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2018.01.22 00:00

기억을 찾아가다 - 14

14. 정전 후의 체험들 - 마부 버스, 화물차

 

군용차 아닌 것들을 그때 우리들은 개인차라 불렀는데, 개인 승용차는 당시로선 하루에 한두 대 보기도 어려웠고, 거의 모두가 화물차와 버스였다.

거의 모두 일제가 두고 간 것이나 군에서 불하한 것들이었는데, 차종에 관계없이 크기가 좀 작고 연하게 생긴 것은 일제(일본제품), 크고 견고해 보이는 것은 미제(미국제품), 개조한 차들은 선제(조선제=국산)라 불렀다.

차에 호기심들이 많았던지라 지나가는 차들을 그렇게 분류하기를 즐겼고, 종종 분류를 다투기도 했다. 이 용어들은 한참동안 옷, 화장품, 학용품 등에서도 쓰였다.

60년대 서성동 버스 종합터미널이 생기기 전까지 회사 별로 여기저기 버스터미널이 있었다.

주로 오동동, 창동, 남성동에 있었는데, 회사가 마산에 있은 것은 별로 없었고, 부산 회사가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대한금속, 신한여객 등이 생각나는데, 후에 천일, 신흥 등이 나타난 것 같다.

버스 엔진은 군에서 수명이 다한 것을 재생시킨 것이라, 소리도 요란하고 정지 후 출발 때는 으레 시동이 잘 걸리지 않아 쇠창 같은 기구로 돌려서 발동을 일으키기 일쑤였다.

몸통과 내부 시설들도 철판 등을 붙인 듯 달릴 땐 삐그적거리고 너덜거렸다. 그래도 자갈 튀기며 달릴 땐 아주 빨랐다.

<미군용 폐차 재생 버스>

 

마산 오동동에서 부산 대신동까지 세 시간 반 남짓 걸렸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마부 국도의 거리가 지금보다 길었고, 시내 진입 전의 전 도로가 비포장이었으며 군데군데 패이거나 가장자리가 허물어진 곳도 있었는데다가, 장시간 정차하는 곳도 여러 곳이고, 아무데서나 손만 들면 태워주는 운행방식이라 그렇게 걸렸던 것 같다.

창원(동정동 사거리 위치), 진영(진영역 정문 근처), 김해(위치도 모르겠다), 구포다리 부산 쪽 입구, 범일동 등에서 10여 분씩 지체했었다.

그동안에 장사치들이 올라와 여러 가지 물품을 팔았는데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구포 배와 진영 단감이다. 장사 중엔 강매꾼들도 제법 있었는데, 대부분 상이군인들과 그 지역에 상주하는 건달들이었다.

버스들끼리 경쟁도 심했었다. 그래서 그런지 차체가 요란하게 흔들릴 정도로 달렸는데, 언젠가 부산 누나 집에 갈 땐 머리가 천정에 부딪쳤던 기억도 있다.

양덕 삼거리(수출자유지역 후문 앞 파출소 근처)에서 탔기 때문에 맨 뒷자리에 앉게 되어서 더 심했던 것 같다.

속도감도 지금 사람들과는 달라 빠르게 느꼈겠지만, 그런 덜컹거림 때문에 더 빨리 달리는 것처럼 느꼈을 것이다.

1950년대 중반 쯤 해서 야남면(상남면, 웅남면) 다니는 버스도 나오고, 마진(마산 진해) 버스도 나와 봉암 사람들도 더러 버스 승차감을 맛보게 되었다.

그러나 시장에 채소함지 이고 나가는 아낙네들이나, 많은 품팔이들은 승차 엄두도 못 내었다. 일마치고 돌아오는 말 구루마(말 수레), 소 구루마 운 좋게 만나 타면 호강으로 여겼다.

당시엔 트럭도 사람들 운송수단으로 많이 쓰였다. 관광버스가 생긴 시기는 60년대 중반쯤으로 기억되는데, 그 이전까지는 사람들 동원이나 야유회 등에는 트럭이 주로 사용되었다. 국가 행사나 시 행사 땐 시에서 트럭을 내주었고, 근처 유원지로 놀러갈 때도 트럭을 불렀다.

봄이나 가을엔 트럭들이 짐칸에 시멘트 부대 같은 걸 깔아놓고 요금 받고 태워주기도 했다.

전쟁 직후 아버님 친구 십여 명이 가족들 데리고 북면 온천장으로 놀러갈 때 고개를 삘삘거리며 겨우 넘었던 기억이나, 중학교 때 바로 위 형과 외사촌 형과 더불어 진해 벚꽃장 갈 때 양덕 삼거리에서 세워놓고 호객하는 화물차 타고 갔던 추억이 지금도 남아있다.

, 전후 얼마 후부터 소위 하이어(택시)라고 불리던, 8인승 정도의 차도 나왔는데 그것도 군용 지프를 불하 받아 개조한 것이라고 들었다.

그건 주로 여유 있는 사람들이 술집이나 유원지로 대절하여 다녔는데, 봉암 다리 근처에 번창했던 꼬시락 횟집 때문에 많이 보았다.

그 동네 대부분의 집들이 인근 바다에서 꼬시락을 잡거나 그걸 재료로 횟집들을 운영했었는데, 50년대 후반엔 이승만 당시 대통령이 진해 별장가는 길에 거기에 들렀다는 소문까지 퍼져 꽤 번창하기도 했었다.

그 작은 어촌 마을에 해상 캬바레까지 있었으니까.<<<

<봉암교와 인근 해상 꼬시락 횟집들>

 

박호철 / 창원미래연구소 이사장

 

 

 

 

 

 

'역사속 도시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억을 찾아가다 - 14  (0) 2018.01.22
기억을 찾아가다 - 13  (0) 2018.01.15
기억을 찾아가다 - 12  (0) 2018.01.08
기억을 찾아가다 - 11  (0) 2017.12.25
기억을 찾아가다 - 10  (0) 2017.12.18
기억을 찾아가다 - 9  (0) 2017.12.11
Trackback 0 Comment 0
2018.01.18 00:00

건축의 외형 - ‘새둥지’ (Bird's Nest)

 굴에서의 삶을 시작으로 인간의 주거는 자연을 모방하는 단계를 거쳐 현재는 완전히 인공적인 삶의 공간을 만들어 내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자연적 형태들은 완전한 인공물인 건축의 형태에 영향을 주고 있으며, 의도되었든 아니든 간에 완성된 형태가 자연과 닮아있는 경우들도 생겨났습니다

 오늘은새둥지’ (Bird’s Nest) 라는 주제를 가지고 보았습니다.



 - The Reading Nest (미국, 2013)


출처 - www.markreigelman.com


 

 건축에 조금은 가까운 설치미술가 혹은 예술가 라고 해야 할까요? 홈페이지의 소개란 에서부터 작업들 까지 유쾌한 (누군가는 너무 가볍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Mark Reigelman (http://www.markreigelman.com/)의 장소 특정적 설치(site-specific installation) 더 리딩 네스트 입니다.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브랜드 공공도서관 앞에 설치된 이 새둥지모양 설치미술은 클리브랜드 인근 산업현장과 제조현장에서 수집한 만개의 재생합판 으로 제작되었습니다.

 공식 홈페이지의 작품 소개 페이지를 링크합니다.

 - http://www.markreigelman.com/new-page/




 - The Bird’s nest (스웨덴, 2010)


출처 - www.dezeen.com


 말 그대로 새둥지 라고 할 수 밖에 없네요. 독특한 컨셉의 호텔인 스웨덴의 트리호텔(http://www.treehotel.se/en/) 여러 객실 중 하나인, The Bird’s nest 입니다.

 스웨덴 건축회사 Inrednings Gruppen 의 설계이며, 이 회사의 수장인 베르틸 하르스트럼(Bertil Harström) 의 인터뷰를 링크합니다.

 - http://www.ligastudios.com/interviews-blog/bertil-harstroem-architect-swedish-treehote



 베이징올림픽 경기장 (Beijing National Stadium, 중국, 2008)

출처 - en.wikipedia.org

출처 - http://jrrny.com/

출처 - http://www.bestourism.com/

 2000년 중반부터 건축계의 화두 중 하나였던 베이징올림픽 주 경기장 입니다.

 2002년 중국 정부가 이 경기장의 국제공모를 실시하였고, 프리츠커 상 수상 경력이 있는 건축회사 헤르초크 &  뫼롱 + 에이럽스포트 + 차이나 아키텍처 디자인 & 리서치 그룹 3사 연합이 당선되었습니다.

 Structure = façade = roof = space 라는 개념으로 설계된 이 경기장의 수용인원은 8만명 수준이며, 건설에는 4만5천톤 의 강철이 쓰였다고 합니다. 설계 원안에는 지붕 부분이 있었으나, 건설 비용의 문제로 실제 건설시에는 빠지게 되었습니다. 지붕을 제외하고도 3억5천만 위안 (대략 600억원) 의 건설비용이 투입되었다고 추정됩니다.

 2007년 영국 일간지 더타임즈 가 선정한  '세계 10 건축 프로젝트' 중에서도 최고의 프로젝트로 선정 되었습니다. (세계 10대 건축 프로젝트 : 베이징 올림픽 주경기장, 중국 중앙텔레비전 신청사, 중국 서우두국제공항 3터미널, 아랍에미레이트 버즈두바이, 이집트 박물관, 로마 국립예술박물관, 예루살렘 시몬 위젠탈 관용박물관, 뉴욕 세계무역센터, 런던 비숍스게이트타워, 런던 테이트모던미술관)

 헤르초크 & 뫼롱(herzog and de meuron)의 이름을 따서 herzog and de meuron bird's nest 라는 별칭으로도 불리고, 새둥지(중국어鳥巢 냐오차오[*], 병음: niǎo cháo) 비슷해서 냐오차오 라고도 불립니다. 2022년 동계올림픽의 개회식과 폐막식 장소로 사용될 예정입니다.

 내부의 야경을 볼 수 있는 페이지를 링크합니다.

 - https://www.archdaily.com/6059/inside-herzog-de-meuron-beijing-birds-nest

 조만간 2018 평창동계올림픽 이 시작됩니다. 훌륭한 세계인의 축제로 무사히 마무리 되기를 바랍니다.

<이태림>



Trackback 0 Comment 0
2018.01.15 00:00

기억을 찾아가다 - 13

13. 정전 후의 체험들 - ‘이용범 다리

 

용베미 다리란 말을 언제 쯤 부터 들었는지를 정확하게 기억할 수는 없지만, 이용범(아래 사진 / 1905~1968)이란 인물의 이름이 널리 퍼진 계기로 미루어보면, 1954년 총선 이후였다고 생각된다.

참고 ; 자유당 전성기 건설업계는 이용범의 대동공업, 황의성의 조흥토건, 김용산의 극동건설, 이재준의 대림산업, 정주영의 현대건설, 조정구의 삼부토건 다섯 회사가 지배했다.

 

고장이 나면 불편이 컸던 양덕교(현 마산자유무역지역 정문 앞의 다리, 지금은 복개되어 다리로 인식되지 않는다)를 두고 불평과 비난의 말들을 많이 했었는데, 그때에도 공사자나 회사의 이름을 들먹이는 것을 보거나 들었던 기억은 없다. 지금처럼 시공사의 이름을 써놓은 입간판 같은 건 그땐 구경한 일도 없다.

거기서 이백 미터도 채 안 되는 곳에도 길을 가로지르는 어린내(어린천, 현 삼호천, 마산종합운동장 옆을끼고 내려오는 하천)’가 있어 다리가 놓였으나, 그건 양덕교보다 훨씬 뒤였고, 규모도 적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내 합포초등학교 1학년 때 간 팔룡산 소풍 길에서 어린천 징검다리를 선생님 도움 받아가며 건너던 영상이 어렴풋이 남아있기도 하다.

후에 놓인 다리의 모습도 내의 양쪽을 간단하게 이어놓은 형태라 할까. 그래서 다리가 파손 되었을 때에도 차도 사람도 별 어려움 없이 길옆을 무너뜨려 만든 길로 냇바닥으로 다녔다.

큰 물 흐르는 날도 별로 없었던 것 같고, 그래서 위 아래쪽의 제방들이 큰 공사한 흔적 없이 야트막한 언덕처럼 되어있었다.

<70년대 어린교(위 사진 ; 70년대 초, 아래 사진 ; 70년대 말) / 사진 왼편에서 어린교로 뻗어나오는 도로는 현 마산고속버스터미널(75년 건립) 앞 도로>

 

그런 여건 때문에 어린교 이삼십 미터 아래쪽부터 바다 초입에 걸쳐(지금 삼각지 남단일대) ‘갈치막이 형성되었던 것 같다.

갈치막이란 당시 산호동 봉암동 일대 사람들이 만든 조어로서, 갈치 배를 갈라 내장과 아가미는 젓갈로 만들고, 갈라진 몸통은 말려 건어물로 상품화시키는 작업장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처음에는 몇 집이 모여 했으니 전후의 난민들이 많이 모여들어 오십 년대 후반에는 조그만 마을을 이룰 정도가 되어, 장마철에는 덜마른 생선에서 풍기는 퀴퀴한 냄새가 주위로 풍기곤 했었다.

<부산 감천마을에 있는 갈치건조장(갈치막)>

 

양덕교는 어린교 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큰 다리였다.

지금의 양덕 오거리까지 매축지라고 앞에서 얘기했거니와, 그러니까 거기서부터 만든 물길이 바다에 닿도록 돌로 쌓은 방죽이 있었는데, 동쪽 것은 청수들 둑으로 연결되고, 서쪽 것은 갈치막까지 나있었다.

그리고 다리는 지금과 같은 위치에 놓였다. 그래서 밀물 때는 바닷물과 냇물이 합수되는지라 바다에 가까워질수록 하천 폭을 넓혔기에 다리 길이가 긴 것은 이해되거니와, 높이가 왜 그렇게 높았던지는 지금 생각해도 이해하기 어렵다.

제방보다 사오 미터 높아 보였으니 지금 다리보다 이삼 미터 혹은 삼사 미터 높게 놓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래서 거기 고개도 당시엔 꽤 높게들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 다리에 파손이 생긴 일이 거의 한두 달에 한 번 정도는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다리 바닥에 구멍이 생겨 거기로 아래 냇물을 신기한 느낌으로 본 것도 여러 번이요, 여기저기 금간 자국 때문에 아예 다리 아래로 가교를 놓은 적도 몇 번이나 있었다.

그럴 때마다 사람들은 시공사를 욕했지만, 막연한 투덜거림일 뿐 회사명과 대표 이름 따위는 몰랐던 것 같았는데, 이용범이 창원에서 국회의원이 된 후부터 그에 대한 소문이 급격히 퍼졌던 것 같다.

대동공업사가 전쟁으로 떼돈을 벌었으며, 자유당의 제2인자 이기붕의 자금줄이라는 소문이 파다해지면서는 다리 고장 때 마다용벰이 다리가 그렇지 뭐’ ‘시멘트는 다 빼돌리고 밀가루로 발랐으니등의 비아냥이 사람마다의 입에서 예사로 나왔던 것으로 기억된다.

심지어오늘 인부들 시켜 다리 들고 있게 하고는 공사비 타내고, 내일 놓아버려도 또 공사비 다 타내니하는 등등의 우스갯말도 많이 오갔었다.

그런 야유의 절반 이상은 진실을 담고 있었음을 후에 알게 되었다. 자유당 몰락 후 몇 년에 걸쳐 나왔던 기록물들을 통하여 확인했던 것이다.

창원 동면 출신으로 일본에서 돈 벌어 와서 대동공업사를 세워 미국 막사 지어주고 잘 보여 전시 토건공사로 떼돈을 모아 집권 자유당 실권자 이기붕의 돈줄을 자임함으로써, 창원에서 돈 봉투와 고무신, 막걸리로 2선을 하고 자유당 경남도당 위원장까지 하다가 결국 혁혁한 코미디를 남겼다.

일자무식이었던 그는 이승만의 영구집권을 위한 삼선개헌 투표에서 의 구분을 못해 반대로 찍음으로써 2/3 득표를 못한 자유당이 사사오입이라는 불법을 저지르게 함으로써 한국 정치사에서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치부를 남겨 놓은 것이다.

양덕교나 어린교 공사를 대동공업사가 한 것인지 확인된 바는 없었겠지만, 저간의 이런 저질적 정치행위로 하여, 부실공사에는 의례 용벰이다리딱지가 따라 다녔으리라.<<<

박호철 / 창원미래연구소 이사장

 

 

 

 

 

'역사속 도시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억을 찾아가다 - 14  (0) 2018.01.22
기억을 찾아가다 - 13  (0) 2018.01.15
기억을 찾아가다 - 12  (0) 2018.01.08
기억을 찾아가다 - 11  (0) 2017.12.25
기억을 찾아가다 - 10  (0) 2017.12.18
기억을 찾아가다 - 9  (0) 2017.12.11
Trackback 0 Comment 0
2018.01.11 00:00

건축의 외형 - ‘원통’ (cylinder)

 일상에서 마주할 수 있는 수많은 도형들 중에, 언제나 주변에 있어서 오히려 존재감이 낮은 경우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일상에서의 '원통' 이 그런 것 중 하나일 것입니다. 

 우리는 수많은 원통형 물체와 함께 살아가고 있으며, 조금만 생각을 해 보면 주변의 수많은 원통형태들을 쉽게 떠올릴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건축의 형태 라고 생각하면, 의외로 잘 떠오르지 않는 모양 중에 하나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아마도 모두가 아는 건축일 터인 피사의 사탑으로 오늘의 주제인 '원통' 을 시작해 봅니다.


 - 피사의 사탑 (Leaning Tower of Pisa, 이탈리아, 1173~)

출처 - pixabay.com


 유명하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유명한, 이탈리아 피사 시의 피사의 사탑 입니다. 

 약 58의 8층 종탑으로, 1173년 착공 이후 발생한 지반 토질 불균형 등으로 꾸준히 기울어짐이 발생하여, 매우 신중하게 건설하느라 완공에 199년의 시간이 걸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완공 이후에도 탑은 꾸준히 기울었고, 1990년 이탈리아 정부의 약 10년간의 보수공사를 통해 현재 5.5˚의 기울기가 유지되고 있습니다. 

 실제 계획은 현재의 완공작 보다 더 높게 쌓으려고 했으나, 더이상 올릴 수가 없어서 현재의 모습을 가지게 되었다고 하며, 고층 건물을 건설할 때 지반 작업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세상에 일깨워준 건설계의 반면교사 라 할수 있겠습니다 - 피사의 사탑을 쌓으면서 파내려간 지반은 고작 3m 수준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 삼성미술관 리움 (Leeum, 대한민국 서울, 2004)

출처 - leeum.samsungfoundation.org


 삼성그룹 설립자의 성 과 -um 을 합하여 이름이 지어진 리움 은 여러가지로 건축계의 화젯거리 였습니다. 3동으로 나뉘어진 건축 각 동의 설계를 맡게 된 건축가들의 명망 때문이었지요. 

 강남 교보타워 설계자로도 유명한 마리오 보타(Mario Botta) 의 museum 1(위 사진), museum 2 장 누벨(Jean Nouvel), museum 3 렘 쿨하스(Rem Koolhaas) 설계로, 이름만 검색해도 끝없이 기사와 정보가 나오는 세계적인 건축가들 입니다. 설계 이후로 시공 단계에까지 현장에서 직접 관여를 한 건축가는 마리오 보타 단 한 사람이었는데, 그 때문인지 각 건물간의 조화가 부족하다는 평도 있습니다.

 Museum 1을 디자인한 건축가 마리오 보타 는 인터뷰에서 자신의 설계가 한국의 도자기 형태의 영향을 받았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도자기박물관 을 염두에 두고 설계하였다는 museum 1의 내부는 아래와 같죠.

출처 - leeum.samsungfoundation.org

출처 - www.botta.ch


 건축가의 인터뷰가 포함된, 리움 공식 홈페이지의 museum 1 소개 페이지를 링크합니다.

 - http://leeum.samsungfoundation.org/html/introduction/structure01.asp




 - BMW Museum (독일, 2008)

출처 - archidialog.com


 아뜰리에 브뤼크너 (atelier brückner, http://www.atelier-brueckner.de/ko) 설계의, BMW 박물관 입니다. 

 사진 오른쪽에 보이는 museum bowl (칼 슈반처(Karl Schwanzer) 설계, 1973년) 을 포함한 리모델링 및 확장 프로젝트에서 BMW museum은 기존 전시공간규모의 4배 수준인 4,000 제곱미터의 공간을 추가적으로 얻게 되었습니다.

출처 - www.bimmerfest.com

출처 - www.luxuo.com

출처 - www.tamschick.com

 

 항공기 엔진으로 시작하여 모터사이클, 자동차에 걸친 광범위한 분야에서 활동중인 BMW의 역사를 실물로 체험할 수 있는 BMW museum 은 2008년 완공 후 2011년에 이르기까지 여러 분야에서 19개 상을 수상하며 바로 옆에 있는 BMW 벨트 (BMW welt) 와 함께 연 200만명 이상이 방문하는 뮌헨의 명소가 되었습니다.

 드로잉과 도면, 더 많은 사진들을 확인할 수 있는 아뜰리에 브뤼크너 홈페이지의 프로젝트 소개영상을 링크합니다

 - http://www.atelier-brueckner.com/en/projects/bmw-museum

<이태림>



Trackback 0 Comment 0
2018.01.08 00:00

기억을 찾아가다 - 12

12. 정전 후의 체험들 - 귀환, 상이군인들

 

정전 얼마 후에 전장에 갔던 아저씨들이 속속 돌아왔다.

함께 끌려가서(그땐 그렇게들 표현했다) 내내 한 부대에 있다가 함께 돌아온 우용 아저씨와 내 당숙은 상이용사가 되어 돌아왔고, 다른 두 분은 정전 한참 후 제대하고 돌아왔다.

그런데, 우용 아저씨는 볼에 큰 흉터를 가지고 왔는데, 내 당숙은 손끝 하나 다친데 없었다.

부대가 후퇴할 때 열차를 타고 남쪽으로 이동하다 열차탈선으로 부대원 전체가 부상 혹은 사망을 당하여 모두 상이용사로 제대되었는데, 집결지에 늦게 가 열차를 못 탄 당숙도 함께 상이제대 되었다는 이야기는 당시 동네사람들의 화제 거리가 되기도 했었다.

그런데, 한참동안 소식이 없어 죽은 줄만 알았던 남규 아저씨의 귀환은 우리들에게 상당한 인상을 남겨주었다.

정전 후 우리 집에도 두어 명 다녀갔던 것으로 기억된다. 허름한 복장에 단봇짐을 지고 나타난 청년들에게 음식을 주고 여비도 쥐어주는 걸 보았는데, 아버님 말씀으로 그들은 거제도에서 나온반공포로라고 했다.

그들에게 협조하라는 공문까지 시와 동에 왔더라고 했다.

 

<거제 포로수용소에 집결한 반공포로>

 

그걸 본 얼마 후에 그 청년들 보다 훨씬 남루한 누비옷차림의 남규 아저씨가 아리랑고개를 넘어왔고, 가족들의 울음과 동네사람들의 놀라움과 감탄을 받던 광경을 나도 본 기억이 난다.

북한수용소에 이 년 넘게 있다가포로교환으로 왔다고 했다.

다른 부대와의 교신이 끊긴 상태에서 막무가내로 계곡 따라 올라가라고 몰아치던 소대장, 결국 반 이상의 병사와 소대장도 전사하여 저항도 못하고 엎드려 있는데 총성이 그치고 누구에게 엉덩이를 거칠게 채여, 그 길로 수 일 동안 타고 걷고 하며 어딘지도 모르고 끌려간 이야기, 포로수용소에서 반공포로와 친공포로가 다투던 이야기, 친공포로들의 협박과 회유에 얼버무리곤 하다가 결국 심사관 앞에서고향가고 싶다는 한마디로써 풀려나게 되었다는 이야기 등등은 그때 우리들 사이에서도 꽤 오랫동안 인기화제 감이었다.

그런데, 그즈음 하여 여러 번 보았던 상이군인들의 횡포는 매우 충격적이어서 지금까지도 이해하기 어려운 장면으로 남아있다.

의족이나 의수를 한 상이용사들이 몇 명씩 몰려다니면서 민폐를 일삼았던 일이다.

 

상이군인들이 무리를 지어 다니면서 상가나 민가에 들어가 곡식이나 돈을 요구하다 여의치 않으면 시비를 붙고 행패를 부리는 일이었는데, 그런 광경을 등하교 길에서도 여러 번 목격했다.

쌀이나 보리쌀 반 되 혹은 돈 몇 푼이면 순순히 받아가는 경우도 있긴 했지만, 더 많은 경우 이걸 누구 코에 붙이느냐며 떼를 쓰기 일쑤였다. 심지어 구멍가게 과자 통을 비우는 일도 있고 주막집 막걸리 독을 비워 버리는 일도 있었다.

항의하는 주모의 저고리 소매를 쇠갈고리로 된 의수로 꽉 집어 질려버리게 했고, 저만치 서있는 남정네의 복장을 향해 창 던지듯 목발을 날리기도 했다.

자꾸 던지면 그것도 단련이 되나 보았다. 목발이 일직선을 그으며 날아가서 상대의 가슴이나 배, 옆구리 등을 정확하게 맞혀 그를 헉하고 엎드리게 하는 장면도 두어 번 목격했다.

이렇게 행패를 부리고는, “누구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됐는데” “너그들이 이렇게라도 살아있는 게 누구 덕인데”, 저주 섞인 목소리로 고함치기 일쑤였다. <전술한 졸저에서>

 

같은 상이용사였던 9촌 아저씨의 말이 기억난다.

집도 가족도 잃고 몸 때문에 취업도 못하는 저들이 저 짓 말고는 뭘 하고 살아 가겠냐

<전쟁 후의 상이군인>

 

이승만 정부는 자신들 배불리기에 바빠 그들을 방기하고 있었는데도 그들의 분노는 엉뚱하게도 애먼 양민들, 아니, 비슷한 희생자들을 향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역리는 형태를 달리하면서 그 후에도,, 아니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으니, 분단의 부작용이 언제까지 이 사회 역리의 원천으로 작용할 지, 종종 암담한 생각이 들기도 해왔다.<<<

박호철 / 창원미래연구소 이사장

 

 

 

 

 

'역사속 도시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억을 찾아가다 - 14  (0) 2018.01.22
기억을 찾아가다 - 13  (0) 2018.01.15
기억을 찾아가다 - 12  (0) 2018.01.08
기억을 찾아가다 - 11  (0) 2017.12.25
기억을 찾아가다 - 10  (0) 2017.12.18
기억을 찾아가다 - 9  (0) 2017.12.11
Trackback 0 Comment 0
2018.01.04 00:00

건축의 외형 - ‘타공판’ (perforated board)

 람이 건축의 외형을 인지하고 기억할 때에 여러 가지 요소들을 보고 듣고 느끼게 됩니다. 개개인의 차이는 있겠으나, 일반적으로 특정 건물은 가장 부각되는 특정 요소로 기억하게 되는 듯 합니다. 규모나 재질, 기하학적 형태, 조명이 사용된 방식 등 여러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오늘은 표면 내지 외피의 시각적 강렬함을 가지게 되는 '타공판' 이라는 주제를 가져와 보았습니다.



 - Quality Hotel Friends (스웨덴, 2013)

출처 - www.archdaily.com


 스웨덴 건축가 Karolina Keyzer 와 스웨덴 건축회사 Wingårdhs 의 협업으로 설계된, 객실 400개 규모의 호텔 입니다. 

 모든 창문을 3가지 크기의 원형 으로 디자인하여 멀리에서 보면 건물 왼쪽 위에서부터 마치 원형으로 물결이 치는 듯한 느낌의 입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각의 딱딱한 외형을 부드러운 느낌으로 만드려는 건축가의 의도가 담겼다고 합니다. 

 도면과 사진, 입면 이미지 등의 정보가 담긴 아키데일리 프로젝트 소개글을 링크합니다.

 - https://www.archdaily.com/550536/quality-hotel-friends-karolina-keyzer-wingardhs

여담으로 스웨덴 솔나 지역 호텔 중 숙박객 만족도가 굉장히 높은 편입니다 (호텔스닷컴 리뷰 기준).



 - 어반하이브 (Urban Hive, 대한민국 서울, 2008)

출처 - www.archdaily.com

출처 - www.archium.co.kr


 건축가 마리오 보타 설계의 강남 교보타워의 대각선에 위치하며, 결코 위축되지 않는 당당함과 독특함을 보여주는 어반하이브 입니다. 

 건축설계사무소 아르키움 대표 김인철 건축가 설계의 어반하이브 는 구조적으로 특별한 모습을 보입니다. 

 많은 건물들은 파사드 라 부르는 입면 이 구조체의 역할을 하지 않으며, 외부에서는 보이지 않는 기둥 보 등의 구조체를 가집니다. 인간의 골격이 피부에 가려 보이지 않는 것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 어반하이브 는 타공판 형태의 입면 자체가 구조체의 역할을 하고 있어 내부에 기둥이 전혀 없습니다. 마치 곤충의 외골격 같은 형태입니다. 

 어반하이브의 형태와 입지, 그리고 1층이 카페 라는 점에서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고 있습니다. 아르키움 홈페이지의 어반하이브 소개와 아키데일리 에 소개된 어반하이브 를 링크합니다.

 - http://www.archium.co.kr/2008-urbanhive.html

 - https://www.archdaily.com/498056/urban-hive-archium 



 - 콜룸바 미술관 (Kolumba Museum, 독일, 2007)

출처 - divisare.com


 위의 두 건축물에 비하여, '타공판' 이라는 주제와 조금 안맞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실 수 있겠습니다.  콜룸바 미술관을 소개 드리는 이유는 아래의 이미지로 대신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 www.arcstreet.com/


 제 2차 세계대전으로 독일 쾰른은 많은 곳이 폐허가 되어버렸고, 콜룸바 미술관이 지어지기 이전에 이 곳에 있었던 고딕 양식의 교회 또한 그러하였습니다. 

 이곳의 역사 속에 일어났던 모든 흔적과 시간을 새로운 건축에 그대로 담는 건축을 제안한 스위스 건축가 피터 줌토르 (Peter Zumthor)의 설계안이 1997년 현상설계에 당선 되었고, 현재와 같은 모습의 미술관이 지어지게 되었습니다. 

 폐허와 신축 건물을 동시에 살려내어 하나로 만들어야 하였기 때문에 시간과 비용 모두 어려운 작업이었으나, 건축의 가치를 믿는 건축주와 건축가의 노력 끝에 완성된 콜룸바 미술관은 여러 건축상을 수상하며 현재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좀 더 자세한 모습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소개글 2군데를 링크합니다.

 - https://www.archdaily.com/72192/kolumba-musuem-peter-zumthor

 - https://divisare.com/projects/349228-peter-zumthor-rasmus-hjortshoj-kolumba-museum


<이태림>

Trackback 0 Comment 0
2018.01.01 00:00

2018년 새해인사

새해 인사드립니다.

꿈 꾸는 것과 희망하는 것들이 모두 이루어지는 해가 되기 바랍니다.

 

 

 

 

 

 

Trackback 0 Comment 0
2017.12.28 00:00

건축의 외형 - ‘액자’ (frame)

 술의 역사 만큼이나 액자의 역사는 오래 되었을 것입니다. 회화의 전시, 보존 등을 위한 보조적인 위치에서 출발한 액자는 사진의 등장과 기술의 발달 등으로 현재는 picture frame 만이 아니라 photo frame, digital photo frame 등으로 영역이 넓어졌으며, 액자 자체가 예술품이 되는 경우도 생겨났습니다. 

 액자의 형태와 재질, 방식 등이 달라져도 '평면의 어떤 것을 담는 장치' 임은 변하지 않을 듯 합니다. 건축 또한 앞으로도 계속 '인간의 삶' 을 담아내겠지요. 그러한 나름의 유사성을 생각해 보며, 오늘의 주제는 '액자' 로 잡아보았습니다.


 - 김옥길 기념관 (대한민국 서울, 1999)

출처 - premium.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3/28/2014032801975.html


 1998년 작고한 김옥길 전 이화여자대학교 총장의 넋을 기리기 위해 설립된 건물입니다. 강남 교보문고 맞은편의 '어반하이브' 로도 잘 알려진, 건축설계사무소 아르키움 대표 김인철 건축가의 설계입니다. 

출처 - www.vmspace.com

 

 건축의 이름은 '김옥길 기념관' 이지만, 1층과 2층은 카페이며 지하 1층은 전시 밑 공연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또한 그 독특한 외관과 내부의 느낌 덕에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에게 꾸준히 사랑받고 있습니다.

 여러 건축상을 수상 하기도 한 김옥길 기념관에 대한 도면 밑 더 많은 사진들이 담긴 건축도시정책정보센터(AURUM) 링크를 첨부합니다.

 http://www.aurum.re.kr/Bits/BuildingDoc.aspx?num=250#.WkMiU1SFjOQ


 - Frame House (호주)

출처 - www.lifespacesgroup.com.au 


 건축, 인테리어, 산업디자인 등 다방면에서 활동하고 있는 Auhaus architecture + interiors 에서 설계한 frame house 입니다. (frame house 는 목조 가옥 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호주 멜버른 인근 해안에 위치한 이 2층 주택은 김옥길 기념관 의 경우 보다 좀 더 직접적으로 '액자' 에 가까운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본인들의 삶을 은근히 '전시' 하고픈,  건축주의 욕망이 투영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내부에서 외부를 본다면 호주의 풍경이 '전시' 되겠지요.

 호주의 고급 주거 개발 전문 회사인 Life Spaces Group 에 게재된 frame house 포스팅을 링크합니다.

https://www.lifespacesgroup.com.au/frame-house/


 - Dubai Frame (두바이, 2018 1월 오픈 예정)

출처 - gulfnews.com/

 

 정말 '액자' 그 자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현재 완공되어 내년 1월 개관 예정인 Dubai Frame 입니다. 

 2002년에 건축회사 OMA 소속으로 베이징 CCTV 사옥을 디자인한, 현재는 건축회사 DONIS의 수장인 Fernando Donis가 설계하였습니다.

 150 * 93미터 의 규모이며 (아파트 45~50층 정도 높이), 지상층에는 낚시마을이었던 과거에서부터 거대 도시가 된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변천사를 보여주는 박물관이 들어섭니다.

<이태림>

Trackback 0 Comment 0
2017.12.25 00:00

기억을 찾아가다 - 11

11. 정전 후의 체험들 - 수학여행

 

전쟁이 막바지로 갈 때쯤 해선 민간자동차도 많이 다니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주로 화물차가 많이 보였는데, 마산 부산 간에만 다니던 버스 숫자도 상당히 불어난 걸 느낄 수 있었다.

대부분 군에서 불하된 차들을 개조한 것이었다고 했다. 화물차는 약간만 고쳐서 다니는 것으로 보였고, 버스는 엔진만 쓰고 껍데기는 드럼통 등을 두드려 맞춘 것이었다고 들었다.

<전쟁 직후 미군이 버린 드럼통을 펴서 만든 한국 최초의 버스>

 

어떤 차든 그때 우리들 사이에선 차타본 경험이 큰 자랑거리가 될 정도로 자동차에 대한 호기심이 많았다.

봉암동에서 양덕동으로 조금 나오면 양덕교(수출자유지역후문앞)로 오르는 고개가 지금보다 높게 있었는데, 당시 화물차의 엔진 힘으로는 그 정도의 고개에서도 힘들어 했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거기에서 차에 기어 올라타고 가다가 오동동다리 고개에서 뛰어내려 학교로 가는 행태에 재미를 붙였었다.

차타는 재미에 허기졌던 아이들처럼, 때로는 차위에서 조수에게 꿀밤을 맞아 가면서도 그 행위에 재미가 들어 있었다.

그런 우리들에게 삼 일내내 차를 타고 여행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은 그야말로 하늘이 내린 호기였다할 만큼 뜻밖이기도 했다.

행선지는 경주, 차는 트럭이었다. 과정은 전술한 졸저 상식의 서식처를 활용하겠다.

 

행비는 아주 쌌지만 그것도 부담할 수 있는 상당수는 못 갔다. 차는 한반에 한대씩 배정되었다.

60명 중에 40명 안팎이 참가한 것으로 기억되었는데, 체격이 작은 애들이었지만 3톤 트럭에 40명이 앉으니 너무 비좁아서 앞사람의 엉덩이에 뒷사람의 다리를 꽉 붙이고도 제일 뒤의 두어 줄은 앉지 못하여 선생님들이 더 붙어 앉으라고 고함을 치던 모습이 생각난다.

그런데 그 다음의 과정들은 더 뚜렷한 영상으로 남아 있다.

차가 출발한지 10분도 안되어 뒤에 앉은 우리들이 신기함에 놀라 웃어댔던 일이다. 그렇게 좁던 자리가 등 뒤에 4~50cm 남을 정도로 넓어진 것이었다.

굵은 자갈들이 어지럽게 깔린 길을 털털거리며 달리니 짐칸이 키질을 하여 짐들(우리들)을 모두 앞쪽으로 쓸어버린 것이었다.

당시는 마산시내도 중심 간선도로 한두 곳만 엉성하게 포장이 되어있을 정도였으니 경주까지는 물론 이런 험한 도로의 연속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시속 30~40km를 넘지 못했을 속도였으련만 그땐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큰 돌에 바퀴가 튀어 뒤에 앉은 우리들은 한참동안 공중에 떴다가(기분에) 쿵하고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는 일이 거의 연속되다시피 했지만, 그것을 괴로워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엉덩이에 멍도 들고 멀미난 친구들도 있었으련만 그런 것을 보았거나 느낀 기억은 지금 남아있지 않다. 대부분 처음 경험하는 쾌감에 웬만한 고통은 묻힐 만 했으리라는 생각을 나이 들어서도 한번 씩 해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열차로 진영 정도만 갔다 와도 다음날 친구들로부터 큰 부러움의 눈길을 받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시커먼 연기를 뿜으며 칙칙푹푹 내달렸던 옛날 기차>

 

창밖으로 팔을 내미니 팔꿈치가 부러지는 것 같더라 느니, 전봇대가 뚝 부러지는 것 같더라 느니, 말도 안되는 뻥을 쳐도 신기함과 부러움으로 넋을 놓던 친구들의 모습에 더욱 신이 나서 점점 더 부풀려 떠들어 대던 시절이었다.

저기 가는 저 아가씨 유우에엔 사아모님.”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어디서 배웠는지 시속을 풍자하는 노래나 유행가 등을 한 사람이 선창하면 대부분이 따라 불렀다.

레코드나 라디오를 구경하기 어려운 시절이었는데도 어떻게들 익혔던지 목이 터져라 잘들도 불렀다.

맞은편에서 오는 차가 흙먼지를 퍼부어도 노래는 잠시도 멈추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서도 주먹밥을 먹는 친구들도 더러 있었다.

……입엔 흙먼지가 덮여 간혹 모래가 씹혀도 뱉어내는 일은 있을 수 없었다.

밥을 입으로 가져가는데 차가 튀어 오르면 밥 뭉치가 뺨이나 턱을 쳐 발리기도 해 서로 보며 웃기도 했는데, 그럴 때도 먼지 묻은 밥 알갱이지만 말끔히 뜯어 먹었다. ……

 

고적 관람시의 느낌은 기억나는 게 없고, 첨성대와 다보탑 앞에서 찍은 명함크기의 학급 단체사진이 있었는데 그것도 보관 못 한 내 처신이 아쉽다.

그리고 올 때의 기억이 거의 남아있지 않은 것은 피로 때문이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박호철 / 창원미래연구소 이사장

 

 

 

'역사속 도시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억을 찾아가다 - 13  (0) 2018.01.15
기억을 찾아가다 - 12  (0) 2018.01.08
기억을 찾아가다 - 11  (0) 2017.12.25
기억을 찾아가다 - 10  (0) 2017.12.18
기억을 찾아가다 - 9  (0) 2017.12.11
기억을 찾아가다 - 8  (0) 2017.12.04
Trackback 0 Comment 0
2017.12.21 00:18

건축의 외형 - ‘계단’ (Staircase)

 오늘은 이전 포스팅들 보다는 조금 인공적인 형태라 있는, '계단' 이라는 주제를 가져와 보았습니다

 계단의 역사는 생각보다 오래 되어, 이미 BC3000 메소포타미아의 지구라트 에서부터 찾아 수가 있습니다현재에 와서는, 흔한 형태라고 수는 없지만 다양한 규모의 건축물에서 다양한 이유로 차용되고 있습니다.



치첸이트사  카스티요 피라미드 (El Castillo, Chichen Itza, 멕시코, 8~12세기)

출처 - en.wikipedia.org


 마치 거인의 야트막한(?) 전망대 같기도 , 피라미드 카스티요 입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목록에도 등재된 고대 마야족 도시의 대유적 치첸이트사 에서 단연코 눈에 띄는 건축물이며, 관광명소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마야의 뱀신 쿠쿨칸의 신전이기도 건축물은 밑면은 55.3m, 높이는 30m 규모이며, 4면에 91개의 계단이 있고, 상부의 신전을 포함하면 1년을 뜻하는 365 됩니다.



 - Stairs-House by Y+M Design Office (일본, 2009)

출처 - www.dezeen.com


 계단의 형태 라기보다는 계단 자체를 집의 메인 테마로 잡은, 일본 디자인 스튜디오 (y+M design office) Stair House 입니다. 


출처 - www.dezeen.com



 남향으로 향하는 계단 형태(이면서 실제 계단) 입면은 디딤판(tread) 사이의 틈을 포함한 다양한 개구부로 내부 공간에 자연광을 침투시키며, 내부에서는 파사드의 형태가 그대로 천장의 형태가 되면서 재미있는 공간감을 연출해 냅니다.


 쌍둥이인 아이가 있는 30 교사 부부 가족을 위해 설계된 집은 아래의  가지 요구사항 테마로 디자인 되었습니다.


 1. 교사로서 학생들의 방문을 반기기에 “people gathering”

 2. 따뜻하고 밝을

 3. 프라이버시 지켜줄


 한적하고 바람이 강한 바닷가에 지어진 집에 대한 자세한 정보가 실린 포스팅을 링크합니다

 -> https://www.dezeen.com/2010/11/15/stairs-house-by-ym-design-office/



 - 아크로스 후쿠오카 (ACROS Fukuoka Prefectural International Hall, 일본, 1994)출처 - commons.wikimedia.org



 일본 후쿠오카현의 복합문화시설인 아크로스 후쿠오카 는 "Green over the gray" 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있는 아르헨티나 건축가 에밀리오 암바즈(Emilio Ambasz) 가 수장으로 있는 Emilio Ambasz & Associates,inc. 의 작품입니다. (http://emilioambaszandassociates.com/

 본인 이름을 딴 산업디자인 회사의 수장이기도 합니다 - http://emilioambasz.com/


출처 - www.greenroofs.com/

출처 - http://architectureyp.blogspot.kr/2011/05/acros-fukuoka-hall.html


 건물 전체를 덮는 녹지 덕에 외부 열기를 90% 수준으로 차단하며, 텐진 중앙공원 과의 조화가 좋아서 친환경 건축 분야에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아크로스 후쿠오카 정면에는 외벽을 따라 60m 높이의 건물 정상까지 올라갈 수 있는 계단식 정원이 있는데, 누구나 접근 가능하여 후쿠오카의 명물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이 거대한 '계단형 정원' 은 관광 관련 사이트에 소개되기도 합니다. 


 비교적 상세한 정보가 있는 greenroofs.com 의 포스팅을 링크해 봅니다.  

 -> http://www.greenroofs.com/projects/pview.php?id=476

<이태림>





Trackback 0 Comment 0
기억을 찾아가다 - 14

14. 정전 후의 체험들 Ⅴ - 마부 버스, 화물차 군용차 아닌 것들을 그때 우리들은 ‘개인차’라 불렀는데, 개인 승용차는 당시로선 하루에 한두 대 보기도 어려웠고, 거의 모두가 화물차와 버스였다. 거의 모두 일제가 두고 간 ..

건축의 외형 - ‘새둥지’ (Bird's Nest)

동굴에서의 삶을 시작으로 인간의 주거는 자연을 모방하는 단계를 거쳐 현재는 완전히 인공적인 삶의 공간을 만들어 내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자연적 형태들은 완전한 인공물인 건축의 형태에 영향을 주고 있으며, 의도되었든 ..

기억을 찾아가다 - 13

13. 정전 후의 체험들 Ⅳ - ‘이용범 다리’ ‘용베미 다리’란 말을 언제 쯤 부터 들었는지를 정확하게 기억할 수는 없지만, 이용범(아래 사진 / 1905~1968)이란 인물의 이름이 널리 퍼진 계기로 미루어보면, 1954년..

건축의 외형 - ‘원통’ (cylinder)

일상에서 마주할 수 있는 수많은 도형들 중에, 언제나 주변에 있어서 오히려 존재감이 낮은 경우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일상에서의 '원통' 이 그런 것 중 하나일 것입니다. 우리는 수많은 원통형 물체와 함께 살아가고 있으며, ..

기억을 찾아가다 - 12

12. 정전 후의 체험들 Ⅲ - 귀환, 상이군인들 정전 얼마 후에 전장에 갔던 아저씨들이 속속 돌아왔다. 함께 끌려가서(그땐 그렇게들 표현했다) 내내 한 부대에 있다가 함께 돌아온 우용 아저씨와 내 당숙은 상이용사가 되어 돌아..

건축의 외형 - ‘타공판’ (perforated board)

사람이 건축의 외형을 인지하고 기억할 때에 여러 가지 요소들을 보고 듣고 느끼게 됩니다. 개개인의 차이는 있겠으나, 일반적으로 특정 건물은 가장 부각되는 특정 요소로 기억하게 되는 듯 합니다. 규모나 재질, 기하학적 형태, 조..

2018년 새해인사

새해 인사드립니다. 꿈 꾸는 것과 희망하는 것들이 모두 이루어지는 해가 되기 바랍니다.

건축의 외형 - ‘액자’ (frame)

미술의 역사 만큼이나 액자의 역사는 오래 되었을 것입니다. 회화의 전시, 보존 등을 위한 보조적인 위치에서 출발한 액자는 사진의 등장과 기술의 발달 등으로 현재는 picture frame 만이 아니라 photo frame, d..

기억을 찾아가다 - 11

11. 정전 후의 체험들 Ⅱ - 수학여행 전쟁이 막바지로 갈 때쯤 해선 민간자동차도 많이 다니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주로 화물차가 많이 보였는데, 마산 부산 간에만 다니던 버스 숫자도 상당히 불어난 걸 느낄 수 있었다. ..

건축의 외형 - ‘계단’ (Staircase)

오늘은 이전 포스팅들 보다는 조금 더 인공적인 형태라 할 수 있는, '계단' 이라는 주제를 가져와 보았습니다. 계단의 역사는 생각보다 오래 되어, 이미 BC3000년 경 메소포타미아의 지구라트 에서부터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

기억을 찾아가다 - 10

10. 정권 후의 체험들 Ⅰ- 깡통문화, 총탄 정전 반대를 외치는 집회와 행진이 전국적으로 있었고 마산에서도 무학초등학교 운동장에서 궐기대회가 열렸었다는 이야기를 어른들이나 형들로부터 엿들었던 기억은 있으나 거기에 관심을 기울..

건축의 외형 - ‘초승달’ (crescent)

달은 태양과 마찬가지로 여러 문화권에서 신화나 종교와 연결지어서 생각되었습니다. 초승달은 달이 뜨지 않는 삭 다음에 나타나기 때문에 서양권 에서는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 하여 new moon 이라고도 불리죠. 오늘은 이슬람의 ..

기억을 찾아가다 - 9

9. 한국전쟁기의 학교생활 Ⅲ - 용의검사, 학력경쟁 가교사생활 직후부터 실시된 용의검사는 생활환경이 좋은 도회지 넉넉한 집 아이들에겐 별 부담이 안 되었겠지만, 누추한 환경에서 생활하거나 항상 흙을 묻히고 살아야하는 농촌 아..

건축의 외형 - ‘삼각형’ (Triangle)

피라미드와 삼각형, 그게 그것 아닌가 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만, 입체도형과 평면도형 이라는 근본의 차이때문에 여러 분야에서 접근 또는 적용 방식 또한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피라미드와 삼각형 은 겹치는 부분도 있지만 확..

기억을 찾아가다 - 8

8. 한국전쟁기의 학교수업 Ⅱ - 떠돌이 수업 초등학교 5학년 때였던 1952년의 학교생활엔 참 변화가 많았다. 담임선생님도 세 번이나 바뀌었고 교실도 다섯 번이나 옮겨 다녔다. 그리고 전입생도 그 해에 갑자기 불어났다. 처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