유의 대지에서 생긴 변화인데 대부분 일본인의 소유였던 기업과 단체 소유 대지의 소유량 증가까지 합할 경우 1920년대 일본인의 원마산 토지 소유량 증가는 아주 많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래 표는 1910년, 1920년, 1930년의 토지소유변화를 나타낸 표입니다.

 구분 정부. 마산부  기업. 단체  한국인  일본인   중국인  게
 필지수  5  10 853   271 18   1,157
 비(%)  0.4 0.9   73.7 23.4   1.6 100.0 
 면적 5,783.54  1,299.18  107,051.13  53,228.14  2,105.79  169,467.77 
 비(%) 3.4  0.8  63.2  31.4  1.2  100.0 
 필지평균  1,156.71 129.92  125.50  196.41  169.99  146.47 

 필지수 10  981 274 12  1,286
 비(%)  0.7 0.8  76.3  21.3   0.9  100.0
 면적 760.99  2,714.05  116,320.88  65,000.11  1,323.64  186,119.67 
 비(%) 0.4  1.5  62.5  35.0  0.7  100.0 
 필지평균 84.55  271.41  118.57   237.23 110.30  144.73 
             
 
 필지수 54 34  916 365 8 1,377
 비(%) 3.9 2.5 66.5 26.5  0.6  100.0
 면적 3,240.67 7,120.70 100,749.45 70,812.08 483.96 182,406.86
 비(%) 1.8 3.9 55.2 38.8 0.3 100.0 
 필지평균 60.01 209.43 109.99 194.01 60.50 132.47
             

 

1920년대는 일본자본의 한국침투가 본격적으로 진행된 산업수탈기였습니다.

이런 시대적 상황이 원마산의 토지 소유량 변화에서도 그대로 관철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기업소유의 대지가 2,714.05㎡에서 7,120.70㎡로 4,400여㎡가 늘어났는데 이 양은 원래 소유량의 2.6배에 해당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이런 과정에서 한국인의 대지는 10년 동안 무려 11,000㎡가 줄어들어 심한 토지소유권 침탈 현상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은 1930년의 토지소유상황(위)과 1920년의 토지소유상황(아래)을 나타낸 다음의 두 그림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중국인 소유의 토지는 강점기가 흐르면서 점점 적어져서 면적비로 1912년 1.2%, 1920년 0.7%, 1930년 0.3%로 변했습니다.

이와 같은 중국인의 퇴조 현상을 통해서도 강점기가 진행되면서 마산도시의 일본인 독점 현상이 점점 심화되고 있었음을 가늠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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