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2009.09.18 00:30

‘현대아이파크’의 추억.

마산 앞바다 신포동 매립지에 현대아이파크 고층아파트가 우뚝 섰다.
짓기 전에는 몰랐지만 다 올라가고 난 지금, 많은 시민들이 혀를 찬다.

‘도시를 막았다’

‘추산공원에서 돝섬이 보이지 않는다’



말들이 많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돌이킬 수도 옮길 수도 없다. 도시와 건축은 그런 것이다.

비록 늦었지만 저 아파트가 지어질 당시를 기억해 보자.
오래된 일이 아니라서 기억이 생생하다.
시민들의 반대서명, 토론장에서의 날선 소리, TV공개토론 등 많은 분들이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이미 끝난 일인데 왜 다시 짚어봐야 하는가?
두 번 다시 이런 식의 행정을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기왕 지어진 건물, 옮길 수도 없으니 반면교사로라도 삼기 위해서이다.

현대아이파크 고층 아파트는 마산시가 이 아파트가 들어서면 도시가 멋지게 바뀔 것이라고 강변하면서 시작된 사업이다.
이런 마산시의 주장에 시의회가 부응, 자신들 손으로 만든 조례를 불과 열 달 만에 스스로 뒤집어 고층아파트 건립을 가능케 했다.
납득할만한 설명도 별로 없었다. 모두 마산 시민을 위하고, 마산발전을 위한 결정이라고만 했다.

이런 흐름에 반대한 시민도 있었다. 나도 그 중 한 명이었다.
우리는 애당초 이 매립지가 항만관련시설로 허가받았다는 원론적인 지적 외에, 이 고층건물이 도시의 자연환경과 조망권, 나아가 경관의 소수독점이라는 사회적 불평등 문제까지 야기할 것이라고 했다.

반대의사에 동의하는 1만여 명의 시민 서명까지 받아 시의회가 다시 한 번 재고하도록 청원까지 했다.


시의회가 아파트를 지을 수 있게 결정하고 난 뒤에도 계속 의견을 개진했다.
당시의 주장을 그대로 옮긴다.

첫째, 시민의 혈세로 수백억을 책임져야한다는 마산시의 주장은 적절치 않다.
애당초 현대산업개발과 해양수산부가 계획했던 것은 항만이었지만 그 기능이 없어졌다. 아니 애초부터 아파트가 목적이었고 항만은 서류상 필요한 수단이었다는 것도 알만한 시민은 다 안다.

문제의 본질은 여기에 있다. 항만이 쓸모없어졌다면, 그래서 건설회사에 비용보전을 해주어야 한다면, 그 고민은 순전히 건설회사와 해양수산부(당시 명칭)의 몫이다. 매립허가 과정에서 마산시가 책임질 일은 아무것도 없다.

필요도 없는 항만 만든답시고 결국 아파트 부지만 조성한 저 매립을 마산시민 누구도 동의하지 않았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정책과 기업을 두고 투자비 보전 운운할 것이 아니라 시민과 함께 중앙정부가 실패한 정책을 추궁하는 것이 시의원의 권리요 의무다.


둘째, 고층아파트 건립을 찬성한 시의원들은 그 이유를 설명해 주기 바란다.
이 터에 아파트를 지을 수 있도록 개정한 조례는 마산시의원 총 서른 명 중 열여섯 명이 찬성함으로써 결정되었다. 그 분들은 자신이 찬성한 이유를 시민들에게 알려, 설득시킬 것은 설득시키고 양해구할 것은 구하기 바란다.

이 아파트가 들어서면 마산시민들에게 어떤 이익이 있고 이 도시는 무엇이 좋아지는지 이해시켜주기 바란다.

이는 신뢰받아야할 공인의 마땅한 의무며 유권자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다.
건립반대서명을 받으면서, 의회가 왜 저곳에 고층아파트를 짓게 했는지 대다수 시민들이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셋째, 최종 결정은 시민들의 뜻을 물은 후 내리기 바란다.

제도상으로 보면 의회가 시민의 대의기구인 만큼 의원 각자의 판단에 따라 모든 것을 결정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일처럼 중요한 사안일 경우, 본인을 뽑아준 시민의 뜻을 확인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대형 건물은 한번 들어서고 나면 다시 돌이킬 수 없다. 철거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만약 다수 시민이 고층아파트 건립을 찬성한다면 시민의사가 수렴되었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매우 값진 일이며 설령 건축 후 도시환경이 나빠지더라도 의원들에게 돌아가는 부담도 준다. 역으로 고층아파트 건립을 반대하는 시민이 많아 조례를 다시 고친다면 그 역시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런 점에서 의회가 시민들의 뜻을 묻는 여론조사가 아무 부담이 없을 것이다. 오히려 일석이조인 셈이다.

이 주장에 시의회는 묵묵부답, 아무런 답도 하지 않았다.


▲2004년 추산공원에서 바라본 돝섬 풍경(좌)과 당시 아이파크 건립후를 예상한 시물레이션(우)



▲2009년 추산공원에서 바라본 돝섬 풍경
시야를 가로막은 아이파크로 인해 섬의 온전한 형태를 바라볼 수 없게 되었다.


도시발전을 위한 중요한 판단은 일부 소수의 결정권자에게 독점되어 있다. 제도상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도시사용자인 시민들과 충분한 교감을 얻지 못한 도시정책은 결국 실패한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으로 안다.
실패한 도시정책은 회복이 어려울 뿐 아니라 그 부담은 미래의 도시사용자까지 져야한다. 그런 점에서 도시는 현재와 미래의 두 눈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의원들은 말했다.

‘마산시민을 위하여, 마산의 미래를 위하여’
유권자이자 시민인 우리는 그 말을 믿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어떤가?
이 고층 아파트가 마산을 살려줄 것이라 했던 시의원들께 묻는다.
정말 그런가라고, 저 고층 아파트가 정말 마산을 살렸느냐고.

TV토론에서 마산시 담당 국장은,
‘저 아파트를 지으면 문신미술관에서 돝섬이 보이지 않는데 어쩔 거냐' 고 하자
‘돝섬이 보이지 않으면 어떠냐’ 고 공개적으로 답했다.
'저 자리에 아파트가 들어서면 도시가 획기적으로 발전될 것'
이라고도 했다.

그 분께도 다시 묻는다.
지금도 마산 앞바다가 보이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지?
아직도 조망이고 뭐고 여기저기 건물만 올라가면 도시가 좋아진다고 믿는지?
5년 전,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나 하고 있는지?

버스 지나간 뒤 손드는 짓 두 번 다시없기를 바라며 이 글을 쓴다.



 

이 장소를 Daum지도에서 확인해보세요.
경상남도 마산시 내서읍 | 현대아이파크
도움말 Daum 지도
Trackback 1 Comment 6
  1. 산지니 2009.09.18 23:22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고층아파트가 들어선 해안선을 보니 정말 가슴이 턱 막히네요...
    부산도 해안선을 따라 늘어선 고층건물들때문에 바다 조망이 거의 없어지고 있는데...
    바다를 끼고 있는 도시들의 고달픈 현실입니다.

    • 허정도 2009.09.19 10:54 신고 address edit & del

      글쎄 말입니다.
      근데, 바다를 끼고 있다고 모든 도시가 그런건 아닐 터.
      바다는 모든 사람들이 나누어 즐겨야 된다는 간단한 상식만으로도 도시를 잘 가꿀 수 있지 않을까요?

  2. 괴나리봇짐 2009.09.22 09:24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2000년도에 마산시가 경관관리와 관련된 용역을 추진한 적이 있는데, 저도 거기에 참여했습니다. 그때 시장도 지금의 황철곤 시장이었던 것 같습니다. 자기가 용역을 해놓고, 보기 좋게 뒤집었네요. 철학의 빈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 허정도 2009.09.22 14:26 신고 address edit & del

      반갑습니다.
      2000년에 그런 일이 있었군요.
      지금에 와서 저 건물 철거할 수도 옮길 수도 없으니 참 안타깝습니다.

  3. 너털도사 2009.10.12 21:12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참오랫만에 시원스런 말슴 속은 시원하게 준엄한 지적이지만 ,,,,그당시 시장 외 주무 과장인지 국장인지 잘몰라도 아직 현직에 근무 하는걸로 알고 잇는데 ,,집행 실명제로 마산 시민이름으로 손해배상 외 구상권 청구는 안되는지 ,,,또한 인접시군합병 등으로 또다른 오염이 될까봐 심히 유감스럽마음 내혼자 마음이길 간절히 바라면서 너털웃음만 남기고 갈렵니다 ...

  4. 박력 2009.10.21 13:41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해양신도시 해양신도시 .... 하도 뭐라 하기에 어떻게 생기나 했더니 ... 저렇게 생기더군요... 마산시장님 대단합니다. .... 뭔가 일을 벌렸지만 수습을 이제 어떻게 하실런지

걸작 - 중국 사천성 도강언(都江堰) - 3

위대한 목민관 이빙(李冰) 도강언 주변 일대는 성도나 인근 지역 사람들이 쉴 수 있는 아름다운 공원이기도 했다. 울창한 숲 속에서는 특유의 목소리를 내는 사천 매미가 왕왕거리며 울어댔고, 서북쪽의 산록에서는 시원한 고원 바람이..

걸작 - 중국 사천성 도강언(都江堰) - 2

5백 갈래로 나누어진 민강(岷江) 도강언의 시설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어취(魚嘴)와 비사언(飛沙堰), 보병구(寶甁口)가 그것이다. 이 세 시설은 따로 있으나 서로 긴밀하게 연관되어 결과적으로 하나의 유기체적 결합..

걸작 - 중국 사천성 도강언(都江堰) - 1

천부지국(天府之國) 언젠가 중국 사천성 일대를 여행하였다. 그 동안 십 수차례 중국을 드나들었지만, 보면 볼수록 놀라운 것은 수천수만 겹 녹아있는 역사의 층위다. 대륙은 깊고 넓었으며 언제나 새로운 것을 보여 주었다. 지구상에..

노회찬의 추억
노회찬의 추억 2018.07.30

노회찬 의원과 저의 인연은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매체를 통해 저만 그를 알았을 뿐 그는 저를 몰랐습니다. 노회찬 의원을 직접 만난 것은 2016년 2월쯤이었습니다. 그해 4월 선거를 앞두고 창원에 내려왔을 때였습니다. 처음 만..

북한건축 - 건축은 건축의 눈으로 보아야

(지난 5월 29일 「건축사신문」에 실렸던 글입니다. 글 중 '우리'는 건축사를 말합니다.) 남북 정상이 판문점에서 손을 맞잡은 그 날, 이 나라 모든 국민은 TV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만찬장에서 제주도 소년 오연준의 목소리..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14 - 1980년대 이후

5) 1980년대 이후 - 4 아파트의 대중화는 주거설비의 획기적인 변화를 불러왔다. 아파트 사용자들은 첨단시설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가장 큰 변화는 주방시설에서 비롯되었다. 주부의 가사노동을 줄여줄 뿐 아니라 세련된 디자인과..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13 - 1980년대 이후

5) 1980년대 이후 - 3 2002년 말 우리나라 주택 보급률은 100%를 넘었다. 1인 가구를 포함하는 신주택보급률 역시 2008년에 100%를 상회(100.7%)함에 따라 주택의 양적 공급이 부족한 상태는 아니라고 볼 ..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12 - 1980년대 이후

5) 1980년대 이후 - 2 오늘날 우리나라 도시들을 뒤덮고 있는 아파트 홍수의 시작은 1988년에 시작한 ‘주택 2백만 호 건설’이다. 이 사업은 전년도에 있었던 대통령 선거에서 노태우 후보가 내놓은 공약이었다. 2백만 호..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11 - 1980년대 이후

5) 1980년대 이후 - 1 1960년대 이후 계속된 인구의 도시집중은 폭발적으로 늘어난 수요에 비해 택지가 턱 없이 부족한 상황을 낳았다. 이런 현실은 필연적으로 주거의 집단화와 고층화를 요구하였고 그 해답으로 등장한 것이..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 10 / 새마을운동의 농촌주택개량사업

4) 새마을운동의 농촌주택개량사업 - 2 농촌 주택개량사업은 새마을운동 시작 다음 해인 1972년부터 전개되었으며 담장이나 지붕 등의 부분적 보수와 개량으로 시작되었다. 이 과정에서 관리들은 초가지붕이 비위생적이고 아름답지 못..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 9 / 새마을운동의 농촌주택개량사업

4) 새마을운동의 농촌주택개량사업 - 1 1960년대 이전까지 우리나라의 농촌은 전쟁으로 입은 농토의 피해와 농촌인구의 감소 등으로 아직 근대화의 영향을 받지 못한 채 재래식 농경생활을 유지하고 있었다. 주거환경 또한 전쟁피해..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 8 / 해방 후부터 제4공화국(1970년대)까지

3) 해방 후부터 제4공화국(1970년대)까지 - 3 1960년대와 1970년대의 주택 시장은 사회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맞물려 개발과 성장의 논리가 지배하던 시기였다. 이 시기에 지어진 단독주택은 대부분 도시 한옥과 양식이 가..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 7 / 해방 후부터 제4공화국(1970년대)까지

3) 해방 후부터 제4공화국(1970년대)까지 - 2 1960년대는 한국사회의 큰 전환기였다. 4·19혁명과 5·16쿠데타에 따른 정치적 격변을 겪었고, 소위 경제개발정책에 따른 제반 개발이 계획적으로 유도되기 시작한 시기였다..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 6 / 해방 후부터 제4공화국(1970년대)까지

3) 해방 후부터 제4공화국(1970년대)까지 - 1 1945년 일제의 압제에서 벗어나면서 비로소 주체적인 주거문화를 창달할 수 있는 계기를 맞게 되지만 경제 사회적 제반 여건이 불비하여 주체적인 역량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었..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 5 / 개항기부터 일제강점기

2) 개항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 2 일제하의 중·상류계층의 주택 유형으로는 양식주택과 절충식(개량식)주택·개량 한옥·문화주택·공동주택·영단주택 등을 들 수 있다. 양식주택은 서양식주택을 말하며, 절충식 주택은 과도기적 상황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