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2015.11.19 08:35

영화 '암살'의 배태지 밀양

 

나 밀양사람 김원봉이요

천삼백만 국민을 사로잡은 영화 암살에서 약산 김원봉(조승우 분)이 처음 만난 백범 김구에게 던진 말이다.

밀양사람 약산 김원봉,,, 가을비가 축축이 내리던 어느 날 우리는 선생과 선생 동지들의 숨결을 느껴보기 위해 밀양을 찾았다.

밀양독립운동사연구소 최필숙 선생의 안내로 밀양독립운동기념관을 비롯해 영남루에 있는 친일매국자 박춘금의 행적, 밀양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하고 형장에서 절명한 스무네 살 청춘 최수봉 의사, 조국독립을 위해 서른한 살 젊은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렸던 초산 김상윤 선생의 유적들을 찾았다.

가는 곳곳마다 밀양의 선열들은 우리를 고개 숙이게 했고 밀려오는 경외심만큼 부끄러움도 컸다.

 

 

밀양여행의 절정은 약산의 생가 터가 있는 한 작은 동네였다.

항일비밀결사였던 조선의열단 창단을 비롯해 조국독립을 위해 생을 바친 선열들이 소년시절을 함께 보낸 곳, 밀양시 내이동 901번지 일대의 넓지 않은 공간이었다.

전홍표, 황상규, 김원봉, 윤세주,,, 이름의 무게만으로도 가슴이 벅찬 민족독립운동의 표상들이 이 작은 동네에서 함께 자랐다는 사실이 선뜻 믿기지 않았다.

한 동네에서 11명의 독립공훈유공자가 탄생하다니? 과문한 탓이겠지만 어떤 역사에서도 이런 기적을 듣지 못했다.

자신들을 지켜주지도 못한 조국을 위해 생을 바친 선열들의 소년시절이 궁금했다. 오목조목 앉았을 크고 작은 집들과 어린 선열들이 뛰어다녔던 좁은 길들이 궁금했다. 질문과 설명이 오갔고, 설명을 들을수록 우리의 동공은 커져만 갔다.

 

<석정 윤세주 선생이 대륙으로 떠나기 전날 이곳에서 세살 난 아들의 몸을 씻겨주었다>

 

밀양읍성의 해자였다는 마을 앞 좁은 하천에도 가을비가 떨어지고 있었다.

소년 김원봉이 동무들과 미역을 감고 놀았다는 곳. 석정 윤세주가 조국독립을 위해 대륙으로 떠나기 전날, 마지막으로 세 살 난 아들의 몸을 씻겨주었던 곳이다.

태항산 전투에서 전사한 밀양사람 석정의 유해는 중국 땅 열사능원에 안치되어있다.

어린 아들과 젊은 아내를 남겨두고 떠났던 서른한 살 선생의 비장함을 생각하니 목구멍 저 밑에서 무언가가 울컥 치밀었다. 눈시울을 붉히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이 찬란한 역사의 현장은 이야기에 머물 뿐 아직 초라했고, 약산 생가 터에 들어선 작은 상가건물에는 임차인을 찾는 현수막이 빗속에서 펄럭이고 있었다

 

역사 배인 장소는 도시의 보석

 

도시의 가치가 변하고 있다. 깨끗하고 높은 새 건물에 만족하던 시대에서 낡고 보잘 것 없더라도 뭔가를 기억해서 회상하게 해주는 건물이 각광 받는 시대로 변했다. 도시와 건축의 가치가 양적인 것에서 질적인 것으로 달라졌다는 의미다.

이 가치는 역사의 무게가 전하는 이야기의 힘(storytelling) 때문이다. 또한 그것은 지난 시간이 남긴 기억을 문화자산으로 승화시킨 인간만의 진보이기도 하다. 아우슈비츠와 서대문형무소 같은 역사의 현장이나 문경새재처럼 한 시대의 표상적인 장소를 기념한 것이 그 사례다.

이런 노력으로 되살아난 장소는 도시재생의 중요한 수단이 되기도 하고 관광자원이 되기도 하며 지역의 문화중심공간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내이동 이 작은 동네는 역사도시 밀양에게 보석과도 같은 곳이다.

문화자원보존지구로 지정해 재탄생시키도록 밀양 시에 권한다.

아직 큰 건물이 들어서지 않아 경제적 부담도 적은 편이다. 식민시대 선열들의 삶과 기개를 보여주기에 이만한 장소는 없다. 수준 높은 역사학습장으로서도, 밀양의 도시재생과 문화관광지로서도 충분한 공간이다. 과거의 이야기가 현재화될 때 가치가 크기마련인데 영화의 소재와 연관된다는 점에서 조건도 좋다.(최근 영화배우 송강호가 촬영 중이라고 밝힌 영화 '밀정'도 이곳 출신 독립운동가들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건물과 장소는 시간과 삶의 변화에 따라 바뀐다. 과거의 것은 대부분 사라져서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과거에 있었던 그 시간과 이야기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눈에 보이지만 않을 뿐 지나간 시간 속에 사라진 공간 속에 감추어져 있다.

장소가 알고 있는 그 시간과 이야기는 인간의 탐구심과 감성으로 살려낼 수 있다.

사라진 것들을 어떤 모습으로 다시 살려낼 것인가? 그것은 현재의 몫이다.<<<

 

 

 

 

 

 

 

 

Trackback 0 Comment 0
공간과 건축의 궤적 - 창원 성산구 대원동 '꿈에그린' 재건축 터의 역사 - 3

1. 시작하는 글 2. 주거의 변화(대원2구역에 아파트가 들어서기까지) - 2 창원 신도시에 주거용 건물이 본격적으로 건설된 시기는 1980년대였다. 대부분 단독주택으로 민간사업자들이 주도한 조적조 2층의 철근콘크리트 구조였으..

공간과 건축의 궤적 - 창원 성산구 대원동 '꿈에그린' 재건축 터의 역사 - 2

1. 시작하는 글 2. 주거의 변화(대원2구역에 아파트가 들어서기까지) - 1 수혈주거로 시작된 인간의 거주양식이 드디어 아파트라는 형식에까지 도달했다. 생활에 필요한 내외조건의 변화에 따라 인간은 달라졌고 인간의 삶을 담았던..

공간과 건축의 궤적 - 창원 성산구 대원동  '꿈에그린'  재건축 터의 역사 - 1

<이번 포스팅은 창원 의창구 대원동에 재건축 중인 '꿈에그린' 아파트 부지(아래 그림의 붉은 밑줄친 부지)에 존재했던 현대사원아파트를 비롯한 여러 아파트들에 대한 내용이다. '마을흔적'을 남기기 위해 정리했던 글이다.> 목차..

얼음장수의 뜨거웠던 하루 : 3.15의거 한 참여자에 관한 미시사적 분석 - 8

Ⅳ. 맺음말 이 글에서 우리는 1960년 3월 15일 마산에서 일어난 1차 시위에 참가한 하상칠이라는 특정 개인의 경험에서 도출된 다음 두 가지 의문에 답하고자 노력했다. 하나는 시위 참가 동기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오..

얼음장수의 뜨거웠던 하루 : 3.15의거 한 참여자에 관한 미시사적 분석 - 7

1. 그는 왜 시위에 직접 참가했던가 2. 그는 왜 그토록 오랫동안 침묵했던 것일까 1) 보복 공포와 빨갱이 트라우마 2) 증언 결심 동기 하상칠은 그동안 증언을 하지 않았던 이유에 대해 “그날 밤 내 혼자만 싸웠던 것도 아니..

얼음장수의 뜨거웠던 하루 : 3.15의거 한 참여자에 관한 미시사적 분석 - 6

1. 그는 왜 시위에 직접 참가했던가 2. 그는 왜 그토록 오랫동안 침묵했던 것일까 하상칠의 증언에서 품게 되는 두 번째 의문은 그는 왜 그토록 오랫동안 시위 참가 사실을 비밀로 유지해왔는지 그리고 50년이나 지난 시점에서 증..

얼음장수의 뜨거웠던 하루 : 3.15의거 한 참여자에 관한 미시사적 분석 - 5

1. 그는 왜 시위에 직접 참가했던가 1) 사회적 요인 2) 개인적 요인 동일한 사회적 요인이 주어져 있다 해도 모든 시민이 동일한 반응을 하는 것은 아니다. 저항심이 강하든 정의감이 투철하든 또는 사회적 불만이 가득하든 모두..

얼음장수의 뜨거웠던 하루 : 3.15의거 한 참여자에 관한 미시사적 분석 - 4

Ⅲ. 얼음장수의 미스터리 3․15의거 역시 한국의 민주화 과정에서 일어났던 다른 대규모 시민항쟁과 마찬가지로 수많은 분석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기존 분석은 대부분 거시 사회사 분석으로서 항쟁 참가자들의 정의감이나 불만이 저..

얼음장수의 뜨거웠던 하루 : 3.15의거 한 참여자에 관한 미시사적 분석 - 3

Ⅱ. 얼음장수의 정체, 증언 및 평가 2. 녹취와 증언록 다음은 하상칠이 2010년 7월 21일 14시 3 15의거기념사업회 회의실에서 당시 백한기 회장 앞에서 2시간여에 걸쳐 진술한 증언 녹취록을 풀어 그해 말 동 사업회에서..

얼음장수의 뜨거웠던 하루 :  3.15의거 한 참여자에 관한 미시사적 분석 - 2

Ⅱ. 얼음장수의 정체, 증언 및 평가 1. 연구 대상자 프로필 (이 부분은 연구 대상자가 필자의 장인이어서 평소 필자가 그에게 들어서 알고 있는 사항과 그의 사망 후 필자가 이 글을 쓰기로 마음먹은 후 그의 가족, 일가, 지인..

얼음장수의 뜨거웠던 하루 : 3.15의거 한 참여자에 관한 미시사적 분석 - 1

이 글은 1960년 3․15의거 당일 야간 시위에 주도적으로 참가했던 한 개인의 증언을 바탕으로 그의 개인사를 하나의 창으로 삼아 역사적 사건을 재조명한 경남대학교 경제금융학과 서익진 교수의 논문이다. 연구는 사적 기록이나 증..

걸작 - 이집트 룩소르 구르나 마을 - 4

구르나 마을이야기 - 2 《극장》 극장은 아름다운 내부공간과 무대를 가지고 있었다. 햇빛을 가리기 위해 담쟁이가 덥혀있었다는 객석 회랑 목조 파고라 위의 담쟁이는 이미 찾아볼 수 없었지만 흙으로 빚어진 구조물은 모두 원형대로 ..

걸작 - 이집트 룩소르 구르나 마을 - 3

구르나 마을 이야기 - 1 일행이 나일강변에 자리한 경관 좋은 호텔에서 휴식을 취하던 오후. 안내자와 함께 조그만 배를 타고 나일강을 건너 구르나 마을로 향했다. 구르나 마을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은 현지 안내자 덕분이었다. 그..

걸작 - 이집트 룩소르 구르나 마을 - 2

위대한 건축가 하싼 화티(Hassan Fathy) - 2 하싼 화티가 구르나 마을을 건설할 1940년대 중반, 그 당시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고 있던 이집트는 서양식 건축이 판을 치고 전통적인 이집트 양식의 건물들은 사라져가고..

걸작 - 이집트 룩소르 구르나 마을 - 1

위대한 건축가 하싼 화티(Hassan Fathy) - 1 (이 글은 이집트 여행 중 우연히 만났던 하싼 화티의 구르나 마을 경험담이다. 오래 전 일이다. 지금 생각해도 그 우연은 내게 축복이었다. 울렁이는 감격으로 구르나를 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