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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10 00:00

마산창원 역사 읽기 (25) - 문화권력, 이은상

3. 지역의 인물을 찾아서

3-8  문화권력, 이은상

 

 

어제 온 고깃배가 고향으로 간다하기 / 소식을 전차하고 갯가으로 나갔더니 / 그 배는 멀리 떠나고 물만 출렁거리오. (<고향생각>, 1923년)

봄처녀 오시누나 새 풀옷을 입으셨네 / 하얀구름 너울쓰고 구슬신을 신으셨네 / 꽃다발 가슴에 안고 누굴 찾아 오시는고. (<봄처녀>, 1925년)

내 고향 남쪽바다 / 그 파란물 눈에 보이네 / 꿈엔들 잊으리요 / 그 잔잔한 고향바다 / 지금도 / 그 물새들 날으리 / 가고파라 가고파. (<가고파>, 1932년)

 

앞의 두 노래는 중고등학교 음악교과서에 실려 우리에게 친숙한 곡이고, 마지막 노래는 우리 국민들 모두가 애창하는 노래다. 이 노래 가사를 지은 사람이 이은상이다.

<가고파>가 국민들이 애창하고 또 마산을 상징하는 노래로 널리 불려지면서 이은상은 마산의 대표적인 문인으로 간주되어 왔다. 

<노산 이은상 (1903~1982)>

 

-노산, 그는?- 

노산 이은상은 19031022에 마산에서 교육가 이승규선생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1918년 부친이 관계한 마산 창신학교 고등과를 졸업한다. 창신학교 시절 그는 안확(자산)의 민족주의와 국학에 대한 연구로부터 크게 영향을 받는다.

1923년에 연희전문학교 문과, 1925년부터 1928년까지 일본 와세다 대학 사학부와 동양문고에서 사학과 국문학을 공부한 후 귀국한다.

1928년 마산에 돌아와 고향의 노비산(鷺飛山)에 올라 시조 한 편을 쓴다.

내 놀던 옛동산에 오늘 와 다시 서니 / 산천의구란 말 옛 시인의 허사로고 / 예 섰던그 큰 소나무 베허지고 없구려 (<옛동산에올라>, 1928)

 

이은상은 고향의 산인 노비산 이름을 따서 자신의 호를‘노산’으로 짓는다.

그는 1929년 월간잡지『신생』의 편집장을 한 후, 1931년-32년 이화여자전문학교 교수를 비롯하여 동아일보사 기자, 『신가정』편집인, 조선일보사 출판국 주간, 조선일보사에서 발행되는『조광(朝光)』의 편집주간을 했다.

1942년 조선어학회 홍원 사건에 연루되어 함경도 홍원경찰서와 함흥형무소에 구금되었다가 이듬해 기소유예로 석방되었다고 한다.

일제 말에 전라도 광양에 은신해 있다가 해방이 되자 노산은 광주에서 194512월에「호남신문」을 창간하여 1947815일자부터 처음으로 가로쓰기로 종합일간지를 간행했다.

이은상은 일제하에 낭만적 민족주의자로서 전통시조를 계승하여 많은 시조를 창작하였다.

1933년에 나온『노산시조집』은 생동적이면서도 뛰어난 언어적 기교를 발휘한 작품들을 모은 것이다.

그는 시조 창작과 기행문 등을 통해 조선의 자연을 노래하고 우리말을 지키는 노력을 했다.

노산의 작품에서 식민지 지식인의 고뇌와 진지한 역사의식을 찾아보기는 어렵고 또『조광』의 편집주간을 한 것 등 때문에 그의 일제 때 친일 행적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아직 분명하게 입증된 것은 없으므로 일단 기존의 연구 결과에 따르기로 한다.

일제 때의 소박한 낭만적 민족주의자들이 해방 후 좌우익의 갈등에서 우파적이 되는 것은 일반적인 현상이다. 특히 노산은 일찍이 1920년대 후반 카프(프롤레타리아) 문학에 대해 국민문학을 주창하고 이에 기초한 작품활동을 했으므로 그에게 이승만에 의해 주도된 분단국가는 당연히 받아들여야 할 새로운 국가였다.

그리고 6·25전쟁을 겪으면서 그는 북한공산주의 집단에 대한 분노와 북진통일(‘고지’)에 대한 염원을 직설적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고난의 운명을 지고 역사의 능선을 타고 / 이 밤도 허우적거리며 가야만 하는 겨레가 있다 / 고지(高地)가 바로 저긴데 예서 말수는 없다. (<고지가바로저긴데>, 1953년)

 

이처럼 소박한 민족주의자로서 또 반공주의자로서 노산은 이승만정권 하에서 전남대학교 재단이사장, 이충무공기념사업회 회장 등 굵직한 직함을 가지고 다양한 활동을 한다.

3·15가 일어나기 얼마 전 이은상은 ‘문인유세단’을 조직하여 자유당 대구 유세에서 당시 시국을 임진왜란과 비교하면서 “이순신같은 분이라야 민족을 구하리라, 그리고 그 같은 분은 오직 이 대통령이시다”고 말하였다고 한다.

1960년「서울신문」35일자에는 “대통령선거 유세 중에 시인 이은상씨는 이승만 박사의 위대함과 아울러 이기붕 의장의 성실하고 자애로운 인간성을 설명하여 깊은 감명을 주었다”고 보도했다.

 

또한 39일 오후 1시 마산무학초등학교에서 정부통령 선거유세를 지원하는 강연회가 열리는데 이 때 소설가 박종화 등과 함께 이 강연에 참여하여 선거유세를 했다.

그러므로 마산에서 이승만 정권의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3·15민주화의거가 일어나자 노산은 이를 비판하면서 3·15의거는 “무모한 흥분”으로 “지성을 잃어버린 데모”“불합리·불합법이 빚어낸 불상사”이며 따라서 시위가 확대되는 것을 ‘마산사람’으로서 염려하며 마산시민들에게 “자중하기를 바란다”고 당부하고 있다.

<이은상이 박종화 등과 함께 마산무학초등학교에서 리승만의 선거유세를 한다는 벽보>

 

-박정희를 미화하고-

이승만 외에도 이은상이 이순신 같은 구국의 영웅으로 미화한 또 다른 인물이 박정희이다.

박정희는 만주국 군관학교를 거쳐 일본 육사를 졸업한 후 1944년에 만주군 보병부대에 배치되어 일제가 패망할 때까지 그 부대에 있으면서 항일무장투쟁 세력에게 총부리를 겨눈 경력이 있다.

박정희는 해방 후 한때는 남로당의 박헌영 계열에 속해 있다가 군내 좌익세력을 제거하는 숙군작업에서 자신의 동료들을 팔아 목숨을 건졌고, 6·25를 거치면서 승승장구하여 마침내 소장으로서 5·16쿠데타를 주도하여 군사정권을 세운다.

이은상은 5·16쿠데타 사실을 사전에 알고 있었으며 어느 정도 협력했다는 사실도 증언에 의해 밝혀졌다.

그러므로 이은상은 군사쿠데타로 박정희가 집권하자 공화당 창당선언문을 써주고 박정희의 문화행정 자문역으로 민족문화협회장 등 다양한 감투를 쓰고 박정희정권의 문화,교육정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은상은 박정희 묘비 헌시비문에 “…조상의 얼과 전통 찾아서 되살리고 세계의 한국으로 큰 발자국 내디뎠기 / 민족의 영도자외다, 역사의 중흥주외다”라고 찬양할 정도로 독재자 박정희를 민족의 위대한 지도자로 숭배하였다.

<이은상이 지은 박정희 조곡>

 

노산은 이승만과 박정희에 대한 협조와 찬양에 그치지 않고 수많은 광주시민을 학살하고 권력을 잡은 전두환 정권에 대해서도 협조하고 찬양하기에 이른다.

전두환이 간접선거에 의해 대통령에 당선되자『정경문화』19809월호에 <새 대통령에게 바란다>라는 글을 실“전두환 대통령의 당선을 경하하며”, “한국의 특수한 상황으로 보아 무엇보다도 강력한 지도자를 원하는 것이 거의 일반적 여론”이라는 글을 쓰고 다음 해 4월 전두환 정권의 국정자문위원이 된다.

 

노산은 다음 해(1982년) 918일에 세상을 떠났다.

오늘날 노산에 대한 평가는 상당히 극단적이다. 뛰어난 시조작가이자 민중시인으로 또 훌륭한 민족주의자이자 민주주의자로 찬양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일제시대의 친일 혐의를 제기하고 특히 해방 후의 독재정권에 아부하여 출세하고 명예를 얻으며 권력을 좇아 산 어용 지식인으로 폄하하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가 볼 때 노산의 문학적 업적에 대해서는 인정해야 하겠지만 그가 이승만, 박정희의 독재정권을 옹호하고 심지어는 전두환 정권에 대해서까지 찬사를 보낸 것이 명백히 사실로 드러난 이상, 노산에 대해 다시 냉정하게 평가해야할 시점에 이르지 않았나 생각한다.<<<

김재현 / 경남대학교 인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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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실비단안개 2014.11.10 11:31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평소 궁금했던 점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허정도 2014.11.11 13:12 신고 address edit & del

      방문 감사합니다

  2. 김기철 2014.12.21 07:33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반갑습니다, 하시는 일과 생각하시는 모든것에 늘 박수를 보냅니다.
    늘 건강 하시길 ....
    많은 자료와 글 들이 너무 좋습니다, 잘 읽겠습니다, 감사 합니다.

2010.10.27 00:00

마산해양신도시 '조정안을 제시하면서'




「마산해양신도시 건설사업 추진방향 조정위원회」의 책임을 맡아 고민 참 많이 했습니다. 이해당사자가 있는 일이라 어려움이 더 했습니다.
‘도시정책을 변경하는 이런 목적의 위원회가 두 번 다시 생겨서는 안 된다’는 생각 수 없이 했습니다.

지난 10월 15일 조정위원회 마지막 회의에서 채택한 문건을 소개합니다. 조정안에 대한 ‘서문’ 성격의 글입니다.
위원회에서 채택한 후 위원들과 참관인 그리고 기자들까지 있는 자리에서 낭독해 공개된 글입니다.



《조정안을 제시하면서》


마산지역의 도시미래를 결정짓는 해양신도시의 추진방향을 조정하면서 도시정책의 중도변경이 얼마나 많은 출혈을 요구하는지 실감하였습니다.
매립계획변경에는 거액의 비용이 필요했고, 많은 비용을 들이지 않으면 천혜의 마산만이 매립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전체위원회와 소위원회 도합 아홉 차례 회의를 거친 지난 40여일은 최선과 차선을 찾기보다는 최악을 피해 차악을 찾는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존재하지도 않는 집을 찾아가는 길처럼 암담한 과정이었습니다.

조정안을 하나로 묶지 않았습니다.
위원회의 의견이 통일되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위원들의 생각은 한결같이 ‘준설은 필요하지만 매립은 피해야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하나의 안으로는 현실적인 대안을 찾기 어려울 것 같아 복수의 조정안을 제시합니다.
마산해양신도시 추진방향 변경은 먼 미래 이 도시의 환경과 시민들 삶의 질을 결정짓는 시금석이 될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위원회가 선택한 원칙은 ‘지속가능한 미래’였습니다.

애당초 정부가 세운 컨테이너 2선석과 일반화물 2선석의 마산신항만 계획은 오류였습니다. 항만개장을 눈앞에 둔 지금은 4선석 모두 일반화물만 취급해야할 처지에 놓였습니다.
신항 4선석이 일반화물을 취급하게 되면 현재 부두가동률 40-70%인 진해 마산의 기존부두와 화물유치경쟁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마산신항만은 정부사업이며, 해양신도시 매립은 신항만의 항로준설토를 처리하기위해 선택된 계획입니다.
정부와 옛 마산시는 상호협약에서 항만건설사업 시 발생하는 준설공사는 정부가, 준설토 처리는 마산시가 책임지기로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마산시는 도시통합으로 사정이 크게 변했습니다.

현 정부의 행정구역통합정책은 각 도시의 중복투자를 막고 균형 잡힌 도시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시도되었으며, 통합창원시는 이에 부응한 결과입니다.
통합된 창원시의 영역에는 「부산진해신항」 상당부분이 포함되어 있으며, 이러한 항만사정변화는 마산신항만 존재가치에 대한 새로운 평가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평가와 새로운 발상은 현 정부가 추진한 행정구역통합의 목적이기도합니다.

정부는 2006년부터 ‘마산만 특별관리해역 기본계획’을 세워 오염된 마산만을 되살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마산만 한복판의 광대한 매립은 이러한 정부정책에 상충하는 계획일 수도 있습니다.
국정철학이 녹색성장인 현 정부가 ‘내 고향 남쪽바다…… 가고파’의 마산 앞바다가 새로운 비전을 갖도록 도와주리라 믿으며, 이런 점에서 지역이 배출한 중앙정치인의 역할을 기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본 위원회 활동이 ‘예측 불가능한 미래는 예측 가능한 세대가 개발하도록 남겨두는 지혜’를 깨우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2010년 10월 15일


마산해양신도시 건설사업 추진방향 조정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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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윤기 2010.10.27 09:23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예측 불가능한 미래는 예측 가능한 세대가 개발하도록 남겨두는 지혜’에 공감합니다.
    통합 이후 달라진 부두관리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가포 항만 계획을 포기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됩니다.

  2. 예측 2010.10.27 13:04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인간이 미래를 제대로 예측할 수 있을까요? 예측가능한 세대가 개발하도록 두자는 건 다른 사람(다른 곳에서)이 검증 다하고 나서 건너가자는 말씀인데요. 속도경쟁인 현대사회에서 가능한 일일까요? 완전히 예측가능하게 되는 순간 기회는 0% 일텐데............남들 공부해서 성공하고 잘 사는 걸 다 보고 공부시작하겠다는 말씀과 다른지요? 극단적인 비유인가요? 수년계획에 막 착공상태 사업을 하루아침에 뒤집는 행정에... 새 계획 세우는데 3년, 다시 검토하는데 3년, 6년후에 시대에 뒤떨어져 다시 뒤집고....시민없는 시민단체 하는 모양보면 마산은 그저 내버려 두고 방치하는 게 답일 듯. 아무 대안없는 조정안....말이사 멋지게 보일 진 몰라도 무책임 무대책 같습니다.예측이 틀렸다면 계획 일부를 수정해 가며 나아가면 족하지요. 목포시도 바다에 인공분수 띄우고 나서는 경쟁시대에....과거 초가집 가고파 향수만 그리워 집착하는 퇴행적 마산...

    • 이윤기 2010.10.28 06:51 신고 address edit & del

      현대사회는 속도를 줄이자, 늦추자는 이야기가 쏟아져나오고 있는데요?

      지속가능성이라는 이야기 들어보지 않으셨나요?

  3. 예측 2010.10.27 13:30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혹시 허정도님께선, 누구 표현대로 뉴욕,홍콩등지 고층빙딜들이 흉칙한 시멘트 덩어리로 보입니까? 그러는 사람들은 시멘트 덩어리에서 안살고 흙덩어리에서 사는지 궁금합니다. 바람길을 막아요? 태풍피해 줄여주는 장점은 없나요? 위화감 조성요? 구매력 가진 사람들 주변 도시로 다 쫓아내고서 창동 오동동 상권이 죽어가니 거리정비하자구요? 자기 집 재개발 위해 바로 이웃에 이층집 못짓게 하는 식의 피해의식으로 똘똘 뭉친 시민없는 시민단체들이 백만시민들 대표인냥 나서서 시행정 좌지우지하는 마산...미래가 암울합니다.

  4. 정말 2010.10.28 14:21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참 일고할 가치도 없는 대안이군요
    진짜 마산의 미래가 암담할 뿐입니다.
    마산만은 말그대로 고인물입니다. 흘러 돌아가는 물로 보이십니까.
    지도를 놓고 보십시오.
    바닷물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조사한 기록은 보셨는지요

    차라리 매립을 어느정도하여 썩은곳을 줄여 나가는 방법은 생각이나
    해보셧습니까?

    다른 방향으로 이쁘게 추진할 생각은 안하고 무조건 매립은 반대다??
    모든 정책을 위와 같이 했다면 과연 이나라가 이만큼이나 발전 되었을까요.
    과감히 포기할껀 해서 마산이 처한 이 상황을 어떻게 극복할지가 관건이
    되었어야 함에도 발전의 비젼은 없고 보수적인 생각의 관점으로
    이렇게나 마산 시민들의 바램을 무참히 밟고 있는 모습이 제대로 된것인지요.
    충분히 좋은 방향을 제시할수 있었음에도 실생활과 이론의 한계인지
    참 의문시 됩니다.

    그리고 다른분이 속도를 늦추자고 하셨는데 그속도 찾다가 마산이 이모양이 되었나요?
    지속가능성이란 이런 상황에 쓰라고 있는 말이 아닙니다.
    상실의 시대의 모습을 보고 싶은것인가요
    모든일엔 항상 때가 있는법 ...
    지금은 미래의 마산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시기인지 진지하게 고민해주시길 바랍니다.

  5. 수원사람 2010.10.29 00:37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저는 허정도님의 글에 크게 공감을 하고 있습니다.
    바다의 앞을 막고 높은 건물을 지어서 분양을 하면 쉽게 일을 마무리 할 수 있죠.. 부산의 해운대 처름요..... 지금 부산의 사람은 해운대와 비해운대로 나뉘워져 있다고 합니다.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만약 부산의 바다를 시민에게 돌려주고 환경을 개선했다면 부산의 구시가지가 재개발이 될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이미 해운대를 주거지로 개발을 해렸습니다. 구심에 있던 비교적 여유가 있는 사람은 해운대로 이동을 해버렸죠.... 그리고 지금의 구시가지가 남아 있습니다. .. 무슨 힘으로 구시가지를 개발합니까! 골치 아프게 .....
    오히려 허정도님 처름 하시는 분이 있으니 마산의 바다를 시민에게 돌려 주고 마산의 가치가 올라 가면 그 힘으로 마산의 구심을 재개발 하면 됩니다. ... 이것은 시간이 지나고 나면 누구의 판단이 옳은지 결론이 나겠죠...
    그냥 두서 없이 글을 씁니다.

  6. 예측 2010.11.01 15:38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해양신도시 안짓고 구시가지를 신시가지 만큼 재개발하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걸 누가 개발합니까? 비인기 지역에 투자할 사업가가 어디있겠어요. 관에서 주도해봐야 세금 낭비할 뿐입니다. 도봉구를 강남구처럼 만들면 물론 인기지역으로 변모할 겁니다. 그럴 누가 해 냅니까?
    허정도님, 아는 사람들은 다 압니다. 마산을 떠나 창원으로 김해로 진해로 나가는 분들에게 물어보세요. 경제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다 압니다. 다 아는 원리를 애써 감추고 명분만 아무리 강조해봐야 현실은 불가능합니다. 사람들의 욕구를 무시하고 무슨 일이 됩니까? 인간의 욕구를 긍정하지 못하고 사회정의 명분만 고집한 사람들이 몰락한 예가 바로 공산주의입니다.

  7. 예측 2010.11.01 15:51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수원사람님 바로 그겁니다. 구 창원과 진해 김해를 신시가지로 개발했고 개발진행 중입니다. 말씀하신것처럼 이 지역에선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창원 진해 김해로 빠져 나갔습니다. 그래서 마산은 버림받은 도시로 전락했어요. 부산의 구 하나에 해당하는 곳이 마산입니다. 해운대 신도시 개발로 해운대구가 일어섰습니다. 해양신도시 건설 안하면 구시가지가 개발될까요? 아닙니다. 인기 신흥 주거지인 창원 김해 진해구로 다 빠져 나갑니다. 도시공동화가 더 빨리 일어나는 거죠.나중엔 구매력 없는 노인만 남습니다. 서울 강남구가 개발되면서 강남구 구시가지가 죽었습니까? 아니죠. 나중엔 구시가지 개발이 가속화 되었어요. 반면에 신시가지 개발 없었던 도봉구는 구시가지가 살아납니까? 아니죠. 여전히 비인기 주거지로 남았습니다. 마산합포구가 일어나면 창원 진해 김해에서 인구가 옵니다. 창원 진해 김해를 위해 마산이 개발되어선 안됩니까? 창원 진해 김해를 위할만큼 여유가 있는 마산입니까?

  8. 예측 2010.11.01 15:54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저는 마산도 부산 해운대구처럼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마산에서 살아온 사람입니다. 해양신도시가 무산된다면 이젠 미련없이 마산을 뜰 거여요. 경제의 '경'자도 모르는 사람들이 명분만 가지고 도시행정을 좌지우지하는 곳은 더이상 희망이 없습니다. 복지를 위해 양로원만 필요한 도시로 전락합니다. 통합시 세금만 잡아먹는 밑빠진 독같은 곳으로 점점 빠져 들어갑니다. 마산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도리어 마산을 몰락시켜가는 사람들의 더욱 비대해진 고성만 쩡쩡 울릴테지요.

    수원사람님, 통합창원시에서 해운대 신개발지와 비해운대 구도심과의 대비가 싫어시다면 창원과 진해 김해에 새 시가지 개발 못하도록 막으셔야 합니다. 그건 못하면서 우리 마산에만 새 동네 못들어서도록 암만 막아봐야 허사입니다.

    • 허정도 2010.11.02 10:41 신고 address edit & del

      예,,,,
      '예측'님과 같은 견해를 가진 분들이 많다는 것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측'님의 주장 존중합니다.
      '예측'님께서 자신의 주장을 밝힌 것처럼 저도 블로그를 통해 제 의견을 밝혔을 뿐입니다.
      블로그 방문 감사드립니다.

  9. 수원사람 2010.11.02 00:07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서울은 특수성이 있어 이해를 한다고 해도 .... 성남은 분당과 성남으로 갈라져 있고... 안양은 평촌과 안양으로 되어 있습니다. .... 이렇게 이분법으로 되어 있는 구조는 이곳에서 알만한 사람은 개선해 나가야 하는 문제점으로 인식을 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수원도 광교 신도시를 건설하여 수원과 광교로 나뉘어 질것입니다. .... 개발을 반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왜 개발하는 곳에 주거지 위주로 개발을 해버리냐는 것입니다. 광교에 비지니스센타 위주로 개발을 하던지 아니면 삼성의 본사를 유치하던지 이런 생각으로 개발이 진행된다면 그 힘으로 수원이 개발이 되겠죠 .. 그런데 주거지 위주로 개발을 해버리면 그곳으로 비교적 여유가 있는 사람이옮겨가지 않겠습니까.....마산도 바다에 멋진 해양공원 또는 누구나 부러워 할만한 도서관 등등 무수히 많은 아이디어가 있습니다. 그런것을 누리고 싶어하면 마산의 구심의 가치가 올라갑니다. 그러면 마산의 재개발이 가능합니다. 사실 주거지를 만드는 아이디어는 제일 쉬운 아이디어 입니다. 그리고 정치인에게는 치적거리로 보이니 얼마나 좋습니까? 예측님의 의견에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허정도님의 아이디어가 사실 어렵고 힘든 아이디어 입니다. 그러나 성공 한다면 정말 마산은 희망이 있습니다.

    참고로 저는 허정도님의 글을 보고 마산에 집을 사뒀습니다.... 나중에 마산에서 살려고 준비를 해뒀죠 이상입니다.

  10. 수원사람 2010.11.02 00:18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핵심의 내용이 빠졌습니다
    마산은 주택이 그렇게 부족한 곳이 아닙니다.그것은 마산 곳곳에 슬럼가가 많이 있는 것으로 판단이 됩니다. 만약 해안에 신도시를 지어 버리면
    이런 단독주택 단지는 인구가 더욱 줄어 들어 치안이 더욱 좋지 않아 치명적인 결함이 될것입니다. 마산이 능력이 된다면 곳곳에 주차장과 도서관, 공원, 파출소 등을 지으면 금방 살기 좋아져 떠났던 사람이 돌아 올것입니다.

  11. 예측 2010.12.07 11:54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수원사람님은 이곳의 사정을 잘 모르시는군요. 이 곳에서 인구가 계속 늘어나는 곳은 김해입니다. 마산의 인구가 정체, 감소하는 사이에 김해인구가 계속적으로 늘어나갔습니다. 김해중에서 특히 장유,진영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장유,진영에 사는 분들 태반이 창원으로 출퇴근합니다. 김해는 집이 모자라서 인구가 늘어났을까요? 김해엔 양질의 직장이 넘쳐나서 인구가 늘어났습니까? 창원, 마산에서 살 인구들이 장유,진영에 이주해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구성남요. 분당하고 차이가 많이 납니다만..분당이 없었다면 성남이 재개발 되어 급속히 발전했을까요? 제 생각은 정반대입니다. 그나마 분당이 있었기에 성남의 이미지가 살아났고 재개발도 자극받고 있습니다. 구성남 이미지는 술집, 사창가, 난개발...이런 이미지가 더 강했지요. 지금은 과거보다 이미지가 한결 좋아졌습니다. 저 역시 소시적엔 성남에 살아봤고 분당에도 살아봤습니다.

  12. 예측 2010.12.07 12:46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해양신도시는 구단위가 아닙니다. 동단위지요. 동네나 집에 대한 선호도는 구 단위로 움직입니다. 서울 강남구, 서초구..대구 수성구..부산 동래구,해운대구..하는 식으로요. 생활반경및 학군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습니다. 마산합포구는 전체가 같은 구입니다. 가장 낙후되었지요. 장유로,진영으로,마산 변두리인 내서로 인구가 빠져 나갔습니다. 해양신도시는 합포구와 한 동네입니다.회원구는 같은 생활구역이라 할 만큼 바로 이웃이구요.

  13. 예측 2010.12.07 12:49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그리고..해양신도시가 주거지 위주라구요?그러면 상업지 위주라면 잘 되겠습니까? 아님 전체를 공원으로 꾸미자구요? 배후인구가 없는 곳에 상업지가 잘 될까요? 배후인구 없는 곳에 시민들이 잘 접근해 올 수 있습니까? 버스도 잘 안다니는곳에 공원, 도서관, 파출소,주차장을 만들어요? 세금이 안나오는 곳에 누가 무슨 수로 공원을 만들고 도서관,파출소를 만듭니까? 잘해봐야 노인 장기 두는 곳 정도고 아님 슬럼가 되기 십상입니다.
    해양신도시내엔 상업지도 있고 학교가 있고 관공서도 있던데요. 공원 워터프런트도 있습니다. 수원사람님은 해양신도시 계획도를 한번이라도 살펴 보시고 말씀하십니까? 사람이 살아야 상업지가 되고 도서관 문화시설도 됩니다. 단지 주거인구없이 부산 태종대나 부산 송정처럼 만든들 그 일대 경제가 살아나겠습니까? 창원이나 해운대가 잘되는 이유는 평지 대단지 아파트들,학교,도서관등 문화시설,병원,마트등 각종 상업편의시설,접근 용이한 공원들이 모여 있어 잘 됩니다. 그런 곳에 사람들이 살고 싶어 합니다. 그런 욕구를 실현시킬 곳을 마련해 주어야 합니다. 그게 안되면 다른 區로 다른 市로 빠져 나가버립니다. '인구가 빠지니 집도 필요없다'는 자포자기할 게 아니라 마산경제가 선순환하도록 해야하지 않겠습니까? 무학산 아래 저층주택 허물고 고층아파트 세우는 게 환경보호인지....어느 선진국에서 그런 뒤집힌 도시계획을 하는지....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  1) 고대에서 조선시대까지 - 1

오늘부터는 <경남지역 주거변천사>를 포스팅하겠습니다. 6~7년 전에 『경남도사』에 싣기 위해 간략히 쓴 글인데 출판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 블로그에 올립니다. 어차피 공유하기 위한 글이니 이해하리라 생각합니다. 한반도 동남부에 ..

기억을 찾아가다 - 25 (마지막 회)

25. 3·15의거에 대한 기억 「그날 나는 ‘극장 구경 시켜주겠다’는 주무돈이란 동네친구의 호의에 끌려 10리 가까이 되는 길을 걸어 ‘시민극장’으로 갔다. 그때 나는 대학입시에 낙방한 직후라 의기소침해 있던 상황이었다. 우..

기억을 찾아가다 - 24

24. 이승만 행사 - 독립협회와 청년 이승만, 노인잔치...... 내 고등학교시절의 어느날 동회 서기가 들고온 책자를 잠시 훑어본 기억이 남아있다. ‘한국 정치인 99인집’이란 제목이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이승만편이 현격히..

기억을 찾아가다 - 23

23. 떠돌이들, 좀도둑 전쟁이 끝나자 대다수의 사람들은 고향으로 돌아들갔지만, 상당수의 사람들은 남아있었다. 좌우갈등의 와중에 있었던 몸이라 돌아갈 수 없는 처지였다고 들은 문씨 같은 사람들도 있었는가 하면, 가봤자 땅뙈기 ..

기억을 찾아가다 - 22

22.기합, 주먹자랑, 몸단련 중학교시절에도 조금은 의식되었지만 신경을 곤두세울 정도는 아니었었는데, 고등학교에 들어가자 그 문제들은 신경의 상당부분을 자극하여 행동거지의 상당부분을 조종하고 지배할 정도로까지 작용했다. 소위 ..

공간의 재탄생 - 재생 건축 '선유도' 02

지난주에 이어 녹색 기둥의 정원 에서부터 선유도 이야기를 이어 나가보도록 하겠습니다. - 녹색 기둥의 정원 정수지의 콘크리트 상판 지붕을 들어내 기둥만을 남겨 만들어진 이 정원은, 선유도 이야기관 의 설명에 의하면 ‘휴식과 ..

기억을 찾아가다 - 21

21. 동(洞) 대항 줄다리기대회 ‘마산시 동 대항 줄다리기대회’가 시작된 건 초등학교 때였던 것 같은데, 내가 몇번 구경한 건 중학교 때였다. 대회 장소는 주로 무학초등학교였다. 마산의 30여 동이 토너먼트로 겨루어 하루에 ..

공간의 재탄생 - 재생 건축 '선유도' 01

서울 한강변의 대표적 공원 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곳 중에 선유도가 빠지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원래 거기에 그렇게 있었던 장소로 기억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아직 직접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선유도 공원이 ..

기억을 찾아가다 - 20

20. 아이스케키 아이스크림이나 팥빙수도 있었지만 수요가 많지는 않았었다. 학교 앞이나 시장 입구 등에 리어카를 세워놓고 수제로 만들어 파는 정도였다. 소금 뿌린 얼음 통을 손으로 돌려 냉각시킨 아이스크림은 즉석에서 고깔과자 ..

안상수 시장은 철거민의 눈물 닦아주시라

설 연휴가 끝난 다음 날, 나는 한 언론사의 취재에 동행해 재개발로 철거 중인 마산 회원동 일대를 다녔다. 내가 태어난 곳이고 서른까지 산 곳이었다. 지금도 매일 두 번씩 지나는 곳이기도 하다. 그날 나는 몰상식과 몰염치의 밑..

기억을 찾아가다 - 19

19. 영화, 만화, 잡지 초등학교 6학년 때 단체로 시민극장에 ‘성웅 이순신’을 보러 갔다가 실망했던 기억이 있다. 활동사진이 아니고 정지된 그림(슬라이드)이었기 때문이다. 중1때 문화동 쯤에 있었던 제일극장에서 본 애정(哀..

공간의 재탄생 - 재생 건축 intro.

세 달 가까이 이어져 왔던 '건축의 외형' 에 이어, 세월의 흐름에 따라 방치되고 버림받게 된 건축에 새 삶을 불어넣는 '재생 건축' (regenerative architecture) 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이어 나가볼까 합니..

기억을 찾아가다 - 18

18. 바냇들, 부림시장 정전 다음해 진학한 마산서중(전쟁 중인 1951년 9월 1일 6년제 마산공립중학교가 3년제 마산고와 마산서중으로 분리되었다. 마산서중이 현재의 마산중학교로 교명을 변경한 것은 1955년 5월 7일이었다..

기억을 찾아가다 - 17

17. 공놀이, 헌병사령부 축구팀 우리 어릴 때 겨울 빈 밭에서 새끼로 동여맨 짚 뭉치를 차고 놀던 기억이 있고, 간혹 있은 잔칫집에서 나온 돼지 오줌보에 물을 넣어 차고 놀던 일도 어렴풋이 기억의 한 자락에 남아 있다. 형들..

기억을 찾아가다 - 16

16. 광복절 행사와 우리들의 영웅 초등학교 때도 광복절 기념 체육대회가 있었지만 참여 정도가 미미해서 별로 기억나는 것이 없다. 중학생이 되어 응원군으로 참여하면서 운동경기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되고, 그러면서 선수들의 면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