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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24 00:00

걸작 - 이집트 룩소르 구르나 마을 - 4

구르나 마을이야기 - 2

 

극장

극장은 아름다운 내부공간과 무대를 가지고 있었다.

햇빛을 가리기 위해 담쟁이가 덥혀있었다는 객석 회랑 목조 파고라 위의 담쟁이는 이미 찾아볼 수 없었지만 흙으로 빚어진 구조물은 모두 원형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하싼 화티는 이 극장을 일러 그리스식과 엘리자베드시대풍의 중간 정도라고 했다.

극장은 지붕이 없는 사다리꼴의 공간이었는데 가장 긴 쪽에 무대가 있고 나머지 삼면에 관객을 위한 계단식 좌석이 있으며 원형무대가 있었던 중앙부는 별 표식 없이 텅 비어 있었다.

 

 

무대는 단순한 형태의 1m 높이에 폭 10m 크기로 돌로 만들어졌으며 천정이 열려있었다.

무대에는 고정된 두 개의 장식이 있는데 관객 쪽에서 볼 때 왼쪽의 계단은 길을 나타내며 오른쪽의 시설물은 내부 또는 정원을 나타낸다고 건축가가 설명한바 있다.

원래는 무대에 장식이 많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지금은 모두 훼손되고 중간의 문과 그 위의 발코니는 원형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었다.

중앙에는 원래 원형무대가 있었던 곳으로 원래 11평방미터 크기의 투기장으로 연극공연이나 운동경기를 하는 곳이었지만 지금은 그렇게 사용되지 않는 듯 아무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하싼 화티는 이 극장에서 연극이 시작될 즈음의 장면에 대해 "시원한 밤, 별이 가득 찬 하늘 아래, 돌 의자에 빽빽이 앉거나 서서 잡담을 나누고 있는 관객들 앞의 무대는 컴컴한 채 텅 비어 있다. 이윽고 노랫소리가 무대 뒤 어디에선가 들려온다. 그러면 관객들은 조용해지고 이 노랫소리가 다가옴에 따라 관객들의 몸이 앞으로 기울어진다"라고 묘사한바 있다.

키가 큰 안내자는 "지금도 극장이 사용되고 있으며 오늘 저녁에도 동네 아이들의 연극 공연이 있다"고 말했다.

별로 사용하지도 않는 사각형 건물이 마을 회관이란 간판을 달고 덩그렇게 서있는 우리의 시골마을에 비하면 높은 문화수준이었다.

비록 가난하지만 저녁시간 극장에 모이는 이곳 구르나 마을 사람들의 생활수준을 단지 돈 몇 푼으로 평가해서는 안 될 일이다.

마침 휴일이라 상점은 휴장이었으며 유일하게 한 채 남아있는 주택은 하싼 화티가 살았던 곳이라고 설명했다. 문이 잠겨 내부를 못 본 것이 아쉽다.

원래 구르나 마을에는 회교사원과 극장, 칸 외에 학교, 공동목욕탕, 벽돌공장, 농가, 공동세탁장, 인공호수 등 여러 종류의 시설들이 있었다.

이 모든 시설들이 사라진 자리에는 하싼 화티가 우려했던 조악한 평스라브의 콘크리트 단층, 혹은 이층 건물이 난잡하게 들어서 있었다.

 

-이어지는 하싼 화티의 건축정신-

 

안내를 끝낸 뒤, 청년은 자신의 이름이 무하마드라고 밝히면서 카이로 대학교에서 건축을 공부했고 지금은 스스로 이곳에 와서 수행자 생활을 한다고 밝혔다.

그 청년은 하싼 화티가 이 마을을 건설할 때 자신의 아버지가 이곳에서 건설 기술자로 일했다고 소개하면서 아버지와 하싼 화티에 대한 존경심을 아주 자랑스럽게 표현했다.

 

장차 훌륭한 건축가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나의 덕담에 그 청년은 웃으면서 즉답을 피했지만 그의 눈 속에 비친 건축에 대한 열정과 위대한 건축가에 대한 존경심은 숨기지 못했다.

한국 건축가 중 혹은 한국인 중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다녀갔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다만 구르나 마을을 다녀 온 이후, 건축에 대한 나의 생각과 기대는 많이 변했다.

 

 

그것은 위대한, 그래서 전 세계에서 100회 이상의 건축과 관련한 상을 수상한 작품이 60년이 채 못 된 세월이 지난 후 변해버린 모습 때문이었다.

 

한 사람은 한 채의 집조차 지을 수 없다. 그러나 열 명이 모이면 열 채의 집도 매우 쉽게 지을 수 있다. 백 채의 집조차 가능하다 - Hassan Fathy, Architecture for the Poor, Chicago :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73), 서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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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17 00:00

걸작 - 이집트 룩소르 구르나 마을 - 3

구르나 마을 이야기 - 1

 

일행이 나일강변에 자리한 경관 좋은 호텔에서 휴식을 취하던 오후. 안내자와 함께 조그만 배를 타고 나일강을 건너 구르나 마을로 향했다.

구르나 마을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은 현지 안내자 덕분이었다. 그는 내가 제시한 구르나 마을의 전경 사진을 보자 자신이 그 마을을 잘 알고 있다고 했다.

마을 입구에는 Hassan Fathy Culture Place라는 입간판이 서있었지만 그 앞을 지나는 관광객들의 눈길을 끌지는 못했다.

 

 

 

마을 중심에 자리 잡고 있는 회교사원 앞에 이르자 관리자로 보이는 한 사내가 나왔다. 키가 컸으며 순한 얼굴의 소유자였다. 그는 자신이 건물을 안내하겠다고 하면서 선뜻 앞서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오래 동안 흠모 했던 대 건축가의 작품을 직접 보고 만진다는 것은 건축을 하는 사람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행복함이다.

나는 하싼 화티가 빚은 흙을 어루만지면서 그가 쏟아낸 거친 호흡과 땀방울을 느끼기도 하고 미리 준비한 도면과 사진을 현재의 모습과 비교하면서 포만감 가득한 건축체험에 빠져들었다. 감동의 시간이었다.

 

회교사원

회교사원에는 정면인 남쪽과 우측인 동쪽에 각각 출입구가 있다. 신자는 두 입구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몸이 깨끗한 사람은 남쪽의 정문을 이용하지만 몸을 닦아야 될 사람은 곧 바로 목욕탕으로 통할 수 있는 동쪽입구를 이용해야 한다.

그곳에는 두 줄의 샤워가 있는 샤워장과 머리나 팔 그리고 다리만을 씻을 수 있는 작은 홀도 있다.

이런 모든 시설은 하싼 화티가 몸을 씻기에 가장 편리한 것이 어떤 것인지를 여러 번 시험해 본 뒤 설치했다고 한다.

나는 외부 계단 밑에 뚫린 아치형의 정문을 통과해서 화단이 있는 작은 정원을 거쳐 다시 사원의 본 정원인 중정으로 들어갔다.

작은 정원의 왼쪽에는 양쪽 벽에 고정식 의자를 설치하여 교실로 이용하였던 긴 방이 있었다.

중정 오른쪽 편의 예배공간에는 왼쪽과 오른쪽에 회랑을 받치고 있는 사각형의 기둥들이 열을 지어 있었다.

회랑 위에는 둥근 지붕이 놓여 있었는데 거기에는 네 개의 삼각면 창을 통해 뜨거운 햇빛이 정제되어 충만함과 허()함을 미묘하게 배합시키고 있었다.

기도를 하는 동안 신자들이 주의를 집중할 수 있게 해준다고 설명하는 천창이다. 모든 것은 책에서 읽었던 그대로였다.

하싼 화티는 "명상과 기도를 용이하게 하는 고요하고 담백한 모습의 건물을 세우기 위해 빛이 벽 위에 어떻게 비치고 분산되는가를 알아야 했다"고 말했다.

"건축의 전통이 있는 모든 곳에서 주민들이 성스러운 것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은 지방의 종교적인 건축에서 재발견될 수 있고 따라서 그 건축을 보존하고 형태와 특징을 존중하는 것이 좋다"고도 말했다.

그래서 그는 이 회교사원의 첨탑에 이르는 계단을 급경사로 곧게 뻗게 만들고, 사원 위로 높은 설교단처럼 서 있는 외부 계단을 만든 것은 이집트 고원지대의 건축전통을 존중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는 바로 그 계단을 통해 건물 전면의 첨탑으로 올라갔다.

 

 

그곳에서는 이 건물의 지붕을 내려볼 수 있었는데 거기에는 그가 그토록 집착했던 홍예틀 없이 세운 아치와 돔이 아름다운 원형을 간직한 채 뜨거운 햇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첨탑은 구르나 마을에서 가장 높았기 때문에 마을 전체를 한 눈에 볼 수 있었다.

하싼 화티가 세웠던 당시의 건물들은 이미 대부분 사라지고 지금은 상점과 극장, 그리고 한 채의 주택만 덩그러니 남아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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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10 00:00

걸작 - 이집트 룩소르 구르나 마을 - 2

위대한 건축가 하싼 화티(Hassan Fathy) - 2

 

하싼 화티가 구르나 마을을 건설할 1940년대 중반, 그 당시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고 있던 이집트는 서양식 건축이 판을 치고 전통적인 이집트 양식의 건물들은 사라져가고 있었다.

이들 서양식 건축은 이집트에서 흔한 흙 대신에 시멘트를 사용하였다.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비싼 건축비를 감당 할 수 없었고, 서양식 공사를 할 수 있는 숙련공도 모자랐다.

콘크리트 건물은 단열성이 낮아 이집트의 기후조건에 전혀 맞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그쪽으로만 몰렸다.

이러한 상황에서 하싼 화티가 이집트의 가난한 사람을 위해 도전장을 냈다.

그는 햇볕에 말린 진흙 벽돌과 나무, 갈대 등을 사용하여 직접 하나의 마을을 건설하고 세계와 이집트인들에게 자신의 주장을 증명해 보인 것이다.

특히 이집트 시골에서 흔히 쓰이던 전통적인 건축 자재로 아름다운 아치형과 돔형의 건물들을 지어서 세상을 놀라게 하고 이슬람 건축의 예술미를 품위있게 표현하여 서양 건축가들의 격찬을 받았다.

 

<구르나 마을의 흙 건축들>

 

그가 실험하고 검증했던 진흙 건축술은 현재 아랍세계에 광범위하게 퍼져있다.

하지만 하싼 화티의 진흙 벽돌구조로 이루어진 전통적 양식의 개량 집단주택 건설은 성공하였으나 그에 대응할 주택 정책과 주민 계몽에 있어서는 실패하였다.

이집트인들에게 있어서 근대화란 전통적인 것을 버리고 서양식을 모방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집트인들은 하싼 화티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의 사고방식을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대 이집트 양식과 전통의 부활은 신() 구르나 마을에 사는 농민들이 살고 싶던 곳이 아니었다.

평생을 가난하게 살아온 이집트 시골사람들에게는 도시의 콘크리트 집이 부()의 상징이 되어 머리 속에 박혀 있었기 때문에, 이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하싼 화티의 실용적 이론과 철학을 인식시키기엔 역부족이었다.

콘크리트 집을 짓는데 드는 비용과 전통 진흙 벽돌집을 짓는데 드는 비용은 열 배 이상 차이가 난다.

건축 비용이 비싼데다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운 비실용적인 콘크리트 집에 대한 이집트인들의 막연한 선망은 이집트의 주택 문제를 더욱 어렵게 했다.

또한 정부와의 관계가 항상 소원했던 하싼 파티는 언제나 정부로부터 외면당했다.

이집트 정부는 구르나 마을에 사는 지역 주민들에게 진흙집이나 건물은 가난의 상징이라고 매도하며, 낡은 집들을 보수하기는커녕 도리어 집을 뜯어내고 콘크리트 집으로 대체할 것을 은근히 장려하기도 했다.

오늘날 구르나 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가족의 팽창에 따른 수요와 공급을 이유로 모든 하싼 파티의 작업을 거의 무너뜨리고, 대신 비싼 콘크리트와 빨간 색 벽돌, 평평한 직선형의 지붕으로 이루어진 집으로 대체되어 있다.

그러나 몇몇 뜻있는 사람들이 주민들을 설득하고 계몽하여 정부의 무책임한 정책으로부터 구르나 마을을 보호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들은 전 아랍 세계에 하싼 파티의 정신과 건축술을 소개하면서 서구화가 가져다 준 병폐인 전통의 말살을 전통의 계승으로 바꾸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건축가 하싼 화티가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전 세계에 널리 알려진 것은 그가 구르나 마을의 건립에 관계하면서부터다.

내가 그를 알게 된 것도 하싼 화티의 구르나 마을 건설에 관한 내용이 소개된 책 이집트 구르나 마을의 이야기이다. '말하는 건축가'로 널리 알려진 건축가 고 정기용이 번역하여 1988년 초판 발행된 이 책은 열화당에서 출간하였다.

 

나는 이 책을 우연히 읽게 되었지만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기면서 알게 된 하싼 화티의 건축가로서의 삶은 젊은 건축가의 마음을 빼앗기에 충분하였다.

평범한 건축가에게 던진 이 위대한 건축가의 질타는 이른바 문화 충돌로 다가왔으며 마지막 페이지를 넘긴 후 나는 이미 그에게 매료되어 있었다.

이후 강단에서 수없이 그의 삶을 소개하였고 종강 때는 언제나 이 책을 필독서로 권했으며 그를 주제로 어설픈 발표를 하기도 했다.

이집트 여행을 위해 출발할 때만 하더라도 내가 구르나 마을을 볼 수 있으리라는 것은 생각조차하지 않았다. 나의 머리 속에는 카이로와 나일강, 그리고 룩소르로 가득했기 때문이다.

여행 중 우연히 이스탄불 탁심거리의 한 서점에서 하싼 화티의 작품집 An architecture for people를 구입하면서부터 혹시 이집트에 가면 구르나 마을을 볼 수 있을까하는 막연한 기대를 가지게 되었다.

그런 막연한 기대가 현실로 이루어졌으니 하싼 화티를 오래 전부터 흠모하던 나에게 있어서 의미 있었다라는 투의 상투적인 말로는 설명될 수 없는 놀라움이었다.

기적처럼 일어난 이집트에서의 구르나 마을 답사는 내 인생 최고의 우연이자 기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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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03 00:00

걸작 - 이집트 룩소르 구르나 마을 - 1

위대한 건축가 하싼 화티(Hassan Fathy) - 1

 

(이 글은 이집트 여행 중 우연히 만났던 하싼 화티의 구르나 마을 경험담이다. 오래 전 일이다. 지금 생각해도 그 우연은 내게 축복이었다. 울렁이는 감격으로 구르나를 둘러본 그 날의 감격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이집트 룩소 지방의 구르나 마을을 건축한 하싼 화티는 이집트 출신의 세계적인 흙 건축가이다.

그는 자본과 관료와 기술전문가의 시각이 아니라 민중 자신의 토착적인 지혜와 창조성이 삶과 문화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믿었던 건축가이다.

하싼 화티는 1900323일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부유층의 아들로 태어나 18세가 되던 해에 가족을 따라 카이로로 이사했다.

하싼 화티를 연구한 이성아의 논문 하싼 화티의 건축에 관한 연구에 의하면 그는 공업 고등학교에서 건축을 공부하였으며 1926년에는 지금의 카이로 대학(University of Cairo)의 전신인 킹 후아드 대학(University of King Fuad)을 졸업했다. 하지만 다른 자료에서는 그가 영국에서 건축을 공부한 것으로 기록되어있다.

처음 4년 동안 카이로의 건축 민원 부서에서 일하다가 1930년부터 1946년까지 카이로 대학의 교수로서 재직하였는데 건축과의 학과장으로서 일하기도 했다.

그는 가난한 이집트 농촌 사람들을 위해 저렴하고 실용적인 집을 지을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으며, 그들에게 그들 스스로 집을 지을 수 있도록 가르쳐 준 아프리카와 이슬람 역사에 길이 남는 건축가이다.

이집트 제3왕조 시대의 사제이자 의사이면서 최초의 건축가로 알려져 있는 임호텝(Imhotep) 이래 이집트 최고의 건축가이다.

하싼 화티는 국가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낙후되고 가난한 이집트 농민의 주택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고 믿고 스스로 나섰다. 그는 이것이 건축가로서 충분한 가치를 갖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를 위해 그는 흙이라고 하는 토착적 자연환경과 조상 대대로 이어온 건축기술 전통을 이용해 최소한의 비용으로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였다.

1937년에 처음으로 남부 이집트의 주택에 진흙 벽돌을 사용한 디자인을 선보인 하싼 화티는 1945년 구르나 마을 프로젝트를 착수했다.

그는 언제나 소외 받는 이집트 사람들의 건축에 관심울 가졌다.

이런 관심은 그의 저서 『가난한 사람을 위한 건축』(Architecture for the Poor - 1973년 출판)에 잘 나타나 있다.

 

 

이 책은 그가 구르나 마을에서 경험한 건축과정을 바탕으로 썼다. 진흙 벽돌의 사용과 전통적인 이집트 건축 기법들을 중심으로 서술되었으며, 이 책으로 그의 작업이 세상의 주목을 받게 되었.

1984년에 국제 건축가 협회에서 금메달(the Gold Medal of the Union of International Architects)을 받기도 한 하싼 화티는 1989년 카이로에서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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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22 00:00

건축가 정기용과 '진해 기적의 도서관'

한가위 즐겁게 보내십시오! ^^

며칠 전, 어린이전용도서관인 '진해 기적의 도서관'에 다녀왔습니다.
MBC '느낌표'가 탄생시킨 '기적의 도서관'에 대해서는 설명이 필요 없을 겁니다.

시민단체에서 주관한 도시문제토론회 당일, 진해도시를 좀 더 이해하기 위해 이곳 저곳을 살피다가 도서관에 들렀습니다. 



건물도 훌륭했지만 건물보다 더 나를 놀라게 한 것은 이 작은 도서관이 사용되고 있는 현장이었습니다.
도서관 내부에 흐르는 짙은 사람냄새에 놀랐습니다.
책을 읽는 아이의 모습과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어머니의 모습을 너무 오랜만에 보았습니다.
낡은 흑백사진처럼 기억에만 남아 있는 이 당연하고도 자연스러운 장면을 '기적의 도서관'에서 오랜만에 보았습니다.
아이들은 아무 생각 없이 컴퓨터와 TV  앞에만 앉았는 줄 알았는데, 이런 내 기우가 편견이었다는 사실에 놀랐고 기뻤습니다.
진해의 한 언저리 '기적의 도서관'에서 기적이 솟고 있었고 희망의 싹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이 아름다운 도서관을 설계한 이는 건축가 정기용 선생입니다.
그와 나 사이에 개인적 인연은 없습니다.
나는 그를 알지만 그는 나를 모릅니다.
나는 그에게서 큰 영향을 받았지만 그는 나의 존재조차 모릅니다.
나는 그와 관계가 있지만 그는 나와 아무 관계가 없다는 말입니다.

내가 정기용을 처음 알게된 것은 저널에 그의 작품이 소개되면서였습니다.
하지만 정기용이라는 이름이 내 머리에 각인된 것은 한 권의 책 때문입니다.
열화당에서 출판한 '이집트 구르나 마을 이야기'라는 번역서 때문입니다.
오래 전 이야깁니다.

그 책은 '구르나'라는 작고 가난한 마을에 바친 이집트 카이로 대학 건축과 교수이자 세계적인 흙건축가 '하싼 화티'의 자서전입니다.
두 번 읽었고, 이집트를 여행할 때 직접 '구르나 마을'을 찾아 가보기도 했으며, 대학원 세미나 때 요약해 발표한 적도 있습니다.


프랑스에서 건축을 공부한 정기용은 역자서문에서 이 책을 일러 '70년대 유럽의 건축학도들이 마치 건축성경처럼 읽었던 책'이라고 했습니다.
내용도 철학도 없이, 그저 크고 사치스러운 것들만 쫓는 한국 대학의 건축교육을 비웃듯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하싼 화티는 나에게 건축가가 사회 속에서 존재해야할 가치를 심어주었습니다.
건축가의 존재이유와 건축가의 사회적 사명에 대해서 가르친 그는, 젊은 건축가였던 나를 깊은 감동에 빠뜨렸습니다.
모든 것이 건축가 정기용, 그의 덕분이었습니다.

'진해 기적의 도서관'을 찾아간 것도 이 도서관의 설계자가 정기용이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건축가의 작품을 감상하고, 그의 건축세계를 음미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기대했던대로 모든 것이 만족스러웠습니다.
아이들을 위해 잘게 잘라 놓은 아기자기한 공간들이 좋았고, 자유롭게 앉고 누워 책을 잡을 수 있도록 유도한 장치들도 만족스러웠습니다.
자연광을 받되 직사광선을 피했고, 권위와 형식 대신 호기심과 편안함이 흐르는 인간적인 분위기가 물씬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씁쓸한 구석이 있었습니다.
건축가에 대한 이야깁니다.
도서관을 소개하는 자료에도, 홈페이지에도, 도서관을 구경한 뒤 쓴 여러 글들에서도, 이 아름다운 도서관을 디자인한 건축가가 누군지 말하지 않은 점입니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도서관 홈피였습니다.
아래 표가 홈피의 도서관 연혁부분입니다.

                           
도서관 홈피에서 건축가를 꼭 밝힐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건설회사는 밝히면서 건축가를 말하지 않는 무지한 현실이 너무 씁쓸했습니다.
내가 건축가라서가 아닙니다.
'앙드레 김' 대신 봉제사를 알리는 무지가 안타까웠기 때문입니다.

소문에 건축가 정기용 선생은 투병 중이라 합니다.
가까운 김해에 그가 설계한 '김해 기적의 도서관'이 건축 중입니다.
지난 봄 착공식에 바바리 코트 차림으로 참석했는데 매우 수척해보이더라는 말을 전해들었고, 그 후로 한 번도 직접 내려오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그에게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내 눈에 비친 그는 '자연과 인간의 상생'에 자신의 건축을 던진 분이었습니다. 지금까지 남긴 그의 작품들에서 내가 받은 메시지입니다.
최근 들어 생태건축이 각광 받는 현상을 보면, 그는 분명 시대를 앞서가는 혜안의 건축가입니다.

위대한 건축가가 오래 머문다는 것은 한 사회의 현재와 미래를 위해 크게 유익한 일입니다.
그의 쾌유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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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포세이동 2010.09.23 17:22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추석 잘 쇠셨는지요. 잘 읽었습니다.

    • 허정도 2010.09.23 22:13 신고 address edit & del

      반갑습니다.
      추석 잘 지내셨죠?
      날씨가 선선해져 참 좋습니다.
      좋은 계절에 좋은 일들 많이 생기시기 바랍니다.

  2. 김종국 2010.10.01 13:52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공감합니다.
    우리와 동떨어진 디자인으로 넘쳐나는 시대에
    진실함이 사라지고 있어 슬픕니다.

    • 허정도 2010.10.01 18:48 신고 address edit & del

      그러게 말입니다.
      아무튼 정기용 선생의 건축가정신은 배울 점이 참 많은 것 같습니다.

  3. 연희 2010.12.31 20:32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일민미술관에서 정지용선생님의 <감응>전시를 보고왔어요. 넘 넘 좋은 전시였답니다. 이렇게 한번도 글을 남겨본적이 없는 저였는데....너무 좋았기에 그 분의 이름과 건축에대한 생각을 생각하며 몇자 적어봅니다. 그 어떤것 보다 삶이 우선이라고...나무는 많이 배우지도 않았는데 열매를 맺고 곤충들의 놀이터가 되고....정지용선생님을 전혀 알지 못하지만 작품을 통해 그 분을 알고 싶어졌습니다. 책을 사서 읽어보려구요...

    • 허정도 2011.01.01 11:22 신고 address edit & del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정기용 선생의 책을 읽어 보신다니 반갑군요.
      '사람 건축 도시'를 권하고 싶습니다.

  4. 안상범 2012.03.13 13:35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우연히 ........
    뭐, 다 인연이 있어서이겠지요마는
    정기용선생의 작품을 써핑하다가 여기까지 왔습니다.
    제가아는 허정도 건축가님이 맞으신다면 제이름도 아실것이기에
    설명 드리지 않습니다.

    자는 캐나다에 있습니다.
    마침 제가 조선일보에 블러그를 하나 가지고 있지요.

    그간 평안하셨는지요.
    아뭏턴 반갑습니다.
    부디 좋은집 많이 설계 하십시요.
    세월이 좋아 지면 뵈올날 있겠지요?
    그날 만 기다립니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요.


    http://blog.chosun.com/blog.screen?userId=arkitect

    • 허정도 2012.03.13 13:51 신고 address edit & del

      안 형, 이게 얼마만입니까, 건강하시죠?
      캐나다 있다는 이야기는 풍문에 들었습니다.
      이렇게라도 만나니 참 반갑습니다.
      저는 서울에서 내려온 뒤부터 지금까지 고향 마산에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
      안 형, 늘 평안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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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는 왜 시위에 직접 참가했던가 2. 그는 왜 그토록 오랫동안 침묵했던 것일까 1) 보복 공포와 빨갱이 트라우마 2) 증언 결심 동기 하상칠은 그동안 증언을 하지 않았던 이유에 대해 “그날 밤 내 혼자만 싸웠던 것도 아니..

얼음장수의 뜨거웠던 하루 : 3.15의거 한 참여자에 관한 미시사적 분석 - 6

1. 그는 왜 시위에 직접 참가했던가 2. 그는 왜 그토록 오랫동안 침묵했던 것일까 하상칠의 증언에서 품게 되는 두 번째 의문은 그는 왜 그토록 오랫동안 시위 참가 사실을 비밀로 유지해왔는지 그리고 50년이나 지난 시점에서 증..

얼음장수의 뜨거웠던 하루 : 3.15의거 한 참여자에 관한 미시사적 분석 - 5

1. 그는 왜 시위에 직접 참가했던가 1) 사회적 요인 2) 개인적 요인 동일한 사회적 요인이 주어져 있다 해도 모든 시민이 동일한 반응을 하는 것은 아니다. 저항심이 강하든 정의감이 투철하든 또는 사회적 불만이 가득하든 모두..

얼음장수의 뜨거웠던 하루 : 3.15의거 한 참여자에 관한 미시사적 분석 - 4

Ⅲ. 얼음장수의 미스터리 3․15의거 역시 한국의 민주화 과정에서 일어났던 다른 대규모 시민항쟁과 마찬가지로 수많은 분석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기존 분석은 대부분 거시 사회사 분석으로서 항쟁 참가자들의 정의감이나 불만이 저..

얼음장수의 뜨거웠던 하루 : 3.15의거 한 참여자에 관한 미시사적 분석 - 3

Ⅱ. 얼음장수의 정체, 증언 및 평가 2. 녹취와 증언록 다음은 하상칠이 2010년 7월 21일 14시 3 15의거기념사업회 회의실에서 당시 백한기 회장 앞에서 2시간여에 걸쳐 진술한 증언 녹취록을 풀어 그해 말 동 사업회에서..

얼음장수의 뜨거웠던 하루 :  3.15의거 한 참여자에 관한 미시사적 분석 - 2

Ⅱ. 얼음장수의 정체, 증언 및 평가 1. 연구 대상자 프로필 (이 부분은 연구 대상자가 필자의 장인이어서 평소 필자가 그에게 들어서 알고 있는 사항과 그의 사망 후 필자가 이 글을 쓰기로 마음먹은 후 그의 가족, 일가, 지인..

얼음장수의 뜨거웠던 하루 : 3.15의거 한 참여자에 관한 미시사적 분석 - 1

이 글은 1960년 3․15의거 당일 야간 시위에 주도적으로 참가했던 한 개인의 증언을 바탕으로 그의 개인사를 하나의 창으로 삼아 역사적 사건을 재조명한 경남대학교 경제금융학과 서익진 교수의 논문이다. 연구는 사적 기록이나 증..

걸작 - 이집트 룩소르 구르나 마을 - 4

구르나 마을이야기 - 2 《극장》 극장은 아름다운 내부공간과 무대를 가지고 있었다. 햇빛을 가리기 위해 담쟁이가 덥혀있었다는 객석 회랑 목조 파고라 위의 담쟁이는 이미 찾아볼 수 없었지만 흙으로 빚어진 구조물은 모두 원형대로 ..

걸작 - 이집트 룩소르 구르나 마을 - 3

구르나 마을 이야기 - 1 일행이 나일강변에 자리한 경관 좋은 호텔에서 휴식을 취하던 오후. 안내자와 함께 조그만 배를 타고 나일강을 건너 구르나 마을로 향했다. 구르나 마을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은 현지 안내자 덕분이었다. 그..

걸작 - 이집트 룩소르 구르나 마을 - 2

위대한 건축가 하싼 화티(Hassan Fathy) - 2 하싼 화티가 구르나 마을을 건설할 1940년대 중반, 그 당시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고 있던 이집트는 서양식 건축이 판을 치고 전통적인 이집트 양식의 건물들은 사라져가고..

걸작 - 이집트 룩소르 구르나 마을 - 1

위대한 건축가 하싼 화티(Hassan Fathy) - 1 (이 글은 이집트 여행 중 우연히 만났던 하싼 화티의 구르나 마을 경험담이다. 오래 전 일이다. 지금 생각해도 그 우연은 내게 축복이었다. 울렁이는 감격으로 구르나를 둘..

걸작 - 중국 사천성 도강언(都江堰) - 4

도강언(都江堰)에 올라 이빙(李冰)을 생각하다 저명한 중국의 역사학자 위치우위(余秋雨)는, 중국역사상 가장 감동적인 건축물은 만리장성이 아니라 도강언이라고 했다. 도강언의 외관상 규모가 만리장성처럼 거대한 것은 아니지만, 많은..

걸작 - 중국 사천성 도강언(都江堰) - 3

위대한 목민관 이빙(李冰) 도강언 주변 일대는 성도나 인근 지역 사람들이 쉴 수 있는 아름다운 공원이기도 했다. 울창한 숲 속에서는 특유의 목소리를 내는 사천 매미가 왕왕거리며 울어댔고, 서북쪽의 산록에서는 시원한 고원 바람이..

걸작 - 중국 사천성 도강언(都江堰) - 2

5백 갈래로 나누어진 민강(岷江) 도강언의 시설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어취(魚嘴)와 비사언(飛沙堰), 보병구(寶甁口)가 그것이다. 이 세 시설은 따로 있으나 서로 긴밀하게 연관되어 결과적으로 하나의 유기체적 결합..

걸작 - 중국 사천성 도강언(都江堰) - 1

천부지국(天府之國) 언젠가 중국 사천성 일대를 여행하였다. 그 동안 십 수차례 중국을 드나들었지만, 보면 볼수록 놀라운 것은 수천수만 겹 녹아있는 역사의 층위다. 대륙은 깊고 넓었으며 언제나 새로운 것을 보여 주었다. 지구상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