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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13 00:00

스페인 도시이야기 3. 그라나다, 알함브라궁전의 추억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

- 클레식 기타의 플라스틱줄이 반복되게 굴러가는 선율을 기억할 것이다. 은은히 저음대와 고음대를 오가다가, 점점 속도가 빨라지면서 애잔하게 마무리되는 알함브라 궁전의 클레식 기타선율은 앨범 자켓에 그려진 알함브라궁전의 사진에 나타난 섬세한 장식미와 어찌그리 닮았는지! 했던 기억이 있다. 이처럼 그라나다라는 도시는 기타선율을 통해서 알게되었다. 그리고 알함브라 궁전이 이슬람 예술과 건축중에서 가장 위대한 건물이라는 것은 뒤늦게 알게되었다.

그라나다의 역사 : 

- 도시의 시초는 기원전 5세기에 스페인의 원주민인 이베로족의 거주지로 시작되었으나, 본격적으로 도시의 형태를 갖춘것은 711년 이슬람교도의 정착에서 비롯되었다. 그라나다의 전성기는 11세기 무렵 이슬람 왕조의 정치적 지각변동에 의해 이루어진다. 8세기 이후 이슬람 왕국은 코르도바의 칼리프 왕조을 거쳐, 1031년 이후 각 도시마다 군주들인 난립하는 이슬람 소왕국으로 분할되면서 세비야, 사라고사, 톨레도는 이슬람교도에 의해 그라나다는 베르베르인들이 차지하게된다.  이와 같은 정치적, 군사적 혼란상황에서 무하마드1세(재위1232-1272)는 그라나다에 이슬람의 마지막 왕국인 '나스르 왕조'를 세우고 독립왕국을 선포한다. 그라나다는 높은 산지로 둘러쌓여 외침을 막기 쉬웠으며 활발한 경제활동에 힘입어 약 250여년 동안 문화왕국으로 풍요를 누렸다.- 궁전주변 지형도 : 북측에 네바다 산맥이 버티고 있다. -- 3개의 언덕과 평지로 이루어진 그라나다 구 시가지에서 보면 오른쪽에 알함브라 궁전이 왼쪽은 당시 귀족들과 서민들이 살았던 '알바이신 지구'가 있다. 그리고 가운데 멀리 보이는 언덕은 집시들의 거주지역 '사크로몬테'지역으로 구분된다. - 알함브라 배치그림-

알함브라 궁전 : 그라나다의 상징이며 유럽에 현존하는 이슬람 건축물 가운데 최고 걸작으로 꼽힌다. 아랍어로 '붉은 성'이라는 뜻이며, 최초의 알함브라는 10세기에 군사요새로 설계되었는데, 이전에 있었던 서고크 왕국 시대의 요새로부터 만들어졌다. 지금의 왕궁은 13세기에 스페인의 마지막 이슬람 왕조의 무하메드 1세가 성안에 왕궁을 축성하고 그 뒤에 역대왕들이 증개축을 반복해 13세기 유수프 1세 때 지금의 모습으로 완성되었다.

- 내부의 배치는 크게 4개 구역으로 나뉘는데 헤네랄리페(Generalife), 카를로스 5세궁전, 나스르 궁전, 알카시바(Alcazaba)구역으로 나뉘어져 있다.

- 헤네랄리페(Generalife) : 14세기에 세워진 왕가의 여름별궁으로 배치그림 상단에 수평으로 전개된 정원과 주변일대이다. 분수의 물은 시에라네바다 산맥의 눈 녹은 물을 이용해 분수와 수로를 만들어 놓아서 '물의 정원'으로 불린다.- 입구 부분 : 여름별장부터 관람하게 된다. -- 초입부에 있는 정원에 설치된 야외 음악당의 가설무대 -- 초입부에 조성된 낮은정원(Lower Garden) -- 아케이드내에 수로와 줄기분수, 관목에 의해 조성된 수로 정원(Court of the water channel) -

- 섬세하게 장식된 아케이드에 면해있는 수로 정원 -

- 술탄의 정원(Court of the Sultana) : 사이프러스 관목

- 여름 별장건물의 아케이드에서 바라본 주변 모습

- 여름별장의 모습 : 전형적인 스페인 건축의 특징인 고색창연한 빛깔의 스페니쉬 기와와 벽면의 회칠

- 카를로스 5세궁전 : 이 궁전은 이슬람 궁전이 아니다. 원래 있던 회교사원자리에 수도원과 산타마리아 성당 그리고 카를로스 5세의 명령에 의해 알함브라의 중심에 1525년에 세워졌다. 원형의 정사각형의 평면에 중심에 원형의 중정이 설치되어 있다. 원래는 이곳에서 투우를 즐겼다고 하는데 지금은 매년 그라나다 국제음악제가 열린다. 현재 1층에는 알함브라 박물관, 2층에슨 순수예술미술관이 있다. 북동측 부분에는 지하묘소와 미사실이 있다.

- 이건물은 르네상스시대 스페인 최고의 건축물로 평가받고 있다. -

- 저층부 석재상세, 문고리처럼 생긴 철물의 정체는? -말꼬삐 걸이라고 함

- 출입구 부분 상세 : 문상부의 원형장식이 독특하다. -

- 아케이드에 면한 원형중정의 모습 -

- 나스르 궁전 :  알함브라의 모든 전설과 민담이 이곳에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알함브라 궁전의 핵심이다. 전성기때 7개의 궁전이었다고 하는데 현재는 3개의 궁전만 남아있다. 외관은 평범한 스페니쉬기와 지붕에 흙벽돌 외벽마감이며, 외벽면은 아치형 창과 상층부에 아케이드로 장식된 평범한 외관이며, 내부 중정에 면한 정원과 분수에 의한 내부공간과 섬세한 벽면장식 및 아케이드를 통해서 아라비아의 독특한 공간감을 느낄 수 있다.(메스아르궁/Mexuar) : 초입에 있는 정치 집무실로 알바이신지구의 전망이 보이는 황금의 방이다.

(코마레스궁/Comeres) : 궁전의 핵심으로 물, 대기, 식물을 모티브로 꾸민 수공간이 특징이다.

- 키프러스 나무와 아케이드의 종유석은 나무와 석재마감이 주객이 전도된 느낌을 준다.

(사자의 정원) : 왕족의 개인공간으로 후궁들이 기거했던 할렘에 면해있다. 사자의 정원은 사자분수가 시간에 따라 사자의 입에서 물이나왔다고 한다.

사자의 정원은 대리석과 관상수로만 장식되어있다. 

(대사의방) 천정이 아름다운 종유석이 천창의 빛에 의해 영롱한 빛을 내뿜고 있다.

(사자의 정원) 사자 입에서 뿜은 물이 적은 수로를 건물입구까지 연결되어 있다.(알바인신지구) : 당시 귀족들과 일반시민들이 살던 지역으로 흰색벽면과 갈색지붕 일색이다.

- 알카시바(Alcazaba) : 9세기에 축성한 요새로 궁전 좌측에 삼각형 지대에 위치하며, 지금금은 파괴되어 24개의 망루만 가진 성으로 남아있다.

알함브라궁전의 재탄생 :

- 알함브라궁전이 세계에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1823년 미국의 낭만주의 문학의 작가인 워싱턴 어빙(Washington Irving)에 의해 소개된 '알함브라 이야기(Tale of Alambra)"라는 소설을 통해 재탄생하게 되었다. 당시 어빙은 스페인 마드리드에 미국공사관으로 임명되어 스페인을 여행중에 알함브라궁에 머무르면서 무어인(이슬람교도)의 신비한 전설을 채집하여 책으로 펴내면서 전세계에 소개를 하게 되었다. 당시의 알함브라는 폐허가 되어 부랑자들이 모여사는 쇠락한 곳이었으나, 일약 유명관광지로 변모하게 되었다고 한다. 문학의 힘으로 쇠락한 궁전과 그안에 담기 이야기들을 후세대에게 알리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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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23 00:00

스페인 도시이야기 1. 코르도바, 알 안달루스의 신부

정열의 나라. 스페인을 가다.

금번 여름휴가 때 스페인의 주요도시를 탐방할 기회가 있었읍니다.

스페인하면 연상되는 것은 참 다양한 것 같습니다.

우선 투우의 나라, 그리고 열정적인 집시들의 춤사위인 플라멩고, 그리고 소설이나 영화를 통해 생각나는 것은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와 중세기사와 충성의 상징인 '엘시드' 라는 로드리고 장군도 생각날 것입니다.

예술가로는 천재화가 피카소, 초현실주의 화가인 살바도르 달리, 성가족 성당을 설계한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를 꼽을 수 있읍니다.

특히 스포츠에서는 유럽의 축구명문가인 레알 마드리드 구단, 바르셀로나의 메시를 다들 기억할 것입니다. 특히 20세기 들어 36년간 군사 독재정치를 한 프랑코 역시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스페인의 이미지를 종합해 보건데, 유럽에 속하기는 하지만 유럽과 또 다른 에너지가 넘치는 반도적 기질이 자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배경에는 이베리아 반도의 지정학적인 요인과 시대별로 다양한 문화가 섭렵되어진 다양성에 있는 것 같습니다.

도시의 소개는 지역별, 문화별로 나뉘어 소개할까 합니다. 우선 이슬람도시부터 둘러보겠습니다.

● 스페인 속의 이슬람세계 : 코르도바, 세비야, 그라나다는 이슬람교도 지배 하의 스페인은 세도시가 중심을 이루었다. 711년에서 1010년까지는 코르도바, 1010년부터 1248년까지는 세비야, 그리고 1248년에서 1492년까지는 그라나다에서 이슬람 문화가 꽃을 피웠다.

'알 안달루스의 신부' : 코르도바

- 안달루시아 : 코르도바는 스페인 남부 해안지역에 면해있는 안달루시아 지방의 도시이다. 안달루시아는 지정학적으로 북아프리카의모로코와 가장 근거리에 접한 지역으로 이슬람교도들이 북아프리카를 통해 이베리아반도(스페인)로 접근하기 좋은 교두보와 같은 역할을 하는 곳이다. 안달루시아비방의 이름은 '알 안달루스'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다. '알 안달루스'는 '반달족이 건너온 곳'이라는 뜻의 '반달루스(vandalus)'에서 유래된 것으로 알'(al)'은 아랍어 관사이다. 즉 안달루시아는 반달족이 건너온 곳이라는 의미에서 유래된 것이다.

- '알 안달루스의 신부' 라는 말은 코르도바의 아름다움을 두고 이슬람의 작가는 ‘알 안달루스의 신부’라고 다음과 같이 묘사하였다. “ 그녀는 모든 아름다움을 다 갖추고 있다. 왕후로서의 오랜 가계가 그녀의 영광된 관을 만들고 있다. 그녀의 목걸이는 시인이 언어의 바다에서 채취한 진주를 이어 놓은 것이며, 그녀의 이상은 학자들이 교모하게 짠 학문으로 지어져 있다.”

● 스페인 역사 :

- 기원전4500년경 동부연안에 최초의 집단부락이 출연, 이후 기원전 1천년경 아프리카에서 동부연안에 진출한 햄족 기원의 이베로족과 기원전 600년경 피레네 산맥을 넘어와 반도 중앙부와 서북부에 정착한 켈트족이 합쳐져셔 셀티베로족이라는 새로운 종족으로 변해 스페인의 직계조상

- 켈트족은 기원전 2천년부터 기원전 1세기까지 유럽 대부분의 지역에 살았던 인도-유럽어를 사용하던 종족으로 매우 호전적인 종족으로 현재 스페인 북서부 갈리시아지역에 아일랜드인과 유사

- 페니키아와 그리스인들(기원전11-3세기) : 기원전 11세기 무렵 이베리아반도 남부 연안에 카디스를 건설하여 식민거점으로 활용하였다. 오늘날 베이루트 북쪽 20마일에에 있는 페니키아는 도매상의 교역로로 아프리카 북부와 이베리아 반도 남부지역에 공장을 건설하여 방해한 해상교역망을 구축, 이후 카르타고의 번영으로 쇠토

- 카르타고인들은 페니키아인들의 뒤를 이어 식민도시를 건설, 그 거점이 바르셀로나로 기원전 3세기 이후, 로마제국과 1세기 이상 치렀던 포에니 전쟁에서 패함으로 지중해 패권을 로마제국에 양도

- 이베로라는 말은 오늘날 에브로(Ebro)강의 옛 이름인 이베르 강지역에 살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 기원전 1200년에서 서기 400년(로마제국 지배)까지 스페인의 많은 문명이 발달, 기원전 19년 카르타고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로마인들은 이베리아 반도를 완전히 점령 이때 반도에 카톨릭과 라틴어가 도입

- 게르만족의 대이동(서고트족의 침입409년) : 북방인종으로 키가 크고 금발에 파란눈이 특징으로 원래 거주지는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남부에서 지금의 북독일에 걸친 지역이다. 이들의 이동은 훈족이 볼가강을 건너 동고트 족을 정복함으로써 376년 로마 영토안으로 이주, 476년 로마는 게르만족의 오토아케르에 의해 폐위되엇으며 그로서 로마는 멸망

- 이베리아 반도에서 서고트족은 전체 약 400만의 주민 중 10만명 정도로 세고비아 지역을 중심으로 한정된 지역에 거주했고, 나머지는 중요한 각 지방의 도시에 군대와 관리들만 주둔시켰다. 711년 이슬람의 침공으로 붕괴되었다

- 이슬람교도의 반도 침입(711년) : 서고트의 왕 위티사가 710년 죽자 로드리고가 왕위에 오르자 아들의 추도세력은 북아프리카의 회교 통치자 무사에게 용병을 요청, 타리크를 보냈다. 그의 부대는 스페인 남부 코달레테 강가에서 싸워 이겼다. 이것이 이슬람교도들의 이베리아 반도 침입의 시초가 되었다. 이후 7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북서쪽의 고산 지대를 제외하고 반도 전체를 점령하여 서고트 왕국을 멸망시켰다.

- 11세기부터 이슬람교도 사이의 분쟁으로 여러 왕국으로 분열되었으며, 이로 인해 카톨릭 왕국의 재정복(레콘키스타)이 달성되어 1492년 이슬람 왕국은 사라지고 카톨릭으로 통일된 강력한 국가가 형성

이슬람도시 코르도바의 탄생 :아랍 본토의 다마스쿠스를 거점으로 지배하던 '옴마아드' 왕조의 '압데라만 1세'가 바그다드를 거점으로 하는 '아바스 왕족'의 학살을 피신하여 칼리프령인 스페인에 피신해 있다가 새로운 독립 이슬람 왕국을 세웠다. 국호를 알 안달루스 (Al Andalus)라고 칭하고 도읍지로 결정괸 곳이 코르도바이다. '압데라만 2세'는 코르도바를 바그다드보다 훌륭한 도시로 만들려고 두 번에 걸쳐 증축한 대모스크의 1,200개나 되는 석조기둥에는 스페인을 거쳐간 지중해의 모든 문명(그리스, 카르타고, 로마, 비진틴)의 양식들이 표현되었다.

당시 유럽에는 인구 3만의 도시가 적었던 반면 코르도바 인구는 50만 이었으므로 당시 콘스탄티노플 외에는 없었다. 압데라만 3세는 코르도바를 독립된 카리프로서 바그다드로부터 분리시켜 정치적 종속관계를 벗어나 알 안달루스 왕국은 독립적인 황금시대를 구가할 수 있었다.

코르도바는 그리스 철학이나, 로마의 법률, 비잔틴과 페르시아의 예술을 받아들였고, 유대교와 카톨릭 신학까지 연구했다.  코르도바의 멸망은 1031년 마지막 와인 힉셈3세가 사망함으로써 왕국의 동요와 반란이 일어나 한 군주가 통치하는 칼리프 왕국이 사리지고, 왕국은 주요 도시로 분활되어 각 도시마다 군주들이 난립하는 군웅할거 시대인 타이파(소왕국)왕욱 시대로 넘어갔다.(1036-1081) 이후 1085년에 이슬람교도의 핍박을 받던 톨레도가 카톨릭교도로 넘어가자 코르도바 왕국은 북아프리카의 알모라비데족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러나 이들은 카톨릭교도들을 물리치지만 동시에 코르도바 왕국도 정복하는 바람에 안달루스의 신부 코르도바의 영광은 사라지고 말았다.

*코르도바(cordoba)는 페니키아어로 '풍요롭고 귀한도시'라는 뜻의 Kartuba에서 유래했다.

코르도바 대성당 : 대성당이라는  명칭은 현재에 사용되는 용도를 일컬어 사용하는 건물명이다. 당초 건립당시에는 이슬람 사원으로 건립되어 모스크(Mosque)라고 부르며, 스페인어로 'Mezquita(매즈퀴타)'라고 사용되고 있다. 이 사원은 스페인에 남은 유일한 회교사원이며,세계에서 규모면으로 몇번째 해당되는 큰규모의 사원이다.

- 건물의 연혁은 786년에 공사가 시작되었으며, 규모는 22,400평방미터로 남북길이 175미터, 동서로 128미터의 규모로 동시에 2만5천명 예배를 드릴수 있도록 되어있다.  평면의 구성은 사원과 중정(세정의 정원) 그리고 미나렛(Minaret, 광탑)으로 구성되어있다.

- 사원은 최초에 노랑색(9번)부분이었으나, 색상에 따라 증축되는 과정을 볼 수 있다. 하단이 중정이며, 실내의 중앙부분이 성당으로 개조하면서 만들어진 중앙예배당이다. (16,17,18번)

 - 종탑에 해당되는 미나렛은 하루 5번 기도시간을 알리기 위해 종탑기능을 하며 내부에는 계단이 설치되어 있으며, 최초의 종탑은 소실되고 현재의 종탑은 47.5미터로 1617년 성당으로 용도변경되면서 새로이 건립된 것이다.- 현재의 종탑은 카톨릭성당으로 사용되면서 세원진 것이다. 중정 외곽에 설치된 회랑에 접해있다.

- 중정은 5개의 분수와 함께 올리브나무, 오렌지나무, 종려나무, 사이프러스 나무 등으로 장시되어있다. 중정 외곽으로는 성소에 들어가기 전에 행하는 수세의식을 위한 세례소가 있었을 것이나, 현재는 카톨릭 성당으로 변경되어서 그러한 모습은 남아있지 않다.- 중정은 예배보러 들어가기 전에 마음을 가다듬게 하는 정화공간이다.- 중정 외곽에 면한 회랑은 원래 세례소가 설치되었으나, 현재는 전시회랑의 역할을 하고 있다.

- 사원은 19개의 아케이브 주열로 형성되어 있다. 쉽게 표현하면 19칸의 기둥주령릉 형성하고 있으며, 매 칸은 상부 세모난 박공지붕으로 형성된 지붕으로 채광을 삼각형의 한면을 채광창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그래서 지붕은 톱날 지붕형태의 반복형태로 지어졌다.- 아치구조를 받치는 기둥이 하단에는 원기둥으로 마감하고 상부는 네모난 기둥으로 되어있다. 원기둥과 네모기둥의 접합부를 고대 로마시대에 기둥 상단을 장식하는 꽃잎문양으로 장신한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기둥을 칼리프 기둥으로 불리면서 코르도바의 대표적 예술품으로 후세에 알려졌다.

- 당초 회교사원으로 사용될 당시의 지붕모습이다. 19개의 아치 상부 톱날 지붕의 단순한 형태로 마감되어있다.

- 카톨릭 대성당으로의 용도변경 :  1236년 성페르난도 3세에 의해 코르도바가 함락당하면서 회교사원은 '산타마리아 마드레 데 디오스'라는 대성당으로 바꾸게 되었다. 회교사원과 성당은 내부 기능이 다르므로 당시에는 이것을 해체시키고고 했으나 재차 협의를 한 결과, 주 제대와 성가대석의 십자가형 평면을 중앙부에 삽입하는 형태로 정리되었다. 그래한 형태로 나온 결과가 삼각형 박공형 평면의 중심에 우뚝 솟은 고딕식 지붕이 성당의 중심공간을 상징하는 형태로 변경되게 되었다.

- 그림의 지붕은 카톨릭 성당으로 용도변경하면서 중앙부에 제대와 예배석을 설치하면서 고딕식으로 장식하기 위해 높은 천장을 만들기 위해 지붕이 솟아 있으며, 주변부는 높은 벽면을 지지하기 위한 부축벽이다.

실내상세 설명- 여러차레 증축되는 과정에 시대별 다양한 아치의 장식들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이 건물을 거대한 고고학 박물관으로 여기고 있다.

- 내벽면에 아치로 통하는 감실을 '미르합'이라고 한다. 대리석으로 장식된 팔각형의 공간으로 아치 주변은 자연을 상징하는 식물모양과 주변에는 코란 경구를 금박으로 장식하고 있다.

- 성가대석에 조각은 중앙부에 예수님의 부활장면을 양측에 시빈를 상징하는 아빌라의 성녀 테레사와, 고행을 상징하는 막달라 말아가 조각되어있다. 조각은바로크를 대표하는 조각가 페드로에 의해 마호가니 나무로 제작되었다.- 회랑부분은 반원형 아치로 되어 있으며, 반대열은 얼룩무늬 2단 아치의 동일한 공간이 반복되고 있다.

사원 주변풍경

-사원주변은 유태인지역이었다고 한다. 현재는 비좁은 골목길에 조그만한 기념품 코너가로로 형성되있다.-벽면의 아기자기한 화분 장식들- 기념품티가 가지런히 정열된 모습- 주변광장에서 그림을 그리는 동네 노인들- 노천카페에서 강변을 바로보다.- 다리위에서 바라본 사원모습, 중앙의 돌출부분이 제대에 해당된다.

현재의 코르도바 -지붕의 중앙부 라틴크로스 부분이 제단 및 예배당으로 변경되었다.

- 코르도바는 8세기에서 11세기 사이에 '서구의 콘스탄티노플', '서양속의 동양'이라고 불리웠던 이슬람 제국의 영화를 간직한 도시이다. 카톨릭교도에 의해 멸망한지 10세기가 지났지만, 회교도들이 남긴 건축술에 대한 독창성을 보여주는 공간으로 남아있다. 사원 실내에 도열한 얼룩무늬 아치에 남겨져 있는 회교도 장인들의 야무진 손맵시는 코란속의 경구를 실천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카톨릭 국가 스페인의 한켠에서 세계 여라나라의 사람들을 불러 모아 이슬람교의 의미를 생각하도록 예상했을 수도 있을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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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가 끝난 다음 날, 나는 한 언론사의 취재에 동행해 재개발로 철거 중인 마산 회원동 일대를 다녔다. 내가 태어난 곳이고 서른까지 산 곳이었다. 지금도 매일 두 번씩 지나는 곳이기도 하다. 그날 나는 몰상식과 몰염치의 밑..

기억을 찾아가다 - 19

19. 영화, 만화, 잡지 초등학교 6학년 때 단체로 시민극장에 ‘성웅 이순신’을 보러 갔다가 실망했던 기억이 있다. 활동사진이 아니고 정지된 그림(슬라이드)이었기 때문이다. 중1때 문화동 쯤에 있었던 제일극장에서 본 애정(哀..

공간의 재탄생 - 재생 건축 intro.

세 달 가까이 이어져 왔던 '건축의 외형' 에 이어, 세월의 흐름에 따라 방치되고 버림받게 된 건축에 새 삶을 불어넣는 '재생 건축' (regenerative architecture) 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이어 나가볼까 합니..

기억을 찾아가다 - 18

18. 바냇들, 부림시장 정전 다음해 진학한 마산서중(전쟁 중인 1951년 9월 1일 6년제 마산공립중학교가 3년제 마산고와 마산서중으로 분리되었다. 마산서중이 현재의 마산중학교로 교명을 변경한 것은 1955년 5월 7일이었다..

기억을 찾아가다 - 17

17. 공놀이, 헌병사령부 축구팀 우리 어릴 때 겨울 빈 밭에서 새끼로 동여맨 짚 뭉치를 차고 놀던 기억이 있고, 간혹 있은 잔칫집에서 나온 돼지 오줌보에 물을 넣어 차고 놀던 일도 어렴풋이 기억의 한 자락에 남아 있다. 형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