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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01 00:00

김형윤의 <마산야화> - 104. 의례준칙과 헌수 폐지운동

104. 의례준칙과 헌수(獻酬) 폐지운동

 

 

1935(소화 10)에 관혼상재의 간소화와 비용 절양을 권장하기 위하여 조선총독부 내무국에서 의례준칙령을 공포한 일이 있다.

 

헌데 이 영()이 공포된 뒤에 부내 만정(萬町, 동성동 / 원본에는 중성동)에 있던 학산의원(鶴山醫院)의 이순필 원장이 영애의 결혼식을 의례준칙대로 거행할 터이니 부 당국에서 와 보라고 하여 그대로 실행해 본 외에는 아무도 실행한 사람이 없는 것으로 안다.

 

주석(酒席)에서 교배(交杯)하는 풍속은 아마 조선인과 일본인 뿐일 것이다.

 

친한 벗들과 권커니 잣거니 하여 거나하게 되면 논담풍발(論談風發)로 그날 그날의 삶의 시름을 잠시 털어버리는 것이 예부터 내려오는 우리네 교우상의 멋이었다.

 

그러나 주석에서 교배(交杯)의 도가 넘쳐 상대방의 주량은 아예 아랑곳없이 억지로 권하고 억지로 받아 마시다 보면 끝내는 곤드레가 되어 즐거워야 할 모처럼의 주석이 엉망이 되기 일쑤다.

 

뿐만 아니라 이튿날의 육체적 불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고 이 습성이 쌓이고 쌓이면 급기야 건강을 해치게 된다.

 

교배의 멋도 괄시할 수 없지만 도를 넘치는 폐해를 없애기 위해 소위 헌수폐지운동(술 안 권하기)’을 편 일이 있다.

 

신문담화, 포스터 등으로 계몽활동을 벌였으나 아예 우이독경이 되어 버리고 한 사람도 실행해 본바 없이 이 운동은 완전 실패하고 말았다.<<<

 

 

<위 의례준칙을 실행했다는 학산의원 이순필 원장의 부고 / 마산일보 1952. 2. 2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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