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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06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1) - 강점제3시기

<한반도 최초의 도시계획>

마산은 1920년대부터 시작된 산업구조 변화가 계속되는 가운데 30년대에 이르러 전쟁으로 인한 군수물품 공급창으로서의 기능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조건들이 원인이 되어 해안 전역에 걸쳐 대규모 매립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행되었습니다.

그런가하면 1920년대 중반부터 형성되기 시작한 중앙마산이 완성됨으로써 이전까지 공간적으로 나누어져 있던 두 도시가 하나의 도시로 연담화되었으며, 원마산은 철도의 발달과 인구의 증가로 범역이 크게 확산되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도시계획법은 1934년 6월 20일자로 만들어진「조선시가지계획령」입니다. 이보다 앞서 1920년에 시가지계획령을 입안한 일이 있으나 시기상조란 이유로 폐기되어 버렸습니다.

도시계획과 관련한 법제 중 가장 이른 것은 한일병합(1910) 이전에 개별 건축물을 규제하는 장치로 만든「건축규칙」라고 전해집니다. 그러나 이 규칙이 만들어진 정확한 시기와 내용은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구체적인 내용이 담긴 도시 관련정책으로는 1912년에 조선총독부가 시달한「시구개정훈령」으로, 시가지 내의 도로․교량․하천 등의 관리를 위한 내용으로 시행된 바 있습니다.

1913년에는「시가지건축취체규칙」이 제정되어 개별 건축물의 방화․위생․건축선 등 건축 경찰적 의미의 규제가 도입되기도 했습니다.

이 두 가지 제도가 근대화 여명기에 있었던 우리나라 도시 관련 정책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도시정책은 최소한의 도시 관리에 그친 정책이었으며, 대규모의 도시개조와 개발은 주로 군사적․경제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초법적인 식민지 통치행위의 일환으로 시행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이 1930년대 초까지 지속되다가 「조선시가지계획령」이 제정되었던 것입니다.

이 법은 크게 다섯 가지의 내용을 담고 있는데 ① 도시계획의 수립 ② 도시계획사업의 집행 ③ 지역․지구의 지정 ④ 건축제한 ⑤ 구획정리사업에 관한 사항이 그것입니다.

말하자면 이 계획령은 오늘날의 기준으로 본다면 도시계획․건축․도시개발을 포괄하는 총체적인 도시 관련 법제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시기적으로는「동경시구개정조례(1887)」보다 47년, 일본의 도시계획법(1919)보다는 15년 늦게 제정되었습니다.

이보다 앞선 1921년에 서울․부산․대구․평양 등 중요 도시에 대하여는 도시계획실시를 전제로 한 도시계획조사가 진행된 바 있지만 구체적으로 시행되기는 이것이 처음이었습니다.

「조선시가지계획령」이 최초로 적용된 도시는 나진이었습니다.

서울을 비롯한 도청소재지는 이보다 2년 뒤인 1936년부터 적용하였으며 해방되기까지 전국의 총 42개 지역의 도시계획을 이 계획령으로 수립하였습니다.

「조선시가지계획령」 제정의 직접적인 동기는 나진 개발의 긴급성과 당시 전국 도시인구의 급격한 증가 현상이었습니다.

나진 개발의 긴급성이란 다음과 같습니다.

만주사변(1931)의 결과로 일본에게 만주국이라는 괴뢰국가가 생긴 것은 1932년 3월 1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만주와 일본을 연결하는 경제수송로로 일본본토-해로-나진항-만주국내 도문-길림-신경(현재의 장춘) 노선이 결정되었습니다. 1931년 말 현재의 인구 4,520명이었던 빈한한 어촌 나진을 갑자기 이렇게 결정하자 1931년 경, 평당 12-13전 하던 땅값이 1932년경에는 40원 이상 급등하였습니다. 이런 토지투기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총독부 당무자들이 땅을 사지 않고 계획적으로 조성하는 방법, 즉 토지구획정리사업으로 시가지를 조성할 계획을 세웠던 것입니다. 이러한 일련의 상황을 두고 나진 개발의 긴급성이라 합니다.

이런 사정 때문에 나진의 땅값이 얼마나 요동을 쳤던지, 1932년 11월 13일 동아일보 나진 르포기사에 나진 일대 부동산에 투자하여 수백배의 차익을 남긴 동일상회 두취 김기덕에 대한 기사도 실려 있을 정도입니다.

「조선시가지계획령」은 기존 시가지의 개량보다는 신시가지의 창설에 중점을 두었기 때문에 한반도 내 많은 신시가지가 이 계획령에 의해 조성되었습니다.

하지만 긴급히 시행한 까닭에 여러 가지 문제도 야기되었습니다.

도시계획법과 건축법의 미 분리, 그리고 경험의 미숙 등으로 인해 오히려 무질서한 시가화를 유발하기도 했습니다.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조선시가지계획령」의 집행으로 형성된 전국 신시가지의 형태는 기존 시가지와의 관계에 따라 ① 구 시가지의 정비확장형(서울․평양 등) ② 신․구 시가지의 분리입지형(부산․목포 등) ③ 신도시형(신의주․진해 등)의 세 유형으로 구분하기도 합니다.

이 가운데서 ①의 유형은 조선시대에 이미 상당한 규모를 갖추고 있던 도시들로서 기존도로망의 확장․포장․직선화가 도시계획의 중요한 실적이었으며, 기타의 도시에서는 일본사람들의 거주지를 중심으로 한 신시가지의 형성이 중요한 도시공간의 변화였습니다.

이 도시 마산의 경우는 ②의 유형에 속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2012/07/30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0) - 강점제3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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