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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08 00:00

김형윤의 <마산야화> - 105. 국내 최초의 노동제

105. 국내 최초의 노동제

 

19231월 당시 동경서 유학한 몇몇 청년 김형두(明大 법과 재학 중, 변호사 시험 합격)를 필두로 손문기, 이주만 등이 연휴(連携)하여 신인회(新人會)를 조직하였다.

 

이것이 모체가 되어 그 해 여름에는 노농동우회(勞農同友會)’라는 것을 조직 발족하였다.

명칭은 노농으로 있으나 그 대상은 공장 노동자가 아니고 부두에서 일하는 하루살이 자유노동자들로서 그 숫자는 극히 적었다.

 

최초에는 오월절이란 이름 아래 프랑스를 위시하여 세계 남녀 노동자들은 하루의 행락을 마음껏 즐기는 극히 평화로운 날이었다.

 

호주 멜본 시에서는 시위 행렬을 하는 노동자들에게 시장은 정중하게 경의를 표하였지마는 그 반대로 미주 시카고에서는 헤이 마켓에 이르는 평화시위 군중과 경찰이 충돌함으로써 발포까지 하여 다수 노동자가 부상하고 또 검거되었다.

 

 

<헤이 마켓 사건을 묘사한 삽화>

 

 

재판 결과 시위자 중 평소 극렬분자로 지목되어 오던 무정부주의 노동자 5명을 사형에 처한 것이 발단이 되어 이듬해 188651일을 기하여 전 세계 노동자가 총궐기하는 메이데이로 발전, 오늘에 이르른 것이다.

 

일본에서는 1911년 인쇄공연합회 주최로 옥내서 기념식을 거행한 기록이 있으나 192051일은 제34회 세계 메이데이(일본은 제1회가 됨)로서 큰 행사가 있었으므로 한국도 여기에 영향을 입어 1923년 제37회 메이데이에는 마산 노농동우회 주최로 노농회 외 당시 초기 사회주의 운동자들과 합세하여 시가시위 행렬과 더불어 최초의 행사가 벌어졌는데,

 

이때 마침 추산공원에서는 마산 인근 군부(郡部)에서 모인 한문 선비들이 백일장을 열고 시회(詩會)가 한창 때였는데 이것을 주최한 자가 평소 때 친일파로 비난과 지탄을 받아 오던 매일신보 마산지국장 서상환이란 자라,

 

시위 군중들은 갑자기 흥분을 참지 못하고 백일장을 습격하자 서상환과 유학도들은 삽시에 불뿔이 흩어져 백일장은 완전한 백지로 돌아가고 말았다.

 

이것을 보고 마산부민들은 시위자들에게 열렬한 박수를 보내주었다.

 

여기에는 선동자도 선창자도 아무도 없었지만 한 마음으로 친일파를 증오하는 울분이 동시에 폭발한 자연발생적인 결과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행동파 명단을 기록해 보면 다음과 같다.

이정찬, 김명규, 김기호, 여병섭, 김형두, 손문기, 김계호

노농관계자 ; 오학선, 강덕보(이상 무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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