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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06 00:00

김형윤의 <마산야화> - 95. 엄원도의 일본 의인

95. 엄원도(嚴原島)의 일본 의인(義人)

 

지금으로부터 40여 년 전에 동경 고학생 중 거의가 무등산치(武藤山治)라면 기억할 것이다.

그는 종연방적회사(鐘淵紡績會社) 경영주인데 사회에 불행한 인물만 있으면 반드시 몇 푼을 등기 우송해 주던 사람이다.

중야(中野)인가 황천약사(荒川藥師)인가 문인(이름은 밝히지 않음) 2, 3인이 백구사(白鷗舍)라는 곳에서 자취생활을 한 일이 있었는데, 여름 폭우가 지난 뒤에 백구사(白鷗舍)의 사람들은 한 묘안을 냈다.

즉 조선인 노동자의 합숙소인데 저번 수해로 노동할 길이 없어 앉아 굶어 죽는 것보다는 무슨 범죄라도 해야겠다는 요지의 편지를 띄웠다.

인심 잘 쓰는 무등(武藤)은 긴급히 관할 경찰서를 통해 우선 50원을 가지고 임시 구조를 하라고 했다.

현금을 전달하려고 고등계 형사를 현장에 급파해 보니 유학생임을 알고 아연실소한 일이 있었다.

그런데 이것은 동경이 아닌 대마도 엄원(嚴原, 이즈하라)에 거주하는 익명의 노인 이야기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마산에는 단 하나뿐인 일문지(日文紙) 남선일보(南鮮日報)가 있었다. 이 신문을 일본에 몇 장 우송을 했었다.

대마도인이 마산 개항 초에 이주했다가 돌아간 사람도 꽤 있었다. 여기 남선일보 애독자라고 볼 수 있는 한 사람으로부터 작고 크고를 가리지 않고 딱 한 사람의 불행한 기사가 나면 판에 박은 듯 일금 오원야(五圓也)를 정성껏 신문사를 통해 우송해 왔다.

이와 반대로 조선인들은 이웃사람의 불행은 아랑곳없이 자진해서 국방헌금이나 창씨개명한 것을 담당 기자들에게 술대접이나 돈으로 보도를 의뢰하는 웃지 못할 판국이었다.

마산에 어떠한 연고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는 사람이지만 신문통제령이 내린 1942년 남선일보가 폐간될 때까지 십수년 동안 꾸준히 비록 적은 자선이라고 할지라도 계속하여 왔던 것이다.

마산 시민들은 그를 엄원(嚴原)의 의인(義人)’이라 하였다.<<<

* 문장 연결이 어색한 부분이 많지만 원문을 그대로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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