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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10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165) - 강점제3시기

이번 회부터는 「觀光の馬山」이라는 아래 리플렛(leaflet) 속에 들어 있는 사진들을 소개하겠습니다.

 

 

이 리플렛과 리플렛 속에 들어 있는 마산 지도는 이미 포스팅한 바 있습니다만 지도의 아래위에 실린 사진은 처음 소개합니다.

2012/11/05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34) - 강점제3시기

2013/01/07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43) - 강점제3시기

 

이 리플렛은 1937년에 제작 발행되었습니다. 일본관광객 유치용 마산 홍보 혹은 마산을 방문한 일본인들에게 마산 도시를 안내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작된 리플렛입니다.

「觀光の馬山」이 발간된 1937년은 만주사변(1931년)에 이어 일본군부가 중국대륙을 삼키기 위해 중일전쟁을 일으킨 해로 일본 제국주의 세력이 극성을 부리던 시기였습니다.

이 때 한국은 그들의 전쟁수행을 지원하는 대륙전진 병참기지로서의 역할이 주어졌기 때문에 그에 맞춘 산업구조의 군사적 개편이 진행되었습니다. 따라서 일제의 식민지배는 강압폭력정책으로 치달았고 그 결과 우리의 사회경제적 상황은 최악으로 변해갔습니다.  

「觀光の馬山」은 이런 내외적 상황, 곧 밖으로는 식민지 영토를 늘리기 위한 침략전쟁을 수행하면서, 안으로는 식민지배정책을 점점 강화해나가던 시기에 제작되었습니다.

제작 목적은 일본인들의 마산관광을 유도하고 마산을 방문한 일본인들에게 마산의 도시상황은 물론 길안내 · 역사 · 문화 · 명승고적까지 자세히 소개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1899년 개항 이후 마산에 정착하기 시작한 일본인들은 1930년경에 이르러 행정 산업 문화 교육 등 마산사회의 모든 분야를 지배하였습니다. 따라서 자신들의 힘으로 건설한 근대적 도시 마산은 일본인들의 자부심을 만족시켜 줄만한 도시였습니다.

「觀光の馬山」제작은 이런 배경에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觀光の馬山」은 한국 땅이 완전히 일본 땅으로 변하였음을 보여주는 자료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이 리플렛의 잔존 매수는 극히 제한적입니다. 그 중 1매를 시인이자 불휘기획 대표인 우무석 선생이 소장하고 있습니다. 마산역장을 지낸 외조부 문판개 선생의 유품을 우무석 선생이 보관하고 있습니다. 흠이 없지는 않지만 보관상태가 비교적 좋습니다.

이 리플렛1937년 5월 5일 인쇄하여 5월 10일자로 馬山名勝古蹟保存會(마산명승고적보존회)에서 발행하여 비매품으로 보급하였으며 편찬자는 우에하라 사카에(上原榮), 저작권자 겸 인쇄자는 오야마 키치조(小山吉三), 인쇄소는 日本名所圖繪社(일본명소도회사)입니다. 우에하라 사카에(上原榮)은 마산공립보통학교(현 성호초등학교) 교장이었습니다.

이 리플렛은 세로16.5㎝ 가로10.0㎝의 봉투와 그 속에 마산을 소개하는 안내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봉투는 접어서 끼우는 형태로 만들어졌습니다. 속의 안내서는 접어서 채색봉투에 넣도록 제작되었으며 안내서의 크기는 세로30.0㎝ 가로45.0㎝입니다.

안내서 앞면에는 채색판으로 「馬山」이라는 제목의 지도와 함께 상하단에 당시 마산의 중요한 관공서 · 학교 · 금융기관 · 기업 등을 비롯하여 유원지와 명승고적의 흑백사진 55매가 인쇄되어 있으며 뒷면에는 「馬山案內」라는 제목으로 마산의 도시상황과 통계 등이 인쇄되어 있습니다.

중앙부 좌단에는 진해요항부와 마산헌병대의 검열을 받았다는 표시가 있고 검열일로 昭和12년(1937년)1월30일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앞으로 소개할 사진은 안내서 앞면에 실린 55매의 사진입니다.

안내서의 뒷면에는 「馬山案內」라는 제목으로 마산의 도시상황과 통계 등이 인쇄되어 있는데 내용은 ‘마산안내’와 ‘명승고적’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마산안내’ 부분에는 연혁 · 위치 · 풍경과 기후 · 교통 · 산업(농업 · 공업 · 상업 · 수산업 · 무역상) · 교육 · 종교 · 위생 · 금융 · 관공서 · 호구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호구부분에는 1936년 말 기준 마산의 인구는 일본인 5,427명 한국인 25,529명 중국인 47명 기타외국인 9명으로 총 31,012명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명승고적’ 부분에는 몽고정 · 마산성지 · 합포현성지 · 정동행성지 · 율구미 · 월영대 · 마산신사 · 마산공원 · 근위빈(近衛濱)공원 · 추산공원 · 산제당 · 저도 · 벚꽃 · 해수욕장 · 완월폭포 · 봉암온천 · 자안지장(子安地藏) · 관해정 · 마금산온천 등에 대한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안내서 전체 사진만 소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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