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2012.08.20 16:03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3) - 강점제3시기

<강점3시기 마산의 인구변화>

강점 제3시기에는 마산의 인구도 많이 변했습니다.

1930년에 25,810명이던 것이 1941년에는 41,546명이 됨으로써 증가율이 161%에 이르렀습니다.

그 중 한국인이 20,149명에서 35,670명 177%가 늘어난 데 비해 일본인은 5,559명에서 5,865명 105.5%로 변화가 심하지 않았습니다.

일본인을 제외한 기타의 외국인은 102명에서 11명 10.8%로 심하게 줄어들었습니다.

다음사진은 1930년대 한국인들이 다녔던 마산공립보통학교(현, 성호초등학교)와 일본인들이 다녔던 마산공립심상고등소학교(현, 월영초등학교)입니다.

 

1930년 이후부터 해방 때까지의 인구 변화는 다음 와 같습니다.

(1944년의 54,000명은『통계연보』를 인용한 표를 이용했는데 천 단위 이하는 삭제되어 있었으며, 1945년의 6천 명과 6만 명은 각종 문헌의 것을 그대로 옮겼습니다)

년도

한국인

일본인

외국인

합계

日人비율(%)

1930

20,149

5,559

102

25,810

21.5

1931

21,506

5,265

75

26,846

19.6

1932

22,183

5,138

50

27,371

18.8

1933

22,242

5,187

41

27,470

18.9

1934

23,142

5,235

53

28,430

18.4

1935

24,413

5,387

58

29,858

18.0

1936

25,529

5,427

56

31,012

17.5

1937

26,991

5,402

18

32,411

16.7

1938

27,522

5,496

19

33,037

16.6

1939

29,211

5,689

11

34,911

16.3

1940

30,887

5,643

19

36,549

15.4

1941

35,670

5,865

11

41,546

14.1

1942

48,169

6,125

12

54,306

11.3

1944

 

 

 

54,000

 

1945

 

6,000

 

60,000

 

1942/1930

177.0%

105.5%

10.8%

161.0%

 

 

이 표를 보면 1941년에 비해 1942년의 인구가 1년 동안 무려 12,760명, 130.7%로 급격히 증가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까닭은 앞에서 말한 것처럼 1942년 9월 30일자로 발포된「총독부령 제242호」에 의해 마산의 행정구역이 크게 확장되어 내서면의 교방리․회원리․산호리․석전리․양덕리와 창원면 봉암리 그리고 구산면 가포리가 마산으로 편입되었기 때문입니다.

인구 증가의 비교 연도를 1930년과 1941년으로 설정한 이유도 이 때 있었던 행정구역 개편으로 인하여 그 이후의 시기는 비교의 의미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같은 시기 한국인은 12,499명이 늘어난 반면, 일본인은 260명 늘어났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일본인이 260명밖에 증가하지 않았던 것은 위의 교방리․회원리 등 7개 동리에는 일본인들이 별로 거주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전체 인구 중 일본인의 비율은 1930년에는 21.5%이던 것이 1941년에는 14.1%가 되어 해가 거듭될수록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한국인의 꾸준한 증가 추세에 비해 일본인의 인구변화가 미미했기 때문입니다.

다음 표를 보면 전국 도시별 인구증가율에서도 마산은 그리 높은 편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증가율순서

1

2

3

4

5

6

7

8

9

10

11

12

전국평균

도시평균

1930-

1935

청진

49.5

진남포

31.9

평양

29.4

목포

26.8

부산

24.9

인천

21.8

신의주

21.7

군산

20.7

원산

16.1

대구

15.1

마산

14.0

서울

12.6

8.7

35.1

1935-

1940

청진

256.4

서울

110.6

인천

106.2

대구

66.6

평양

57.0

부산

36.8

진남포

35.9

원산

31.8

마산

14.6

목포

5.8

신의주

4.6

군산

-2.7

6.2

75.4

1940/1944

신의주

93.6

마산

49.5

원산

42.3

군산

42.0

부산

31.8

인천

24.9

진남포

19.6

평양

19.4

대구

15.5

목포

7.8

서울

5.7

청진

-6.9

6.5

21.3

1930년부터 1935년까지는 14.0%로 전국평균 8.7%보다는 높았지만 전국 도시평균 35.1%보다는 훨씬 낮은 증가율이었습니다.

1935년부터 1940년까지도 마산의 인구증가율은 비슷한 추세입니다.

1940년과 1944년 사이의 증가율이 높은 것은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행정구역 개편 때문이었습니다.

전국 도시별 인구 규모 측면에서 보면 1910년 마산은 서울․부산․평양․대구․인천․원산에 이어 7번째 순위였지만 다른 도시의 인구성장률에 미치지 못한 결과 해방 1년 전인 1944년에는 19번째로 밀려나고 말았습니다.

마산의 인구수를 앞지른 도시들은 청진․신의주․함흥․광주․해주․대전․개성․성진․전주․군산 등이었습니다. 강점 후반기에 공업화 및 도시화가 빨랐던 지역들이 마산의 인구를 앞질렀던 겁니다.

1944년 우리나라 총인구는 25,917,881명이었고 그 중 도시인구는 3,411,542명으로 전체의 13.2%에 불과했으며, 해방 당시 마산의 인구는 6만여 명이었고 그 중 일본인은 6천여 명 정도였습니다.<<<

 

2012/07/30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0) - 강점제3시기

2012/08/06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1) - 강점제3시기

2012/08/13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2) - 강점제3시기

 

Trackback 0 Comment 0
공간의 재탄생 - 재생 건축 intro.

세달 가까이 이어져 왔던 '건축의 외형' 에 이어, 세월의 흐름에 따라 방치되고 버림받게 된 건축에 새 삶을 불어넣는 '재생 건축' (regenerative architecture) 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이어 나가볼까 합니다..

기억을 찾아가다 - 18

18. 바냇들, 부림시장 정전 다음해 진학한 마산서중(전쟁 중인 1951년 9월 1일 6년제 마산공립중학교가 3년제 마산고와 마산서중으로 분리되었다. 마산서중이 현재의 마산중학교로 교명을 변경한 것은 1955년 5월 7일이었다..

기억을 찾아가다 - 17

17. 공놀이, 헌병사령부 축구팀 우리 어릴 때 겨울 빈 밭에서 새끼로 동여맨 짚 뭉치를 차고 놀던 기억이 있고, 간혹 있은 잔칫집에서 나온 돼지 오줌보에 물을 넣어 차고 놀던 일도 어렴풋이 기억의 한 자락에 남아 있다. 형들..

기억을 찾아가다 - 16

16. 광복절 행사와 우리들의 영웅 초등학교 때도 광복절 기념 체육대회가 있었지만 참여 정도가 미미해서 별로 기억나는 것이 없다. 중학생이 되어 응원군으로 참여하면서 운동경기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되고, 그러면서 선수들의 면면이..

기억을 찾아가다 - 15

15. 정전 후의 체험들 Ⅵ - 공군 요양소 우리 동네 대여섯 채의 적산가옥(일본인들이 살던 집)들은 다 불하되어, 동네 사람들이 들어갔지만, '봉선각'은 그 얼안이 커서(500평은 되었을 듯) 동네 사람들은 엄두를 못 내었던..

건축의 외형 - ‘(조개)껍질’ (Shell)

지난주의 새둥지에 이어 또다른 자연물의 형태인 '조개껍질' 형태의 건축물 들을 소개해 볼까 합니다. 건축에서 shell 이라고 하면, 셸구조(shell 構造) 를 지칭하는 표현으로 쓰는 것이 일반적이겠습니다만, '건축의 외형'..

기억을 찾아가다 - 14

14. 정전 후의 체험들 Ⅴ - 마부 버스, 화물차 군용차 아닌 것들을 그때 우리들은 ‘개인차’라 불렀는데, 개인 승용차는 당시로선 하루에 한두 대 보기도 어려웠고, 거의 모두가 화물차와 버스였다. 거의 모두 일제가 두고 간 ..

건축의 외형 - ‘새둥지’ (Bird's Nest)

동굴에서의 삶을 시작으로 인간의 주거는 자연을 모방하는 단계를 거쳐 현재는 완전히 인공적인 삶의 공간을 만들어 내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자연적 형태들은 완전한 인공물인 건축의 형태에 영향을 주고 있으며, 의도되었든 ..

기억을 찾아가다 - 13

13. 정전 후의 체험들 Ⅳ - ‘이용범 다리’ ‘용베미 다리’란 말을 언제 쯤 부터 들었는지를 정확하게 기억할 수는 없지만, 이용범(아래 사진 / 1905~1968)이란 인물의 이름이 널리 퍼진 계기로 미루어보면, 1954년..

건축의 외형 - ‘원통’ (cylinder)

일상에서 마주할 수 있는 수많은 도형들 중에, 언제나 주변에 있어서 오히려 존재감이 낮은 경우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일상에서의 '원통' 이 그런 것 중 하나일 것입니다. 우리는 수많은 원통형 물체와 함께 살아가고 있으며, ..

기억을 찾아가다 - 12

12. 정전 후의 체험들 Ⅲ - 귀환, 상이군인들 정전 얼마 후에 전장에 갔던 아저씨들이 속속 돌아왔다. 함께 끌려가서(그땐 그렇게들 표현했다) 내내 한 부대에 있다가 함께 돌아온 우용 아저씨와 내 당숙은 상이용사가 되어 돌아..

건축의 외형 - ‘타공판’ (perforated board)

사람이 건축의 외형을 인지하고 기억할 때에 여러 가지 요소들을 보고 듣고 느끼게 됩니다. 개개인의 차이는 있겠으나, 일반적으로 특정 건물은 가장 부각되는 특정 요소로 기억하게 되는 듯 합니다. 규모나 재질, 기하학적 형태, 조..

2018년 새해인사

새해 인사드립니다. 꿈 꾸는 것과 희망하는 것들이 모두 이루어지는 해가 되기 바랍니다.

건축의 외형 - ‘액자’ (frame)

미술의 역사 만큼이나 액자의 역사는 오래 되었을 것입니다. 회화의 전시, 보존 등을 위한 보조적인 위치에서 출발한 액자는 사진의 등장과 기술의 발달 등으로 현재는 picture frame 만이 아니라 photo frame, d..

기억을 찾아가다 - 11

11. 정전 후의 체험들 Ⅱ - 수학여행 전쟁이 막바지로 갈 때쯤 해선 민간자동차도 많이 다니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주로 화물차가 많이 보였는데, 마산 부산 간에만 다니던 버스 숫자도 상당히 불어난 걸 느낄 수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