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2015.06.08 00:00

김형윤의 <마산야화> - 21. 간판칠갑의 사무소, 22. 철도 이야기

21. 간판칠갑의 사무소

 

마산에 간판 많기로 이름난 점포는 신마산 함흥집 자리의 석견옥(石見屋)이라는 신약 도매상이었다.

간판을 보면 대학목약(大學目藥), 미안수(美顔水) 하루나, 대전위약(大田胃藥) 등을 비롯하여 장방형의 작은 간판이 20여 개나 되었는데,

제내과(諸內科) 자리 건너편 3층 건물로 신축 이전 후에는 없어졌고, 본래 점포에는 ‘고마야’라는 상호의 오복점(吳服店)이 들어 앉았다.

몇해 후에는 민의소 건너편에, 즉 지금의 중앙병원 자리에 노농동우회(勞農同友會)와 조선일보 지국이 자리잡고 난 뒤로는 대소 간판이 십 수개가 붙었는데 기억되는 명칭은 다음과 같다.

노농문고(서적 대부분이 ML당원 김형두의 장서), 무산자신문(日共의 佐野學 主宰), 민중신문(일본의 赤松克磨 주간), 혜성사진(彗星社進, 스스메), 월간전투지(月刊戰鬪誌, 사회주의자이면서 일본 공산당을 打罵하던 福田狂二 주간), 토벌(討閥, 주로 日共의 파벌행동을 공격한 월간지 福田理三郞 주간), 壁新聞.

※ 사진에서 보듯이 함부로 내다거는 간판의 심각성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22. 철도 이야기

 

마산 본역을 중심점으로 하여 인근 각 역의 해발고차는 다음과 같다.

마산 본역 - 북마산역 38m - 중리역 96.21m - 구마산역 18m - 창원역 47.38m - 창원 현재 터널 56.72m - 창원 구 철도 고개 96.96m,

창원터널이 개통되기 전까지 구 철로 즉, 창원 고개를 오르내리던 증기 기관차는 성능이 여간 강력한 것이라도 고개 중턱 - 포교당과 향교를 지나고부터는 숨길이 가빠서 일단 정지 아니면 뒷걸음을 칠 때에는 승객의 숨길마저 허덕이게 한다.

눈비가 내리는 날은 덕산에서 창원으로 넘어오는 것이나 창원서 넘어가는 차는 몇 미터씩은 저절로 스리퍼하는 것이고, 숨이 차서 차가 허덕거릴 경우에 장난 좋아하는 청년들은 훌쩍 뛰어내려 용변을 보는 일도 허다하여 승객을 웃기기도 하였다. 

 

<삼역용지 총평수(三驛用地 總坪數)>

마산본역 용지 : 106,476평

북마산역 용지 : 7,705평

구마산역 용지 : 11,637평

구마산역 - 본역간 노선 용지 : 6,521평

북마산역 - 본역간 노선 용지 : 3,653평

이상 135,476평(단 불하된 관사 및 기타 부지 제외) 마산 본역 용지를 제외하면 29,516평이다.

※ 지금은 없어진 마산의 세 역 사진

<마산 - 삼랑진 간 터널>

마산 - 삼랑진(舊 松旨)간 ‘터널’은 세 곳이 있는데 길이는 다음과 같다.

창원터널 : 438m

마산(馬沙)터널 : 329m

생림(生林)터널 : 485m<<<

※ 아래는 현재 마산역의 준공식 날 사진. 사진 속 건물은 수년 전 헐렸다

 

 

 

 

 

 

Trackback 0 Comment 0
2013.11.04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86) - 강점제3시기

도시변화와 관련된 기사 두 개 소개합니다.

6. 1935년 10월 22일자 매일신보 3면 기사입니다.

기사의 제목은 ‘舊馬山驛移築 用地買收完了’ 이며 기사 내용은경남 제2의 능률을 내고 있는 구마산역은 외관상 누추와 내용상 협애(狹隘) 및 이의 장래발전에 반(伴)하는 요충지대에 이축을 계획하고 그 동안 용지 매수에 열중 중이던 바 가격 평가가 원만히 되지 못하여 매수에 지장이 되어있던 바 근일에 이것이 호전되어 매수가 거의 완료된 모양이라 하며 가급적 금년 내 완성을 보게되도록 할 것이라 하며 완성 후는 구마산에 신위관(新偉觀)을 정(呈)하리라 한다’ 입니다.

지금의 육호광장 자리에 있었던 구마산 역은 이 신문 기사처럼 위치를 약간 옮겨온 자리입니다. 처음에 있었던 역도 비슷한 위치에 있었습니다만 역사(驛舍)가 오래되고 좁아서 더 넓게 역 터를 잡고 역사도 다시 짓기로 했다는 기사입니다.

구마산역은 철도 마산선이 개통된 1905년에는 없었습니다만 마산포 주민들의 요구에 의해 1910년 7월 5일 개설되었습니다. 개설 후 67년 간 사용하다가 1977년 12월 26일 지금의 마산역으로 마산역·구마산역·북마산역의 세역이 통합되면서 그 소임이 끝났습니다.

기사 아래 사진은 애당초 있었던 구마산역과 이전 후 지은 역입니다.

 

7. 다음은 1935년 12월 4일자 동아일보 5면 기사입니다.

제목은 ‘구마산공설시장’ 이며 기사 내용은 ‘구마산 공설시장의 상옥 개축 낙성식은 그 동안 공사도 끝났으므로 오는 5일 11시 동 공설시장에서 거행키로 되었다고 한다’ 입니다. 오는 5일은 1935년 12월 5일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구마산공설시장은 부정(富町, 현 부림동)공설시장이라고 불리기도 했던 현재의 부림시장을 말합니다.

이 시장은 1924년 9월에 개설되었고 주로 한국인들이 이용하였으며 간혹 일본 아낙들이 야채나 두부를 들고 나와 팔기도 했습니다. 평일에도 사람들이 많이 붐볐지만 특히 음력 5일과 10일에 열리는 5일장 때에는 인근 50리 안에서 모여드는 장꾼들과 고객들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고 합니다.

시장건물은 5-9칸으로 된 3동의 벽돌건물과 여러 채의 함석지붕으로 된 바라크형 건물로 되어 있었는데 이 기사는 그 시장건물들을 개축했다는 기사입니다.

기사에서 말하는 상옥(上屋 / うわや 우와야)은 일본어에서 ‘역이나 부두에 있는 간이건물’이나 ‘벽체가 없이 기둥과 지붕만 있는 간이건물’을 말합니다. 신문기사에 나온 상옥(上屋)은 오래된 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벽체 없이 기둥과 지붕만 건물’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기사 아래 사진은 1937년 경 구마산공설시장(현재의 부림시장)의 모습입니다. 사람들 건너 편에 있는 건물이 기사의 건물 아닌가 싶습니다.<<<

 

Trackback 0 Comment 2
  1. 창동공화국 2013.11.10 09:28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교수님께서는 창원시의 노면전차 도시철도도입에 관하여 비판적인 입장인것으로 알고있습니다 저또한 그렇습니다. 꿈의도시라 불리는 "꾸리찌바"와 같이 원통형 버스정류장, 유니버셜디자인, 정류장선불시스템, 스크린도어등을통해 기존 버스승객의 편의제공이 먼저 확충되면서 대중교통이용의 수요자를 늘리는 방법에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 허정도 2013.11.12 10:24 신고 address edit & del

      각 도시의 조건이 달라 꾸리찌바 시스템을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을 겁니다만 큰 틀에서 보면 가장 적절한 시스템이라고 생각합니다.

2012.05.14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09) - 강점제2시기

오늘부터는 1920년대 마산포(원마산)의 변화에 대해 올리겠습니다.
이 시기 마산포는 근대식 도로망이 확산되는 시기였으나 도시시설의 수준은 낮았습니다.

<초가에서 콩기름으로 램프 불을 밝혔던 마산포>

일제하 마산의 유통시장은 원마산과 신마산 상가로 뚜렷이 구분되어 있었습니다.
그 중 원마산(마산포) 지역의 상가는 남성동 제일은행 자리에 1910년대 새로 개설된 도로 주변이 중심상권기능을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 마산포 지역의 상권은 중심번화가인 남성동과 창동을 비롯해서 중성동․동성동 일부 지역에 걸쳐 형성되어있었고 부림시장과 그 주변 및 남성동 어시장 근처의 해안매축지에도 곡물상․해산물상․식료품상․포목상․잡화상들의 점포와 노점상인들이 즐비했습니다.

그 때까지 제조업 분야에 손을 뻗지 못한 한국 상인들은 주로 이곳 마산포 지역 상가에서 도소매업을 경영했던 것이 대부분이었습니다.

1920년대 후반 경에는 구마산 역(현 6호광장 자리)의 유통기능 강화와 북마산 역의 신설 때문에 추산동과 상남동 및 교방동, 즉 현재의 북마산 쪽으로 범역이 넓어졌습니다. 또한 제법 규모 있는 점포들이 들어서서 상가지역들이 두드러지게 발전하기 시작했습니다.

1926년경 신마산의 대성동과 장군동의 전답 지가는 평당 2원 4-50전이었으며 비싸도 삼원을 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마산포의 오동동 방면은 평당 20여원이었으며 전답도 4-6원에 이르렀을 정도로 가격이 높았습니다.

추방사랑은 『마산항지』에서, 이렇게 된 이유는 장차 원마산 지역이 크게 발달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마산포의 높은 땅 값에 비해 도시시설의 정도는 그 때도 매우 낮았습니다.

장전 순(長田 純)과 고수마공(高須瑪公)이 함께 펴낸 『마산현세록』에 의하면 마산포에 있던 건물은 대부분 초가였으며 그 때도 전기를 사용하지 못하고 콩기름을 이용한 램프나 촛불을 사용하고 있었다고합니다.

1920년대의 원마산 변화를 지적도에서 찾아내어 1930년 당시 원마산을 복원한 도면이 다음 그림입니다.
이 도면은 1920년 토지이용도를 기준으로 그 이후 10년 동안 시행된 매립과 도로의 개설 및 폐쇄, 대지의 분할과 합병, 소유 변경 등의 변화를 지적도와 토지대장을 이용하여 실증한 것입니다.

그 밑의 두 도면은 1920년과 1910년 도면입니다.
10년의 시차를 두고 표현된 도면이니만큼 비교해보면 마산포의 변화를 실감할 수 있을 겁니다.<<<




2011/11/21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85) - 강점제2시기
2011/11/28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쳔사 (86) - 강점제2시기
2011/12/05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87) - 강점제2시기
2011/12/12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88) - 강점제2시기
2011/12/19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89) - 강점제2시기
2011/12/26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90) - 강점제2시기
2012/01/02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91) - 강점제2시기
2012/01/09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92) - 강점제2시기
2012/01/23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93) - 강점제2시기
2012/01/30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94) - 강점제2시기
2012/02/06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95) - 강점제2시기
2012/02/13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96) - 강점제2시기
2012/02/20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97) - 강점제2시기
2012/02/27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98) - 강점제2시기
2012/03/05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99) - 강점제2시기
2012/03/12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00) - 강점제2시기
2012/03/19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01) - 강점제2시기
2012/03/26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02) - 강점제2시기
2012/04/02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03) - 강점제2시기
2012/04/09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04) - 강점제2시기
2012/04/16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05) - 강점제2시기
2012/04/23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쳔사 (106) - 강점제2시기
2012/04/30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07) - 강점제2시기
2012/05/07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08) - 강점제2시기
Trackback 0 Comment 0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  1) 고대에서 조선시대까지 - 1

오늘부터는 <경남지역 주거변천사>를 포스팅하겠습니다. 6~7년 전에 『경남도사』에 싣기 위해 간략히 쓴 글인데 출판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 블로그에 올립니다. 어차피 공유하기 위한 글이니 이해하리라 생각합니다. 한반도 동남부에 ..

기억을 찾아가다 - 25 (마지막 회)

25. 3·15의거에 대한 기억 「그날 나는 ‘극장 구경 시켜주겠다’는 주무돈이란 동네친구의 호의에 끌려 10리 가까이 되는 길을 걸어 ‘시민극장’으로 갔다. 그때 나는 대학입시에 낙방한 직후라 의기소침해 있던 상황이었다. 우..

기억을 찾아가다 - 24

24. 이승만 행사 - 독립협회와 청년 이승만, 노인잔치...... 내 고등학교시절의 어느날 동회 서기가 들고온 책자를 잠시 훑어본 기억이 남아있다. ‘한국 정치인 99인집’이란 제목이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이승만편이 현격히..

기억을 찾아가다 - 23

23. 떠돌이들, 좀도둑 전쟁이 끝나자 대다수의 사람들은 고향으로 돌아들갔지만, 상당수의 사람들은 남아있었다. 좌우갈등의 와중에 있었던 몸이라 돌아갈 수 없는 처지였다고 들은 문씨 같은 사람들도 있었는가 하면, 가봤자 땅뙈기 ..

기억을 찾아가다 - 22

22.기합, 주먹자랑, 몸단련 중학교시절에도 조금은 의식되었지만 신경을 곤두세울 정도는 아니었었는데, 고등학교에 들어가자 그 문제들은 신경의 상당부분을 자극하여 행동거지의 상당부분을 조종하고 지배할 정도로까지 작용했다. 소위 ..

공간의 재탄생 - 재생 건축 '선유도' 02

지난주에 이어 녹색 기둥의 정원 에서부터 선유도 이야기를 이어 나가보도록 하겠습니다. - 녹색 기둥의 정원 정수지의 콘크리트 상판 지붕을 들어내 기둥만을 남겨 만들어진 이 정원은, 선유도 이야기관 의 설명에 의하면 ‘휴식과 ..

기억을 찾아가다 - 21

21. 동(洞) 대항 줄다리기대회 ‘마산시 동 대항 줄다리기대회’가 시작된 건 초등학교 때였던 것 같은데, 내가 몇번 구경한 건 중학교 때였다. 대회 장소는 주로 무학초등학교였다. 마산의 30여 동이 토너먼트로 겨루어 하루에 ..

공간의 재탄생 - 재생 건축 '선유도' 01

서울 한강변의 대표적 공원 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곳 중에 선유도가 빠지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원래 거기에 그렇게 있었던 장소로 기억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아직 직접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선유도 공원이 ..

기억을 찾아가다 - 20

20. 아이스케키 아이스크림이나 팥빙수도 있었지만 수요가 많지는 않았었다. 학교 앞이나 시장 입구 등에 리어카를 세워놓고 수제로 만들어 파는 정도였다. 소금 뿌린 얼음 통을 손으로 돌려 냉각시킨 아이스크림은 즉석에서 고깔과자 ..

안상수 시장은 철거민의 눈물 닦아주시라

설 연휴가 끝난 다음 날, 나는 한 언론사의 취재에 동행해 재개발로 철거 중인 마산 회원동 일대를 다녔다. 내가 태어난 곳이고 서른까지 산 곳이었다. 지금도 매일 두 번씩 지나는 곳이기도 하다. 그날 나는 몰상식과 몰염치의 밑..

기억을 찾아가다 - 19

19. 영화, 만화, 잡지 초등학교 6학년 때 단체로 시민극장에 ‘성웅 이순신’을 보러 갔다가 실망했던 기억이 있다. 활동사진이 아니고 정지된 그림(슬라이드)이었기 때문이다. 중1때 문화동 쯤에 있었던 제일극장에서 본 애정(哀..

공간의 재탄생 - 재생 건축 intro.

세 달 가까이 이어져 왔던 '건축의 외형' 에 이어, 세월의 흐름에 따라 방치되고 버림받게 된 건축에 새 삶을 불어넣는 '재생 건축' (regenerative architecture) 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이어 나가볼까 합니..

기억을 찾아가다 - 18

18. 바냇들, 부림시장 정전 다음해 진학한 마산서중(전쟁 중인 1951년 9월 1일 6년제 마산공립중학교가 3년제 마산고와 마산서중으로 분리되었다. 마산서중이 현재의 마산중학교로 교명을 변경한 것은 1955년 5월 7일이었다..

기억을 찾아가다 - 17

17. 공놀이, 헌병사령부 축구팀 우리 어릴 때 겨울 빈 밭에서 새끼로 동여맨 짚 뭉치를 차고 놀던 기억이 있고, 간혹 있은 잔칫집에서 나온 돼지 오줌보에 물을 넣어 차고 놀던 일도 어렴풋이 기억의 한 자락에 남아 있다. 형들..

기억을 찾아가다 - 16

16. 광복절 행사와 우리들의 영웅 초등학교 때도 광복절 기념 체육대회가 있었지만 참여 정도가 미미해서 별로 기억나는 것이 없다. 중학생이 되어 응원군으로 참여하면서 운동경기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되고, 그러면서 선수들의 면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