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2014.03.24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206) - 강점제3시기

지난 회까지는 ‘토지이용’에 대한 추정을 각종 문헌과 사진(가. 문헌과 사진에 나타난 토지이용)과 도시공간·소유상태(나. 도시공간·소유상태를 통한 추정)을 이용하여 살펴보았습니다만 이번에는 토지의 가격을 통한 추정 방법에 대해 설명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다. 토지가격에 의한 추정

시가지 내 토지의 가격은 일반적으로 토지의 상업적 가치에 의해 결정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각 지역의 토지가격을 알게 되면 비교적 정확하게 당해 지역의 토지이용상태를 알 수 있습니다.

1) 사정(査定) 당시 원마산의 토지등급

필자가 작성한 1912년 당시 원마산 토지이용도에 나타나는 1,157필지의 사정토지대장을 확인하였습니다. 다음 그림은 사정토지대장 중 남성동1번지의 사본입니다.

확인 후에는 각 토지를 등급에 따라 구분하여 그 결과를 그림으로 나타내 당시 토지이용상태를 판단하였습니다.

그런데 등급 외에 토지의 가치를 알 수 있는 것이 토지의 과세가격입니다.

(일제는 토지조사 후 토지대장의 집계부를 조제할 때, 지가의 산출에 앞서 등급조사부에 일 필지마다 등급을 기입하고 지목별로 등급을 나눈 후 각 필수를 계산한 다음 이를 등급조사부의 합계 필지수와 대조하는 등 계산의 정확을 기했다. 그 다음 100평당 지가금표에 의하여 민유과세지 1필마다 지가(地價)를 산출한 것을 전위(錢位)까지 당해 란에 기입하고, 지적 및 지가를 지목별과 등급별의 2가지로 집계하여 이를 따로 국유지, 민유과세지, 민유불과세지(不課稅地)의 3가지로 구분한 지목별, 등급별 집계표를 조제하였다. 그런데 이 산출사무의 정확을 기하기 위하여 등급별로 지적을 집계한 다음 그 지가를 산출하고 집계표와 대조하였는데, 산출지가에 단수처리(端數處理) 관계로 과부족(過不足)이 생긴 것도 매필마다 그 과부족액을 계산하여 1전(錢)도 틀리지 않게 검산하였다. 지가 산출은 당초 100평당 지가금표에 의하여 일필지마다 계산했지만 비능률적이라 나중에는 이를 폐지하고 그 대신 특별히 지가산출표를 만들어 당해 지적에 대한 지가를 가장 간편하게 찾아낼 수 있도록 하였다. / 元永喜, 韓國地籍史, 1971, pp.402-405, 普文出版社)

토지대장에 기재된 과세가격은 해당 토지의 단위지가에 의해 1필지 당 계산한 금액이기 때문에 토지대장의 과세가격을 지적(地積)으로 나눈 값이 당시의 토지의 단위 가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등급만으로 토지의 가치를 결정함으로써 발생할 수 있는 오류를 크로스체크(cross-check)하기 위해 각 필지를 위의 방법으로 환산하여 해당 토지의 단위 지가를 찾아 등급과의 함수 관계를 확인하였는데 그 결과가 다음 표입니다.

(등급은 원본을 그대로 옮긴 것이고 地價는 평당 가격으로 환산하여 얻음 값임, 地價가 기재되지 않은 등급은 원마산 대지 1,157필지에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임, 地價單位 : 圓)

이 표를 통해 25등급 이하는 1등급에 0.10원 이하, 25등급부터는 1등급에 0.10원, 35등급부터는 0.20원, 42등급부터는 0.50원, 67등급부터는 1.00원씩 가산되는 방법을 적용하였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상했던 대로 토지과세가격과 등급이 정비례 관계로 나타났기 때문에 등급만으로 토지 분류도를 작성하였습니다.

대상 토지 1,157필지는 최저 17등급에서 최고 77등급까지 분포되어 있었는데 이를 모두 여섯 단계로 구분하여 나타낸 것이 다음 그림입니다.   

이 분석도를 통하여 마산창을 중심으로 하여 서굴강과 동굴강을 감싸고 있는 남성동 해안 일대가 가장 번성한 지역이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현재의 남성동 파출소 아랫길(전 중소기업은행 앞 도로)이 가장 요지(要地)였는데, 마산 최초의 한국인 회사 「원동상사」도 1920년 이 도로변에서 창업하여 1920년대 말 사옥을 신축한 거리입니다.

이런 세력은 부림동과 창동의 경계가 되는 현 경남은행 부림동 지점 앞길로 이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으며 또한 현재의 창동 네거리의 동서방향으로 나가는 도로변도 상업기능 밀도가 높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를 중심으로 창동․수성동․부림동․중성동․동성동으로 상권이 확산되어 있었는데 전체적으로 보아 도로변과 안쪽의 차이도 크게 나타나고 있어서 도로변의 대부분은 상점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원마산의 동쪽지역인 동성동 일대는 등급이 낮게 나타나 주거지로 사용되었을 것이라는 추정을 확인시켜주고 있습니다.

이 분류도를 1912년 토지이용도인 아래 그림과 비교해보면 일본인의 원마산 토지침투 현상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분류도에서 지가가 높은 곳으로 나타나는 51등급 이상의 지역의 상당한 면적이 일본인 소유였으며 특히 71등급 이상의 초고가 대지의 대부분이 일본인 소유였다는 것입니다.

그런가하면 부림동시장 쪽으로 오르는 길은 이 시기 중국인들의 소유 토지가 많았는데 이 그림을 통해 중국인들이 원마산의 중심상권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동굴강을 감싸고 있는 어선창 일대 좁은 지역의 소규모 고가(高價)대지들은 한국인의 소유로 남아있었습니다.

범례의 남성동 141번지는 1931년 간행된『경상남도 통계연보』에서 기재된 것으로서 당시 마산의 대지 중 가장 고가(高價)였던 필지입니다.

이러한 변화를 시계열적으로 분석해 보면 재미있는 결과를 도출할 수 있을텐데 그러지 못해 아쉽습니다.<<<

 

 

Trackback 0 Comment 2
  1. 김용만 2014.03.25 15:30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잘 읽고 갑니다. 자료가 너무 좋습니다.^-^

    • 허정도 2014.03.25 20:51 신고 address edit & del

      감사합니다, 김 선생님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14 - 1980년대 이후

5) 1980년대 이후 - 4 아파트의 대중화는 주거설비의 획기적인 변화를 불러왔다. 아파트 사용자들은 첨단시설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가장 큰 변화는 주방시설에서 비롯되었다. 주부의 가사노동을 줄여줄 뿐 아니라 세련된 디자인과..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13 - 1980년대 이후

5) 1980년대 이후 - 3 2002년 말 우리나라 주택 보급률은 100%를 넘었다. 1인 가구를 포함하는 신주택보급률 역시 2008년에 100%를 상회(100.7%)함에 따라 주택의 양적 공급이 부족한 상태는 아니라고 볼 ..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12 - 1980년대 이후

5) 1980년대 이후 - 2 오늘날 우리나라 도시들을 뒤덮고 있는 아파트 홍수의 시작은 1988년에 시작한 ‘주택 2백만 호 건설’이다. 이 사업은 전년도에 있었던 대통령 선거에서 노태우 후보가 내놓은 공약이었다. 2백만 호..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11 - 1980년대 이후

5) 1980년대 이후 - 1 1960년대 이후 계속된 인구의 도시집중은 폭발적으로 늘어난 수요에 비해 택지가 턱 없이 부족한 상황을 낳았다. 이런 현실은 필연적으로 주거의 집단화와 고층화를 요구하였고 그 해답으로 등장한 것이..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 10 / 새마을운동의 농촌주택개량사업

4) 새마을운동의 농촌주택개량사업 - 2 농촌 주택개량사업은 새마을운동 시작 다음 해인 1972년부터 전개되었으며 담장이나 지붕 등의 부분적 보수와 개량으로 시작되었다. 이 과정에서 관리들은 초가지붕이 비위생적이고 아름답지 못..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 9 / 새마을운동의 농촌주택개량사업

4) 새마을운동의 농촌주택개량사업 - 1 1960년대 이전까지 우리나라의 농촌은 전쟁으로 입은 농토의 피해와 농촌인구의 감소 등으로 아직 근대화의 영향을 받지 못한 채 재래식 농경생활을 유지하고 있었다. 주거환경 또한 전쟁피해..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 8 / 해방 후부터 제4공화국(1970년대)까지

3) 해방 후부터 제4공화국(1970년대)까지 - 3 1960년대와 1970년대의 주택 시장은 사회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맞물려 개발과 성장의 논리가 지배하던 시기였다. 이 시기에 지어진 단독주택은 대부분 도시 한옥과 양식이 가..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 7 / 해방 후부터 제4공화국(1970년대)까지

3) 해방 후부터 제4공화국(1970년대)까지 - 2 1960년대는 한국사회의 큰 전환기였다. 4·19혁명과 5·16쿠데타에 따른 정치적 격변을 겪었고, 소위 경제개발정책에 따른 제반 개발이 계획적으로 유도되기 시작한 시기였다..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 6 / 해방 후부터 제4공화국(1970년대)까지

3) 해방 후부터 제4공화국(1970년대)까지 - 1 1945년 일제의 압제에서 벗어나면서 비로소 주체적인 주거문화를 창달할 수 있는 계기를 맞게 되지만 경제 사회적 제반 여건이 불비하여 주체적인 역량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었..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 5 / 개항기부터 일제강점기

2) 개항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 2 일제하의 중·상류계층의 주택 유형으로는 양식주택과 절충식(개량식)주택·개량 한옥·문화주택·공동주택·영단주택 등을 들 수 있다. 양식주택은 서양식주택을 말하며, 절충식 주택은 과도기적 상황에..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 4 / 개항기부터 일제강점기

2) 개항기부터 일제시기까지 - 1 구한말(舊韓末)까지도 조선 사람들이 살았던 보편적인 주거 유형은 한옥이었다. 1882년 그리피스(W. E. Griffis)가 쓴 한국에 관한 역사서 『은자의 나라 한국』에는 당시 전통 한옥을..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 3 / 조선시대 이전

1) 고대에서 조선시대까지 - 3 조선시대는 우리나라 주거문화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시기이다. 반상(班常)을 철저히 구분한 신분사회였기 때문에 신분에 따라 주택의 크기나 형태를 규제하는 가사규제(家舍規制)가 있었다. 신..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 2 / 조선시대 이전

1) 고대에서 조선시대까지 - 2 주거사(住居史)에서 청동기시대와 초기철기시대를 구분하는 또 하나의 지표는 구들의 시작이다. 한국 주거문화의 정체성을 압축적으로 나타내는 구들은 난방기술의 획기적인 발전인 동시에 지상주거로의 변..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  1 / 조선시대 이전

오늘부터는 <경남지역 주거변천사>를 포스팅하겠습니다. 6~7년 전에 『경남도사』에 싣기 위해 간략히 쓴 글인데 출판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 블로그에 올립니다. 어차피 공유하기 위한 글이니 이해하리라 생각합니다. 한반도 동남부에 ..

기억을 찾아가다 - 25 (마지막 회)

25. 3·15의거에 대한 기억 「그날 나는 ‘극장 구경 시켜주겠다’는 주무돈이란 동네친구의 호의에 끌려 10리 가까이 되는 길을 걸어 ‘시민극장’으로 갔다. 그때 나는 대학입시에 낙방한 직후라 의기소침해 있던 상황이었다. 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