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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14 00:00

한국100명산 6. : 중국 당나라 전설따라 주왕산

10월의 마지막 밤이 며칠 남지않은 즈음에,  100명산 목록중에서 단풍놀이를 겸할 수 있는 곳을 찾아보았습니다. 경북 청송의 주왕산으로 쉽게 결정되었습니다. 10월 26일 아침 7시반에 예외 일명없이 학봉산악대원 전원이 집결하였습니다. 단풍도 감상할 겸 겸사겸사한 관계로 출석률이 좋은것 같았습니다. 마산에서 청송에 가는길은 크게 두개의 코스가 있었습니다. 구마고속도로를 타고 대구에서 우측으로 빠져서 포항하는 길로 올라가는 코스와 대구에서 중앙고속도로를 타고 안동까지 올라가서 내려오는 코스가 있었습니다. 전자의 코스로 가기로 하였으나, 대구 즈음에서 운전중에 잡담을 심하게 한 관계로 우측으로 빠지는 코스를 놓쳐서 할 수 없이  안동까지 올라가는 코스로 돌아가는 길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단풍철이 한창일 때인지라, 서울에서 내려오는 관광버스가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주왕산 입구 8키로미터 정도를 남기고 차가 정체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나마 매표소에서 3키로미터 정도 떨어진 논바닥이 공용으로 사용하는 승용차 주차장이었습니다. 파킹하고 매표소 입구까지 한참을 걸어서 주왕산 입구에 당도했습니다. 차가 도착한 시간은 11시쯤이었는데, 매표소에서 산행을 준비할 때 시각이 11시 50분이나 되었으니, 입구에서 얼마난 헤멨는지 짐작이 될 겁니다. 행락철 명산은 가급적 피해야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첫발을 내딛었습니다. 

(출발에 앞서 단체사진)

- 주왕산을 산징하는 장대한 바위입니다. 아니 석산 그 자체입니다. 적어도 50미터 높이는 족히 되어 보이는 두 석산 틈으로 사람들이 출입을 하고 있습니다.얼핏보면 두얼굴이 마주보고 있는 모양처럼 보입니다. 두 입사이로 사람들이 지나가는 듯 합니다.

중국 주왕의 전설이란 곳에서   국립공원인 주왕산은 한반도에서 아마 유일하게 중국의 전설을 간직한 산인것 같습니다.  이름 그대로 주나라 왕이 머물었다는 그리고 최후를 마지했다는 장소적 의미가 있다고 하는군요.  대략 내용을 정리하자면 주왕산은 신라말부터 주왕이 은거하였던산이라 하여 주왕산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합니다.주왕은 중국 당나라 때 주도라는 사람으로 진나라의 회복을 꿈꾸며 반역을 일으켰으나 당나라 군사에게 패하여 이곳 석병산 까지 쫓기어서, 이에 당나라 왕이 신라왕에게 주왕을 잡아달라 요청하여 주왕은 이곳에서 신라장군(마장군 형제들) 에 의해 주왕굴에서 최후를 마쳤다고 합니다. 주왕산의 특징은 산 이름을 주왕이라는 사람의 이름에서 따왔는데, 주왕산은 주왕과 관련된 전설의 산이기도 하다. 주왕굴에서 생을 마친 주왕에게는 대전(大典)이라는  아들과  백련(百蓮)이라는 딸이 있어 현재 주왕산 내 대전사와 백련암의 이름은 여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 첫번째 목적지는 주왕굴입니다. 주왕이 최후를 맞이했다는 전설이 있는 주왕굴로 들어가는 협곡의 초입에 주왕암이 있습니다. 위의 사진은 주왕암에 들어서는 문루입니다. 가학루는 중층규모로 규모가 제법되어 보입니다. 뒤로 거대한 석산이 단풍에 물들어 가는 전경이 볼만했습니다.-- 주왕암의 전경입니다. 이 암자는 주왕의 혼을 위로하기 위해 대전사와 함께 지어졌다고 합니다. 주왕암을 끼고 오른편으로 방향이 주왕굴로 올라가는 코스입니다.

- 주왕암으로 향하는 협곡에서 본 단풍입니다. 돌에서 베어나오는 냉기로 인해 단풍이 제대로 든것 같았습니다.

- 주왕굴의 모습입니다. 의외로 단출하여 놀랄지경이었습니다. 굴이라기 보다는 움푹들어간 바위틈에 불과 했습니다. 조그만 불단이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주왕이 최후를 맞이하기에는 조금 초라한 공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채석한 듯한 암굴 상부의 위용이 섭섭함을 덜하게 했습니다. 이국만리에서 신라땅하고도 오진 산중에서 마지막을 맞이했었던 그 때가 이 맘때였다면, 이승에서 단풍구경은 제대로 한셈이 될 것입니다.

- 하산길에 본 단풍모습입니다. 협곡 틈에 붉게 물들 단풍과 햇볕을 받은 파란 단풍, 그 사이에 노란단풍들을 보면서 계곡내의 온도차를 실감하게 됩니다.

- 주왕암 앞에서 용추폭포를 향하였습니다.

- - 중간쯤에 커다란 바위를 배경으로 한장 찍었습니다. 앞으로 100산을 다 다녀보면 확인되겠지만, 우리나라에서 주왕산 처럼 장대한 바위들로 주봉이 형성된 산을 거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틈에 수목이 점점히 섞혀있는 풍경은 한폭의 그림처럼 보입니다. 사람들이 많이 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던것 같습니다.

- 우리대원중에 나무에 대해 박학다식한 분이 있습니다. 가면서 여러 나무들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그중에 참나무 6형제에 대해서 설명한 것이 마침 소개되어 있어서 한 컷했습니다. 특히 굴참나무는 코르크 마게로 사용도 하고, 너와지붕의 널로 쓰인다고 해서 주변에 있는 굴참나무의 수피를 상세하게 찍어보았습니다. 아래사진입니다. 정말 수피가 두터우면서 거북등처럼 들고 있어난 모습을 확인 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 코르크 재질이면 단열은 잘 될턴데, 저 나무의 속은 아주 따뜻할 것 같습니다.

- 주왕산 3개의 폭포로 향하는 중간지대에 모습입니다. 여기는 등산코스가 아니라 그냥 산책코스라고 봐야할 것 같습니다.

- 앞서 본 풍경에 덧붙혀 설명을 하자면, 장대한 괴석과 그 틈에 들어 앉은 수목들 그리고 지표면 바위틈을 헤치고 나가는 3개의 폭포가 주왕산 단풍놀이의 명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 바위들도 칼로 도려낸 듯이 함지박 같이 물이 고이는 곳도 있고, 그 위를 지나는 행락객들의 손을 카메라로 향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아마 절구 폭포인 것 같습니다.

조금더 올라 가장 화이라이트인 용연폭포까지 올라가서 점심을 먹기로 하였습니다..

- 소찬이지만 각자 가지고 온 간식을 꺼내어 점심을 먹는 중입니다. 찐계란, 고구마, 옥수수, 사과, 귤 그리고 일본에서 가져온 사케를 후식으로 마시면서 점심을 떼웠습니다.

- 낙차가 제법 큰 용연폭포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주변에 우뚝 솟은 봉우리들이 다 나름대로 이름과 사연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학소대, 시루봉, 급수대 등의 봉우리가 있습니다.

- 학소대의 모습입니다. 봉우리 상단에 마른 풀 집단이 있는 것을 보아서 학의 둥지가 있는 곳이라는 의미의 바위봉우리 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봐서는 사람의 얼굴을 한 모습처럼 보입니다. 눈 두덩이가 두툼한 사람의 모습처럼 보입니다. 코는 세월의 풍파에 씻겨 조금 잘려 나간듯한 모습니다.

- 급수대라는 봉우리 모습입니다. 

- 하산길에 들른 대전사의 모습입니다. 배경으로 보이는 육손이 같은 봉우리가 압권입니다. 역시 주왕산은 바위로 시작해서 바위로 마무리되는 것 같습니다.

- 올라갈 적에 군침을 삼켰던 즐비한 식당중 한곳에 들렀습니다. 막걸리 2통, 파전, 도토리 묵을 안주로 요기를 하였습니다. 원래는 달기양수삼계탕을 먹을 계획이었었는데, 시간 관계상 포기했습니다. 아쉽습니다. 다음에 가면 꼭 들러볼 생각입니다.

-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중에 본 사과밭입니다. 사과나무가 저렇게 외소한줄 처음 알았습니다. 몸통도 가는놈들이 어떻게 저 무게를 감당하는지 신기할 따름입니다.

- - 학소대 풍경입니다. 상단은 인간의 두상인고, 중간쯤의 모습은 침펜지 두상같은 느낌이 들지 않습니까?

내려오는 길에 엄청많은 인파를 보고 내기를 했습니다. 이정도 인파면 하루에 10만은 될것 이다. 아니다. 기껏해야 1만명 정도일 것이다, 확인할 방법이 있었을까요? 매표소에 확인한 결과 하루에 1만명 정도의 유료입장객과 함께 경로출입등 무료입장객을 포함하면 1만 5천명정도가 출입한다는 결론이 났습니다. 그런데 반론도 있었습니다. 우리의 행생이 감사원 사람처럼 보여서 거짓으로 줄여서 대답했을 수도 있다는 억지를 부리면서 주왕상 탐방을 마무리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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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박진섭 2013.11.22 10:50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주왕산의 명성은 익히 들었으나 한 번 도 가보지 못한 아쉬움을 조금은 풀은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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