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2017.05.01 00:00

고지도로 보는 창원5. - 창원부 비변사지도

창원부 비변사지도(1745~60) (奎12154)/ 필사본(방안식)

 

- 지도개요 : (제작시기: 1745~60년 (영조 36), 비변사 보관 지도

이 지도책의 가장 큰 특징은 사각형의 方案 위에 지도를 그렸다는 점이다. 이러한 방안의 사용은 위치·거리·방향 등의 정보를 정확하게 그리려는 의도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이는 정확한 거리산정을 통해 이동시간을 정확하게 파악하려는 의도에서 제작되었다.

 

 읍성의 위치인 읍치를 중심으로 주요지점간 도로를 표시하였다. 도로의 경우 大路는 적색, 中路는 황색, 소로는 靑色을 사용하였다. 봉수의 호응관계는 주황색의 얇은 직선으로 표시하였다.

 

 邑治의 경우 분홍색 바탕에 적색 윤곽선의 직사각형으로, 面은 황색 바탕에 적색 윤곽선의 직사각형으로, 驛은 짙은 살구색 바탕에 청색 윤곽선의 직사각형으로 표시하였다.

 또한 지도를 보완하기 위해 사방 경계가지의 거리, 面의 이름과 위치, 향교·서원·사당의 이름과 위치 및 賜額 여부, 창고·역·사찰의 위치, 역에 배치된 말의 종류 및 수, 산천의 이름과 위치, 津 등을 기록하였다.

- 지도 해제

읍치를 중심으로 16개 면이 표기되어 있다. 북1,2,3면, 서1,2,3면, 동1,2,3면, 부1,2면, 하1,2면, 상1,2,3면으로 나뉘어져 있다.

 

주요건물 표기는 읍성 근처 향교, 남측 아래 향현사, 동측 방향으로 봉림사, 자여역 원해, 우곡사가 있으며 동남측 방향으로 불모산 아래 웅신사와 안민역의 원해가 있다.

북측방향으로 백월산 아래 남백암, 무릉산 아래 영천암, 서측 방향으로 두척산 봉산 아래 회원서원과 해창이, 밤밭고개(율치) 아래 월영대가, 광려산 아래 광산사가 그려져 있다.

 

주요 도로망은 16개 면이 연결되어 있으며, 함안 및 칠원과 영산 및 김해로 향하는 길은 대로, 안민고개 방향도 대로이며, 지금의 양곡동 방향으로 가는 고개길(사현)과 신마산에서 가포방향 길은 소로로 되어 있다.

 

주요 나루터로는 북측으로 낙동강 변에는 밀양계에 신촌진, 영산계에 주문연진이 있으며 남측 반룡산봉산 아래 손도진(봉암교 근처)이 웅천계에 면해 있다.

 

통신시설에 해당되는 봉수의 연결망은 웅천계 사현에서 두척산 아래 성황당 봉대로 연결되어 칠원계로 이어진다.

 

 지도에 포함된 내용을 자연지리와 인문지리로 구분하여 정리하면 다음 표와 같다.

 

구분

소분류

명 칭

행정

면.리

부1,2면, 상1,2,3면, 하1,2면, 동1,2,3면, 서1,2,3면, 북1,2,3면

16

자연지리

산천

광려산, 구룡산, 두척산봉산, 무릉산, 반룡산봉산, 백월산, 불모산, 簾山, 旃檀山, 천주산, 襜山, 청룡산,

12

낙동강, 저도,

2

고개

私峴,安民嶺阨, 栗峙

3

나루터

孫渡津, 主勿津, 新村津,

3

인문지리

읍성

읍치

1

교육

향교, 향현사, 회원서원

3

사찰

광산사, 남백암, 봉림사, 靈泉寺, 牛谷庵, 熊神寺,

6

역원 등

근주역, 안민역, 자여역, 院廨1,2,

성황당봉대, 여포봉대, 해창,

8

고적

구병영, 월영대,

2

 

   

창원부 비변사지도 地志

 

- 地志는 지도 여백에 적어놓은 군현의 인문지리에 관한 내용으로 정리하면 다음의 표와 같다.

 

구분

소분류

세부 내용

행정

군사

호구

- 호구수 : 7,486호

- 인구 : 27,739명 (남자 11,632명, 여자 16,107명)

 

군병

- 京各司諸色軍 : 1,213명

- 監營屬 ; 285명

- 統營續 : 1,627명

- 右兵營屬 : 837명

- 左水營屬 : 9명 반

- 金海鎭屬 : 1,088명

= 합계 5,059명

6

기타시설

- 船材封山 : 斗尺封山, 滿月封山, 社亦封山, 靑龍封山, 盤龍封山

  5

경제

量付

- 6,293結11負9束,

(전2,670결11부3속, 답3,622결60부6속)

 

實結

- 4,724속88부13속

(案田1,691결79부6속, 案沓3,034결9부7속)

 

곡물

- 元會 및 常賑米 : 38석 54석,

- 各樣雜穀 : 3,420석 (잡곡 : 1,101석, 2,319석)

- 別餉米 : 1,104석

- 監營米 : 44석, 잡곡 16,984석

- 統營米 : 1,551석, 잡곡 2,477석

- 私賑雜穀 : 3,309석

- 帖價雜穀 : 601석

- 備荒租 : 463석

- 浦項雜穀 : 1,791석

- 華山劃付雜穀 : 3,100석

- 戰兵舡價 : 65석

- 除留米 : 169석, 잡곡 1석8부

- 各樣軍作米 : 217석

- 射木作米 : 27석

- 作租 : 151석

15 

 

해동지도 지지와 비교했을 때 호구수에서 100호 많은 것을 제외하고, 나머지 항목은 명칭만 변동되었을 뿐 수량은 같다. 같은 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볼 수 있다.

 

Trackback 0 Comment 0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14 - 1980년대 이후

5) 1980년대 이후 - 4 아파트의 대중화는 주거설비의 획기적인 변화를 불러왔다. 아파트 사용자들은 첨단시설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가장 큰 변화는 주방시설에서 비롯되었다. 주부의 가사노동을 줄여줄 뿐 아니라 세련된 디자인과..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13 - 1980년대 이후

5) 1980년대 이후 - 3 2002년 말 우리나라 주택 보급률은 100%를 넘었다. 1인 가구를 포함하는 신주택보급률 역시 2008년에 100%를 상회(100.7%)함에 따라 주택의 양적 공급이 부족한 상태는 아니라고 볼 ..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12 - 1980년대 이후

5) 1980년대 이후 - 2 오늘날 우리나라 도시들을 뒤덮고 있는 아파트 홍수의 시작은 1988년에 시작한 ‘주택 2백만 호 건설’이다. 이 사업은 전년도에 있었던 대통령 선거에서 노태우 후보가 내놓은 공약이었다. 2백만 호..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11 - 1980년대 이후

5) 1980년대 이후 - 1 1960년대 이후 계속된 인구의 도시집중은 폭발적으로 늘어난 수요에 비해 택지가 턱 없이 부족한 상황을 낳았다. 이런 현실은 필연적으로 주거의 집단화와 고층화를 요구하였고 그 해답으로 등장한 것이..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 10 / 새마을운동의 농촌주택개량사업

4) 새마을운동의 농촌주택개량사업 - 2 농촌 주택개량사업은 새마을운동 시작 다음 해인 1972년부터 전개되었으며 담장이나 지붕 등의 부분적 보수와 개량으로 시작되었다. 이 과정에서 관리들은 초가지붕이 비위생적이고 아름답지 못..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 9 / 새마을운동의 농촌주택개량사업

4) 새마을운동의 농촌주택개량사업 - 1 1960년대 이전까지 우리나라의 농촌은 전쟁으로 입은 농토의 피해와 농촌인구의 감소 등으로 아직 근대화의 영향을 받지 못한 채 재래식 농경생활을 유지하고 있었다. 주거환경 또한 전쟁피해..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 8 / 해방 후부터 제4공화국(1970년대)까지

3) 해방 후부터 제4공화국(1970년대)까지 - 3 1960년대와 1970년대의 주택 시장은 사회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맞물려 개발과 성장의 논리가 지배하던 시기였다. 이 시기에 지어진 단독주택은 대부분 도시 한옥과 양식이 가..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 7 / 해방 후부터 제4공화국(1970년대)까지

3) 해방 후부터 제4공화국(1970년대)까지 - 2 1960년대는 한국사회의 큰 전환기였다. 4·19혁명과 5·16쿠데타에 따른 정치적 격변을 겪었고, 소위 경제개발정책에 따른 제반 개발이 계획적으로 유도되기 시작한 시기였다..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 6 / 해방 후부터 제4공화국(1970년대)까지

3) 해방 후부터 제4공화국(1970년대)까지 - 1 1945년 일제의 압제에서 벗어나면서 비로소 주체적인 주거문화를 창달할 수 있는 계기를 맞게 되지만 경제 사회적 제반 여건이 불비하여 주체적인 역량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었..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 5 / 개항기부터 일제강점기

2) 개항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 2 일제하의 중·상류계층의 주택 유형으로는 양식주택과 절충식(개량식)주택·개량 한옥·문화주택·공동주택·영단주택 등을 들 수 있다. 양식주택은 서양식주택을 말하며, 절충식 주택은 과도기적 상황에..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 4 / 개항기부터 일제강점기

2) 개항기부터 일제시기까지 - 1 구한말(舊韓末)까지도 조선 사람들이 살았던 보편적인 주거 유형은 한옥이었다. 1882년 그리피스(W. E. Griffis)가 쓴 한국에 관한 역사서 『은자의 나라 한국』에는 당시 전통 한옥을..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 3 / 조선시대 이전

1) 고대에서 조선시대까지 - 3 조선시대는 우리나라 주거문화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시기이다. 반상(班常)을 철저히 구분한 신분사회였기 때문에 신분에 따라 주택의 크기나 형태를 규제하는 가사규제(家舍規制)가 있었다. 신..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 2 / 조선시대 이전

1) 고대에서 조선시대까지 - 2 주거사(住居史)에서 청동기시대와 초기철기시대를 구분하는 또 하나의 지표는 구들의 시작이다. 한국 주거문화의 정체성을 압축적으로 나타내는 구들은 난방기술의 획기적인 발전인 동시에 지상주거로의 변..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  1 / 조선시대 이전

오늘부터는 <경남지역 주거변천사>를 포스팅하겠습니다. 6~7년 전에 『경남도사』에 싣기 위해 간략히 쓴 글인데 출판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 블로그에 올립니다. 어차피 공유하기 위한 글이니 이해하리라 생각합니다. 한반도 동남부에 ..

기억을 찾아가다 - 25 (마지막 회)

25. 3·15의거에 대한 기억 「그날 나는 ‘극장 구경 시켜주겠다’는 주무돈이란 동네친구의 호의에 끌려 10리 가까이 되는 길을 걸어 ‘시민극장’으로 갔다. 그때 나는 대학입시에 낙방한 직후라 의기소침해 있던 상황이었다. 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