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2009.10.09 11:32

산호동 효자각의 건축적 가치


<산호동 효자각의 건축적 가치>

산호동 효자각이 도심 골목속에서 발견되고 난 뒤 관심이 있는 여러 선생님들과 함께 다시 방문 하였다.
비문의 해석과 비각건립에 얽힌 사람들 이야기는 경남대 유장근 교수와 팀 블로거 허정도 박사를 통해 앞에서 대략 정리를 하였기 때문에, 여기서는 이 효자각의 건축적 가치 판단을  통해 보존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해 본다.
우선 '산호동 효자각'의 건축 양식적 특징을 다음과 같이 요약해 보았다.

정려(旌閭)
조선시대 전반에 걸쳐 많이 건립된 유교건축물이다.
정려를 받는 절차는 고을의 관청이나 대상자의 직계후손이나 고을 유림들이 중앙의 예조에 정려를 내려주기를 청하면 왕명에 의하여 명정을 받게 된다.
선조때 부터 고종 년간에 가장 많이 건립되었으며 일제강점기 때에 엄청나게 많은 정려가 건립되었다.
이것은 아마도 신흥부호로 부상한 집안에서 가문 과시용으로 많이 건립한 것으로 보여진다.

정려각의 종류
효자각 ; 부모에 대한 자식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건립
효열각 ; 부모에 대한 효행과 부인의 정열을 기리기 위해 건립

열효각 ; 남편에 대한 부인의 열행과 자식 효행을 기리기위해 건립
효부각 ; 남편에 대한 부인의 정열을 기리기 위해 건립
충효각 ; 임금에 대한 충절과 부모에 대한 효행을 기리기위해 건립
열녀각 ; 남편에 대한 부인의 열행을 기리기 위해 건립

산호동 효자각의 건립 시기
1927년으로 확인되었으며, 원래 석전동에 있던 것을 현재의 위치로 1975년에 이전하였다.
이는 장소성이 가지는 가치는 부족하다 하드라도 목구조가 이축이 가능함 점을 감안할 때 구조의 원형은 원래의 모습을 갖추었다고 볼 수 있다.

정려각의 배치 및 형태
아무런 장치 없이 비만 서있는 기본유형과 비석을 보호하기 위해 비각을 설치한 유형이 가장 많으며, 특수한 경우 정려 앞에 홍살문이나 일주대문을 설치한 경우가 있다.
산호동 효자각은 일주문을 설치한 특수한 경우에 해당되며 이는 일제강점기에 설치한 유형에서 많이 볼 수 있다. 그리고 평면은 주로 정면과 측면 1칸인데 반하여 정면 2칸 측면 1칸의 평면 형태이다.

정면을 2칸으로 한 것은 기둥상단에 공포장식을 설치하기 위한 목적으로 보인다.

벽면 구성

사용자 삽입 이미지

보통 4면 모두 홍살(붉은 살대)을 설치하는 경우와 정면만 홍살을 설치하고 주변을 판벽으로 막는 경우가 있는데, 산호동의 경우 4면 모두 판벽과 홍살을 혼합하여 배치한 특수한 형태이다.
그로 인해 비문을 읽기 어려운 구조로 되어있는데 이는 판벽 장식을 부각시키기 위한 것처럼 보인다.

                                                 
                (판벽과 홍살의 혼합식 벽면)

가구구조와 공포형식

공포는 장식을 최소화한 초익공식 또는 이익공식이며, 더욱 간략화된 민도리 방식도 있다.
기둥 위나 주간에 공포를 설치한 주심포식이나 다심포식 공포형식은 거의 사례를 찾기 힘들다.
공포는 주로 사찰이나 궁궐 등 대규모 건물에 설치하는 양식인데 산호동의 경우는 소규모 건축에 공포를 설치한 특수한 경우에 해당된다.

지붕형식과 처마양식
지붕은 주로 용마루를 전후로 경사진 간단한 맞배지붕이 주를 이루고, 우진각 지붕과 팔작지붕으로 된 경우는 드물

사용자 삽입 이미지
게 나타난다.
일반적으로 비각의 경우 건물처마는 겹처마 보다는 서가래만 있는 홑처마형태가 많이 사용되는데 반하여, 산호동의 경우 팔작지붕에 겹처마를 설치하여 화려하게 장식한 경우에 해당된다.
         
                               
                                                                
(선자형 서까래의 얼금단청)


단청

단청은 부재의 양끝에만 머리초문양을 그리는 모로단청이 많으며, 다음으로 기교 없이 가칠로만 마무리한 가칠단청, 그리고 가칠단청에 부재의 단획긋기를 한 긋기단청 순으로 나타났다.
산호동 효자각의 경우
모로단청보다 단계가 높은 얼금단청을 한 화려한 형식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안동김자수선생효자각: 팔작지붕, 홍살벽면과 홑처마, 가칠단청)

사용자 삽입 이미지
( 산호동 효자각: 팔작지붕, 판벽+홍살벽, 주심포+다포식, 겹처마)

산호동 효자각의 건축적 가치
일제 강점기때 지어진 전통 목구조 양식이나, 전통적 비각의 규범을 벗어난 예이다. 그리고 유교건축물은 일반적으로 별도의 장식 없이 간결하게 설치하는데 반해, 인방 중간에 설치된 소로의 장식(거북이와 도깨비 얼굴)은 전통양식 규범이 와해되는 과도기에 만들어진 형태로 보여진다. 
비석 비문의 경우 정밀 감정이 필요한 별도의 부분이라 하드라고, 비각의 경우는 전통 목구조의 구성형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는 측면에서 보존할 만한 충분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산호동 효자각을 보존하기 위해서
전문가 집단에서 상세한 감정을 통해서 시도 지정문화재로 등록을 하는 방법과 혹 중요도는 부족하다 하드라도 보존의 가치가 있다면 문화재 자료로 인정받는 방법을 통해 보존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목구조의 경우 보수시기를 놓치면 원형을 온전하게 보존하는데 어려움이 많다.
72년간의 묵은때를 씻어내고 길이 보존되길 바란다.

● 시·도지정문화재
특별시장·광역시장·도지사(이하 '시·도지사')가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되지 아니한 문화재 중 보존가치가 있다고 인정되는 것을 지방자치단체(시·도)의 조례에 의하여 지정한 문화재로서 유형문화재·무형문화재·기념물 및 민속자료 등 4개 유형으로 구분된다

- 유형문화재
건조물,전적,서적,고문서,회화,조각,공예품 등 유형의 문화적 소산으로서 역사상 또는 예술상 가치가 큰 것과 이에 준하는 고고자료

- 무형문화재

연극,음악,무용,공예기술 등 무형의 문화적 소산으로서 역사적·예술적 또는 학술적 가치가 큰 것

- 기 념 물
패총·고분·성지·궁지·요지·유물포함층 등의 사적지로서 역사상,학술상 가치가 큰 것. 경승지로서 예술상,관람상 가치가 큰 것 및 동물(서식지,번식지,도래지를 포함한다),
식물(자생지를 포함한다),광물,동굴로서 학술상 가치가 큰 것

- 민속자료
의식주·생업·신앙·연중행사 등에 관한 풍속· 관습과 이에 사용되는 의복·기구·가옥 등으로서 국민생활의 추이를 이해함에 불가결한 것

● 문화재자료
시·도지사가 시도지정문화재로 지정되지 아니한 문화재 중 향토문화보존상 필요하다고 인정하여 시·도 조례에 의하여 지정한 문화재를 지칭한다.

- 등록 문화재
지정 문화재가 아닌 근·현대시기에 형성된 건조물 또는 기념이 될 만한 시설물 형태의 문화재중에서 보존가치가 큰 것을 말함.

- 근대문화유산의 개념과 범위
‘개화기’를 기점으로 하여 ‘해방전후’까지의 기간에 축조된 건조물 및 시설물 형태의 문화재가 중심이 되며, 그 이후 형성된 것일지라도 멸실 훼손의 위험이 크고 보존할 가치가 있을 경우 포함될 수 있음.

- 비지정문화재
문화재보호법 또는 시·도의 조례에 의하여 지정되지 아니한 문화재 중 보존할 만한 가치가 있는 문화재를 지칭한다.


● 마산의 지정문화재 및 문화재 자료

- 시도유형문화재
합포성지, 의림사 3층석탑, 진해현 관아 및 객사, 만력34년 진해현 호적, 마산 광산사 목조보살좌상, 법성사 목조보살좌상

- 등록 문화재

구 마산 헌병분견대, 마산 봉암 수원지

- 문화재 자료
관해정, 몽고정, 위암 장지연묘, 경행재, 제말장군묘, 마산 성요셉성당,
마산 법성사 신중택,

Trackback 0 Comment 2
  1. 괴나리봇짐 2009.10.09 17:39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선생님의 연이은 포스팅이 문화재등록으로까지 이어지기를 기원합니다.

    • 신삼호 2009.10.09 17:57 신고 address edit & del

      정말 그렇게 되길 바랍니다.

2009.10.01 08:50

추석엔 산호공원 옆 효자비 한 번 둘러보세요

골목 효자비에서 발견한 건축적 장식의 화려함

얼마 전 산호공원에 산책 갔다가 내려오면서 우연히 건물 틈 사이로 기와지붕 용마루가 눈에 띄었다. 골목에 면하여 귀퉁이만 조금 보였다.
“도심 속에 웬 한옥이 있지 ?”하고 내려가 보았다.


▲ 엄청난 위용을 자랑하는 일주대문

정면에 일주문이 위용을 갖추고 서있었다. 좁은 공간에서 솟을대문에 붙혀져 비각이 있는데 그 건축적 디테일이 예사롭지가 않았다. 내부에 들어가서 비문을 읽어보니 효자비를 보호하기 위한 정려각 임을 알게 되었다. 정려란 나라에서 충신·효자·열녀를 칭찬하여 그들이 살던 마을의 입구에 세우던 문이나 비로서 이 동네에서 유명한 효자를 기리는 비각이었다.

보통 시골의 마을 어귀에 신도비나 효자, 열녀비가 서있는 경우는 많이 보았는지라, 도심 속에 효자비가 있다는 사실이 반갑기도 하고, 그 건축적인 용모 또한 많은 볼거리를 가지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정려각은 비석을 보호하기 위한 비각만 있는데 반하여 산호동의 정려각은 앞에 일주대문 추가로 설치함으로써 후손들이 정성을 최대한 보여주기 위해 화려하게 꾸민 것 같았다.

건축적 장식의 화려함을 하나 하나 살펴보면...

먼저 일주문은 기둥이 1열인 대문의 형식으로 폭은 한 칸임에도 불구하고 상부의 공포(기둥 위나 기둥사이에 지붕면을 떠받히는 구조재 역할과 장식을 겸한 부분)는 화려함의 극치를 이루고 있었다.


▲ 연꽃 모양의 화려한 공포장식


처마를 내미는 면이 기둥간격 보다 서너배 되는 지붕면을 받치기 위해 방사형으로 4단 내민 구조로 되어있었다. 지붕처마는 원형의 굴도리와 네모난 민도리를 내민 2단 겹처마의 형식을 띠고 있었다.내민 부분은 화려한 연꽃모양과 줄기부분을 상세하게 깎아서 단청이 칠해져 있으며 서가래와 처마 밑판에도 기하학적 문양으로 장식이 아주 화려해 보였다.


▲ 공포와 화려한 단청의 서가래 장식


특히 기둥위의 공포사이에 있는 소로(기둥사이 보 중간에 설치되어서 지붕의 중량을 받혀주는 장식재)는 장수를 상징하는 거북이 위에 귀여운 도깨비 얼굴로 장식되어 아주 재미있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었다.

▲ 인방보위에 얹혀진 거북이 등을 탄 도깨비 얼굴


정려각은 정면2칸, 측면 1칸으로 되어있었고 현판/편액은 孝閣이라고 적혀있었다. 내부에는 2개의 비석이 놓여있었다.

▲ 정면2칸 측면1칸의 정려각


▲ 비각 내부의 효자비

내부 두 개의 비석에서 하나는“孝子 金海金公重呂彰積碑”으로 적혀있고, 다른 하나는 “孝子金海金公善文彰積碑”로 비문이 새겨져 있었고 배면에는 상세한 치적내용이 적혀있었다.

공포는 정면과 측면에 세 개씩 설치되어 대문에 비해 훨씬 화려하게 장식되어있었다. 코너부분의 공포형태는 연꽃 문양 상단에는 닭머리 모양의 장식과 대각선 방향으로는 용이 여의주를 물고 있는 형상을 조각하여 단청칠이 되어있었다.

▲ 공포상단에 여의주를 물고있는 용과 닭머리 장식


아쉬운 점은 정려각 주변에 담장이 쳐져 있어서 일부러 들어가기 전에는 목조구조의 화려한 장식을 볼 수 없다는 점이다. 그리고 주변에는 잡풀이 무성하여 관리상의 아쉬움이 남았으며, 비각 뒤편에서는 불을 지핀 흔적들이 남아있어서 자칫하면 화재의 위험도 있을 것 같았다.

▲ 주변의 담장과 무성한 잡초는 효자비 관람을 어렵게 하고 있다


혹시 하는 마음에 해당 동사무소에 전화를 해보았더니, 현재 지방 문화재로 등록되어있지 않아서 문중에서 관리를 하고 있다고 한다. 문중의 소유라도 문화재로서 보호할 가치가 충분히 있을 것 같았다.

일주대문 앞에 약간의 자투리 공간이 남아있었다. 가능하다면 이 부분을 쌈지공원으로 만들고 담장을 투시형으로 만들어서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즐겁게 방문할 수 있도록 하였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왕이면 대문 용마루의 훼손된 기와도 보수하고, 비문을 해석하여 정문 앞에 조그만하게 설치 해둔다면 효자비의 원래 목적인 교훈적인 효과를 발휘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효자비의 위치는 용마고등학교 뒤편 언덕에 위치하고 있으며, 주소는 산호동 530-1번지이다.

Trackback 0 Comment 9
  1. 괴나리봇짐 2009.10.01 09:58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전문가적 시각이 확연히 드러나는 포스팅이네요.
    일일이 전화해서 확인하는 기자정신까지!
    정말 선생님 말씀대로 쌈지공원도 만들어지고,
    반듯하게 잘 관리된다면 명소가 될 것 같습니다.^^

    • 신삼호 2009.10.01 11:19 신고 address edit & del

      잘 관리만 한다면 좋은 문화자산으로 활용할 수 있으리라 는 생각이 듭니다.

  2. 김주완 2009.10.01 11:48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멋진 걸 발굴하셨습니다. 저도 꼭 한 번 가봐야겠습니다.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아차! 이 아까운 글을 비로그인 상태에서 추천하고 말았네요. 나중 집에 가면 한 번 더 해야겠습니다.

    • 신삼호 2009.10.01 11:53 신고 address edit & del

      잘 가꾸어서 보존되도록 김기자님이 힘좀 쓰십시오

  3. 허정도 2009.10.01 13:17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틀리지 않네요.
    앉으나 서나 건축과 도시 문제에 대한 관심을 끊지 않는 신삼호 씨의 눈에 이 보물 덩어리가 띄었군요.
    수많은 사람들이 이 건물을 보고 그냥 지나쳤는데 말입니다.
    재미 있었습니다.
    더 세밀히 조사해봐야겠지만, 얼핏 보기에는 필자 말처럼 문화재로 보호할 가치가 있는 것 같네요.

  4. 2009.10.01 17:47 address edit & del reply

    비밀댓글입니다

    • 신삼호 2009.10.01 22:48 신고 address edit & del

      현재 비문 내용 해석을 부탁해 놓았읍니다. 내용은 차후에 소개할 예정입니다.
      건축적으로는 규모나 용도에 비해 너무 화려한 장식을 사용한 특이한 유형인 것 같읍니다.
      그리고 정려각의 건물 년령이 최소 1세기는 넘어보입니다. 목구조와 단청의 상태로봐서는요---
      암튼 비문세운 시기와 내용이 확인하면 구체적인 상황이 파악될 것 같읍니다.

  5. 林馬 2009.10.01 21:30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어릴적 시골에서 많이 봐왔던 비석이지만 설명을 곁들어 감상하니
    정말 아름답고 웅장합니다.

    요즘은 이런 건축물 정말 보기드물지요.

    고건축 용어도 새롭고요.
    여기와서 건축관련 공부도 좀 해야겠네요.

    유심히 보지않으면 놓치기쉬운 것을 세삼 그 의미와 함께
    보게되어 새롭습니다.

    즐겁고 풍요로운 한가위 되십시요.

    • 허정도 2009.10.01 22:42 신고 address edit & del

      林馬님 반갑습니다.
      한국 고건축에도 관심이 많으시네요.
      말씀하신대로 상당히 가치 있는 건축물 같습니다.
      추석 잘 보내시고 앞으로는 좋은 일만 있기 바랍니다.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  1) 고대에서 조선시대까지 - 1

오늘부터는 <경남지역 주거변천사>를 포스팅하겠습니다. 6~7년 전에 『경남도사』에 싣기 위해 간략히 쓴 글인데 출판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 블로그에 올립니다. 어차피 공유하기 위한 글이니 이해하리라 생각합니다. 한반도 동남부에 ..

기억을 찾아가다 - 25 (마지막 회)

25. 3·15의거에 대한 기억 「그날 나는 ‘극장 구경 시켜주겠다’는 주무돈이란 동네친구의 호의에 끌려 10리 가까이 되는 길을 걸어 ‘시민극장’으로 갔다. 그때 나는 대학입시에 낙방한 직후라 의기소침해 있던 상황이었다. 우..

기억을 찾아가다 - 24

24. 이승만 행사 - 독립협회와 청년 이승만, 노인잔치...... 내 고등학교시절의 어느날 동회 서기가 들고온 책자를 잠시 훑어본 기억이 남아있다. ‘한국 정치인 99인집’이란 제목이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이승만편이 현격히..

기억을 찾아가다 - 23

23. 떠돌이들, 좀도둑 전쟁이 끝나자 대다수의 사람들은 고향으로 돌아들갔지만, 상당수의 사람들은 남아있었다. 좌우갈등의 와중에 있었던 몸이라 돌아갈 수 없는 처지였다고 들은 문씨 같은 사람들도 있었는가 하면, 가봤자 땅뙈기 ..

기억을 찾아가다 - 22

22.기합, 주먹자랑, 몸단련 중학교시절에도 조금은 의식되었지만 신경을 곤두세울 정도는 아니었었는데, 고등학교에 들어가자 그 문제들은 신경의 상당부분을 자극하여 행동거지의 상당부분을 조종하고 지배할 정도로까지 작용했다. 소위 ..

공간의 재탄생 - 재생 건축 '선유도' 02

지난주에 이어 녹색 기둥의 정원 에서부터 선유도 이야기를 이어 나가보도록 하겠습니다. - 녹색 기둥의 정원 정수지의 콘크리트 상판 지붕을 들어내 기둥만을 남겨 만들어진 이 정원은, 선유도 이야기관 의 설명에 의하면 ‘휴식과 ..

기억을 찾아가다 - 21

21. 동(洞) 대항 줄다리기대회 ‘마산시 동 대항 줄다리기대회’가 시작된 건 초등학교 때였던 것 같은데, 내가 몇번 구경한 건 중학교 때였다. 대회 장소는 주로 무학초등학교였다. 마산의 30여 동이 토너먼트로 겨루어 하루에 ..

공간의 재탄생 - 재생 건축 '선유도' 01

서울 한강변의 대표적 공원 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곳 중에 선유도가 빠지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원래 거기에 그렇게 있었던 장소로 기억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아직 직접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선유도 공원이 ..

기억을 찾아가다 - 20

20. 아이스케키 아이스크림이나 팥빙수도 있었지만 수요가 많지는 않았었다. 학교 앞이나 시장 입구 등에 리어카를 세워놓고 수제로 만들어 파는 정도였다. 소금 뿌린 얼음 통을 손으로 돌려 냉각시킨 아이스크림은 즉석에서 고깔과자 ..

안상수 시장은 철거민의 눈물 닦아주시라

설 연휴가 끝난 다음 날, 나는 한 언론사의 취재에 동행해 재개발로 철거 중인 마산 회원동 일대를 다녔다. 내가 태어난 곳이고 서른까지 산 곳이었다. 지금도 매일 두 번씩 지나는 곳이기도 하다. 그날 나는 몰상식과 몰염치의 밑..

기억을 찾아가다 - 19

19. 영화, 만화, 잡지 초등학교 6학년 때 단체로 시민극장에 ‘성웅 이순신’을 보러 갔다가 실망했던 기억이 있다. 활동사진이 아니고 정지된 그림(슬라이드)이었기 때문이다. 중1때 문화동 쯤에 있었던 제일극장에서 본 애정(哀..

공간의 재탄생 - 재생 건축 intro.

세 달 가까이 이어져 왔던 '건축의 외형' 에 이어, 세월의 흐름에 따라 방치되고 버림받게 된 건축에 새 삶을 불어넣는 '재생 건축' (regenerative architecture) 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이어 나가볼까 합니..

기억을 찾아가다 - 18

18. 바냇들, 부림시장 정전 다음해 진학한 마산서중(전쟁 중인 1951년 9월 1일 6년제 마산공립중학교가 3년제 마산고와 마산서중으로 분리되었다. 마산서중이 현재의 마산중학교로 교명을 변경한 것은 1955년 5월 7일이었다..

기억을 찾아가다 - 17

17. 공놀이, 헌병사령부 축구팀 우리 어릴 때 겨울 빈 밭에서 새끼로 동여맨 짚 뭉치를 차고 놀던 기억이 있고, 간혹 있은 잔칫집에서 나온 돼지 오줌보에 물을 넣어 차고 놀던 일도 어렴풋이 기억의 한 자락에 남아 있다. 형들..

기억을 찾아가다 - 16

16. 광복절 행사와 우리들의 영웅 초등학교 때도 광복절 기념 체육대회가 있었지만 참여 정도가 미미해서 별로 기억나는 것이 없다. 중학생이 되어 응원군으로 참여하면서 운동경기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되고, 그러면서 선수들의 면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