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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07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208) - 강점제3시기

<일제강점기 마산의 토지이용에 대한 정리>

지난 주 까지 일곱 가지 분석 틀을 통하여 마산의 토지이용 상태를 살펴보았습니다. 이 중에는 각 필지의 토지가격을 이용한 구체적인 접근방법도 있었지만 추상적이거나 포괄적인 방법도 포함되어있었습니다.

일곱 가지 분석의 결과를 보면 대체적으로 일관된 양상을 보이고 있어서 이들을 종합한다면 당시의 토지이용상태에 대한 개괄적 상황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간략하게 정리해 보았습니다. 

1. 원마산(마산포)

개항기 원마산은 마산창에서 남쪽해안일대에 강력한 상권이 형성되어 있었으며, 이를 중심으로 상당히 넓은 지역까지 토지가 상업용으로 이용되고 있었습니다. 일부 도로 안쪽의 대지와 동성동의 동쪽 일대만 주거용으로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개항 이후 마산에 이주한 일본인들이 원마산으로 진출한 후 마산창 주변과 수성동 일대에 상가가 들어서면서 남성동일대의 상업기능의 밀도가 더욱 높아졌습니다.

그러다가 1910년대 중반에 완료된 매립으로 인해 중심상권이 매립지로 이동하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시기에 개설된 마산창 주변의 도로가 매립지와 연결되는 도로망을 가지게 됨으로써 이 일대의 주심권이 더욱 부각되는 계기가 되어 서서히 상권이 매립지로 확산된 것으로 보입니다. 

1931년 간행된『경상남도 통계연보』의 토지등급구분에 의하면 마산의 대지 중 中等地 중급으로 남성동187번지를 게시하고 있는데 이 위치가 매립지 내의 속칭 돼지골목에 접한 대지였다. 가격이 백 평에 1,000엔이었는데 이는 당시 마산에서 가장 고가였던 남성동141번지의 1,250원에 비해 80%로서 매우 높은 가격이기 때문에 이렇게 추정한 것이다. 신마산 두월동에서 가장 비싼 대지가 700엔이었다.

1920년대에 이르러서는 구마산 역과 북마산 역 주변에 역세권이 형성되어 도로망이 확산되었으며 이로 인해 상업용 토지가 북쪽으로 넓어졌고 1930년대 이후에도 역세권 현상은 계속되었습니다.

그런가하면 이 시기에 원마산의 해안이 대규모로 매립되어 공장․제빙업․창고 등 공업시설 등의 용도로 토지가 이용되기 시작했습니다. 

2. 신마산

신마산은 개항이후부터 조계지는 물론 조계지 북쪽인 마산 역까지 시가지가 형성되었습니다. 이중 상업기능의 지역은 두월동 1-3가와 월남동 1-3가, 그리고 홍문동과 대외동 일대, 그리고 중앙동 1가와 그 북쪽인 마산역까지 상업지역이 간선도로를 중심으로 선상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특히 개항 직후인 1905년경에는 홍문동과 대외동 일대가 아주 번화하여 마산의 긴자(銀座)라고 불릴 정도였습니다. 이에 반해 공업기능의 지역은 시가지 전역에 고루 흩어져 있었습니다. 

『경상남도 통계보고』와 관련문헌에서 발췌한 자료에 의하면 합방 이전에 세운 마산의 일본인 공장은 장군동․상남동․남성동에 각각 두 곳이 있었으며 그 외에 청계동․홍문동․신창동․추산동․월포동․서성동에 각각 한 곳이 있었다.

그런데 1920년대 들어 상황은 두 가지 면에서 크게 바뀝니다.

첫째는 목가전평삼랑(目加田平三郞)의 매립으로 철도회사․기선회사․조선소 등의 공업기능의 지역이 모이기 시작했으며, 둘째는 중앙마산지역의 건설이 시작되어 선상의 상업기능 지역이 북 방향으로 서서히 확장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1930년대 이후에는 매립이 대대적으로 진행되고 중앙마산이 형성되었습니다. 부두를 포함한 공업지역은 전 해안에 걸쳐 띠를 이루면서 형성되었고 상업기능의 지역은 중앙중심가로를 따라 길게 확산되었습니다.

이 시기에는 서쪽 산사면(山斜面)도 주거지로 변했습니다.

토지가격을 통해서 파악한 신마산 토지의 상업적 가치는 두월동과 월남동의 순이며 중앙마산지역인 중앙동도 월남동 수준과 비슷했습니다.

1945년 해방 당시 마산 도시의 토지이용 구조를 보면, 해안의 매립지에는 해수면을 접한 대부분의 토지가 공업용지로 사용되고 있었으며 상업용지로는 원마산이 남성동을 중심으로 한 주변 일대와 구마산 및 북마산 역 주변 그리고 신마산은 두월동 3가를 중심으로 도시의 장축(長軸)인 중앙중심가로를 따라 노변상권이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두월동이 신마산에서 가장 지가가 높다는 사실은 여러 자료에서 알 수 있습니다. 신마산의 핵심 상권이 두월동 가로를 중심으로 이루어져있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주는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두월동의 토지 최고가가 원마산 남성동의 27.5%밖에 안 되었다는 사실은 당시 원마산과 신마산의 도시기능의 밀도, 즉 상권의 형성 정도를 충분히 알게 해줍니다.

결과적으로 본다면 원마산의 남성동 일대는 개항 이후부터 강점 말기까지 가장 강력한 마산의 주심부였다는 사실이며 그 기능은 최근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이런 각 시기별 토지이용상태의 변화를 간략히 그림으로 나타내 보았습니다.

첫 그림은 범례이며, 두 번째 그림부터 1899년, 1910년, 1920년, 1930년, 1945년 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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