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2017.09.25 00:00

고지도로 보는 창원 26. - 진해현 지방지도

▮ 고지도로 보는 창원 26. - 진해현 지방지도  

진해현 地方地圖/ 필사본(회화식)/ 1872

- 19세기 중반 이후 집권한 흥선대원군에 의해 1872년 제작된 지도이다. 흥선대원군은 중앙집권적 정치체제를 확립하기 위해, 군제를 정비하고 재정을 확보하기 위해 지방의 실정파악은 시급한 과제였고 이을 위해 1871년 전국적인 읍지 편찬사업을, 이듬해인 1872년에는 전국적인 차원의 지도제작 사업을 추진하였다. 조선시대 관찬지도 제작사업의 마지막 성과로 평가되고 있다.

지도의 구성은 중심이 되는 읍성을 지도 중심에 크게 배치하고, 주변에 도로망과 산세, 물길을 표현하고 있다. 진해읍성은 남북을 가로 지르는 4개의 물길 사이에 읍성이 위치하고 있어서 우선 물길부터 소개하고 도로망에 의해 마을들이 나타나고 있다.

 

물길을 살펴보면

읍성 우측의 하천은 입곡저수지에서 내려오는 태봉천이다.

읍성 좌측의 하천은 3개의 줄기가 합류하여 내려오고 있다. 좌측의 물길은 진북면 인곡 및 정곡저수지에서 내려오는 인곡천이며, 가운데 물길은 영학리의 학동 저수지에서 내려오는 덕곡천이다. 우측 하천은 여항산과 광려산 사이를 가로지르는 진동천이다.

가장 왼편의 하천은 진전면에서 내려오는 진전천이다.

 

도로망의 구성을 살펴보면

읍성의 동문을 통과한 길은 태봉천을 따라 상류로 올라가다가 입곡면에 이르러 칠원계(구산면)를 지나 창원부로 향하는 길이다.

서문을 빠져나온 길은 진동천을 따라 상류로 거슬러 올라 함안군 여항면 쪽으로 향하는 길이다.

남문을 나온 길은 마을의 보호수림인 서림을 통과해 진동천을 통과해 북면을 경유하여 서면을 지나 진전천을 따라 우회전하여 진주로 가는 길이다.

이곳에서 진전천을 넘어 직진하는 길은 고성으로 향하는 길이다.

인접 군현으로 향하는 길은 충분히 설명이 된 듯하다. 그런데 동면일대와 서면에 있는 마을로 향하는 길은 나타나지 않는다.

 

자연지리 조건을 살펴보면

진해읍성의 주산은 도쪽에 있는 鷲山이다, 현재 교통마을 뒷산으로 해발은 400미터이며, 현재 산의 이름은 없는 상태이다.

서면의 중앙에 있는 牛山은 현재 율티면 뒤에 있는 해발 200미터의 낮은 야산이다.

북측면에 함안을 경계로 여항산이 있으며, 창원부와 경계하는 곳에 광산이 있다.

 

읍성의 배치를 살펴보면

동서남 방향으로 3개의 대문이 설치되어 있으며, 중안에 관아를 배치하고 민가들이 다수 표현되어 있다.

읍성주변에 보호수림대인 동림과 서림이 표기되어 있으며, 남문 아래 ‘洋夷斥和碑’가 표기되어 있다. 대원군이 설치한 척화비중 하나로 보인다.

읍성 주변 건물로는 읍성 서문 태봉천 건너편 동면에 향교와 양사제, 동면사창이 설치되어 있다.

북면에는 려제단과 사직단, 북면사창이 설치되어 있다. 북면에서 상류로 올라가면 상령역이 있으며, 馬堂은 역원에서 관리하는 마구간으로 보인다.

서면에는 우산 아래 성황당이 설치되어 있으며, 어변정과 선소가 인근에 위치하고 있다. 또한 북측 임곡리에 權氏旌閭가 설치되어 있다.

사찰은 의림사가, 봉수는 취산아래 봉수(가을포)가 표기되어 잇다.

 

지방지도에 포함된 내용을 자연지리와 인문지리로 구분하여 정리하면 다음 표와 같다.

구분

소분류

명 칭

행정

동리명

 

-동면, 서면, 북면

古縣里, 谷安里, 敎洞, 求禮里, 斤谷里, 錦山里, 內浦里, 多龜里, 大谷里, 大峙里, 大坪里, 道萬里, 東田里, 동촌, 木花里, 鳳谷里, 夫山里, 社洞里, 서촌, 船頭里, 城山里, 小浦里, 時落里, 巖下里, 鹽田里, 盈谷里, 永洞里, 禮谷里, 月安里, 栗峙里, 義谷里, 耳明里, 梨木里, 林谷里, 場基里, 鼎谷里, 酒島里, 竹田里, 倉浦里, 秋谷里, 塔洞里, 胎封里, 入谷里, 平村里, 鶴洞里, 檜洞里

46

자연지리

산천, 고개

匡山, 餘航山, 牛山, 鷲山,

4

島嶼, 나루터

蓋坐島, 弓島, 大水牛島, 小酒島, 松島, 水牛島, 羊島, 燕尾島, 猪島, 錢島, 竹島

11

인문지리

읍성

 

 

교육

社稷壇, 성황단. 養士齋, 勵祭壇, 鄕校

5

사찰

義林寺

1

鎭堡

禦邊亭, 전선,

2

역원, 烽燧

봉대, 常令驛

 

고적

權氏旌閭, 東林, 馬堂, 鳳橋店, 西林, 洋夷斥和碑

6

기타

東面社倉, 북면사창, 서면사창, 蓼場(蔘場), 이일장시, 칠일장시, 統倉

7

 

50개에 달하는 마을 명칭과 위치가 표기된 유일한 지도이다.

신고
Trackback 0 Comment 0
2017.06.26 00:00

고지도로 보는 창원 13. - 창원부 조선지도

▮ 고지도로 보는 창원13. - 창원부 朝鮮地圖

 

창원부 조선지도(奎16030)/ 필사본(방안식)

 

- 지도 개요 : 본 지도는 전라도를 제외한 함경도, 평안도, 강원도, 황해도, 충청도, 경상도의 고을 순서대로 1책에서 7책으로 묶여있는 지도책이다.

목차 부분에 ‘備邊司’라는 도장이 찍혀있어, 비변사에서 보관하며 사용하던 지도였음을 알 수 있다. 지도의 제작시기는 1750년에서 1768년 사이에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모든 지도는 4.2cm의 方案 위에 그려져 있다. 이 방안은 縮尺의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전국 모든 고을이 동일한 축척 아래 그려져 있는 보기 드문 지도책이다.

동일한 정보는 동일한 기호로 표시하는 범례도 고을의 읍치와 감영·병영·수영, 종6품의 察訪이 파견된 찰방역, 군사시설인 鎭堡와 烽燧, 稅穀의 저장과 운반을 위한 倉庫 등의 7개 부분에서 모든 지도에 동일하게 적용되고 있다. 일반 고을의 邑治는 붉은색의 큰 동그라미로 표시하였으며, 성곽이 있는 경우는 검은색 테두리의 원을 하나 더 그려 넣었다. 각 고을의 監營은 붉은색의 정사각형으로 표시하였으며, 성곽이 있는 경우에는 성곽 모양을 표시하였다.

兵營과 水營은 파란색 사각형으로 표시하였으며, 성곽이 있는 경우에는 파란색 테두리의 사각형을 하나 더 그려 넣었다.

종6품의 察訪이 파견된 찰방역의 경우는 붉은색의 작은 동그라미로 표시하여, 고을의 읍치와 구별할 수 있도록 하였다. 군사시설인 鎭堡는 푸른 색 마름모(다이아몬드) 모양으로 통일하였으며, 倉庫는 건물 모양으로, 烽燧는 불이 펴져 있는 봉수 모양으로 표시하였다.

 

 

 

읍치를 중심으로 16개 면(運)이 표기되어 있다. 북1,2,3운, 서1,2,3운, 동1운, 동2운 2개, 동3운, 신풍(면), 도하1,3운, 남1,2,3운으로 나뉘어져 16개면이 나타나 있다.

(조선후기에 面 명칭의 다른 표기로 運, 坊, 社 등을 사용하였다.)

중심이 되는 읍성은 읍치를 나타내는 붉은 색 동그라미로 표기되어 있으며, 북측에 주산에 해당되는 檐山이 자리하고 있다.

 

자연지리 조건을 살펴보면

북측방향으로 칠원계에 면하여 茂積山이 있으며, 아래로 철마봉과 백월산이 있다. 북면으로 넘어가는 고개길로 堀峴이 있다.

서측 방향으로 구병영성의 진산에 해당되는 청룡산이 있으려 아래로 두척산과 성황봉대가 연이어 있으며, 서2,3운에 걸쳐 匡山, 生蕫山이 이어져 있다. 생동산을 마주한 해안변에 船頭山이 있으며, 이곳에서 남측방향 진해계와 칠원계에 면하여 고개길 大峙가 있다.

동측 방향으로 진산인 첨산에 이어져 염산, 봉림산, 전단산, 불모산이 남측방향으로 이어져 있다.

섬은 합포에 猪馬島(현재 저도)로 표기되었다.

주요 건조물로 읍성 아래 盤倉, 남측 합포에 면한 곳에 海倉, 漕倉이 건물그림으로 표기되어 있다. 역원으로 자여역은 찰방이 파견된 역을 나타내는 붉은 원이 그려져 있으며, 이 외에 안민역, 근주역이 있다.

이 외에 구병영, 회원서원이 서1,2운 지역에 표기되어 있다.

주요 도로망은 남측으로 웅천으로 향하는 안민령 방향 길고, 자여역을 지나 김해부로 향하는 길, 굴현을 지나 청룡산을 넘어가는 칠원으로 향하는 길, 남서방향으로 진해로 향하는 4방향 길이 표기되어 있다..

주요 나루터로는 북측으로 낙동강 변에는 분2운 지역에 孫哥津이 있다.

봉수는 남측방향 해안변에 떨어져 잇는 내포에 여음포와 두척산 아래 성황산포 2개가 나타나 있다.

 

지도에 포함된 내용을 자연지리와 인문지리로 구분하여 정리하면 다음 표와 같다.

 

구분

소분류

명 칭

행정

면.리

북1,2,3운, 서1,2,3운, 동 1,2,2,3운, 남1,2,3운, 도하1,3운, 신풍(면)

16

자연지리

산천, 고개

무적산, 철마봉, 백월산, 첨산, 염산, 청룡산, 두척산, 광산, 생동산, 선두산, 봉림산, 전단산, 불모산

대치, 굴현, 안민령

16

島嶼, 나루터

저마도, 손가진

2

인문지리

읍성

읍치

1

교육

회원서원

1

사찰

-

-

역원, 烽燧

자여, 안민역, 근주역,

여음봉, 성황산봉

5

기타

盤倉, 海倉, 漕倉, 古兵營

4

 

전체 지도의 구성이 매우 간결하다.

먼저 수계를 나타내는 형식으로 물길과 해안은 청색으로, 산세는 산형으로 방향성만 묘사하고 청색을 채색하여 산세의 흐름을 나타내었으며, 외방에 면하는 주요 간선도로는 적색으로 표기하였다.

몇가지 범레, 읍치는 큰 붉은원, 찰방파견 역원은 작은 붉은 호를 사용하였으며, 각종 창고는 집그림으로 묘사하였다.

신고
Trackback 0 Comment 0
2016.03.07 00:00

김형윤의 <마산야화> - 77. 광산 약탈에 대한 항거

77. 광산 약탈에 대한 항거 / 한자가 많아 해독이 쉽지 않습니다(옮긴이)

 

개항 이래 일본인들은 마산포 일대의 토지 소유권의 약탈과 아울러 광산권까지도 침탈해 가게 되었다.

마산에 이웃한 창원군 북면에 있는 구룡산 아래 고암동(古巖洞) 동광(銅礦)20년의 역사를 가진 유명한 것이었다.

 

<창원군 의창구 북면 고암리 위치 / 아래 산이 룡산>

 

이를 탐낸 일본인 마목진차랑(馬木辰次郞)이라는 자가 전 광무감리(礦務監理) 김위섭과 결탁하여 정부에도 알리지 않고 자기들 맘대로 19016월부터 기계와 재력을 투입하여 약 5년 한()으로 채굴을 시작하였다.

이를 탐지한 내장원(內藏院)19022월 철광(撤礦)을 명령하였다.

마목진차랑(馬木辰次郞)은 투자를 구실로 이 명령을 듣지 않았다. 이 사실은 다음과 같이 감리보고를 통해 잘 알 수 있는 것이다. 

 

현접광무위원(現接礦務委員) 서병정 보고하온즉 내개본부경내(內開本部境內) 구룡산하(九龍山下) 고암동(古巖洞) 동광(銅礦)은 개채지(開採地) 20여 년이온바 거년(去年) 6월 전광무감(前礦務監) 김위섭이 일인(日人) 마목진차랑(馬木辰次郞)를 청래(請來)하와 불복정부(不服政府)하옵고 기계와 재력으로 5년 약한(約限), 개채(開採)이옵더니 동년 2월 내장원(內藏院)에서 이를 탐지하고 철광(撤礦)하라 하오니 일인 마목(馬木) 왈 개채기삭(開採幾朔)에 인비(人費)가 지위(至爲) 8천여 원이고 종불폐지(終不廢止)오며 전관개채(專管開採)이온즉 자()에 보고하오니 조량(照諒)하시어 일인 마목진차랑(馬木辰次郞)이 김위섭 공문을 거()하와 본부(本府) 구룡산 동광고용(銅礦雇用)을 불폐(不廢)하므로 외부(外部)에 거보(擧報)하시와 조량(照亮)하시어 여하조치(如何措置)를 훈시(訓示)하심을 복망(伏望).

광무(光武) 4821 

창원감리 한창수

  의정부찬정외부대신(議政府贊政外部大臣) 박제순 각하

 

김위섭과 마목진차랑(馬木辰次郞)의 장정조약(章程條約)을 보면 다음과 같다. 

 

장정조약(章程條約)

1. 구룡산 반야동(班也洞)은 물론, 은동광(銀銅礦)하고 피차(彼此) 자본전(資本錢)은 각출기력(各出其力)하야 이해(利害) 동사(同事)

1. 상납세단(上納稅段)은 대기은동맥소채(待期銀銅脉所採)하야 의장마련(依章磨鍊)이되 수기도근수(隨其稻斤數)하야 무루(無漏) 정납사(正納事)

1. 재력단(財力段)은 이무위유약반폐칙상납(以無謂有若半廢則上納)은 폐불폐문(廢不廢門) 변납사(辨納事)

1. 가신일인식(可信一人式) 차정감동사(差定監董事)

1. 년한칙이성역소치(年限則以盛役所致)5년 정약(定約) 이약위여광(而若爲與礦)이면 세납지수자동소(稅納之遂自銅所)로 자비태가사(自備駄價事)

1. 동석소채(銅石所採)가 수지과다(數至夥多)하야 약위마항취설(若爲馬港吹設)이면 이동철칭근수(以銅鐵稱斤數)로 십분일례(十分一例)

1. 동석(銅石)은 이석칭수(以石稱數)로 위주(爲主)하고 위선이십분(爲先以十分)에 일이례(一二例)하야 추봉발매대전(推捧發賣代錢) 이상납(而上納)하되 태가(駄價)는 역자동소(亦自銅所)로 담저사(擔著事)

1. 대기재력변래(待其財力辨來)하야 각정명목사(各定名目事)

광무(光武) 484

경전양도(慶全兩道) 각광감리(各礦監理) 김위섭

마목진차랑(馬木辰次郞) 중촌연송(中村年松) 귀하

 

마목진차랑(馬木辰次郞) 등은 조선정부의 철광 명령에도 아랑곳없이 그들의 권리옹호 기관인 현지 일본 영사관의 힘을 배경으로 끝끝내 상기 불법계약을 강행하여 채굴하였던 것이니 이 사실은 다음과 같은 감리보고(監理報告)가 그간의 사정을 잘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내장원(內藏院) 4호 훈령을 봉접(奉接)하난즉() 내개(內開)에 본부소재동광지설치(本府所在銅礦之設置)는 즉칭노수고(卽稱努需故)로 송감리파(送監理派) 파원(派員)하야 의식취세(依式取稅)가 비유실효연후(俾有實效然後)에 기과봉지본의(其過奉旨本意)어늘 세무기효(稅無其效)하고 이귀타처(利歸他處)가 사심아연(事甚訝然)이기로 탐기리허(探其裏許) 칙해광무감리(則該礦務監理)와 위원서병정(委員徐丙鼎)이가 불유본원(不由本院)하고 여일인(與日人) 마목(馬木)으로 사자성약(私自成約)하야 무난천채운자(無難擅採云者)가 시기성설평(是豈成設平)이 차불용불사정내기(此不容不査正乃己)기로 해감리(該監理)를 하송(下送)하며 자용발훈(玆用發訓)하니 도즉상탐근유(到卽詳探根由)하야 일인여서가지상약문기(日人與徐哥之相約文記)를 추멱상송(推覓上送)하야 이위처변당요등인(以爲處辨當要等因)인바 차()를 준()하와 해광무감리(該礦務監理) 김위섭과 위원 서병정과 일인 마목(馬木)을 삼조질사(三造質査)하야 근유(根由)를 상해(詳該)한 즉 광무감리(礦務監理) 김위섭이가 동년 84일에 일인 마목(馬木)과 서병정에게 본부(本府) 북면 구룡산 반야동(班也洞) 양광(兩礦)을 인허(認許) 채광하라는 훈령과 장정약조(章程約條)를 날인계약(捺印契約)한 사()가 확실할뿐더러 김위섭 사실지장(査實之場)에 역분명자복(亦分明自服)하옵고 서병정 따윈 거전지관하(渠全之管下)하야 지청기지휘이기(只聽其指揮而己), 성약문자(成約文字) 중에는 실무주관간보(實無主管干涉)이고 마목(馬木)따윈 자사아기여귀국내장원소차광무감리(自私我旣與貴國內藏院所差礦務監理)로 호상계약(互相契約)하였은즉 아정부명령지전(我政府命令之前)에는 해계약서(該契約書)를 이불가환납(理不可還納)이인 차해계약서(且該契約書)가 금재아영사관(今在我領事館)하니 조청아영사관조치위가(照請我領事館措置爲可) 이자기정부(而自己政府)로서 기욕환추칙양년소입(期欲還推則兩年所入) 자본급기계제비(資本及機械諸費) 합의(合議) 일만팔천원(一萬捌千元)이니 약자기정부(若自己政府)로서 환상차비(還償此費)하면 즉당해약운운(卽當解約云云)이옵고 소무환납서지의(小無還納書之意)하오니 수유지협지(雖誘之脅之)하야 백계요환(百計要還)이나 일직강경(一直强硬)하야 돈무동령(頓無動令)하오니 차계외국인(此係外國人)즉 실난사력환탈(實難私力還奪)이온바 대저광무감리(大抵礦務監理) 김위섭은 막중국광(莫重國礦)을 천허외인(擅許外人)하니 구궐죄상(究厥罪狀)하면 합치중피(合寘重辟)이오나 본감리불가천변(本監理不可擅辨)이옵기 해감리소위훈령급장정약조등본(該監理所謂訓令及章程約條謄本)을 호부보고(號附報告)하오니 사조(査照) 처변(處辨)하심을 복망(伏望).

광무 41128

창원감리 한 창 수

의정부찬전외부대신(議政府贊政外部大臣) 박 제 순 각하

 

또 상기 감리보고 부기(附記)동석출구사(銅石出口事)는 루박힐(屢駁詰)타가 해일인(該日人) 마목(馬木)이 잠솔모군(潛率募軍)하고 장제이거(裝制以去)……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보면 이들이 불법무도하게 행동하였는가를 알 수 있다.

이 같은 일인들에 의한 우리의 주권 침해는 당연지사로 인민의 분노를 초래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니 19016월 맹감역마중군여당(孟監役馬中軍與黨)에 일인 마목(馬木) 습격사건은 이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 사실은 다음과 같은 감리의 보고를 통하여 알 수 있거니와 이때 마산 일본 영사는 이들의 체포를 감리에 독촉하였던 것이다. 

본항(本港) 부근 군()에 초적(草賊)이 창궐(猖獗)하야 소위맹감역(所謂孟監役) 마중군당여중(馬中軍黨與中) 수삼한(數三漢)은 현기파순제득(現己派巡提得)하와 방엄수취초(方嚴囚取招)이옵건과 우접주항(又接駐港) 일본영사 판전조개(坂田照開)에 작년 6월 일어(日於) 창원구룡산아방인(昌原九龍山我邦人) 마목건삼품략탈지초적(馬木健三品掠奪之草賊) 마중군(馬中軍) 맹감역배근경유가(孟監役輩近頃愈加) 폭행 이경찰관지력(以警察官之力) 응무이체포(應無以逮捕) 청번진남진위대중(請煩鎭南鎭衛隊中) 상당병원(相當兵員) 일시파유지급(一時派遺之急) 체포등인(逮捕等因)이온바 준사해적(准査海賊) 괴마(魁馬) 맹양한(孟兩漢)이 솔당수십(率黨數十)하고 각지흉기(各持凶器)에 동섬서홀(東閃西忽)하야 혹방화인가(或放火人家)하며 혹창략전재(或搶掠錢財)하야 근경(近頃)에 소취어밀양수산장등지(嘯聚於密陽水山場等地)이온바 해지방(該地方)이 여본항(與本港)으로 접양심근(接壤甚近)하와 장유만연지려(將有蔓延之慮)이온즉 부득불급금체포(不得不及今逮捕)이오나 이순검약간력(以巡檢若干力)으로 불유불능초포(不惟不能剿捕)라 내반수기(乃反受其) 위해(危害)이옵기 자()에 보고하오니 조적(照積)하오셔 이조원사부(移照元師府)하시와 사즉전식우(使卽電飾于) 진남진위대(鎭南鎭衛隊)하야 병정한십명(兵丁限十名)을 파유후(派遺後) 본항(本港)하야 사순검(使巡檢)으로 합력(合力) 체포(逮捕)케 함을 복망(伏望).

광무 6613

창원감리 한 창 수

의정부찬정외부대신서리 철도원총재(鐵道員總裁) 유 기 환 각하<<<

 

 

 

 

 

 

신고
Trackback 0 Comment 0
2010.09.13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23) - 개항기

흰 천 위에 그려진 세 개의 광산

<마산소재 광산경계도>
1900년 직후(규장각추정)/ 외국인(규장각추정)/ / / / 규장각


110년 전에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 지도 한 장 소개합니다.
마산포 주변의 마산만 일대 지도인데, 흰 천 위에 그려져 있으며 규장각에서 소장하고 있습니다.

규장각의 설명에 의하면,
제작자는 알 수 없지만 지도에 러시아 로마노프왕실의 문장이 새겨진 도장이 찍혀 있고 설명이 영어로 되어 있는 점으로 보아 영어권 국가에서 작성한 것 같으며, 제작시기는 마산포 사건과 마산개항시기 등으로 미루어볼 때 1900년 직후라고 했습니다.

로마노프왕실 문장 옆에 적힌 정대유(丁大有)는 이 지도가 제작될 당시에 활동했던 서화가(1852~1927)입니다. 매화를 많이 그렸고 예서(隸書)와 행서(行書)에 능했던 분입니다.
그가 왜 이 지도에 이름을 올렸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혹시 그가 이 지도를 흰 천 위에 모사한 장본인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광산을 표시하기 위한 지도라 그런지 내용이 너무 간략합니다. 하지만 해안선을 정확하게 표시되어 있어서 매립하기 전의 자연상태 마산포 해안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지도에 MASANPHO(마산포)라고 기재된 취락이 개항기에 형성되어 있던 지금의 남성동과 창동일대의 원마산입니다.
각국공동조계지(신마산)는 경계만 간략히 표현되어 있습니다.

왼쪽 무학산에서 마산만으로 흘러드는 세 개의 하천이 표시되어 있습니다.
제일 윗쪽이 회원천과 교방천이 합져져 오동교로 내려오는 하천이며, 중간 것이 마산시청 옆을 흐르는 장군천입니다.
제일 아래쪽 신마산 경계 복판을 지나는 하천은 옛 마산시장 관사 앞의 창원천(대곡천)입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지도에는 가포만을 둘러싸고 세 개의 광산이 표시되어 있습니다.
저 지역은 러일전쟁 직전에 러시아가 자국의 단독조계지를 시도했던 곳이기도 합니다.
광산 소재의 사실 여부는 확인해보면 알겠지만, 마산포를 둘러싸고 각축을 벌였던 당시 열강들의 아욕이 눈에 보이는듯 합니다.

광산이라고 표시해 놓은 저 세 곳을 파보면 지금도 땅 속에서 뭔가가 나올까요?

그래서,,,,
현재의 지도에 저 세 개 광산의 위치를 표시해 보았습니다.
혹시 압니까?
요즘 하늘 높은줄 모르고 치솟는 금덩어리가 저곳에 잠자고 있을지.....<<<







2010/04/08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여는 글)
2010/04/12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 - 통일신라 이전
2010/04/19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2) - 통일신라시대
2010/04/26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3) - 통일신라말기
2010/05/03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쳔사 (4) - 고려시대
2010/05/10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5) - 고려시대
2010/05/17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6) - 고려시대
2010/05/24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7) - 고려시대
2010/05/31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8) - 고려시대
2010/06/07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9) - 고려시대
2010/06/14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0) - 조선시대
2010/06/21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1) - 조선시대
2010/06/28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 - 조선시대
2010/07/05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3) - 조선후기
2010/07/12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4) - 개항기
2010/07/19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5) - 개항기
2010/07/26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6) - 개항기
2010/08/02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7) - 개항기
2010/08/09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8) - 개항기
2010/08/16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9) - 개항기
2010/08/23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20) - 개항기
2010/08/30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21) - 개항기
2010/09/06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22) - 개항기

신고
Trackback 0 Comment 0
건축의 외형 - ‘각뿔’ (Pyramid)

오늘의 주제는, 어쩌면 '각뿔' 이라는 우리말 보다 피라미드 (pyramid) 라는 영어 단어가 더 익숙한, 옆면의 형태가 삼각형인 입체도형을 소개합니다. - 기자 의 대피라미드 (Great Pyramid of Giza, 이집..

기억을 찾아가다 - 5

5. 한국전쟁기의 봉암동 Ⅲ - 미군들 우리들은 예사로 ‘할로’를 외치곤 했지만, 어른들이 인식은 많이 달랐었다. 특히 처녀들과 젊은 아녀자들에게 미군은 공포의 대상이었다. 어느 새댁은 야산에 끌려가 윤간당한 후 소나무에 목을..

건축의 외형 - '나선' (Helix or Spiral)

지난주의 주제였던 '구' (sphere) 에 이어 또 다른 3차원 형태 인 '나선' (Helix or Spiral) 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나선 형태는 자연 속에서 규모와 종류를 가리지 않고 등장하며, 직,간..

기억을 찾아가다 - 4

4. 한국전쟁기의 봉암동 Ⅱ - 미군들 미군들에 대한 이야기의 상당 부분은 필자의 졸저 『상식의 서식처』에서 빌어 오고자한다. 「피난처에서 돌아온 날부터 나는 참 신기한 것들을 많이 보았다. 귀를 막아야 할 정도의 굉음을 내며..

건축의 외형 - '구' (sphere)

<오늘부터 매주 목요일은 재미있게 디자인된 건축물들을 포스팅해볼 계획입니다> 건축을 이루는 요소라고 말할 수 있는 것들은, 건축 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이라도 쉽게 여러 가지를 떠올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외형'에 ..

기억을 찾아가다 - 3

3. 한국전쟁기의 봉암동 Ⅰ- 좌익과 피난 내 초등학교 일이학년 때 팔룡산 상사바위 근처나 불암사 근처 산먼뎅이들에 봉홧불이 올라 있는 광경을 종종 보았다. 그리고 새벽에 한길에서 붉고 푸른 삐라들도 주워보았다. <팔룡산 ..

기억을 찾아가다 - 2

2. 봉암동 형성 Ⅱ 팔용산에 수원지가 건설된 것은 1930년이었다. 처음 만들었을 때는 일인 1일 급수량 170리터 기준으로 인구 16,000명을 예상하고 만들었다가 증축을 하기도 했다. 광역상수도 확장사업이 완료된 1984..

기억을 찾아가다 - 1

오늘부터 연재하는 포스팅은 마산 봉암동(현 창원시 마산회원구 봉암동)에서 태어나 청년기까지 살았던 박호철 선생님의 기억 속에 있는 도시 이야깁니다. 한 개인의 삶에 투영된 도시의 흔적을 통해 이미 사라져 버린 우리의 과거를 찾..

핵발전소 이대로 좋은가? - 9. 신고리 5,6호기 시민참여단에게 드리는 글

원자력발전의 경제성을 이야기하면 사용후핵연료 처리비용 과소계상, 원전 해체비용과 환경 복구 비용 과소 계상 등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숨겨진 이야기가 있습니다. 바로 사고 보험 문제입니다. 자동차를 운행하면 ..

일제 강점기 신마산 혼마치(本町)

오래된 사진 한 장을 소개한다. 아래 것은 같은 장소에서 찍은 현재 사진이다. 위 사진을 현재와 비교하기 위한 사진이다. 1910년대에 촬영한 것으로 추정되는 마산 월남동 1가(현 3.15대로) 사진이다. 당시에는 혼마치(..

마산해양신도시, 대통령 말씀대로

계륵 꼴이 된 가포신항이 구체화된 것은 2001년이었다. ‘마산항 제2차 무역항기본계획’에서 20년 후 마산항 물동량이 54만 TEU가 될 것으로 예측해 성사된 사업이었다. 환경문제를 걱정하며 매립을 반대했던 시민들에게는 ‘일..

고지도로 보는 창원 27. - 칠원현 지방지도

▮ 고지도로 보는 창원 27. - 칠원현 지방지도 ● 칠원현 地方地圖/ 필사본(회화식)/ 1872 - 19세기 중반 이후 집권한 흥선대원군에 의해 1872년 제작된 지도이다. 흥선대원군은 중앙집권적 정치체제를 확립하기 위해, ..

고지도로 보는 창원 26. - 진해현 지방지도

▮ 고지도로 보는 창원 26. - 진해현 지방지도 ● 진해현 地方地圖/ 필사본(회화식)/ 1872 - 19세기 중반 이후 집권한 흥선대원군에 의해 1872년 제작된 지도이다. 흥선대원군은 중앙집권적 정치체제를 확립하기 위해, ..

고지도로 보는 창원 25. - 웅천현 지방지도

▮ 고지도로 보는 창원 25. - 웅천현 지방지도 ● 웅천현 地方地圖/ 필사본(회화식)/ 1882 - 19세기 중반 이후 집권한 흥선대원군에 의해 1882년 제작된 지도이다. 흥선대원군은 중앙집권적 정치체제를 확립하기 위해, ..

고지도로 보는 창원 24. - 칠원현 광여도

▮ 고지도로 보는 창원 24. - 칠원현 廣輿圖 ● 漆原縣 廣輿圖(古4790-58)/ 필사본(회화식) - 지도 개요 : 제작 시기는 19세기 전반 (규격은 36.8 * 28.6cm, 구성: 7책)에 만들어진 전국 군현지도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