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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20 00:00

걸작 - 중국 사천성 도강언(都江堰) - 3

위대한 목민관 이빙(李冰)

 

도강언 주변 일대는 성도나 인근 지역 사람들이 쉴 수 있는 아름다운 공원이기도 했다.

울창한 숲 속에서는 특유의 목소리를 내는 사천 매미가 왕왕거리며 울어댔고, 서북쪽의 산록에서는 시원한 고원 바람이 강을 따라 내려왔다.

또한 경내에는 이 수리시설에 공을 세운 이빙에서부터 삼국시대 이곳을 지키기 위해 언졸(堰卒)을 두었던 제갈량을 비롯하여 근대의 인물, 예컨대 청 말에 10여 년간 사천 총독으로 재직하였던 정보정(丁寶楨, 1820-1886)의 동상까지 죽 세워져 있었다.

뿐만 아니라 현대의 모택동, 등소평, 강택민 등도 자신의 자취를 남기고 있었다. 도강언은 단지 수리시설로서만이 아니라 고대부터 현대까지의 중국역사가 압축된 현장이었다.

한 공간 속에 자연과 역사와 과학이 공존한다는 점에서 도강언은 중화민족문화의 깊이는 물론, 인간과 자연이 조화롭게 공존해야 한다는 진리를 사실로서 증명해 주고 있었다.

이 수리시설은 22백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사천백성의 풍부한 농작물 생산을 가능케 해주고 있다.

실로 오늘에 이르기까지 도강언 때문에 얻은 사천성 민초들의 물질적 이익은 말로 헤아리기 어렵다. 이곳 사천성을 이른바 천부지국(天府之國)으로 만든 것이다.

이빙이 관운장과 더불어 신앙의 대상으로 까지 추앙받는 까닭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처럼 전대미문의 대 수리시설을 설계 시공한 이빙은 누구인가?

<1970년대에 출토된 이빙의 석상 / 큰 업적을 남긴 데 반해 정보가 많지 않은 이빙. 석상은 높이가 2.9미터이며, 양 소매 자락과 그 중간에 글자를 새겨 놓았다. 중간에는 故蜀郡李府君諱冰이라고 새겼다. 지금부터1800여 년 전에 만든 것이다>

 

그는 자신의 평생에 관한 어떤 자료도 남긴 바 없다. 단지 견고한 제방만 남겨두어 후세 사람들로 하여금 그의 삶을 추측케 할 뿐이다.

2천 수백 년이 지난 지금, 이 위대한 수리시설은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까지 지정되었지만 정작 이를 만든 이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별로 없다.

()이 촉()을 멸하여 이곳에 촉군(蜀郡)을 설치한지 60년 되던 해, 곧 기원전 256년 그가 촉군 태수로 임명되었으며 천문지리에 능하였고 실지 고찰을 중시하였다는 사실과 수맥에도 밝아 염정을 파서 촉군의 소금문제를 해결하였다는 정도가 알려져 있을 뿐이다.

<보병구를 지나 세차게 흐르는 내강 / 복룡관에서 찍은 사진으로 하류 쪽에 지붕이 있는 남교가 보인다. 보병구 부근의 수로 최소 폭은 약 17미터 정도이다. 경치가 좋은데다 시원하기까지 해서 지친 몸을 쉬는데 안성맞춤이었다>

 

도강언을 본 사람은 누구라도 이 위대한 시설 앞에서 한번쯤 물을 것이다. 도대체 이 사람은 누구인가? 그는 언제 태어났으며, 촉나라 사람인지, 진나라 사람인지, 그도 저도 아니면 저강(氐羌)족인지.

그에게 아들이 있어, 그 부자(父子) 2대가 40여년에 걸쳐 도강언을 완성하였다고도 한다. 또 이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사당 이왕묘(二王廟)도 도강언 경역 안에 당당하게 서 있다.

하지만 이규태 선생은 이빙을 신에게 외동딸을 바친 토로이 전쟁의 아가멤논과 구약성서의 에프타에 비교하였다.

이빙의 두 딸이 두 사나이로 둔갑하여 홍수를 몰고 오는 독룡을 퇴치한 후 상습수해의 황무지 수 천리를 옥토로 만들었다고 했다.

아들 이야기는 설화라는 뜻이다. 이 말을 뒷받침하듯 우리를 안내해준 이도 사실 그에게는 아들이 없었으며 아들을 만들어 준 것은 후대 사람들이라고 했다.

신뢰할만한 기록은 사마천의 『사기』 하거서와 동진 시대의 사천지방지 『화양국지』에 남아 있지만 일반적인 내용의 단문이다.

하지만 지금도 우리는 그를 만날 수 있다.

강심의 어취 앞에 서면, 2천여 년 전에 죽은 그가 여전히 살아 물의 흐름을 지휘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너는 이쪽으로, 자네는 저쪽으로”.

역사 속 누구도 이처럼 장수한 이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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