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2014.05.19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214)

<근대기 마산도시변화 총정리>

개항부터 해방 때까지 47년 동안 진행된 마산의 도시변화과정 속에는 일제의 식민지 정책이 철저히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일제가 자본 축적을 위해 마산을 투자의 대상으로 삼아 도시를 물리적으로 확대하거나 변형시켜 나갔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이 과정에서 원래 조계지로 설정되었던 신마산 지역은 식민 지배 이후 부분적으로 일본인들에 의해 근대적 도시로서의 면모를 보이기도 했습니다만 한국인들이 살고 있었던 원마산 지역의 사정은 전혀 달랐습니다.

도시정책을 좌우했던 일본인들에게 있어서, 도시는 단지 투자의 대상이었기 때문에「근대도시로의 변화」와「전통 공간의 보존」이라는 도시의 기본적인 발전방향은 철저히 무시되었던 것입니다.

도시변화과정의 바탕이 이러했기 때문에 근대기 마산 도시는 경제적 잉여를 창출하기 위한 양적 팽창에 치우쳤을 뿐, 도시 공간을 질적으로 향상시키기 위한 노력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조계지 일대를 기반으로 한 신마산이 지형 상 시역화(市域化)되기에 적절한 자연평지 중 최남단에 자리를 잡았던 것도 마산의 도시구조를 결정하는 규정적 요소로 작용하였습니다.

이 지역의 공간적 한계는 북쪽에 위치한 원마산 방향만 제외하고 나머지 세 방향이 바다와 산으로 둘러싸인 자연평지의 최말단부라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도시의 공간적 입지조건이 시역(市域)이 확장되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폐해를 가져오게 하였습니다.

즉 원마산의 북쪽에 가용지로 활용할 수 있었던 광활한 평지가 존재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전 해안을 매립하여 천혜의 자연해안을 모조리 없애버리고 서쪽의 산사면(山斜面)을 개발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런 결과는 산과 바다 사이에 놓인 동서방향의 단축(短軸)이 경사면이라는 지형적 한계를 극복하지 못함으로써 발생한 것입니다.

이러한 조건 때문에 도시 각 공간의 유기적 연결은 어려워졌고, 결국 도시 내 각 지역이 균등하게 발전하지 못하는 이유가 되기도 했습니다.

금까지 제가 올렸던 근대기 마산도시변화에 대한 글들은 문헌과 지도 등 서지(書誌)를 이용한 역사학적 관점에서 쓴 글입니다.

글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는 충분한 자료 수집과 이에 따른 분석이 선행되어야 했습니다. 이를 위해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만족스럽지는 않습니다.

특히 정부기록보존소 자료, 사정(査定) 당시의 토지관련 자료, 행정관련 기록들을 완전하게 검토하지 못한 아쉬움이 큽니다.

또한 개항이라는 특수한 경험을 가진 도시로서의 도시사적 의미 고찰과, 유사한 변화과정을 거친 타 도시와의 비교연구를 시도하지도 못했습다. 그리고 도시변화의 사실 확인이라는 관점에 치중함으로써 도시공간에 대한 분석을 심도 있게 진행하지 못하였습니다.

조금이라도 스스로를 위안해 본다면, 본 글에서 이용한 자료가 기존의 마산사 연구에 자주 인용되었던 관찬자료의 수준은 약간 넘어선 것들이었으며, 이 덕택에 기왕의 통설도 일부 극복할 수 있었던 점입니다.

또한 선행 연구가 없는 상태에서 시도되었다는 점과 도시연구에서 선행되어야할 물리적 형태변화의 연구라는 점에서 「근대기 마산 도시의 기초 자료」 정도의 가치는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한편, 이 글의 대상이었던 시기와 현재와의 사이에는 약 70여년의 시간이 존재하고 있으며 이 시간 동안 마산의 도시구조는 전쟁과 공업화 등을 거치면서 많은 변화를 겪었기 때문에 당시의 도시구조와 현재의 도시구조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점에서 예단할 수 있는 것은 당시에 만들어진 마산의 도시구조가 현 도시 내부에 잔존하고 있으면서 지금과 같은 도시구조로 변하기까지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입니다. <끝>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연재는 만4년 전인 지난 2010년 4월 8일 시작해 한 주도 쉬지 않고 올렸습니다.

연재를 시작하면서 써나갈 글의 순서를 아래와 같이 3단계로 구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1차 게재>

고려시대 이전

조선시대

개항(1899년)

<2차 게재>

개항부터 경술국치(1910년)까지

일제강점 제1시기(1911년부터 1920년까지)

일제강점 제2시기(1921년부터 1930년까지)

일제강점 제3시기(1931년부터 1945년까지) 

<3차 게재>

산업화 이전시기(1945년부터 1960년까지)

도약 및 전성기(1961년부터 1990년까지)

정체 및 쇠락기(1991년부터 2010년까지)

 

오늘 214회까지 <1, 2차 게재>는 모두 마쳤습니다. 부족한 것이 많았고 놓친 부분도 많았을 것입니다. 차후에라도 좋은 자료가 있으면 보완하겠습니다.

이제부터는 <3차 게재>를 할 계획입니다. 하지만 어려움이 좀 있습니다. <1,2차 게재> 부분은 내용 정리가 되어 있었지만 <3차 게재>는 그렇지 못합니다.

정리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3차 게재>를 준비하는 동안, <마산·창원 지역사연구회>에서 펴낸 책 「마산·창원 역사읽기」를 매주 월요일에 올리겠습니다. 필자가 다양하고 내용도 좋아 제가 지금까지 올린 연재보다 훨씬 유익한 글들입니다.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945년 이후의 글은 준비 되는대로 올리겠습니다.

해방 당시의 자료 한 개 소개드립니다.

해방 직후인 1946년에 촬영한 마산의 항공사진입니다. 우측 상단의 하얀 여백이 현 용마고 운동장입니다.<<<

 

 

 

 

Trackback 0 Comment 0
기억을 찾아가다 - 14

14. 정전 후의 체험들 Ⅴ - 마부 버스, 화물차 군용차 아닌 것들을 그때 우리들은 ‘개인차’라 불렀는데, 개인 승용차는 당시로선 하루에 한두 대 보기도 어려웠고, 거의 모두가 화물차와 버스였다. 거의 모두 일제가 두고 간 ..

건축의 외형 - ‘새둥지’ (Bird's Nest)

동굴에서의 삶을 시작으로 인간의 주거는 자연을 모방하는 단계를 거쳐 현재는 완전히 인공적인 삶의 공간을 만들어 내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자연적 형태들은 완전한 인공물인 건축의 형태에 영향을 주고 있으며, 의도되었든 ..

기억을 찾아가다 - 13

13. 정전 후의 체험들 Ⅳ - ‘이용범 다리’ ‘용베미 다리’란 말을 언제 쯤 부터 들었는지를 정확하게 기억할 수는 없지만, 이용범(아래 사진 / 1905~1968)이란 인물의 이름이 널리 퍼진 계기로 미루어보면, 1954년..

건축의 외형 - ‘원통’ (cylinder)

일상에서 마주할 수 있는 수많은 도형들 중에, 언제나 주변에 있어서 오히려 존재감이 낮은 경우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일상에서의 '원통' 이 그런 것 중 하나일 것입니다. 우리는 수많은 원통형 물체와 함께 살아가고 있으며, ..

기억을 찾아가다 - 12

12. 정전 후의 체험들 Ⅲ - 귀환, 상이군인들 정전 얼마 후에 전장에 갔던 아저씨들이 속속 돌아왔다. 함께 끌려가서(그땐 그렇게들 표현했다) 내내 한 부대에 있다가 함께 돌아온 우용 아저씨와 내 당숙은 상이용사가 되어 돌아..

건축의 외형 - ‘타공판’ (perforated board)

사람이 건축의 외형을 인지하고 기억할 때에 여러 가지 요소들을 보고 듣고 느끼게 됩니다. 개개인의 차이는 있겠으나, 일반적으로 특정 건물은 가장 부각되는 특정 요소로 기억하게 되는 듯 합니다. 규모나 재질, 기하학적 형태, 조..

2018년 새해인사

새해 인사드립니다. 꿈 꾸는 것과 희망하는 것들이 모두 이루어지는 해가 되기 바랍니다.

건축의 외형 - ‘액자’ (frame)

미술의 역사 만큼이나 액자의 역사는 오래 되었을 것입니다. 회화의 전시, 보존 등을 위한 보조적인 위치에서 출발한 액자는 사진의 등장과 기술의 발달 등으로 현재는 picture frame 만이 아니라 photo frame, d..

기억을 찾아가다 - 11

11. 정전 후의 체험들 Ⅱ - 수학여행 전쟁이 막바지로 갈 때쯤 해선 민간자동차도 많이 다니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주로 화물차가 많이 보였는데, 마산 부산 간에만 다니던 버스 숫자도 상당히 불어난 걸 느낄 수 있었다. ..

건축의 외형 - ‘계단’ (Staircase)

오늘은 이전 포스팅들 보다는 조금 더 인공적인 형태라 할 수 있는, '계단' 이라는 주제를 가져와 보았습니다. 계단의 역사는 생각보다 오래 되어, 이미 BC3000년 경 메소포타미아의 지구라트 에서부터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

기억을 찾아가다 - 10

10. 정권 후의 체험들 Ⅰ- 깡통문화, 총탄 정전 반대를 외치는 집회와 행진이 전국적으로 있었고 마산에서도 무학초등학교 운동장에서 궐기대회가 열렸었다는 이야기를 어른들이나 형들로부터 엿들었던 기억은 있으나 거기에 관심을 기울..

건축의 외형 - ‘초승달’ (crescent)

달은 태양과 마찬가지로 여러 문화권에서 신화나 종교와 연결지어서 생각되었습니다. 초승달은 달이 뜨지 않는 삭 다음에 나타나기 때문에 서양권 에서는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 하여 new moon 이라고도 불리죠. 오늘은 이슬람의 ..

기억을 찾아가다 - 9

9. 한국전쟁기의 학교생활 Ⅲ - 용의검사, 학력경쟁 가교사생활 직후부터 실시된 용의검사는 생활환경이 좋은 도회지 넉넉한 집 아이들에겐 별 부담이 안 되었겠지만, 누추한 환경에서 생활하거나 항상 흙을 묻히고 살아야하는 농촌 아..

건축의 외형 - ‘삼각형’ (Triangle)

피라미드와 삼각형, 그게 그것 아닌가 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만, 입체도형과 평면도형 이라는 근본의 차이때문에 여러 분야에서 접근 또는 적용 방식 또한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피라미드와 삼각형 은 겹치는 부분도 있지만 확..

기억을 찾아가다 - 8

8. 한국전쟁기의 학교수업 Ⅱ - 떠돌이 수업 초등학교 5학년 때였던 1952년의 학교생활엔 참 변화가 많았다. 담임선생님도 세 번이나 바뀌었고 교실도 다섯 번이나 옮겨 다녔다. 그리고 전입생도 그 해에 갑자기 불어났다. 처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