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2018.03.01 09:34

안상수 시장은 철거민의 눈물 닦아주시라

 

연휴가 끝난 다음 날, 나는 한 언론사의 취재에 동행해 재개발로 철거 중인 마산 회원동 일대를 다녔다. 내가 태어난 곳이고 서른까지 산 곳이었다. 지금도 매일 두 번씩 지나는 곳이기도 하다.

그날 나는 몰상식과 몰염치의 밑바닥을 보았다. 그것은 또한 우리 모두의 민얼굴이기도 했다. 내내 참담했고 암울했다. 그리고 부끄러웠다.

 

시개발로 버림받는 가난한 사람들의 한과 눈물은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은 성남시가 된 광주대단지 철거민의 실상(1971)이 가장 먼저 터진 사건이었다.

압권은 조세희의 연작소설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1976)’이었다. 영희의 다섯 가족 삶을 송두리째 무너뜨린 개발독재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소설이었다. ‘난쏘공이라 부르며 숨어서 읽었던 불온서적(?)이기도 했다.

9년 전에 일어난 용산철거민진압은 잔인한 사건이었다. 개발에 눈먼 권력의 폭력에 무고한 생명들이 죽고 다쳤다.

다시 세월이 흘렀고 국민소득도 높아졌다. 하지만 상황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고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난쏘공 영희의 다섯 가족은 아직 도처에 그대로 있다. 아니, 오히려 좀 더 교묘해진 수법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내치고 있다.

정부가 공공임대주택건설에 주거복지의 방점을 찍긴 했지만 가난한 이들이 체감하기에는 길이 너무 멀다.

 

거가 시작된 회원동 재개발구역은 아수라장이었다. 이미 떠난 사람들이 많았지만 아직 남아있는 이들도 많았다. 남은 이들은 조여 오는 철거장비의 굉음을 들으며 절망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보상금이 6~7천만 원으로 정해진 가구가 대부분이었고 심지어 3천만 원이 채 안 되는 집도 있었다.

재개발 후 들어 설 아파트의 분양가는 대략 3억쯤이다. 이들이 새 아파트에 입주하려면 2억 넘는 돈이 필요하다. 그 외에 다른 방법은 없다. 돈 없으면 재 입주할 수 없다는 것, 그것이 현실이고 법이다.

골목 한 쪽에서 말쑥한 차림의 청년과 한 아주머니가 마주서서 승강이를 하고 있었다. 보상금을 받아가지 않으면 강제철거 당합니다. 그게 법입니다. 더 이상 기다릴 수는 없습니다.” 하소연하는 여인을 향한 청년의 목소리가 당당했다.

방송사 카메라를 본 주민 몇 사람이 다가왔다. 칠십이 넘어 보이는 한 여성이 울먹이며 입을 열었다. 우리는 그 돈으로 어디로 가야됩니까? 갈 수 있는 곳이 어디 있기나 합니까?”  말이 좋아 이주지 사실상 법의 이름으로 가난한 이들을 쫓아내고 있었다.

법치국가, 민주국가, 국민소득 3만 불을 말하는 나라에서 오늘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쫓겨나는 이들이 투표해서 뽑은 공직자 누구 한사람도 이들의 아우성에 귀기우리지 않는다. 진즉 해결할 수도 있었던 일이지만 처음부터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들의 관심은 오직 개발 후 조감도뿐이었다.

 

<조감도>

 

을 파멸시키는 야만적인 재개발은 이제 끝내야 한다. 건설 패들이 벌이는 폭력적인 개발이 계속되어서는 안 된다. 도시는 우리 삶의 그릇이다. 돈만 탐하는 건설시장에 도시를 맡겨두어서는 안 된다. 공공이 나서야 한다.

안상수 시장께 바란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철거민의 눈물진 목소리를 듣고 문제해결에 나서시라. 그리고 두 번 다시 이런 야만적인 재개발이 없도록 하시라. 그것이 시민이 뽑은 시장의 진정한 소명이다.<<<

 

<이 글은 지난 2월 26일 경남도민일보에 게재되었던 글입니다>

 

 

 

 

 

 

 

 

Trackback 0 Comment 0
공간과 건축의 궤적 - 창원 성산구 대원동 '꿈에그린' 재건축 터의 역사 - 3

1. 시작하는 글 2. 주거의 변화(대원2구역에 아파트가 들어서기까지) - 2 창원 신도시에 주거용 건물이 본격적으로 건설된 시기는 1980년대였다. 대부분 단독주택으로 민간사업자들이 주도한 조적조 2층의 철근콘크리트 구조였으..

공간과 건축의 궤적 - 창원 성산구 대원동 '꿈에그린' 재건축 터의 역사 - 2

1. 시작하는 글 2. 주거의 변화(대원2구역에 아파트가 들어서기까지) - 1 수혈주거로 시작된 인간의 거주양식이 드디어 아파트라는 형식에까지 도달했다. 생활에 필요한 내외조건의 변화에 따라 인간은 달라졌고 인간의 삶을 담았던..

공간과 건축의 궤적 - 창원 성산구 대원동  '꿈에그린'  재건축 터의 역사 - 1

<이번 포스팅은 창원 의창구 대원동에 재건축 중인 '꿈에그린' 아파트 부지(아래 그림의 붉은 밑줄친 부지)에 존재했던 현대사원아파트를 비롯한 여러 아파트들에 대한 내용이다. '마을흔적'을 남기기 위해 정리했던 글이다.> 목차..

얼음장수의 뜨거웠던 하루 : 3.15의거 한 참여자에 관한 미시사적 분석 - 8

Ⅳ. 맺음말 이 글에서 우리는 1960년 3월 15일 마산에서 일어난 1차 시위에 참가한 하상칠이라는 특정 개인의 경험에서 도출된 다음 두 가지 의문에 답하고자 노력했다. 하나는 시위 참가 동기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오..

얼음장수의 뜨거웠던 하루 : 3.15의거 한 참여자에 관한 미시사적 분석 - 7

1. 그는 왜 시위에 직접 참가했던가 2. 그는 왜 그토록 오랫동안 침묵했던 것일까 1) 보복 공포와 빨갱이 트라우마 2) 증언 결심 동기 하상칠은 그동안 증언을 하지 않았던 이유에 대해 “그날 밤 내 혼자만 싸웠던 것도 아니..

얼음장수의 뜨거웠던 하루 : 3.15의거 한 참여자에 관한 미시사적 분석 - 6

1. 그는 왜 시위에 직접 참가했던가 2. 그는 왜 그토록 오랫동안 침묵했던 것일까 하상칠의 증언에서 품게 되는 두 번째 의문은 그는 왜 그토록 오랫동안 시위 참가 사실을 비밀로 유지해왔는지 그리고 50년이나 지난 시점에서 증..

얼음장수의 뜨거웠던 하루 : 3.15의거 한 참여자에 관한 미시사적 분석 - 5

1. 그는 왜 시위에 직접 참가했던가 1) 사회적 요인 2) 개인적 요인 동일한 사회적 요인이 주어져 있다 해도 모든 시민이 동일한 반응을 하는 것은 아니다. 저항심이 강하든 정의감이 투철하든 또는 사회적 불만이 가득하든 모두..

얼음장수의 뜨거웠던 하루 : 3.15의거 한 참여자에 관한 미시사적 분석 - 4

Ⅲ. 얼음장수의 미스터리 3․15의거 역시 한국의 민주화 과정에서 일어났던 다른 대규모 시민항쟁과 마찬가지로 수많은 분석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기존 분석은 대부분 거시 사회사 분석으로서 항쟁 참가자들의 정의감이나 불만이 저..

얼음장수의 뜨거웠던 하루 : 3.15의거 한 참여자에 관한 미시사적 분석 - 3

Ⅱ. 얼음장수의 정체, 증언 및 평가 2. 녹취와 증언록 다음은 하상칠이 2010년 7월 21일 14시 3 15의거기념사업회 회의실에서 당시 백한기 회장 앞에서 2시간여에 걸쳐 진술한 증언 녹취록을 풀어 그해 말 동 사업회에서..

얼음장수의 뜨거웠던 하루 :  3.15의거 한 참여자에 관한 미시사적 분석 - 2

Ⅱ. 얼음장수의 정체, 증언 및 평가 1. 연구 대상자 프로필 (이 부분은 연구 대상자가 필자의 장인이어서 평소 필자가 그에게 들어서 알고 있는 사항과 그의 사망 후 필자가 이 글을 쓰기로 마음먹은 후 그의 가족, 일가, 지인..

얼음장수의 뜨거웠던 하루 : 3.15의거 한 참여자에 관한 미시사적 분석 - 1

이 글은 1960년 3․15의거 당일 야간 시위에 주도적으로 참가했던 한 개인의 증언을 바탕으로 그의 개인사를 하나의 창으로 삼아 역사적 사건을 재조명한 경남대학교 경제금융학과 서익진 교수의 논문이다. 연구는 사적 기록이나 증..

걸작 - 이집트 룩소르 구르나 마을 - 4

구르나 마을이야기 - 2 《극장》 극장은 아름다운 내부공간과 무대를 가지고 있었다. 햇빛을 가리기 위해 담쟁이가 덥혀있었다는 객석 회랑 목조 파고라 위의 담쟁이는 이미 찾아볼 수 없었지만 흙으로 빚어진 구조물은 모두 원형대로 ..

걸작 - 이집트 룩소르 구르나 마을 - 3

구르나 마을 이야기 - 1 일행이 나일강변에 자리한 경관 좋은 호텔에서 휴식을 취하던 오후. 안내자와 함께 조그만 배를 타고 나일강을 건너 구르나 마을로 향했다. 구르나 마을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은 현지 안내자 덕분이었다. 그..

걸작 - 이집트 룩소르 구르나 마을 - 2

위대한 건축가 하싼 화티(Hassan Fathy) - 2 하싼 화티가 구르나 마을을 건설할 1940년대 중반, 그 당시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고 있던 이집트는 서양식 건축이 판을 치고 전통적인 이집트 양식의 건물들은 사라져가고..

걸작 - 이집트 룩소르 구르나 마을 - 1

위대한 건축가 하싼 화티(Hassan Fathy) - 1 (이 글은 이집트 여행 중 우연히 만났던 하싼 화티의 구르나 마을 경험담이다. 오래 전 일이다. 지금 생각해도 그 우연은 내게 축복이었다. 울렁이는 감격으로 구르나를 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