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2017.08.21 00:00

고지도로 보는 창원 21. - 창원부 광여도

▮ 고지도로 보는 창원 21. - 창원부 廣輿圖

 

昌原府 廣輿圖(古4790-58)/ 필사본(회화식)

 

- 지도 개요 : 제작 시기는 19세기 전반 (규격은 36.8 * 28.6cm, 구성: 7책)에 만들어진 전국 군현지도집이다. 광여도 전체의 구성은 비변사 지도와 유사하다. 영조대 중반부터 계속되던 관찬 회화식 전국 군현지도집 편찬의 전통은 19세기에 사라지게 된다. 기호식 지도집의 등장으로 국가가 합리적인 윤곽을 가진 기호식 지도집을 편찬에 활용하게 되면서 과거의 회화식 관찬 군현지도집은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비변사 지도와 비교해 보면

표현방식상 비변사지도는 방안 위에 그려져 축척에 의해 거리를 가늠할 수 있는 방안식지도이다. 광여도의 경우 거의 배치형태가 동일하지만, 방안이 표기되지 않은 이유로 회화식으로 분류하였지만, 사실상 방안식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 같다.

전체 산의 배치와 읍면의 위치 등은 거의 같으나, 각 면을 연결하는 내방도로와 인접 군현으로 가는 외방도로가 생략된 것이 큰 차이다.

 

< 창원부 비변사지도>

 

- 지도 해제

읍치를 중심으로 16개 면이 표기되어 있다. 북1,2,3면, 서1,2,3면, 동1,2,3면, 부1,2면,상1,2,3면, 하1,2면으로 나뉘어져 있다.

주요건물 표기는 읍성 근처 향교, 남측 아래 향현사, 동측 방향으로 봉림사, 자여역 원해, 우곡사가 있으며 동남측 방향으로 불모산 아래 웅신사와 안민역의 원해가 있다.

북측방향으로 백월산 아래 남백암, 무릉산 아래 영천암, 서측 방향으로 두척 봉산 아래 회원서원과 해창 그리고 전선소가 표기되어 있으며, 밤밭고개(율치) 아래 월영대가, 광려산 아래 광산사가 그려져 있다.

 

주요 나루터로는 북측으로 낙동강 변에는 밀양계에 신촌진, 영산계에 주문진이 있으며 남측 반룡산봉산 아래 孫島津(孫渡津의 오기로 보임)이 웅천계에 면해 있다.

 

통신시설에 해당되는 봉수의 연결망은 웅천계 사현에서 두척산 아래 성황당 봉대와 하단에 餘浦熢 2개소가 나타나 있다.

 

 지도에 포함된 내용을 자연지리와 인문지리로 구분하여 정리하면 다음 표와 같다.

구분

소분류

명 칭

행정

면.리

부1,2면, 상1,2,3면, 하1,2면, 동1,2,3면, 서1,2,3면, 북1,2,3면

16

자연지리

산천 및 고개

광려산, 만월산, 두척봉산, 청룡산, 천주산, 무릉산, 백월산, 구룡산, 첨산, 염산, 전단산, 반룡산 봉산, 불모산

율현, 굴현, 송현, 안민령

18

海,도서

낙동강, 저도,

2

나루터

孫島津, 主勿津, 新村津,

3

인문지리

읍성

읍치

1

교육

향교, 향현사, 회원서원

3

사찰

광산사, 靈泉庵,남백암, 봉림사, 牛谷庵, 熊神寺,

6

역원 등

근주역, 안민역, 자여역, 院廨1,2,

성황당봉대, 여포봉대, 해창,

8

고적

월영대

1

 

 

창원부 광여도 地志

- 별도의 地志에 수록된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의 표와 같다.

구분

소분류

세부 내용

행정

군사

호구

- 호구수 : 7,486호

- 인구 : 27,739명 (남자 11,632명, 여자 16,107명)

 

군병

- 京各司諸色軍 : 1,213명

- 監營屬 ; 285명

- 統營續 : 1,627명

- 右兵營屬 : 837명

- 左水營屬 : 9명 반

- 金海鎭屬 : 1,088명

= 합계 5,059명

6

기타시설

- 船材封山 : 斗尺封山, 滿月封山, 社亦封山, 靑龍封山, 盤龍封山

  5

경제

量付

- 6,293結11負9束,

(전2,670결11부3속, 답3,622결60부6속)

 

實結

- 4,724속88부13속

(案田1,691결79부6속, 案沓3,034결9부7속)

 

곡물

- 元會 및 常賑米 : 38석 54석,

- 各樣雜穀 : 3,420석 (잡곡 : 1,101석, 2,319석)

- 別餉米 : 1,104석

- 監營米 : 44석, 잡곡 16,984석

- 統營米 : 1,551석, 잡곡 2,477석

- 私賑雜穀 : 3,309석

- 帖價雜穀 : 601석

- 備荒租 : 463석

- 浦項雜穀 : 1,791석

- 華山劃付雜穀 : 3,100석

- 戰兵舡價 : 65석

- 除留米 : 169석, 잡곡 1석8부

- 各樣軍作米 : 217석

- 射木作米 : 27석

- 作租 : 151석

15 

 

비변사지도에 수록된 지지내용과 동일하다. 1760년 제작된 비변사 지도와 19세기 초반사이에 약 40년의 시간 차이가 있지만, 인구 및 군사, 조세 및 경제 지표의 변동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신고
Trackback 0 Comment 0
2009.12.13 21:11

내서읍은 어디로 가야하는가?



유장근 교수의 도시탐방대, 다섯 번째 길에 나섰다.
이번에는 내서읍 지역이었다.

조선시대에 창원읍성의 서쪽지역 중 내륙 쪽은 내서(內西)면, 바닷가인 현재의 마산시내지역은 외서(外西)면이라 불렀다.
외서면은 마산부가 되어 실명(失名)했고 내서만 살아남았다.
많은 사람들에게 ‘중리’라고 알려진 내서읍에는 현재 중리, 안성리, 평성리, 호계리, 용담리, 상곡리, 원계리, 삼계리, 신감리, 감천리 모두 10개 리가 있다.


                         <1926년 조선교통도에 나타난 내서지역>

                      <1956년 한국지형일람도에 나타난 내서지역>

집결지는 중리 역,
12월 12일, 오후 1시반이었다.
탐방은 중리역을 기준으로 광려산 쪽으로만 방향을 잡았다. 아래 호계리 쪽은 시간이 없어 포기하였다.
탐방대원들의 얼굴을 밝았고, 기대감에 찬 눈빛이었다.
인원도 늘어 모두 3-40명이나 되었다.

창원대 사학과 남재우 교수가 시간을 내 해설을 맡았다.
내서읍에 아파트가 들어섰던 초기부터 최근까지 이곳에서 살았다는 게 초빙 이유였다.
“선진도시에서 살아보려고 창원으로 갔는데 통합된다니 괜히 옮긴 것 같다”는 조크로 시작된 남 교수의 내서 설명은 넓고 깊었다.

중리 역에서 길을 건너 함마대로(마산 함안 간을 연결하는 큰 길이라는 뜻 같다)를 따라 동신아파트 쪽으로 간 후 광려천을 따라 걸어 올랐다.

내서에서 이 길을 걸어보는 것은 처음.
지금까지 셀 수도 없이 와보았지만 차속에서만 옮겨 다녔지 길게 걸어본 적은 없었다.

제일 먼저 우리를 맞은 것은 동신아파트에서 흘러나오는 폐수의 악취였다.
모두 코를 막으며 불쾌감을 노출했다.
오수 우수를 분리하지 못한 결과일 터.
어디가나 이 문제에 자유로운 하천이 없다.

광려천 변의 간선도로는 자동차를 위한 도로라 걷기도 힘들었고 걸을 수 있는 조건도 좋지않아 뒷길로 들어섰다.
차로에 비해 턱 없이 좁은 보도도 문제였지만, 그 좁은 보도에 시설물이 버티고 있어서 걸을 기분도 나지 않았다.

뒷길은 괜찮은 편이었다.
오래 전부터 내서읍에 존속했던 자연마을의 흔적이 군데군데 눈에 띄었고, 산자락도 가까워 걸을 만한 분위기였다.
군데군데 아무렇게 쳐 놓은 텃밭 경계막이 분위기를 망쳤다.
학교 인근이었는데 아이들을 보더라도 어른이 할 짓은 아닌 듯싶었다.



상곡리와 삼계리를 걸으면서 그간 알지 못했던 것들을 많이 보았다.

상곡리의 서대(西臺)는 처음 보는 형식의 재단이었다. 
망국의 한을 애통하며 1937년에 세운 재단이다.
비석 곁에는 마치 나라 잃은 슬픔에 잠겨 고개를 떨군듯한 또 다른 비석 서대기(西臺記)가 있어서, 당시 식민지 백성의 비통함을 직설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삼계리에서는 잘 알려진 마을 숲(삼풍대공원)에 가 잠시 앉았다.
생태해설가인 최승미 선생이 실력을 발휘, 수종과 수령 그리고 나무에 깃든 새들에 대한 이야기를 거침없이 했고 많은 박수를 받았다.
가운데 선 느티나무는 족히 2-300년 되었다니, 망해가는 조선과 일제기와 전쟁기 등 격동의 세월을 말없이 지켜본 나무 아닌가.
공원 복판에는
‘삼풍대’ 비석 곁에는 ‘광려산 철쭉 입에 물고 삼풍대 천년 숲 바람에 땀 식히던 곳······’ 으로 시작되는 근대 마산의 대표적 시인 월초 정진업 선생님의 ‘삼풍대소사(三豊臺小史)’라는 시가 돌에 새겨져 공원을 지키고 있었다.



원래의 모습이 가장 많이 남아있는 마을은 달성 서씨 집성촌이었던 원계마을.
지형상 한쪽으로 비켜있어서 아파트단지로 개발되지 않고 단독주택지로 이용되면서 원형이 살아남은 것 같았다.
일부 담장은 원형 그대로 남아 있었다.
돌과 흙을 섞어 쌓은 이끼 낀 낮은 담들이 ‘원계마을’의 연륜을 말해주고 있었다.
스레이트 지붕이라 원형이랄 수는 없지만 초가였을 때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었다.
마을을 둘러싼 낮은 산들과 그 안에 옹기종기 어깨 맞대며 앉아있었을 집들과 집, 원계마을의 옛 모습이 상상되었다.
새로 지은 콘크리트 단독주택들의 부조화가 눈에 거슬렸다.

시간 탓에 신라고찰 광산사까지는 가지 못했다.
탐방을 끝내고 내서를 생각했다.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묻는 오래된 습관이다.

사람이 자그마치 8만 명이다.
함안군이 6만 6천 명, 의령군이 3만 명이니 내서읍 인구가 얼마나 많은지 짐작할 수 있다. 시로 승격된 밀양시 인구가 11만 명밖에 안 된다.

60년 대 이후부터 시작된 도시의 인구집중화 현상은 곳곳에 소위 주거형 인공도시를 탄생시켰다. 지금은 금싸라기 땅이 된 서울의 잠실 대단지를 시작으로 인근의 일산, 분당, 광명, 부천 등 인구100만을 넘나드는 대 도시들의 탄생배경이 모두 그렇다.
우리 지역에서는 김해시의 장유와 마산시의 내서가 대표적인 사례다.

베드타운이라 일컫는 소위 주거형 도시는 산업과 주거를 분리하는 것이 이상적이라는 도시이론에서 시작되었다.
산업지역은 산업지역대로, 주거지역은 주거지역대로 그 목적에 맞는 자연적 환경적 최적상태를 유지시킴으로서 최대의 효과를 얻기 위해 시도된 도시다.

하지만 기대했던 것과 달리 직주분리에는 많은 문제가 뒤따랐다.
엄청난 양의 자동차가 필요했고 대량의 연료가 소비되었다. 광대한 도로가 있어야 했다.
결과적으로 환경과 에너지문제 등에서 지속가능한 도시형태가 아니라는 비판을 받게 되었다.

이에 대한 반성으로 등장한 개념이 자족형 도시다.
직장과 주거가 동시에 가능하고 교육과 문화시설도 충분히 갖추어진 도시를 말한다.

내서읍의 도시적 성격은 무엇인가? 무엇이어야 적절한가?
주거형 도시인가? 자족형 도시인가?

아파트가 숲처럼 들어차고 주민 대부분이 내서읍이 아닌 곳에 직장이 있다는 사실이 주거형 도시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마산벨리와 내서공단 등을 생각하면 자족적 성격이 없지도 않다.

미래의 도시발전방향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도시의 성격규정은 내서읍이 처해있는 입지조건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내서읍은 일부 자족형 성격이 있지만 주거형 도시로 규정하고 발전 방향을 잡는 것도 좋다고 본다.
주거에 필요한 공간 외에 일터를 더 이상 갖추기에는 공간적 한계가 많기 때문이다.

혹자는 주거도시가 산업도시에 비해 조성과정이나 조건이 손쉬운 것 아니냐고, 경쟁력이 낮은 도시 아니냐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건 큰 오산이다.
주거도시야 말로 인간생활에 필요한 모든 시설들로 채워져야 될 가장 높은 수준의 도시다.
교육, 문화, 예술, 복지, 체육, 휴식, 유통, 위락, 심지어 종교시설까지 충분히 갖추어야 되는 고급도시가 주거도시다.

과연 이런 시설들이 내서읍에 충분한가?
아니면 충분히 갖출 여건은 되어 있는가?
그도 아니면 주거형 도시조건을 갖출 준비는 하고 있는가?

답은 ‘아직’이지만, 주거형 도시로서의 조건은 좋은 편이다.
내서를 아우르고 있는 산과 물의 자연조건과 인근 마산 창원 함안과의 적당한 거리 등 입지조건을 두고 하는 말이다.
얼마든지 품격 높은 주거도시로 발전시킬 수 있다.

다만 한 가지, 그 가능성을 지키기 위해서 뿌리쳐야할 것이 있다.

'인구의 유혹'이다.
더 이상 사람을 끌어드리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사람 수는 지금으로도 충분하다.
'인구의 유혹'에 빠지면 내서읍의 미래는 어둡다.
단지 잠만 자는 하나의 거대한 주거용 게토가 될지도 모른다.
사람을 늘일 것이 아니라, 사람이 사는데 필요한 시설을 늘여야 한다.
인구 조절에 실패하면 제아무리 시설을 공급해도 삶의 질은 나아지지 않는다.

살아 숨 쉬는 도시가 되어 부러움을 살 것인가?
앞뒤가 막혀 버린 거대한 숙소가 되어 눈총을 받을 것인가?
그 선택은 행정과 주민의 손에 달려있다.

초겨울 토요일 오후,
당산나무 아래서 탐방대원들과 함께 원계마을의 옛 돌담을 바라보며
‘10년 100년 후의 이 마을은 어떤 모습으로 변할까?’ 한가롭게 상상했다.

겨우 5시 반인데 산 밑이라 벌써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신고
Trackback 0 Comment 15
  1. 내서 삼계 주민....(학생) 2009.12.13 22:22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글 잘읽었습니다. 오늘 다녀 오셨다 가셨나요..? 진짜 내서 인구는 많긴 많은것 같습니당... 삼계 호계 중리만 합쳐도 이건뭐....옛날부터 여기 살았는데 옛날엔 광려천에 깨끗한 물도 많이 흐르고 했는데 요샌 많이 없어졌네요...ㅠ.ㅠ 이 시골마을도 점차 커진다는것에 한편으론 뿌듯하고 한편으론 씁쓸하네요.....좋은 자연 환경이 많이 사라진다는것에 대해서...

    • 허정도 2009.12.13 23:06 신고 address edit & del

      반갑습니다.
      내서가 좋은 도시로 변하기 바랍니다.
      자연조건은 정말 좋았습니다.
      원계마을 흙담이 눈에 선하네요

  2. wonhaw 2009.12.14 10:17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반갑네요.
    마산에서만 30여년을 살다(그중 5년은 중리현대거주) 타향살이 하는 40대의 아줌마입니다.

    회원동 500번지, 내가 다니던 회원국민학교 인근이겠죠?

    화란주택 -국민학교 때 담임이 거주하던곳인거 같은데.

    삼풍대,광교천 , 동신아파트 ....

    옛생각을 잠시 하게 하네요.

    • 허정도 2009.12.14 11:06 신고 address edit & del

      반갑습니다.
      저는 회원국민학교 20회입니다.
      500번지에사 태어났고요.
      방문감사드립니다.

  3. 똑바로 2009.12.14 10:34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꼭 함께 하고 싶었는데 아이 둘을 데리고 갈 수가 없어 맘을 접었습니다.

    글을 보니 참가 했었야 했는데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 허정도 2009.12.14 11:07 신고 address edit & del

      방문 감사합니다.
      글을 읽으니 '누구실까?' 궁금하네요.

  4. 천부인권 2009.12.14 12:30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희미해지는 기억의 한켠을 보여 주셔서 고맙습니다.
    서대의 비석이 특히 인상적입니다.

    • 허정도 2009.12.14 12:53 신고 address edit & del

      반갑습니다.
      우리 주변에 재미있는 것들이 의외로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5. 노치환 2009.12.14 15:21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올리시는 글 너무 재밌게 읽고 있습니다...
    오래된 자료들 구하시는게 보통 일이 아니실텐데
    마산을 연구하시는 그 마음 너무나 대단하십니다...
    이렇게 찾다 보면 개발보다 더 좋은 구경거리와 얘기거리로 지역을
    발전시킬 수 있겠구나 싶은 생각에 도시이야기에 흥미를 더 가지게 됩니다...
    앞으로도 우리 지역의 좋은 이야기 계속 부탁드리겠습니다...

    • 허정도 2009.12.14 16:12 신고 address edit & del

      방문 고맙소.
      함께 마산 걱정합시다.

  6. 김성준 2009.12.14 18:05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내서를 방문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고생많으셨구요!
    내서에서 초,중학교를 다닌 저로서도 머리로만 걱정해온 한사람으로서,
    내서읍의 미래를 걱정하시는 모습에 부끄럽기도하지만,누군가가 해야할일이라면
    너와 내가있을수없다는 생각에 모든분들께 감사드립니다.

    • 허정도 2009.12.14 18:08 신고 address edit & del

      반갑습니다.
      내서에서 중학교까지 다녔다니 물어보겠습니다.
      오래 전에 '내서동중'이라고 있었는데 혹시 그 학교 출신인가요?
      그 학교의 위치가 어디였는지요?

  7. 김정수 2009.12.14 23:17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안녕하세요?
    도시탐방대에 가입만해놓고 한번도 참석못한 불량회원입니다.
    내서에는 제가 알지 못하는 풍경들이 많네요.
    서대와 원풍대공원, 증산서원은 아직 들어본 적도 없는 곳인데...
    나중에 시간내서 한번 가봐야겠네요.
    참, 배울게 많은 탐방길인데 시간내는게 쉽지 않네요.

    • 허정도 2009.12.15 08:36 신고 address edit & del

      반갑습니다.
      다음 여섯번째 탐방에는 꼭 참석하시죠.
      참 유익하고 재미있습니다.
      기다리겠습니다.

  8. 주민 2011.01.29 11:52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나무를 찍은사진에 저희아파트가나왔네요 반갑기도해서 글적고갑니다~

기억을 찾아가다 - 6

6. 한국전쟁기의 봉암동 Ⅳ - 징병, 피난 귀향 전쟁 나고 열흘 쯤 되었다. 낯선 얼굴을 보기 어려운 시골마을에 낯선 복장에 낯선 체형의 사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우린 아직 어려 잘 인지하지 못했으나, 어른들이나 형들의 ..

건축의 외형 - ‘각뿔’ (Pyramid)

오늘의 주제는, 어쩌면 '각뿔' 이라는 우리말 보다 피라미드 (pyramid) 라는 영어 단어가 더 익숙한, 옆면의 형태가 삼각형인 입체도형을 소개합니다. - 기자 의 대피라미드 (Great Pyramid of Giza, 이집..

기억을 찾아가다 - 5

5. 한국전쟁기의 봉암동 Ⅲ - 미군들 우리들은 예사로 ‘할로’를 외치곤 했지만, 어른들이 인식은 많이 달랐었다. 특히 처녀들과 젊은 아녀자들에게 미군은 공포의 대상이었다. 어느 새댁은 야산에 끌려가 윤간당한 후 소나무에 목을..

건축의 외형 - '나선' (Helix or Spiral)

지난주의 주제였던 '구' (sphere) 에 이어 또 다른 3차원 형태 인 '나선' (Helix or Spiral) 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나선 형태는 자연 속에서 규모와 종류를 가리지 않고 등장하며, 직,간..

기억을 찾아가다 - 4

4. 한국전쟁기의 봉암동 Ⅱ - 미군들 미군들에 대한 이야기의 상당 부분은 필자의 졸저 『상식의 서식처』에서 빌어 오고자한다. 「피난처에서 돌아온 날부터 나는 참 신기한 것들을 많이 보았다. 귀를 막아야 할 정도의 굉음을 내며..

건축의 외형 - '구' (sphere)

<오늘부터 매주 목요일은 재미있게 디자인된 건축물들을 포스팅해볼 계획입니다> 건축을 이루는 요소라고 말할 수 있는 것들은, 건축 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이라도 쉽게 여러 가지를 떠올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외형'에 ..

기억을 찾아가다 - 3

3. 한국전쟁기의 봉암동 Ⅰ- 좌익과 피난 내 초등학교 일이학년 때 팔룡산 상사바위 근처나 불암사 근처 산먼뎅이들에 봉홧불이 올라 있는 광경을 종종 보았다. 그리고 새벽에 한길에서 붉고 푸른 삐라들도 주워보았다. <팔룡산 ..

기억을 찾아가다 - 2

2. 봉암동 형성 Ⅱ 팔용산에 수원지가 건설된 것은 1930년이었다. 처음 만들었을 때는 일인 1일 급수량 170리터 기준으로 인구 16,000명을 예상하고 만들었다가 증축을 하기도 했다. 광역상수도 확장사업이 완료된 1984..

기억을 찾아가다 - 1

오늘부터 연재하는 포스팅은 마산 봉암동(현 창원시 마산회원구 봉암동)에서 태어나 청년기까지 살았던 박호철 선생님의 기억 속에 있는 도시 이야깁니다. 한 개인의 삶에 투영된 도시의 흔적을 통해 이미 사라져 버린 우리의 과거를 찾..

핵발전소 이대로 좋은가? - 9. 신고리 5,6호기 시민참여단에게 드리는 글

원자력발전의 경제성을 이야기하면 사용후핵연료 처리비용 과소계상, 원전 해체비용과 환경 복구 비용 과소 계상 등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숨겨진 이야기가 있습니다. 바로 사고 보험 문제입니다. 자동차를 운행하면 ..

일제 강점기 신마산 혼마치(本町)

오래된 사진 한 장을 소개한다. 아래 것은 같은 장소에서 찍은 현재 사진이다. 위 사진을 현재와 비교하기 위한 사진이다. 1910년대에 촬영한 것으로 추정되는 마산 월남동 1가(현 3.15대로) 사진이다. 당시에는 혼마치(..

마산해양신도시, 대통령 말씀대로

계륵 꼴이 된 가포신항이 구체화된 것은 2001년이었다. ‘마산항 제2차 무역항기본계획’에서 20년 후 마산항 물동량이 54만 TEU가 될 것으로 예측해 성사된 사업이었다. 환경문제를 걱정하며 매립을 반대했던 시민들에게는 ‘일..

고지도로 보는 창원 27. - 칠원현 지방지도

▮ 고지도로 보는 창원 27. - 칠원현 지방지도 ● 칠원현 地方地圖/ 필사본(회화식)/ 1872 - 19세기 중반 이후 집권한 흥선대원군에 의해 1872년 제작된 지도이다. 흥선대원군은 중앙집권적 정치체제를 확립하기 위해, ..

고지도로 보는 창원 26. - 진해현 지방지도

▮ 고지도로 보는 창원 26. - 진해현 지방지도 ● 진해현 地方地圖/ 필사본(회화식)/ 1872 - 19세기 중반 이후 집권한 흥선대원군에 의해 1872년 제작된 지도이다. 흥선대원군은 중앙집권적 정치체제를 확립하기 위해, ..

고지도로 보는 창원 25. - 웅천현 지방지도

▮ 고지도로 보는 창원 25. - 웅천현 지방지도 ● 웅천현 地方地圖/ 필사본(회화식)/ 1882 - 19세기 중반 이후 집권한 흥선대원군에 의해 1882년 제작된 지도이다. 흥선대원군은 중앙집권적 정치체제를 확립하기 위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