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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18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14) - 강점제2시기

<마산에 놓인 두 번째 철도>

마산에 최초로 철도가 개통된 것은 개항 6년 후인 1905년이었습니다. 러일전쟁 종전으로 일본이 조선을 본격적으로 집어 삼키기 시작할 즈음이었습니다. 경부선 개통과 같은 해였으며 마산이 종착지라 ‘마산선’이라고도 불렀고 삼랑진에서 마산과 연결된다 해서 ‘삼마선’이라고도 불렀습니다.

마산선은 한국인에 의해 설립된 철도회사를 일본 군부가 러일전쟁을 빌미로 그 사업권을 강제 접수한 다음, 자국의 중요 인력을 동원하여 개통시킨 철도였습니다. 비록 국력이 약해서 강제로 탈취 당한 철도였지만, 이 철도의 개통은 마산의 도시화를 촉진시켰으며 마산을 일본열도와 한반도 내륙을 연결하는 교통요충지로 만들었습니다.

마산선이 개통된 20여년 뒤, 진주 방면으로 연결되는 또 하나의 철도가 놓였습니다. ‘경남선’이라 불린 이 철도는 사설(私設) 조선철도회사에 의해 마산과 진주를 잇는 철도였습니다. 당시 사설철도 건설은 일본 본국의 유휴자본을 식민지에 투자함과 동시에 식민지 기반시설을 확충한다는 두 가지 목적으로 일본 정부가 나서 적극 장려한 정책이었습니다.

1923년 12월 1일 마산과 군북 간을 우선 개통했다가 2년 뒤인 1925년 6월 15일 진주까지 연결되었습니다. 작년 12월 15일 정부가 폐선하기로 결정한 임항선이 바로 이 철도입니다. 1967년 진주-순천 간 80.5㎞가 연결되어 경전선으로 불리면서 경남과 전남을 연결한 철도이기도 합니다.

개통하기까지 곡절이 많았습니다. 1920년 9월 2일자 동아일보에서는 「남선철도공정 연내기공은 도저불능이라는 제목으로, 경남 마산을 기점으로하여 남조선 각지를 연결하는 이 철도가 괴질 때문에 측량이 불가능해 기공이 늦어진다는 기사가 있습니다. 1919년과 1920년에 동아시아 전역을 뒤덮은 콜레라 때문이었습니다.

이 기사를 보면 당시에는 비록 마산에서 진주까지만 연결되었지만 향후 한반도의 중요한 철도노선과 연결시킨다는 계획이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음 그림은 당시에 제작된 지도인데, 황색표시가 ‘경남선’ 녹색표시가 ‘마산선’입니다. 그 밑의 그림은 현재 위치입니다.

다음은 이 철도가 군북과 개통될 당시 동아일보의 1923년 11월 26일자 기사와 개통 축하회를 알리는 광고입니다. 축하회에는 2원 이상 낸 사람들만 참석할 수 있다고 되어있는 것이 재미있습니다.

 

경남선은 마산역을 시발로 북마산, 중리, 산인, 함안, 신음, 군북, 원북, 평촌, 반성, 이천, 갈촌, 남문산, 개양 순으로 진주와 연결되었으며 기존의 마산선과 함께 도시의 남북을 가로지르는 새로운 교통축이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인근 함안․군북의 농촌 지역이 마산 권역으로 편입되면서 북마산 역 주변인 상남동과 교방동 지역에 역세권이 형성, 도시의 범역이 넓어졌습니다. 철도 건설공사에서 생긴 흙은 같은 시기에 추진되던 마산만 매립공사에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1927년 조선총독부는 철도건설 12개년 계획을 세우면서 운수계통의 정비와 운영의 통일성을 꾀하기 위해 전국의 사설철도를 모두 매입해 국유화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 계획에 따라 마산 진주 간을 잇던 70㎞의 경남선도 1931년 4월 11일 7,573,477엔의 보상금으로 국철(國鐵)이 되었습니다.

철도의 명칭도 기존의 마산선과 경남선을 합쳐 경전남부선(慶全南部線)으로 개칭했으며 마산선과 경남선의 시발역이던 마산역은 통합 경전남부선의 중심 역으로 변했습니다.

1970년대, 수출자유지역과 한일합섬 등에 힘입어 도시지역이 팽창하고 인구가 증가하자 한 때 도시 성장의 상징이었던 두 철도가 오히려 도시 발전을 저해하는 애물단지로 전락했습니다. 이에 따라 도심을 관통하던 철도를 변경, 외곽지역에서 도시를 경유하는 형태로 바꾸는 공사가 대대적으로 시행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기존의 마산역, 구마산역, 북마산역이라는 세역이 없어지고 하나로 통합되어 1977년 12월 16일 현재의 마산역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이름 하여 ‘삼역통합’이었습니다.

이 때 1905년부터 마산을 횡단했던 철도 마산선은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졌고 지금은 자동차가 다니는 중앙건선도로로 변했습니다. 경남은행 본점 앞 대로입니다.

그러나 한 때 경남선이라 불렀던 현재의 임항선 철도는 항만과 내륙을 연결하는 산업용 철도로 작년 말까지 사용되었습니다. 하지만 사용빈도가 낮고 도시중심을 관통하고 있어서 옛 마산시가 이 철로 주변을 그린웨이로 꾸몄는데, 그 사업을 이어 받아 통합창원시에서도 계속하고 있습니다.

작년 12월 15일, 정부의 폐선 발표를 듣고 시민단체는 철도레일을 걷어낸 그린웨이의 큰 그림을 다시 그리자고 요구하였습니다. 창원시는 시민단체의 주장에 동의를 하면서도 그럴 경우 우리 시가 부담해야할 비용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소유는 국가이지만 저 철도부지의 관리는 한국철도시설관리공단에서 하는데, 한국철도시설관리공단에서 '창원시가 매입하고 싶으면 400억 원을 내고, 임대하려면 연간 4억2천만 원을 내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임대는 무기한으로 할 수 없다고 합니다.

이를 두고 시민단체는 그린웨이의 내용 구상과 함께, 어떻게 하면 400억이라는 거액을 들이지 않고 저 땅을 시민들이 사용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400억을 받아야겠다는 한국철도시설관리공단, 도심공원을 위해 땅은 필요하지만 돈 400억이 자신 없는 창원시, 비용을 물지 않고 시민들이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시민단체,,, 곧 이 문제가 지역사회 의제로 떠오를 것 같은데 결과가 어떻게 될까요.

오는 22일(금) 오후 4시 합포구청(옛 마산시청)에서 이주영 국회의원과 시민단체 공동주관으로 이 문제를 주제로 토론회가 계획되어 있기도 합니다. 

아무튼,,,,  지난 80년간 수많은 사람들을 실어 날랐던 저 철로는 겹겹의 흔적을 안고 쇠로 만든 육교와 함께 이 도시가 겪었던 격랑의 시간들을 회상시켜줍니다. 도시 한복판에 말없이 누워있는 저 두 가닥 쇠길 위로, 지난 세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애환들이 오고 갔을지, 오며가며 쳐다 볼 때마다 온갖 생각이 듭니다. <<<

 

2011/11/21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85) - 강점제2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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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19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89) - 강점제2시기

<1920년대 마산의 산업>

1920년대 마산항의 물동량은 일본 국내의 불황과는 달리 오히려 더 늘어만 갔습니다. 주요 수출품은 여전히 미곡이었으며 전체 수․이출액의 80%를 차지했습니다.
1925년 마산항에서 일본으로 반출된 미곡은 약 15만석이었는데 1928년에는 65%가 증가한 25만석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미곡 수․이출의 증가는 수치상으로는 무역의 증대였지만 사실은 일제에 의한 미곡의 약탈적 반출이 점점 증대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정미업은 1911년 하목철삼(夏目哲三)에 의해 전기모터를 설치한 것이 기계화된 정미소의 시작인데 그 후 많이 늘어나 1924년 현재 25개소였습니다.
그 중 한국인의 것이 12개소, 일본인의 것은 13개소였습니다.

섬유공업은 회사령 폐지 이후부터 마산에 유치되기 시작한 업종입니다.
특히 1923년 6월 일본 오사카의 본전안오랑(本田安五郞)이 전 조선면화 마산공장을 매수하여 그 해 10월부터 작업을 시작한 주식회사 마산조면공장이 1924년 1,300평의 부지에 280평의 공장과 50평의 하치장을 신축하여 운영하였습니다.
그 후 1927년에는 태전성일(太田誠一)에 의해 창립된 태전마사(太田麻糸) 공장이 부지 5,000평에 건평 1,000평의 공장을 세우고 가동에 들어갔습니다.

1920년대는 마산-진주 간 철도가 개설됨으로써 서부 경남과의 교역이 활발해지자 북마산 역 주변에 역세권이 형성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영향으로 제법 규모 있는 점포들이 원마산에 들어서게 되면서 상가지역이 두드러지게 발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원마산은 창동․남성동․중성동․동성동 일부 지역에 걸쳐 상가가 조성되어 있었으며 부정공설시장(현 부림시장)부근과 남성동 해안 매축지에서 곡물상․해산물상․식료품상․포목상․잡화상들의 점포와 노점상이 즐비했습니다.
제조업 분야에 손을 뻗지 못한 한국 상인들은 주로 이 지역 상가에서 도․소매업을 경영했던 것입니다.

신마산의 상가는 京町(두월동) 거리의 양쪽에 형성되었지만 일본인조차도 값이 싼 원마산에서 구매를 하였으니 상거래가 그다지 많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일본 상인들은 판매업보다는 여관․요식업․대금업 등으로 업종을 바꾸거나 대상(大商) 중에는 원마산으로 자리를 옮기는 이도 있었습니다.

금융기관으로는 조선식산은행 마산지점(지방 농공은행이 통합하여 창설되어 전 경상농공은행이 있던 자리에 1918년 10월 개설되었다)이 현 제일은행 자리에 있었으며 이 외에 마산금융조합이 신마산에, 구마산 금융조합이 척산천 이동(以東)으로 구역을 분할하여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이 밖에 농민을 대상으로 한 내서금융조합과 사금융(私金融)인 마산금융회사 등도 있었다.

1910년 신설된 구마산 역은 도시 범역의 확산과 함께 이 지역의 교통 및 상업의 중심지 역할을 했습니다. 구마산 역 부근 시장통에는 상업조사자가 40%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승객의 숫자도 마산 역보다 많아 부산 대구에 이어 번성했던 역이었습니다.
화물은 경부선․호남선․경의선․진해선 등과 연결되었으며 1년간의 승차인원이 176,104명, 하차인원은 153,495명이었습니다.
부근에는 상업학교․형무소지소․보통학교․식은지점․내서와 구마산 양 금융조합․금융회사․기업전습소․조면공장․정미소 2개․양조장 4개 등이 있었습니다.
이 외에 구마산 역에는 신마산과 다니는 승합차가 27대 있었으며 부외(府外)와 연결되는 자동차가 준행되고 있었다.

마산의 대표산업이었던 양조산업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산전 장유양조장 / 현 몽고간장 / 1950년대 촬영>

                                     <마산의 일본인 양조장 / 1920년대>

 

                                  <소화주류주식회사 / 무학주조 전신>

1926년에는 약 7,450석을 생산했으나 역시 부산의 생산량을 따르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것이 1928년에는 당시의 조합원 12개 공장에서 세운 계획량 9,853석 보다도 1,200석이 더 많은 11,000석을 생산하여 10,000여석을 생산한 부산업계를 제치고 한국의 지역별 주조생산량에서 제1위의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이후 마산의 청주업계는 호황을 지속했고 생산량은 해마다 증가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마산의 청주는 국내 시장에 이어 만주와 중국 대륙까지 팔려 나갔습니다.

1920년대에 설립된 마산의 양조회사는 합자회사淸水양조장(1921년), 濱田주조장(1923년), 村崎주조장(1923년), 千島園주조장(1925년), 山邑주조주식회사마산공장(1929년), 昭和주류주식회사(1929년, 현 무학주조) 등입니다.

이 중 천도원주조장이 최근 철거된 삼광청주의 전신입니다.
아래 사진입니다.



일제는 1928년부터 개인의 자유 양조를 금지하고 양조를 허가제로 전환하면서 면허를 발급했습니다.
주로 한국인 업자들에 의해 경영되던 탁주와 약주 양조업은 일본인이 독점했던 청주업계에 비해서 규모는 영세했습니다.
한 예로 1928년 마산의 탁주 생산량은 불과 1,500석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한편, 마산에서 생산된 장유는 그 품질이 우수하여 경남 일원뿐만 아니라 멀리 원산과 청진에 까지 판매되었습니다.
장유업은 일본인들이 독점하고 있었는데 마산의 장유 생산량은 1928년 기준으로 평균 5,000석 정도였습니다.

일제시대 마산의 대표산업이었던 술과 간장 된장 제조업은 지금까지 무학주조와 몽고장유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2011/11/21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85) - 강점제2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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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04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26) - 개항이후

 
<식민지배의 상징, 마산 이사청>

1876년 최초의 개항이후 1910년 일제에 의해 완전 강점당할 때까지 34년간은 이 땅 안의 모든 기존 질서가 파괴되고 새로운 질서로 재편성되는 시기였습니다.

이 재편 과정에서 신도시(新都市)가 생겨나기도 하고 반대로 많은 전통적 도시들이 상대적 또는 절대적인 쇠퇴의 길을 걸었습니다.

전자는 마산을 비롯한 개항장 소재지들로서 외국인거류민들을 중심으로 통상 무역이 활발히 전개되던 신도시들이었고 후자는 지방행정의 중심으로서 1,000여 년의 전통을 이어받은 전래의 도시들이었습니다.

전자에 속하는 도시 중에서 마산․인천․군산․목포․부산․진남포․신의주․원산․청진 등의 9개 도시와 후자에 속하는 도시 중에서 경성․대구․평양의 세 도시가 1914년 부(府, 현재의 시)로 바뀝니다.

개항 이후 국제 사회에서 한국 내 지배력을 강화해 온 일제는 청일전쟁, 노일전쟁, 을사조약으로 이르는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한반도 식민지화를 구체화시켰습니다.

특히 노일전쟁 막바지였던 1905년 7월, 미국 국무장관 태프트가 직접 일본으로 건너가 한국문제를 중심으로 하는 소위 ‘가쓰라(계, 桂)-태프트’ 비밀협상을 맺었습니다.

이 협약은 미국의 필리핀 지배를 일본이 인정함을 전제로 ‘미국은 일본이 한국에 보호권을 확립하는 것이 노일전쟁의 논리적 귀결이고 극동의 평화에 직접 공헌할 것으로 인정한다’고 하여 한국을 식민지화하려는 일본의 정책을 미국이 방조하고 협력한 협약이었습니다.

그로부터 한 달 뒤인 1905년 8월 22일에는 제2차 영일동맹까지 맺었습니다.
이 동맹에서 영국은 ‘일본국이 한국에서 정치상, 군사상 및 경제상의 특수한 이익을 가지며 영국은 일본국이 이 이익을 옹호 증진시키기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지도 감리 및 보호의 조치를 한국에 대해 취하는 것을 승인’ 하였습니다.

같은 해 9월 5일 노일전쟁의 종결을 위해 중재한 포츠머드조약에서도 이 점을 재확인하였습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하여 일본은 국제사회에서의 실력과시는 물론 한국식민지화를 공공연히 사실화시켰던 것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참담하고 억울한 일이지만 당시의 우리 사정은 그랬습니다.
국제정세가 이랬기 때문에 을사조약으로 설치된 통감부는 한반도의 식민통치를 위해 행정권을 철저히 장악, 지배력을 강화했습니다.

먼저 각 지방에 이사청을 설치하였습니다. 마산 이사청도 이 때 설치되었습니다.

마산 이사청 건물입니다. 
1899년부터 있었던 영사관건물을 헐고 1908년에 지어 이사청으로 사용했습니다. 목조2층 건물로 현 경남대학교 평생교육원 자리(구, 창원군청)에 있었습니다.
창원군청 초기까지 원형이 남아 있었는데 건축적 가치도 없는 현재 건물로 개축하면서 철거되었습니다.
남아있었다면 아마 지금쯤 '근대문화유산'으로 보호받고 있을 것 같은데 아깝습니다.

아래 사진은 지금의 모습입니다.
왼쪽의 큰 나무가 위 흑백사진에 보이는 저 나무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마산이사청의 관할 구역은 부산이사청과 대구이사청 관할구역 이외의 지역, 즉 경남서부일대지역이었습니다.
지청(支廳)으로 진주지청이 1907년 1월 5일 설립되었고, 진주지청에서는 마산이사청 관할구역 중 좌측, 즉 경상남도 서남부 일대인 진주․사천․곤양․남해․하동․의령․초계․협천․삼가․단성․산청․함양․안의․거창 등을 관할했습니다.

통감부는 이사청 뿐 아니라 외청(外廳)으로 철도관리국․법원․재정감사청․관측소․영림창(營林廠)․우편국 등까지 설치함으로써 사실상 한국의 행정․입법․사법의 전권을 장악했습니다.
마산의 우편국은 이보다 훨씬 빠른 1899년 11월 16일 현재의 남성동 제일은행 터에 있었던 구 창원감리서에서 개설되었습니다. 개항에 필요한 시설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일제의 횡포로 인해 전국적으로 배일사상이 팽배해지고 각지에서 의병이 일어나는 등 민심이 흉흉한 가운데 1907년 6월 하순 헤이그밀사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일제는 이를 빌미로 황제 양위(7월 20일), 한일신조약(韓日新條約, 丁未7조약, 7월 24일), 언론 탄압을 위한 신문지법(新聞紙法) 제정․공포(7월 24일), 한국군대 해산(7월 31일), 연호 변경(광무에서 융희로 변경, 8월 2일) 등 일련의 조처를 불과 일 주일 남짓한 사이에 해치워버렸습니다.

그 중 신문지법(新聞紙法)은 광무 황제의 법률 제1호로 이것이 이른바「광무신문지법光武新聞紙法」입니다. 일제하는 물론 8․15 후까지도 효력을 지니고 있었던 우리나라 언론탄압의 효시였습니다.

일제는 이처럼 한반도 통치의 내적 조건을 조성하면서 장차 다가올 식민지배의 기반구축사업인 사회기반시설도 본격적으로 추진하였습니다.

철도는 1899년 경의선 일부 개통을 시작으로 1905년 경부선과 마산선(마산-삼랑진), 1906년 경의선과 경인선, 1910년에는 평남선까지 설치하였습니다.
간선도로는 1907년부터 1910년의 한일합방까지 외채차입금 총 공사비 293만 여원을 투입하여 진남포-평양선을 위시한 14개 노선 총 연장 1,993㎞를 뚫었습니다.

그런가하면 1906년에 착공한 부산․ 인천․ 진남포․ 원산․ 청진․ 목포․ 신의주․ 성진 등 여러 개항장들과 함께 마산에도 항만을 개축하고 세관설비공사도 하여 본격적인 식민지 수탈의 기반시설을 조성하였습니다.

아래 사진은 1899년에 지은 러시아영사관 건물입니다. 
현 월포초등학교 부지에 있었으며 목조2층 건물로 양식적 특성은 없는 것 같습니다.
언제까지 이 건물이 그 자리에 존치되어 있었는지는 기록이 없습니다.

일본과 러시아의 건물이 서로 경쟁하듯 인근 지역에 서서 위용을 과시하고 있었을 때,
인근 월영리 주민들의 심정은 어땠을까요?<<<


                                             



2010/04/08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여는 글)
2010/04/12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 - 통일신라 이전
2010/04/19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2) - 통일신라시대
2010/04/26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3) - 통일신라말기
2010/05/03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쳔사 (4) - 고려시대
2010/05/10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5) - 고려시대
2010/05/17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6) - 고려시대
2010/05/24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7) - 고려시대
2010/05/31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8) - 고려시대
2010/06/07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9) - 고려시대
2010/06/14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0) - 조선시대
2010/06/21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1) - 조선시대
2010/06/28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 - 조선시대
2010/07/05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3) - 조선후기
2010/07/12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4) - 개항기
2010/07/19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5) - 개항기
2010/07/26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6) - 개항기
2010/08/02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7) - 개항기
2010/08/09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8) - 개항기
2010/08/16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9) - 개항기
2010/08/23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20) - 개항기
2010/08/30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21) - 개항기
2010/09/06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22) - 개항기
2010/09/13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23) - 개항기
2010/09/20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24) - 개항기
2010/09/27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25) - 개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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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5.27 11:07 address edit & del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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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지역 주거변천사 -  1) 고대에서 조선시대까지 - 1

오늘부터는 <경남지역 주거변천사>를 포스팅하겠습니다. 6~7년 전에 『경남도사』에 싣기 위해 간략히 쓴 글인데 출판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 블로그에 올립니다. 어차피 공유하기 위한 글이니 이해하리라 생각합니다. 한반도 동남부에 ..

기억을 찾아가다 - 25 (마지막 회)

25. 3·15의거에 대한 기억 「그날 나는 ‘극장 구경 시켜주겠다’는 주무돈이란 동네친구의 호의에 끌려 10리 가까이 되는 길을 걸어 ‘시민극장’으로 갔다. 그때 나는 대학입시에 낙방한 직후라 의기소침해 있던 상황이었다.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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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떠돌이들, 좀도둑 전쟁이 끝나자 대다수의 사람들은 고향으로 돌아들갔지만, 상당수의 사람들은 남아있었다. 좌우갈등의 와중에 있었던 몸이라 돌아갈 수 없는 처지였다고 들은 문씨 같은 사람들도 있었는가 하면, 가봤자 땅뙈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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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의 재탄생 - 재생 건축 '선유도' 02

지난주에 이어 녹색 기둥의 정원 에서부터 선유도 이야기를 이어 나가보도록 하겠습니다. - 녹색 기둥의 정원 정수지의 콘크리트 상판 지붕을 들어내 기둥만을 남겨 만들어진 이 정원은, 선유도 이야기관 의 설명에 의하면 ‘휴식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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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동(洞) 대항 줄다리기대회 ‘마산시 동 대항 줄다리기대회’가 시작된 건 초등학교 때였던 것 같은데, 내가 몇번 구경한 건 중학교 때였다. 대회 장소는 주로 무학초등학교였다. 마산의 30여 동이 토너먼트로 겨루어 하루에 ..

공간의 재탄생 - 재생 건축 '선유도' 01

서울 한강변의 대표적 공원 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곳 중에 선유도가 빠지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원래 거기에 그렇게 있었던 장소로 기억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아직 직접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선유도 공원이 ..

기억을 찾아가다 - 20

20. 아이스케키 아이스크림이나 팥빙수도 있었지만 수요가 많지는 않았었다. 학교 앞이나 시장 입구 등에 리어카를 세워놓고 수제로 만들어 파는 정도였다. 소금 뿌린 얼음 통을 손으로 돌려 냉각시킨 아이스크림은 즉석에서 고깔과자 ..

안상수 시장은 철거민의 눈물 닦아주시라

설 연휴가 끝난 다음 날, 나는 한 언론사의 취재에 동행해 재개발로 철거 중인 마산 회원동 일대를 다녔다. 내가 태어난 곳이고 서른까지 산 곳이었다. 지금도 매일 두 번씩 지나는 곳이기도 하다. 그날 나는 몰상식과 몰염치의 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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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달 가까이 이어져 왔던 '건축의 외형' 에 이어, 세월의 흐름에 따라 방치되고 버림받게 된 건축에 새 삶을 불어넣는 '재생 건축' (regenerative architecture) 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이어 나가볼까 합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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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바냇들, 부림시장 정전 다음해 진학한 마산서중(전쟁 중인 1951년 9월 1일 6년제 마산공립중학교가 3년제 마산고와 마산서중으로 분리되었다. 마산서중이 현재의 마산중학교로 교명을 변경한 것은 1955년 5월 7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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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공놀이, 헌병사령부 축구팀 우리 어릴 때 겨울 빈 밭에서 새끼로 동여맨 짚 뭉치를 차고 놀던 기억이 있고, 간혹 있은 잔칫집에서 나온 돼지 오줌보에 물을 넣어 차고 놀던 일도 어렴풋이 기억의 한 자락에 남아 있다. 형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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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광복절 행사와 우리들의 영웅 초등학교 때도 광복절 기념 체육대회가 있었지만 참여 정도가 미미해서 별로 기억나는 것이 없다. 중학생이 되어 응원군으로 참여하면서 운동경기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되고, 그러면서 선수들의 면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