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2013.12.16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92) - 강점제3시기

이번에는 강점 제3시기에 있었던 마산의 도시구조 변화에 대해 정리합니다.

만주사변 등으로 1930년 이후 국내의 사회경제적 상황은 최악이었으며 이로 인해 발생한 급격한 이농현상으로 도시의 물리적 환경도 점점 열악해갔습니다. 그러나 마산의 경우, 위치가 전선과 멀다는 이유도 있었겠지만 일본과 대륙을 연결하는 접점이라는 점과 군수물자 공급창이라는 점 때문에 새로운 매립도 시도되는 등 적지 않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오히려 마산의 건설경기가 과도하게 상승하여 ‘황금시대’ 운운할 정도였습니다.

지형적으로 볼 때 매립 전의 마산은 자산동 입구, 즉 몽고정 부근에 해안이 깊고 환주산이 해안 쪽으로 돌출해 있어서 가용대지가 협소했습니다. 특히 이곳에는 두 개의 철도와 한 개의 간선도로(현재의 장군로)가 지나고 있어서 원마산과 신마산 두 도시가 연결되는데 악조건으로 작용했습니다.

바로 이 일대(현재의 신포동)에 1929년부터 1935년까지 대규모 매립공사가 진행되어 마산의 도시형상은 크게 바뀌었고, 이로 인해 원마산과 신마산은 지형적으로 연결되어 마산은 대상형(帶狀型) 도시로 변하게 됩니다.

도시의 기원과 사회적 배경을 달리하는 원마산·신마산이라는 양 도시가 서로 깊은 관계를 가지고 변화․흡수되었던 것이 일제강점기 마산의 도시변천과정입니다. 그러므로 마산의 도시사(都市史)에서 이들 두 도시가 하나로 연담화되는 시점은 도시변화과정의 중요한 분기점이 됩니다.

연담화된 시점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몇몇 주장이 있지만 각종 자료, 즉 이 시기에 제작된 지적도와 지도 및 도면 등에 나타나고 있는 정황을 보면 원마산과 신마산의 중앙지역에 관공서 건물을 비롯한 다수의 건물이 들어서서 어느 정도 중앙마산의 영역이 형성되고, 현 신포동 지역에 마산매축회사에서 시행한 대규모 매립이 준공된 1935년 이후라고 판단됩니다.

이 시기에 중앙 마산의 시가지 건설도 많이 진행되었는데, 중앙마산지역의 도로 개설을 차례로 살펴보겠습니다.

① 우선 1931년까지 현재의 장군교에서 성지여고 방향으로 오르는 도로는 원래 폭2m의 소로였는데 이 도로가 1931년에 7m로 확장되어 폭9m의 도로가 되었습니다.

② 장군교 북서쪽 토지 일대가 1933년 직사각형의 소로를 낀 택지로 분할 정리되었습니다.

③ 1934-1935년에는 현재의 법원부지와 세무서 부지가 각각 합필되어 1920년대 가로를 세분화 한 것을 다시 변경하였습니다.

④ 1932년부터 1935년까지의 시기에 현재의 고운로가 마산여고 남쪽 완월동과 신월동 경계까지 뚫렸습니다. 그리고 이 도로의 동남쪽 일대지역(고운로 저지대인 완월동 일부지역과 장군동 2가․3가․4가, 대성동, 신흥동)의 도로와 마산고등학교로 연결되는 도로가 이 시기에 대부분 개설되었습니다.

⑤ 자산동으로 진입하는 도로와 무학초등학교 부근의 도로는 1936-1937년 사이에 개설되었습니다.

⑥ 현 마산중학교에 이르는 길을 비롯하여 자산동 전 지역의 도로가 강점 말기인 1944-1945년 사이에 개설되었고, 같은 시기에 자산동 입구 부근에 철도직원용 집단주택을 건설하였습니다.

⑦ 1934년에 마산여고 남측까지 개통되었던 고운로가 1944-1945년 이미 마산신사(현, 제일여고) 정문 앞에 나있던 도로와 연결되어 완전히 뚫렸습니다.

이처럼 변화했던 중앙마산지역과 신마산지역의 도로개설을 시기별로 단순화 시켜보면 다음 그림과 같습니다. 

 

 

중앙마산지역에 시행된 다양한 도시개발사업은 1934년 6월 20일자로 제정․발포된 조선시가지계획령에 의해 추진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만 이 때 세운 도시계획은 계획대로 시행되지 않았으며 완성도 보지 못하고 해방을 맞게 됩니다.

1930년대 초기만 하더라도 신마산의 건물들은 장군천 부근까지 다가왔습니다. 그렇지만 장군천 이북에는 1911년 개통된 대로변에 전기회사가 있었을 뿐 그 밖의 일반건물은 별로 없었습니다. 구(舊)도로, 즉 크리스탈호텔 앞 도로 변에 주로 민간건물들이 들어서 있었습니다.

하지만 1930년대에 들어서면서 신마산에 집중 배치되어 있던 관공서 건물들이 서서히 중앙마산으로 옮겨와 중앙마산의 공공업무지역화가 본격 진행되었는데, 그 대표적인 사례가 1935년 마산부 청사 이전입니다.

1941년 기준으로 중앙마산 지역인 중앙동과 장군동에 위치한 공공건물을 보면 마산부청을 필두로 부산지방법원 마산지청․마산우편국․마산조선간이보험진료소․마산세무서․마산역․마산경찰서․도립마산의원․마산보선구(馬山保線區)․연초판매소․곡물검사소마산출장소와 그밖에 조선상업은행마산지점․마산금융조합․남선합동전기주식회사 마산영업소․조선운송주식회사 마산지점․합자회사 협융회 등이 있을 정도로 크게 변해 공공업무지역의 성격을 완전하게 갖추어 갔습니다.<<<

 

 

Trackback 0 Comment 0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 10 / 새마을운동의 농촌주택개량사업

4) 새마을운동의 농촌주택개량사업 - 2 농촌 주택개량사업은 새마을운동 시작 다음 해인 1972년부터 전개되었으며 담장이나 지붕 등의 부분적 보수와 개량으로 시작되었다. 이 과정에서 관리들은 초가지붕이 비위생적이고 아름답지 못..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 9 / 새마을운동의 농촌주택개량사업

4) 새마을운동의 농촌주택개량사업 - 1 1960년대 이전까지 우리나라의 농촌은 전쟁으로 입은 농토의 피해와 농촌인구의 감소 등으로 아직 근대화의 영향을 받지 못한 채 재래식 농경생활을 유지하고 있었다. 주거환경 또한 전쟁피해..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 8 / 해방 후부터 제4공화국(1970년대)까지

3) 해방 후부터 제4공화국(1970년대)까지 - 3 1960년대와 1970년대의 주택 시장은 사회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맞물려 개발과 성장의 논리가 지배하던 시기였다. 이 시기에 지어진 단독주택은 대부분 도시 한옥과 양식이 가..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 7 / 해방 후부터 제4공화국(1970년대)까지

3) 해방 후부터 제4공화국(1970년대)까지 - 2 1960년대는 한국사회의 큰 전환기였다. 4·19혁명과 5·16쿠데타에 따른 정치적 격변을 겪었고, 소위 경제개발정책에 따른 제반 개발이 계획적으로 유도되기 시작한 시기였다..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 6 / 해방 후부터 제4공화국(1970년대)까지

3) 해방 후부터 제4공화국(1970년대)까지 - 1 1945년 일제의 압제에서 벗어나면서 비로소 주체적인 주거문화를 창달할 수 있는 계기를 맞게 되지만 경제 사회적 제반 여건이 불비하여 주체적인 역량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었..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 5 / 개항기부터 일제강점기

2) 개항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 2 일제하의 중·상류계층의 주택 유형으로는 양식주택과 절충식(개량식)주택·개량 한옥·문화주택·공동주택·영단주택 등을 들 수 있다. 양식주택은 서양식주택을 말하며, 절충식 주택은 과도기적 상황에..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 4 / 개항기부터 일제강점기

2) 개항기부터 일제시기까지 - 1 구한말(舊韓末)까지도 조선 사람들이 살았던 보편적인 주거 유형은 한옥이었다. 1882년 그리피스(W. E. Griffis)가 쓴 한국에 관한 역사서 『은자의 나라 한국』에는 당시 전통 한옥을..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 3 / 조선시대 이전

1) 고대에서 조선시대까지 - 3 조선시대는 우리나라 주거문화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시기이다. 반상(班常)을 철저히 구분한 신분사회였기 때문에 신분에 따라 주택의 크기나 형태를 규제하는 가사규제(家舍規制)가 있었다. 신..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 2 / 조선시대 이전

1) 고대에서 조선시대까지 - 2 주거사(住居史)에서 청동기시대와 초기철기시대를 구분하는 또 하나의 지표는 구들의 시작이다. 한국 주거문화의 정체성을 압축적으로 나타내는 구들은 난방기술의 획기적인 발전인 동시에 지상주거로의 변..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  1 / 조선시대 이전

오늘부터는 <경남지역 주거변천사>를 포스팅하겠습니다. 6~7년 전에 『경남도사』에 싣기 위해 간략히 쓴 글인데 출판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 블로그에 올립니다. 어차피 공유하기 위한 글이니 이해하리라 생각합니다. 한반도 동남부에 ..

기억을 찾아가다 - 25 (마지막 회)

25. 3·15의거에 대한 기억 「그날 나는 ‘극장 구경 시켜주겠다’는 주무돈이란 동네친구의 호의에 끌려 10리 가까이 되는 길을 걸어 ‘시민극장’으로 갔다. 그때 나는 대학입시에 낙방한 직후라 의기소침해 있던 상황이었다. 우..

기억을 찾아가다 - 24

24. 이승만 행사 - 독립협회와 청년 이승만, 노인잔치...... 내 고등학교시절의 어느날 동회 서기가 들고온 책자를 잠시 훑어본 기억이 남아있다. ‘한국 정치인 99인집’이란 제목이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이승만편이 현격히..

기억을 찾아가다 - 23

23. 떠돌이들, 좀도둑 전쟁이 끝나자 대다수의 사람들은 고향으로 돌아들갔지만, 상당수의 사람들은 남아있었다. 좌우갈등의 와중에 있었던 몸이라 돌아갈 수 없는 처지였다고 들은 문씨 같은 사람들도 있었는가 하면, 가봤자 땅뙈기 ..

기억을 찾아가다 - 22

22.기합, 주먹자랑, 몸단련 중학교시절에도 조금은 의식되었지만 신경을 곤두세울 정도는 아니었었는데, 고등학교에 들어가자 그 문제들은 신경의 상당부분을 자극하여 행동거지의 상당부분을 조종하고 지배할 정도로까지 작용했다. 소위 ..

공간의 재탄생 - 재생 건축 '선유도' 02

지난주에 이어 녹색 기둥의 정원 에서부터 선유도 이야기를 이어 나가보도록 하겠습니다. - 녹색 기둥의 정원 정수지의 콘크리트 상판 지붕을 들어내 기둥만을 남겨 만들어진 이 정원은, 선유도 이야기관 의 설명에 의하면 ‘휴식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