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2009.08.31 11:17

‘한일합섬 터’의 추억

1967년 1월 25일,

마산시 양덕동 들판에서 1차 건설을 마무리하고 가동하기 시작한 한일합섬은 마산뿐만 아니라 한국을 대표하는 섬유산업체로서 국가경제 발전에 크게 기여한 기업이자 마산시민의 자부심이요, 자랑거리였다.

비록 경영진의 오류와 산업변화가 빚은 몰락이지만 아직도 한일합섬이라는 단어가 지니는 무게는 마산시민에게 더없이 무겁다.

▲1970년대 한일합섬 전경



그로부터 36년 후,

2003년은 주인 잃은 한일합섬 터의 미래가 시민들에게 초미의 관심이 되었던 해다. 그해 4월 3일 한일합섬 강당에서 개최된 이 터의 개발계획에 대한 공청회는 행사를 하루 앞두고 일정이 발표되었다는 이유로 시작부터 평탄치 못했다. 뿐만 아니라 공청회 내용에 대한 시민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을 마산시가 비공개로 진행함으로써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마산시에서는 이 넓은 터의 개발을 두고 공청회다 설명회다 하며 여론을 이끌었고, 시민단체에서는 개발의 내용을 문제 삼았다. 지금은 여당 국회의원이 된, 당
시 지역의 시민단체 대표도 적극 참여하여 마산시 행정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각계각층에서 ‘이러자’ ‘저러자’ 의견이 분분했다.

마산시는 법정관리중인 기업의 상황과 도시미관 그리고 도시의 활성화를 위해 적극 개발해야 한다고 강변했다. 지역 경제를 활성화시킬 뿐 아니라 도시 발전에도 기여하는 win win 전략이라고 주장하였다.

이에 반해 반대 측에서는 마산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만큼 대규모 땅(9만여 평)인 만큼 공익적 관점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비록 한일합섬이 경영에 실패하여 무너진 사기업이지만 지난 40여 년간 농업용지 ⇒ 공업용지 ⇒ 주거용지로 변해 온 과정에서 축적된 이 땅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자고 했다. 결론은 공공용지를 늘이라는 것이었다. 반대를 위한 반대라는 이유로 공격도 많이 당했다.

▲1950년대 한일합섬 조성전의 양덕동 전경



돌이켜보면 지금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행정이었다.

마산시는 공업용지인 이 터를 공장이 가동되고 있었던 시기에 주거상업용지로 변경해 주었다. 정말 한심하고도 어이없는 도시행정이었다. 졸속 단견 그 자체였다.

섬유산업에 한계가 있었다면 업종을 바꿔 새로운 산업용지로 전환시킬 판단을 왜 못했는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안타깝기만 하다.
공장용지를 주거상업용지로 바꿔주는 행위는 ‘이제 땅값이 높아졌으니 어서 빨리 공장 그만두고 땅 팔아 떠나라’는 뜻 외에 다른 어떤 말로 설명될 수 있는가.
미래비전 없는 도시행정이 얼마나 무모한 결정을 하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창원으로 떠나버린 한국철강 터도 마찬가지다.

2009년,

이제 잔치는 끝났다.

프리미엄 차익을 기대하며 9만평 담장을 감고 늘어섰던 장사진도 끝났고, 경쟁률 높았던 분양권추첨도 끝났고, 호화로운 모델하우스 구경도 끝났다. 남은 것은 거대한 아파트 숲뿐이다.


▲한일합섬 부지에 조성중인 아파트단지


‘이 아파트로 인해 마산인구가 늘어날 것이다’고 했던 마산시의 주장이 귀에 생생한데 분양받은 사람들의 계약률조차 별로 높지 않다고 한다.


얻은 것이 있다.

미래에 무관심한 도시행정이 얼마나 참담한 결과를 낳는지 알게 되었다.
기회 놓치면 위기가 오는 건 야구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남은 부지에 대한 구속력도 없다. 오직 기대할 수 있는 것은 기업의 선한의지 뿐이지만 애당초 어려운 주문이다.


아파트가 들어서면 마산의 경제도 살고 도시가 획기적으로 발전될 것이라고 외쳤던 그 분들은 저 거대한 아파트 숲을 보며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6년 전에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나 할까?

Trackback 0 Comment 4
  1. 이은진 2009.08.31 13:42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도시의 개발은 업체의 이익을 우선시하면 손해는 주민들이 봅니다.
    한일 합섬은 돈벌고 떠났습니다.
    그 콩고물을 먹은 사람들중 일부만 책임을 지고, 공무원자리를 물러났습니다.
    1998년 시장선거에서 당시의 시장은 한일합섬 측으로 부터 5천만원을 받고 감옥 살고 나왔습니다.

    한일합섬의 높다란 굴뚝이 무너지는 장면을 당시 Y의 이윤기간사님이 촬영한 것을 보았습니다. 선진국 같으면, 관중들을 모아놓고 했을 이런 행사를 아무런 통보도 없이,당시애 보도했던 언론이 아무도 없던 것으로 보면, 알리지 않고 한 것만은 확실합니다.
    복합 상가가 그토록 마산의 미래를 위해 자랑 스러운 일이었으면, 이를 기념하였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시에는 여기에 21세기를 위한 기념 탑같은 것을 만든다고 얘기도 있었습니다. 허황된 쑴입니다.

    미래를 설계할 수 없었던 자들이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땅값이 뛰게 만들어 주었느데, 누가 여기에 공장을 합니까?
    이제와서 공장 부지가 보족하다고 난리입니다.
    돈벌이 되는 경제활동없이 누가 평당 수백만이상하는 집에서 살수 있겠습니까?

    미래를 내다보로 설계할 수 있는 지가 시를 만들어 가야 한다는 교훈을 남겼습니다.

  2. 2011.09.25 14:27 address edit & del reply

    비밀댓글입니다

  3. 청량지 2016.02.20 12:25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한일합섬 검색하다 예까지 왔습니다.
    마산한일여자실업고등학교, 양덕동, 기숙사, 한일합섬...
    딱 3년간의 마산생활, 배움이 고팠던 제게 기회를 주었던 곳이죠.
    일하면서 배우고 그 바빴던 3년간 많은 책을 읽었고, 많은 추억도 쌓았는데,
    그렇게 허무하게 없어졌군요.
    성씨도 같고, 달팽이를 대문에 올려둔 것도 비슷하네요. ^^
    잘 읽고 잠시 추억에 잠겼다 갑니다.

  4. 오동추 2016.03.13 19:22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도시가 자생력을 가지려면 생산력이 있어야함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 생산력 때문에 도시의 부가 창출되었는데, 그 생산력의 원천을 없애버리고 그대신 부만 찾겠다는 것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갈라서 그 속에서 한꺼번에 건져내려고 하다가 결국 하루에 하나씩 얻었던 황금알마저 영영 잃어버리고 거지로 전락하는 어리석은 사람의 경우와 같습니다. 지금의 마산의 모습 말입니다. 그 풍요롭던 생산력은 어디로 다 쫒아버리고 주거지만 남은 배드타운 말입니다. 그렇다고 역사유적과 아름다운 해안을 잘 보존하여 돈많은 노년층이 말년을 보내기 좋은 휴양관광 도시로 잘 만든 것도 아니고, 이제 마산이 가진 유일한 자원은 천연자원인 온화한 날씨 하나뿐인 것 같습니다. 그것은 아무리 무능한 공무원이라도 훼손할 수 없겠죠?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 2 / 조선시대 이전

1) 고대에서 조선시대까지 - 2 주거사(住居史)에서 청동기시대와 초기철기시대를 구분하는 또 하나의 지표는 구들의 시작이다. 한국 주거문화의 정체성을 압축적으로 나타내는 구들은 난방기술의 획기적인 발전인 동시에 지상주거로의 변..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  1 조선시대 이전

오늘부터는 <경남지역 주거변천사>를 포스팅하겠습니다. 6~7년 전에 『경남도사』에 싣기 위해 간략히 쓴 글인데 출판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 블로그에 올립니다. 어차피 공유하기 위한 글이니 이해하리라 생각합니다. 한반도 동남부에 ..

기억을 찾아가다 - 25 (마지막 회)

25. 3·15의거에 대한 기억 「그날 나는 ‘극장 구경 시켜주겠다’는 주무돈이란 동네친구의 호의에 끌려 10리 가까이 되는 길을 걸어 ‘시민극장’으로 갔다. 그때 나는 대학입시에 낙방한 직후라 의기소침해 있던 상황이었다. 우..

기억을 찾아가다 - 24

24. 이승만 행사 - 독립협회와 청년 이승만, 노인잔치...... 내 고등학교시절의 어느날 동회 서기가 들고온 책자를 잠시 훑어본 기억이 남아있다. ‘한국 정치인 99인집’이란 제목이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이승만편이 현격히..

기억을 찾아가다 - 23

23. 떠돌이들, 좀도둑 전쟁이 끝나자 대다수의 사람들은 고향으로 돌아들갔지만, 상당수의 사람들은 남아있었다. 좌우갈등의 와중에 있었던 몸이라 돌아갈 수 없는 처지였다고 들은 문씨 같은 사람들도 있었는가 하면, 가봤자 땅뙈기 ..

기억을 찾아가다 - 22

22.기합, 주먹자랑, 몸단련 중학교시절에도 조금은 의식되었지만 신경을 곤두세울 정도는 아니었었는데, 고등학교에 들어가자 그 문제들은 신경의 상당부분을 자극하여 행동거지의 상당부분을 조종하고 지배할 정도로까지 작용했다. 소위 ..

공간의 재탄생 - 재생 건축 '선유도' 02

지난주에 이어 녹색 기둥의 정원 에서부터 선유도 이야기를 이어 나가보도록 하겠습니다. - 녹색 기둥의 정원 정수지의 콘크리트 상판 지붕을 들어내 기둥만을 남겨 만들어진 이 정원은, 선유도 이야기관 의 설명에 의하면 ‘휴식과 ..

기억을 찾아가다 - 21

21. 동(洞) 대항 줄다리기대회 ‘마산시 동 대항 줄다리기대회’가 시작된 건 초등학교 때였던 것 같은데, 내가 몇번 구경한 건 중학교 때였다. 대회 장소는 주로 무학초등학교였다. 마산의 30여 동이 토너먼트로 겨루어 하루에 ..

공간의 재탄생 - 재생 건축 '선유도' 01

서울 한강변의 대표적 공원 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곳 중에 선유도가 빠지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원래 거기에 그렇게 있었던 장소로 기억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아직 직접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선유도 공원이 ..

기억을 찾아가다 - 20

20. 아이스케키 아이스크림이나 팥빙수도 있었지만 수요가 많지는 않았었다. 학교 앞이나 시장 입구 등에 리어카를 세워놓고 수제로 만들어 파는 정도였다. 소금 뿌린 얼음 통을 손으로 돌려 냉각시킨 아이스크림은 즉석에서 고깔과자 ..

안상수 시장은 철거민의 눈물 닦아주시라

설 연휴가 끝난 다음 날, 나는 한 언론사의 취재에 동행해 재개발로 철거 중인 마산 회원동 일대를 다녔다. 내가 태어난 곳이고 서른까지 산 곳이었다. 지금도 매일 두 번씩 지나는 곳이기도 하다. 그날 나는 몰상식과 몰염치의 밑..

기억을 찾아가다 - 19

19. 영화, 만화, 잡지 초등학교 6학년 때 단체로 시민극장에 ‘성웅 이순신’을 보러 갔다가 실망했던 기억이 있다. 활동사진이 아니고 정지된 그림(슬라이드)이었기 때문이다. 중1때 문화동 쯤에 있었던 제일극장에서 본 애정(哀..

공간의 재탄생 - 재생 건축 intro.

세 달 가까이 이어져 왔던 '건축의 외형' 에 이어, 세월의 흐름에 따라 방치되고 버림받게 된 건축에 새 삶을 불어넣는 '재생 건축' (regenerative architecture) 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이어 나가볼까 합니..

기억을 찾아가다 - 18

18. 바냇들, 부림시장 정전 다음해 진학한 마산서중(전쟁 중인 1951년 9월 1일 6년제 마산공립중학교가 3년제 마산고와 마산서중으로 분리되었다. 마산서중이 현재의 마산중학교로 교명을 변경한 것은 1955년 5월 7일이었다..

기억을 찾아가다 - 17

17. 공놀이, 헌병사령부 축구팀 우리 어릴 때 겨울 빈 밭에서 새끼로 동여맨 짚 뭉치를 차고 놀던 기억이 있고, 간혹 있은 잔칫집에서 나온 돼지 오줌보에 물을 넣어 차고 놀던 일도 어렴풋이 기억의 한 자락에 남아 있다. 형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