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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04 00:00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 8 / 해방 후부터 제4공화국(1970년대)까지

3) 해방 후부터 제4공화국(1970년대)까지 - 3

 

1960년대와 1970년대의 주택 시장은 사회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맞물려 개발과 성장의 논리가 지배하던 시기였다.

이 시기에 지어진 단독주택은 대부분 도시 한옥과 양식이 가미된 개량형 주택이었다. 취사 및 난방연료는 주로 연탄이었다. 연탄이 들어온 주방에는 공간이용 패턴에 다소 변화가 생겼지만 바닥높이 등 구조형식은 재래식 그대로였다.

주택 시장은 공공 또는 민간 주도의 아파트, 집장사가 지은 주택, 건축가가 설계한 일부 고급주택, 무허가 주택 등 춘추전국시대와 같은 다양한 양상으로 전개되었고, 이러한 상황의 저변에는 모두들 집만 지어 팔면 떼돈을 벌 수 있다는 심리가 깔려 있었다.

이런 문제들에 대한 정부의 대응책은 제4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1977-1981)에서 집합주택 건설의 양산체제를 확립해 주택가격을 안정시키고, 서민용 소규모 주택건설은 공공부문에서 맡기로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주택 보급률은 높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게다가 주택에 대한 투기 붐도 꺼지지 않았다.

집값이 폭등하면서 무주택 서민층의 내 집 마련이 어렵게 되자 1977년 정부는 주택 청약제도와 함께 분양가 상한제를 본격 시행했다. 하지만 이 제도가 오히려 고소득층에게는 아파트를 싸게 구입해 이윤을 붙여 되팔 수 있는 기회로 둔갑되어 투기가 더욱 기승을 부렸다.

분양가 상한제의 또 다른 부작용은 도시가 획일화된 아파트 숲으로 변한 것이었다. 분양가격이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건축가의 창의성은 무시되고 정해진 값으로 지어진 획일화된 아파트가 일반화되었던 것이다.

 

한편 정부는 분양가 규제 실시 1년 후인 1978, 공동주택을 시공 단계에서 분양할 수 있는 선분양제도를 도입하여 건설업자들의 확대재투자를 촉진시켰다.

도시에서 자기 집을 가지는 것이 꿈이었던 서민들은 조감도 밖에 없는 그림 속의 아파트를 사기 위해 청약통장에 몇 년 씩 돈을 부어야 했고, 그것도 모자라 아파트 분양 당첨을 위해 가족들이 교대해가며 밤새 줄을 서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기업의 재투자를 촉진하기 위한 선분양제도는 기업주의 과도한 이윤욕을 부추겨 유수한 주택건설업자들이 도산되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1974년 정부는 국가 중공업산업의 중흥을 계획하며 창원벌판에 기계공업단지와 신도시 계획을 발표하였다.

<계획 당시 창원 신도시 조감도>

 

창원의 도시계획규모는 인구 30만이었고 저밀도주거지역(단독주택), 중밀도주거지역(아파트+연립주택), 고밀도주거지역(아파트) 등을 고루 배치하고 있었다.

창원 신도시에 단독주택들이 본격적으로 건설된 시기는 1980년대였다. 대부분 민간사업자들이 주도한 조적조 2층의 철근콘크리트 구조였으며 한층 혹은 심지어 한층 반 씩 세를 놓을 수 있는 평면구조가 대부분이었다.

임대와 매매를 염두에 두고 지었기 때문에 공간구조나 외형에서 별 차별성이 보이지 않았다.

아파트 역시 초기에 공공주택으로 건설한 창원 반송동 주공아파트를 비롯하여 대기업이 참여해 지은 고층 아파트들은 평범한 판상형으로 건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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