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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18 00:00

마산만 매립해서 땅 장사하려는 기업들

성동산업 마산조선소가 취득한 마산 앞바다 공유수면 16,000평 매립권을 두고 장사꾼들의 농간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시작은 수년 전부터였습니다. 마산만 내만에 자리를 잡은 성동조선이 "사업을 일으키려면 바다에 접한 땅이 더 필요하다"고 요구하면서 시작된 일이었습니다.

오염총량제 실시 이후 마산만의 매립은 더 이상 없을 것이었지만 성동조선의 요구에 대해서는 사정이 좀 달랐습니다. 당시 마산에는 내놓을만한 기업이 별로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동조선이 사업을 일으키면 고용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며 매립을 해서라도 지역경제를 살려보라고 여기저기서 지원했습니다.

마산지역의 상공계를 대표하는 마산상공회의소가 직접나서서 “공유수면매립이 완료되면 연 매출액 1조원에 2천명의 고용이 발생할 것”이라면서 “기업이 투자시기를 놓치면 모든 기회를 상실하게 된다”고 항만청에 매립승인을 독려했습니다.

성동조선과 마산시와 체결한 약정서에는 “이곳에 선박건조시설을 갖추어 고용창출을 이바지 할 수 있도록 노력하며 마산시민의 기대에 부응하는 기업이 되겠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 약속에 따라 마산시도 성동조선 매립을 위한 각종 인허가 절차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마산만의 매립을 절대 반대하는 시민단체도 매립 자체는 문제가 있지만 당시 상황을 고려해 어쩔 수 없이 반 보 양보했습니다. 지역사회의 여론도 성동조선의 요구를 이해하는 분위기였습니다.

마산지방해양항만청이 성동조선에게 승인한 매립허가는 이러한 과정을 거친 결과입니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당시와 많이 다릅니다.

성동산업은 경영상태가 나빠 이미 휴업상태입니다. 노동자들에 대한 임금체불과 하청업체들의 경제적 어려움까지 겹쳐 지역경제에 까지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 걸로 압니다. 사정이 이런 탓에 통영에 있는 본사는 몰라도 마산조선소는 재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게 중론입니다. 2천명 고용도 1조원 매출도 모두 불가능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매립할 이유도 매립할 필요도 없어진 셈입니다. 그것이 상식입니다.

하지만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매립 목적이 기업의 땅 부족 때문이었는데, 휴업에 들어간 기업이 무슨 땅이 더 필요한지 매립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매립허가권은 소위 대원개발이라는 SPC(특수목적법인, Special Purpose Company)로 이미 넘어 갔고, 이 회사의 명의로 법적 만료일인 지난 3월 29일 항만청에 착공신고를 해 법절차를 밟았습니다.

사정을 잘 알고 있던 시민단체가 항만청에 매립을 막아야한다고 하소연하자 마산해운항만청에서는 “법적으로 하자가 없다”는 말만 반복하였습니다. 심지어 시민단체 더러 “법적기관인 항만청에서 임의로 만든 시민단체의 동의를 받을 필요는 없다”는 말까지 했습니다.

본말이 전도되어도 한참 전도된 일입니다. 설령 그것이 법적으로 하자가 없다 하더라도 매립허가과정에서 거친 지역사회와의 중요한 합의에 반하는 것입니다.

매립면허승인 과정에서 “해양환경의 보전과 지역경제의 활로 개척이라는 두 개의 중대한 공익이 서로 양보할 수 없는 정점에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명심하여 매립공사 착공 전까지 환경단체 및 시민단체와 지속적인 대화와 협의를 통하여 마산만 해양환경보전을 위한 실효성 있는 결과물을 제출하여야 한다”고 합의하였는데 지금에 와서 나 몰라라하는 식의 항만청 입장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제 눈에는 항만청이 합법을 내세우며 특정 기업에게 공유수면 매립을 빌미로 땅장사를 인정해주는 특혜로 보일 뿐입니다.

대원개발이라는 회사는 현대자동차 계열회사인 엠코라는 건설회사가 주도한다고 합니다. 하이브리드니 뭐니하면서 친환경기업임을 내세우는 대기업이 마산 앞바다를 메워 돈벌겠다고 나선 꼴입니다.

탐욕스러운 기업과 공직자의 합작으로 ‘내 고향 남쪽바다’는 또다시 찢기고 밟히게 되었습니다. 자연이 이익의 수단으로 전락한 우리 사회의 막장돈벌이는 언제 쯤 끝이 날까요?

바다를 보호관리해야할 해운항만청이 팔짱낀 구경꾼이 되었으니 방법이 없습니다. 결국 저 바다와 함께 살아야할 시민 스스로 나서서 막아낼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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