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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14 00:00

고지도로 보는 창원 20. - 칠원현 지승지도

▮ 고지도로 보는 창원 20. - 칠원현 地乘地圖

 

漆原縣 지승지도(奎15423)/ 필사본(방안식)

 

- 지도 개요 : 지승은 군사요지인 일부의 관방처와 전국의 군현을 총 6책으로 나누어 그린 그림식 지도책으로 각 책의 크기는 세로*가로가 27.0*19.0cm이다.

1책에는 경기도, 2책에는 충청도, 3책에는 경상도, 4책에는 전라도, 5책에는 평안도와 황해도, 6책에는 함경도와 강원도가 수록되어 있다.

지도의 전반적인 구도와 내용은 해동지도, 광여도, 여지도와 거의 비슷하여 동일 필사본 계통으로 분류할 수 있다. 지도제작 시기는 빨라도 1776년 이후에 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전체 지도배치를 살펴보면

읍치를 중심으로 상리면, 북면, 서면 구산면 4개면으로 표기되어 있다.

지도의 배치 방향을 동서방향을 수직으로 배치하고, 읍성내의 건물은 남북방향을 고려하여 건물명을 기재하고 있다. 구산면을 포함하게 되면 동서 방향으로 긴 지형의 특성을 고려한 배치로 보인다. 읍성을 중심으로 주변 시설물을 표기하였다.

 

읍성 내부의 건물 배치를 살펴보면,

성문은 동문과 서문 2개로 구성되어 있으며(대문에 해당하는 남문이 없는 독특한 경우에 해당된다.), 동문으로 들어서면, 아사와 동헌이 자리하고 있으며, 북측에 창고가 2동, 서측에 객사 2동과 澤勝亭이라는 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주요 시설로 동문 오른편에 향교가, 남측에 서원이 자리하고 있다.

사찰은 무릉산 자락에 長春庵, 천주산 아래 墨寺庵이 자리하고 있다.

 

자연지리 조건을 살펴보면,

동쪽방향 칠원 읍성의 진산에 해당하는 청룡산이 자리하고 있으며, 천주산과 무릉산이 창원부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무릉산(556M)은 지금도 무릉산으로 불리고 있으며, 무릉산에서 서측으로 돌출된 城山(해동지도)은 작대산(649M)으로, 다시 남측의 청룡산은 지금의 천주산(638M)로 변천되었다고 볼 수 있다.

수계를 살펴보면 북측 동서로 흐르는 낙동강을 경계로 영산현과 구분이 된다.

낙동강 지류로 남측으로 향하는 큰 하천은 현재의 광려천에 해당된다.

광려천에서 다시 동측으로 지류가 형성된 두 개의 하천은 지금의 하천명으로 운곡천과 칠원천에 해당된다.

두 하천 사이에 읍성이 있는 읍치가 위치하고 있다.

 

주요 시설물의 배치를 살펴보면,

광려천과 칠원천 사이에 상당히 많은 자연 및 인공경관요소들이 많다.

먼저 자연수림대를 형성하고 있는 金江池, 植松, 藪, 長藪(늪지), 雙鳳亭藪와 인공시설물인 雙鳳亭, 景陽臺(해동지도상에는 景漢臺) 등이 있다.

구산면에는 군사시설인 龜山鎭과 海倉, 船所가 해안가에 배치되어 있다.

 

지도에 포함된 내용을 자연지리와 인문지리로 구분하여 정리하면 다음 표와 같다.

구분

소분류

명 칭

행정

면.리

上里面, 北面, 西面, 龜山面

3

자연지리

산천, 고개

무릉산, 천주산, 청룡산

牛項峙, 葛峙, 栗田峙, 東田峙, 於岺峙

9

島嶼

-

-

인문지리

읍성

동문, 서문, 아사2, 동헌, 창고2, 택승정, 객사2

10

교육

서원2, 향교2

4

사찰

장춘암, 묵사암

2

역원, 烽燧

昌仁驛

安谷烽臺

3

鎭堡

龜山鎭

1

기타

海倉, 船所, 景陽臺, 雙鳳亭,

4

 

 

칠원현 地承地圖 地志

 

- 地志는 지도 여백에 적어놓은 군현의 인문지리에 관한 내용으로 정리하면 다음의 표와 같다.

구분

소분류

세부 내용

행정

군사

호구

- 호구수 (해동지도 - 비변사지도 - 지승지도)

: 2,970호 - 3,333호 - 3,009호

- 인구 : 10,601명 - 13,247명 - 10,869명

(남자 5,191명, 여자 5,678명)

2

군병

- 京各司諸色軍 : 564명

- 監營屬 : 90명

- 統營屬 : 514명

- 右兵營屬 : 282명

- 金海鎭屬 : 609명

- 烽軍 : 27명

= 합계 2,086명

6

지리

시설

기타

시설

- 城郭周面 766척

- 烽臺 1處, 驛 1, 寺 2, 倉 2庫, 書院 2處, 山城 1處

2

경제

元田沓

- 전 1,736결36부, 실결 953결 1부

- 답 877결60부, 실결 497결 29부

 

곡물

- 別餉米 : 514석 9두, 租 10석 13두

- 元會米 : 44석 7두, 잡곡 434석 9두

- 常賑米 : 264석 10두, 잡곡 1,887석 4두

- 監營米 : 5두

- 統營米 : 253석 12두, 잡곡 1,662석 13두

- 浦項雜穀 : 469석 5두

- 私賑雜穀 : 1,077석 1두

- 帖價牟 : 326석 9두

- 備荒租 : 551석 3두

- 儲置米 : 782석 6두

- 除留米 : 70석 6두

- 各樣軍作米 : 119석 9두

- 射軍作牟 : 590석 14두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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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15 08:00

마산 풀치를 들어보셨나요?


오늘 우연히 본 네이버에서 '팔도식후경'으로 소개된 "마산 풀치"입니다.
지금은 통합으로 인해 "창원풀치"라 명명되었지만,
어쩐지 "마산 풀치"가 더 어울리는 이름입니다.

언젠가 마산쪽 식당에 가면 먹어본 그 맛입니다.
주메뉴보다도 더 인기를 독차지하며,
꼭 추가로 주문하게되는 '갈치 조림'입니다.
'갈치'가 어린 것을 '풀치'라 부른답니다. (저도 이제야 알았습니다만)
이를 꾸덕하게 말려 조림을 해 먹는데 그 맛이 일품입니다.

아래 전체 사진과 글은 아래 사이트에서 가져온 것임을 밝힙니다.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contents_id=7495&category_type=series

갈치는 본래 서민의 생선입니다. 하지만 연근해 갈치 어획량이 줄고 중국인들이 갈치 맛을 들여 원양갈치 어획도 사정이 나빠지고 있다합니다.
예전엔 갈치가 쌌다고 하는데, 지금은 예전같지 않습니다.

갈치가 작아 마치 풀잎 같다 하여 작은 갈치를 풀치라 하는데, 
그 조리법이 비법아닌 비법입니다.
굽거나 조리면 살이 물러 터지지만, 말린다음 조려 먹으면 꾸덕한 맛이 일품입니다.


아래 사진은 말리는 모습입니다.


이 글에서도 소개하기를 '창원풀치'라 하면 어색하고 '마산풀치'라 하고 있습니다.
어쨌건, 풀치를 말리고 파는 곳은 마산항입니다.

마산항에는 예전부터 그리 크지 않은 연안어업배가 많아, 잡아온 갈치라 해봐야 씨알이 작았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갈치를 오래전부터 말리는 일이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풀치의 '규격'

갈치의 크기는 머리에서 항문까지의 길이로 나타내는데,
그 길이가 부화한 후 만1년이면 12cm, 2년 21cm, 3년 28cm, 5년 40cm, 7년이면 49cm로 자란다고 합니다.
25cm만큼 클때까지는 플랑크톤을 먹다가 그 이후 작은 생선을 잡아 먹는다고 합니다.
그러니깐 생태적으로 풀치를 구분하자면, "만3년생"에 이르지 못한 25cm이하 크기를 풀치라 합니다.

풀치 손질하기가 그리 쉽지는 않습니다. 풀치가르기는 새벽 어판장에서 하며, 숯불 화로에 언 손을 녹여가며 다룹니다.

갈치 뿐만 아니라, 아귀, 물메기, 정어리, 도다리, 가오리 등 마산항으로 잡아오는 많은 생선들도 말렸다고 합니다. 근래 들어 말린생선이 귀해졌습니다. 최근에는 찾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 그렇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아구찜도 말린 아구찜을 좋아합니다. 말하자면, 마산식 아구찜입니다.
말린 아구라야 찜의 맛이 삽니다.


2011년에는 갈치값이 폭등해서 금갈치라 불렸습니다.
갈치가 귀해진것은 바닷물 온도 변화와 갈치를 마구 잡아먹은 결과일 것이라는 분석이 일반적입니다.
풀치는 아직은 상황이 괜찮고, 어획량이 줄면, 풀치 소비량이 증대 할것으로 보는 전망이 있습니다.
그나마 마산항에 아직은 가격이 싸고 맛있는 풀치가 있어 다행입니다.


Trackback 0 Comment 3
  1. 삼식 2012.02.15 10:20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식욕이 확!!!

  2. 흙장난 2012.02.15 12:04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저 글을 쓰신 분이 황교익 선생입니다.
    맛칼럼니스트이고 몇 권의 책이 있습니다.
    <미각의 제국>, <한국음식문화박물지> 등등.
    마산 진동(진북?)이 고향입니다.

  3. 허정도 2012.02.15 14:19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황교익은 제 동생의 친구인데 이 부분에서 상당히 유명하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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