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2010.02.23 08:00

바람재에서 만난 사이클리스트



'하늘에 안창남, 땅에는 엄복동'

암울했던 일제기에 자전거 한 대로 민족의 울분을 삭히고 자존심까지 살려주었던 전설적인 자전거 레이서 엄복동(1892∼1951).
1913년 3월, 한·일 선수들이 함께 참가한 ‘전 조선자전차경기대회’를 우승하면서 민족의 스타로 떠오른 엄복동은 그후 계속되었던 한·일 사이클대회에서 일본을 눌러 나라 잃은 서러움을 달래주었다.
10년 후인 1923년에는 마산에서도 엄복동의 자전거가 달렸다.
4월 29일∼30일 이틀에 걸쳐 마산체육회가 주최한 '전 조선자전차경기대회'에서였다.

그 때 엄복동이 달렸던 코스가 지금 마산의 어디였는지 알 수 없는 점은 아쉽지만, 87년 전 마산에서 전국규모의 사이클 대회가 열렸다는 사실이 주는 도시적 의미는 크다.

지난 일요일 오후,
만날재와
대산 사이의 ‘바람재’에서 열린 ‘마산프로사이클동호회’ 시산제에 참석하였다.
경남도민일보 사장으로 있을 때 ‘자전거대행진’ 행사를 하며 알게 된 클럽이다.
자전거 타는 분들이 웬 시산제냐 했더니, MTB(Mountain Terrain Bike, 산악자전거)를 이용해 산과 들을 누비기 때문에 음력 정월 좋은 날을 잡아 시산제를 지낸다고 했다.
절을 하고 제문을 읽고 잔을 올리는 등의 제사 행위는 일반 시산제와 다를 바 없었지만 제단에 내건 현수막 옆에 자전거를 세워 놓은 점이 달랐다.

                     <시산제를 지내고 있는 마산프로사이클 회원들>
                                    <마산프로사이클 회원들>
                   <자전거도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이태유 회장>

제를 지낸 뒤 음식 나눌 때 자전거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

클럽의 이태유 회장은 자전거 때문에 얻는 즐거움과 건강을 자랑하면서 마산도 자전거를 타기 좋은 도시가 되기를 원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회장은, MTB는 누구나 탈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일반시민들이 언제 어디서든 이용할 수 있는 생활자전거가 활성화되어야 된다고 힘주어 말했다. 생활자전거가 활성화되면 MTB동호인들은 자연스럽게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감도 보였다.

여러 회원들이 입을 모아 주문한 말은 만날고개―밤밭고개―청량산으로 이어지는 자전거도로였다.
“그렇게만 되면 산과 바다가 연결되는 환상적인 자전거도로가 될 텐데, 밤밭고개 도로 때문에 끊어지는 것이 안타깝다” 면서 오버브리지(overbridge)로 청량산까지 자전거길이 연결되면 좋겠다고 했다.

- 도시를 살리는 자전거 -

교통수단을 대중교통이나 자전거보다
 개인승용차에 의존하는 비율이 점점 높아지고있다. 도시정책이 이를 부추기기도 한다.
반시대적이고 반환경적이고 반공공적인 추세다. 서구 선진국에서는 이미 오래전에 폐기시킨 도시정책이다.
개인이 타는 승용차가 점점 많아진다는 것은 한 사람이 사용하는 도로의 면적과 에너지를 비롯한 각종 자원의 사용량이 많다는 뜻이다.

우리나라의 국민 일인당 도로연장은 2미터 조금 넘는다. 일본의 1/4, 미국의1/10 밖에 되지 않는다. 이에 비해 연간 일인당 자동차 주행거리는 23,000킬로미터로 일본의 2배가 넘고 땅이 넓은 미국보다도 길다.
우리 국민들이 이동수단으로 자동차에만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는 통계다.
출퇴근은 물론 주말, 휴가철, 명절 귀성 때, 어디라도 움직이기만 하면 우리는 자동차를 탄다. 도로정체로 한 두시간 길 위에서 보내는 것을 예사롭게 생각할 정도다.
가까운 거리라도 걷기를 싫어하는 'door to door' 현상은 도시의 교통과 주차문제를 악화시키는 주범이기도 하다.

이 대안으로도 자전거가 유효하다.

자전거를 많이 이용하는 도시 중 대표적인 곳이 네덜란드의 그로닝겐이다.
이 도시의 주민통행 분담률은 자전거가 53%이다. 그럼에도 그로닝겐에서는 자전거도로 지름길 건설과 기존 자전거 노선을 개선 등 완벽한 자전거도로망 구축을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독일의 델프트(41%)와 뮌스터(41%), 코펜하겐(34%), 프라이부르그(27%)도 자전거를 많이 이용하기로 유명한 도시다.
이 선진도시들은 지금도 자전거 이용률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내놓고 있다. 심지어 코펜하겐에서는 자전거 타는 사람들의 배타적 이용을 위해 자동차 차선과 가로변의 주차공간을 몰수하기도 했다.
'좋은 점만 있을 뿐, 나쁜 건 하나도 없다'는 것이 그들의 자전거에 대한 생각이다.


                     <그로닝겐 시민들이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고 있다>
           <계단을 오르면서도 자전거를 끌수 있도록 배려한 그로닝겐>

자전거 타기에 마산의 도로사정이 좋지 않다고 불평하는 동호인들이 많았다. 자전거를 타고 나갔다가 당한 어처구니 없는 경험들도 하나둘 내어 놓았다.
이미 자리잡아가고 있는 창원의 자전거정책을 축으로 마산과 진해에도 자전거 길을 연구 모색한다면 좋은 답을 얻을 것이라는 기대도 함께 나누었다.

자전거를 타서 그런지 회원들 모두 장딴지가 실했고 표정도 밝았다.
건강한 모습이 하도 좋아 '나도 곧 자전거를 타겠다'는, 지킬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약속까지 했다.

엄복동이 힘차게 페달을 밟았을 마산 이 도시에 다시 자전거 전통을 세울 수 있는 길은 없을까?
마산만이 훤히 내다보이는 바람재에서 산과 바다를 아우르는 통합도시의 자전거 길을 상상했다.<<<

 <추가 ; 바람재 한 구석에 쓰레기가 널려있었다. 아직도 이런가? 싶었다>

                                   <바람재의 쓰레기 더미>
                           <아무렇게 던져 놓은 쓰레기들>

                             <등산객들이 식사하는 자린데....>


Trackback 0 Comment 6
  1. 임종만 2010.02.23 09:24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의미있는 행사에 다녀왔군요.
    자전거는 타지않고 가셨네요.
    그냥 걸어서...
    걷는것도 참 좋습니다.
    자전거 타는 것보다 장단지는 굵어지지 않지만
    그날 저도 쌀재에 있었습니다.
    몇분이 행사마치고 저의 농장에서 차를 마시며
    쉬어갔습니다.
    그기 쓰레기 저도 보았는데 참, 부끄럽대요.
    산이 좋아가는데 그 좋은 산에다
    아직까지 이런 모습을 보다니 누굴 탓하겠습니까?
    바람재는 동호인들이 많이 왕래하고 또 행사끝물에
    음식물을 섭취하는 장소라 마음을 다잡아 먹지못하면
    쉽게 유혹에 빠집니다.
    주로 단체손님쓰레기거던요.
    무디기를 만들어 놓으면 그냥 개별산행인도
    그기다 버립니다.
    이 우째야겠습니까?

    • 허정도 2010.02.23 11:04 신고 address edit & del

      그날 가까운 곳에 계셨군요.
      얼굴이라도 한번 볼걸 그랬습니다.
      예, 걸어서 갔습니다.
      만날재에서 바람재까지 45분 걸리더군요.
      참 좋았습니다.
      쓰레기 버리는 분들,
      정말 이해가 안됩니다.
      도대체 누굴보고 치워라는 건지,,,

  2. 최정건 2010.02.24 11:47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서로에 대한 배려가 아쉽습니다, 저는 전에 대곡산에서 무학산 정상으로 가는

    갈에 크로스 컨트리 오토바이을 타고 올라 오는 사람도 보았습니다.

    딴지를 걸는 것이 아니지만 제가 이 단체에 대하여 조금은 알고 있습니다.

    이 단체 회원중에 한 분이 청량산 임도 2층 정자에서 계단내려오기를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결국 2층 정자의 목재계단이 다 까졌습니다.

  3. 최영준 2010.03.19 11:48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좋은글 공감가는 내용들 즐감 했습니다.
    마산에 이런 좋은글을 블로그에 올리시는 분이 있는줄은 이제 서야 알았네요...^^
    프로사이클 동호회에서 저역시 좋은 만남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회가 되면 뵐수도 있겠네요...^^

    앞으로 좋은 글 감상하며 공감하겠습니다.

  4. 노상완 2010.03.23 00:22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일본에서 마운틴바이크(산악자전거)에 대한 뉴스가 우리에게도 적용될 것 같아 옮겨 봅니다'

    < 최근 중장년층 사이에 500에서 1,000미터를 걷는 산행이 붐을 이루고 있는데, 산악 자전거에 따른 피해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산은 루트가 많이 있기 때문에 산악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에게도 인기가 있습니다.

    그러나 사고를 일으키지 않기 위해 산악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지켜야만 하는 규칙이 있습니다.

    1. 하이킹하는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타지 않는다.

    2. 하이킹하는 사람을 만나면 자전거에서 내린다.

    3.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달리는 것입니다. >

    • 허정도 2010.03.23 08:36 신고 address edit & del

      참 좋은 규칙이군요.
      그렇지 않아도,
      좁은 등산길에 자전거가 지나가면 등산객들은 어떻게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방문 감사합니다.

2009.10.20 06:00

제안, <신(新) 7대 도시 마산>



마산을 염려하는 분들이 늘 하시는 말입니다.

‘한 때 전국 7대 도시였던 우리 마산이 이제는 경남 7대 도시가 될 판이다’

‘전국 7대 도시의 영광을 되찾자’

슴 아픈 호소입니다.
이 말을 들을 때마다 마산을 고향으로 둔 내 마음도 무척 안타까웠습니다.

마산뿐 아닙니다.
한 때 잘나갔던 도시라면 어디 할 것 없이 이런 식의 한탄 한마디는 다 있습니다.
몇 년 전에 목포시의회 부의장에게 들은 말인데, 목포 사람들은 지금도 ‘전국 6대 도시의 영광을 되찾자’ 한답니다.

전국 7대 도시 마산········.
어릴 때부터 많이도 들었던 말입니다.

하지만 나는 그 의미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지 못했습니다.
인구가 전국에서 일곱 번째였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았지만, 그것이 이 도시에 어떤 조건과 결과를 주었는지 깊이 생각해보지 못했습니다.
어른들로부터 ‘전국 7대 도시’란 말을 들으면서 어린 기분에 약간의 자부심이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나이가 든 후,
건축가로서, 대학에서 도시학을 강의하면서, 언론사 대표로 이런저런 정보를 접하면서, 내 고향 마산이 ‘전국 7대 도시’였다는 사실에 대해 자주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지난 세월 동안 이 도시가 겪었던 영광과 좌절의 부침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도시의 미래를 전망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전국 7대 도시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서 성찰해보았습니다.


이 글은 마산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살아온 사람으로서 내가 던지는 ‘전국 7대 도시 마산’에 대한 질문과 답입니다.
행정구역을 통합하는 마당에 이런 글이 무슨 소용이냐고 할지 모르지만, 통합이 되던 안 되던 마산의 문제는 마산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해결해야 된다고 생각하며 이 글을 씁니다. 


  <마산도시 한복판을 관통하는 임항선 / 남루하게 방치되어 있다>

 
       <남성동 해안 / 시민들의 접근을 철저히 거부하고 있다>

            <회원천 / 부패된 물이 도시 복판을 흐르고 있다>


-마산이 '전국 7대 도시'가 된 까닭-


마산은 근대기라 일컫는 지난 백여 년 동안 엄청난 변화를 겪었습니다.

개항이라는 외세의 파도가 이 도시를 뒤덮으면서 시작된 변화였습니다.
우리나라 근대도시사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굵직굵직한 궤적들이 이 도시를 관통했으며, 그 흔적들은 지금도 도시 곳곳에 배어있습니다.

도시변화의 주역은 물론 일본인들이었습니다.
이 도시의 변화는 일본인들의 욕구를 채워주는 그들만의 잔치였습니다. 따라서 오직 경제적 이익을 얻기 위했을 뿐 다른 노력은 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시기 어느 곳에서든 단 한 번도 공익적 관점에서 이 도시를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바라볼 필요도 없었습니다.
이 도시는 단지 그들에게 이익을 퍼주는 식민의 땅이었기 때문입니다.

해방이 되자 그들은 떠났고, 일본으로 건너갔던 동포들이 대거 밀려들었습니다.
부산 목포와 더불어 귀환동포들이 이 도시에 넘쳤습니다.
갑자기 도시가 커진 겁니다. 
내 부모님께서도 그 때 마산부두에 내려 이 도시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일시에 들이닥친 '귀환동포'가 얼마나 많은 문제를 야기했던지 이를 패러디하여 '우환동포'라고도 불렀습니다.

해방 5년 후 전쟁이 나자 피난 내려 온 동포들이 또 한 번 대거 밀려들었습니다. 부산과 더불어 피난민들이 이 도시에 넘쳤고, 도시가 또 한 번 커졌습니다.
아버지께서는 그 때 피난민들을 상대로 행상을 하며 호구를 연명했습니다.
나는 일본군이 군용 마구간으로 사용하던 회원동 500번지에서 전쟁이 끝나갈 즈음 태어났습니다.

해방과 전쟁이라는 두 번의 격랑을 거치면서 마산에 사람이 들끓었습니다.
내 노라 하는 문화예술인들도 마산거리에 허다했습니다.
오래된 이야기지만 그 덕분에 얻은 도시 이미지 중 하나가 ‘문화예술의 도시’입니다.
그러나 사람만 많았을 뿐 사람들을 받아드릴 도시기반시설은 전무했습니다. 단지 생존에 대한 욕구와 열정으로만 살았던 시기였습니다.

이 도시의 결정적인 변화는 60년대 후반부터 생겼습니다.
한일합섬, 수출자유지역, 한국철강 등 굵직한 산업시설들이 다투어 이 도시에 들어왔습니다.
전국의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찾아 마산으로 마산으로 몰려들었습니다.
다시 한 번 이 도시에 사람들이 넘실거렸습니다.
도시가 젊어졌고, 또 한 번 커졌습니다.

동마산이라는 새로운 지역이 생겼으며 버스가 다닐 수 있는 간선도로가 여기저기 뚫렸습니다. 전세방 달세방이 동이 나자 너도나도 집을 지었습니다.
온 도시가 공사판처럼 되었습니다.
그 때 나는 조그만 설계사무소 직원이었습니다. 제도판 위에서 밤늦게까지 쉬지않고 설계도를 생산해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도시의 팽창으로 남성동 창동 오동동 일대에만 모여 있던 중심상권이 분화되어 월영동과 합성동에 두 부심이 생겼습니다. 소비를 원하는 사람들을 중심상권이 모두 받아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 도시의 규모와 소비수준이 일약 전국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게 되었습니다.

‘전국 7대 도시’는 지금까지 말한, 해방이후 이 도시가 겪었던 격랑과 성장의 과정에서 나온 마산의 압축된 표현입니다.


     <마산이 번성했던 7-80년대 당시 마산수출자유지역 후문>


-다시 생각해야될 전국 7대 도시-


나는 생각합니다, 이 도시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해.
‘7대 도시’가 무엇을 남겨 놓았는지, 그리고 지금에 와서 ‘7대 도시’의 영광과 저력이 이 도시에 어떤 의미였는지.

뚜렷한 것이 없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도 손에 잡히는 것도 없습니다.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습니다.

사람 숫자가 아니라 사람이 사는데 필요한 조건들이 7대였다면, 그리고 그것을 지켰더라면, 비록 사람 수는 수십대로 밀렸지만 자부심은 있을 텐데 참 안타깝습니다.


이 도시를 생각합니다.
지금은 도시수준이 경제력과 도시발전을 이끄는 시대입니다.
생활의 질을 따지는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배고픈 시절에는 밥공기의 크기를 보지만 배가 불러지면 쌀밥 보리밥을 따지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세계의 여러 도시들이 도시를 확장보다는 삶의 질을 우선하는 까닭도 이 때문입니다.
오두막에서 맑은 물만 바라보고 살자는 말이 아니라 맑은 물이 돈이 되는 시대라는 말입니다.

흔히 말하기를 마산에 생산시설이 적어 인근 도시로 인구가 유출되었다고 합니다. 일견 맞는 말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생산시설만으로 마산사람들이 떠났다고만 보면 정확한 진단이 아닙니다. 그것은 2만 달러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의 라이프스타일을 충분히 이해 못한 탓입니다.
미국의 자동차도시 디트로이트의 쇠퇴가 이를 잘 보여줍니다.
도시적 상황은 방치한 채 생산시설만 있으면 발전된다는 주장은 한국사회에서 적어도 80년대 쯤 주장해야 맞는 말입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지금은 산업시설과 도시환경이 동반되어야하는 시대입니다.

도시환경에 대한 대책 없이 생산시설만 유치하면, 그것 때문에 인구 100명 늘어날 때 살기 좋은 곳을 찾아 떠나는 사람이 110명이 될 수 있는 사회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산업이 도시를 만드는 시대에서 도시가 산업을 만드는 시대라는 사실을 입증한 일본의 가나자와를 비롯해 영국의 밀턴케인스, 브라질의 꾸리찌바, 이태리 볼로냐와 라벤나, 네덜란드의 그로닝겐 등 세계의 유수한 도시들이 이를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이 도시를 다시 생각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도시가 다시 ‘전국 7대 도시’가 되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나 역시 그렇게만 되면 한없이 기쁘겠지만 그러기에는 수도권으로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몰린 것 같고 중앙과 지방의 격차가 심해진 것 같습니다.


-제안, 신(新) 7대 도시 마산-


그래서, 이 글을 빌어 ‘신(新) 7대 도시’를 감히 제안합니다.

양이 아니라 질적인 ‘7대 도시’로 가자는 제안입니다.

사람 수가 ‘전국 7대’가 되기는 불가능하지만 도시수준을 ‘전국 7대’로 높이는 일은 가능한 일입니다.
교육, 문화, 예술, 환경은 물론이고 공기, 인심, 물맛, 거리와 가로수, 공원, 경치 등 사람 사는데 정작 필요한 ‘도시수준이 7대’가 되도록 만들자는 말입니다.

임항선을 그린웨이로 만들어 키 큰 나무 아래로 사람들이 걷고,
파란 물 바닷가 잔디 위에 벤치가 놓이고 자전거가 달리고,
유모차를 밀고 나갈 꽃 가득한 공원이 도시 곳곳에 들어서고,
곧 추진될 생태하천으로 시내 곳곳에 맑은 물이 흐른다면········.
첨단의 로봇랜드가 머지않아 들어온다니 금상첨화일 테지요.

이렇게만 된다면 이 도시를 떠난 사람 중 다시 돌아 올 분도 적지 않을 겁니다. 좋은 도시에 좋은 산업이 들어온다는 사실은 이미 많은 도시에서 입증된 사실이니까요.


               <해안도시의 특성을 잘 살려 개발한 벤쿠버>


‘도시수준 전국 7대’
얼마나 행복하고 희망 가득한 미래입니까.
불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못해낼 만큼 어려운 일도 아닙니다.
불가능한 일이라고 가슴아파말고 가능한 일을 이야기하며 희망을 찾아야합니다.
해낼 수 있는 일을 목표로 삼으면 흩어진 힘도 모을 수 있습니다.

‘전국 7대 도시의 영광을 되찾자’는 뼈아픈 호소가,
‘양의 7대 도시에서 질의 7대 도시로 가자’라는 희망찬 외침으로 바뀌면 좋겠습니다.

이 도시에 살았던 선인들이 양적인 ‘7대 도시’를 물려주었으니, 우리는 질적인 ‘7대 도시’를 후손에게 물려주면 되지 않겠습니까.

‘도시수준 7대’는 ‘경제수준 7대’로 이어지고, 그것은 곧 ‘행복수준 7대’로 이어집니다.
구호 속의 일류도시가 아니라 피부에 와 닿는 일류도시로 이어질 것입니다.

소년 시절, 청년시절, 어른이 되어서까지········,
이 도시에서 수 없이 들었던 ‘전국 7대 도시’라는 말이 우리 다음 세대에게 똑 같이 전해지기를 바라며 드리는 간절한 제안입니다.

인구는 ‘7대 도시’가 불가능하지만,
도시수준은 ‘7대 도시’만이 아니라 힘을 모아 ‘1대 도시’까지 갈 수 있는 가능한 목표이기 때문입니다.



     (이 글은 ‘마산사랑모임’에서 낸 『마산의 희망 마산의 꿈』에도 실렸습니다)

 

 

Trackback 0 Comment 8
  1. 송순호 2009.10.20 11:31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선생님의 의견에 적극 동감합니다.
    그런 새로운 도시가 될 수 있도록 다 함께 노력했으면 합니다.
    수고하십시오.

    • 허정도 2009.10.20 14:44 신고 address edit & del

      감사합니다.
      꼭 그렇게 되도록 노력해야죠.

  2. 박력 2009.10.21 13:29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허정도님의 의견에 공감합니다.
    지금은 수원에 살고 있지만 바다를 보고 살았던 그때의 감동이 살아지지 않는군요..

    • 허정도 2009.10.21 14:30 신고 address edit & del

      방문 감사합니다.
      좋은 계절, 즐겁게 보내십시오.

  3. 유림 2009.11.17 19:38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선생님의 글을 따라 왔지만..
    마산을 생각했던 저의 마음 같습니다.

    너무 이상하게 변하고 있는...
    마산을 지켜낼 방법은 없을까...생각만 했는데..

    정겨운 도시 마산을 꿈꿉니다.

    • 허정도 2009.11.18 08:39 신고 address edit & del

      반갑습니다.
      리더의 생각과 판단도 중요하지만
      시민들의 각성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시민 참여 없이 좋아진 도시는 없거든요

  4. 2010.05.24 01:24 address edit & del reply

    비밀댓글입니다

얼음장수의 뜨거웠던 하루 : 3.15의거 한 참여자에 관한 미시사적 분석 - 3

Ⅱ. 얼음장수의 정체, 증언 및 평가 2. 녹취와 증언록 다음은 하상칠이 2010년 7월 21일 14시 3 15의거기념사업회 회의실에서 당시 백한기 회장 앞에서 2시간여에 걸쳐 진술한 증언 녹취록을 풀어 그해 말 동 사업회에서..

얼음장수의 뜨거웠던 하루 :  3.15의거 한 참여자에 관한 미시사적 분석 - 2

Ⅱ. 얼음장수의 정체, 증언 및 평가 1. 연구 대상자 프로필 (이 부분은 연구 대상자가 필자의 장인이어서 평소 필자가 그에게 들어서 알고 있는 사항과 그의 사망 후 필자가 이 글을 쓰기로 마음먹은 후 그의 가족, 일가, 지인..

얼음장수의 뜨거웠던 하루 : 3.15의거 한 참여자에 관한 미시사적 분석 - 1

이 글은 1960년 3․15의거 당일 야간 시위에 주도적으로 참가했던 한 개인의 증언을 바탕으로 그의 개인사를 하나의 창으로 삼아 역사적 사건을 재조명한 경남대학교 경제금융학과 서익진 교수의 논문이다. 연구는 사적 기록이나 증..

걸작 - 이집트 룩소르 구르나 마을 - 4

구르나 마을이야기 - 2 《극장》 극장은 아름다운 내부공간과 무대를 가지고 있었다. 햇빛을 가리기 위해 담쟁이가 덥혀있었다는 객석 회랑 목조 파고라 위의 담쟁이는 이미 찾아볼 수 없었지만 흙으로 빚어진 구조물은 모두 원형대로 ..

걸작 - 이집트 룩소르 구르나 마을 - 3

구르나 마을 이야기 - 1 일행이 나일강변에 자리한 경관 좋은 호텔에서 휴식을 취하던 오후. 안내자와 함께 조그만 배를 타고 나일강을 건너 구르나 마을로 향했다. 구르나 마을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은 현지 안내자 덕분이었다. 그..

걸작 - 이집트 룩소르 구르나 마을 - 2

위대한 건축가 하싼 화티(Hassan Fathy) - 2 하싼 화티가 구르나 마을을 건설할 1940년대 중반, 그 당시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고 있던 이집트는 서양식 건축이 판을 치고 전통적인 이집트 양식의 건물들은 사라져가고..

걸작 - 이집트 룩소르 구르나 마을 - 1

위대한 건축가 하싼 화티(Hassan Fathy) - 1 (이 글은 이집트 여행 중 우연히 만났던 하싼 화티의 구르나 마을 경험담이다. 오래 전 일이다. 지금 생각해도 그 우연은 내게 축복이었다. 울렁이는 감격으로 구르나를 둘..

걸작 - 중국 사천성 도강언(都江堰) - 4

도강언(都江堰)에 올라 이빙(李冰)을 생각하다 저명한 중국의 역사학자 위치우위(余秋雨)는, 중국역사상 가장 감동적인 건축물은 만리장성이 아니라 도강언이라고 했다. 도강언의 외관상 규모가 만리장성처럼 거대한 것은 아니지만, 많은..

걸작 - 중국 사천성 도강언(都江堰) - 3

위대한 목민관 이빙(李冰) 도강언 주변 일대는 성도나 인근 지역 사람들이 쉴 수 있는 아름다운 공원이기도 했다. 울창한 숲 속에서는 특유의 목소리를 내는 사천 매미가 왕왕거리며 울어댔고, 서북쪽의 산록에서는 시원한 고원 바람이..

걸작 - 중국 사천성 도강언(都江堰) - 2

5백 갈래로 나누어진 민강(岷江) 도강언의 시설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어취(魚嘴)와 비사언(飛沙堰), 보병구(寶甁口)가 그것이다. 이 세 시설은 따로 있으나 서로 긴밀하게 연관되어 결과적으로 하나의 유기체적 결합..

걸작 - 중국 사천성 도강언(都江堰) - 1

천부지국(天府之國) 언젠가 중국 사천성 일대를 여행하였다. 그 동안 십 수차례 중국을 드나들었지만, 보면 볼수록 놀라운 것은 수천수만 겹 녹아있는 역사의 층위다. 대륙은 깊고 넓었으며 언제나 새로운 것을 보여 주었다. 지구상에..

노회찬의 추억
노회찬의 추억 2018.07.30

노회찬 의원과 저의 인연은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매체를 통해 저만 그를 알았을 뿐 그는 저를 몰랐습니다. 노회찬 의원을 직접 만난 것은 2016년 2월쯤이었습니다. 그해 4월 선거를 앞두고 창원에 내려왔을 때였습니다. 처음 만..

북한건축 - 건축은 건축의 눈으로 보아야

(지난 5월 29일 「건축사신문」에 실렸던 글입니다. 글 중 '우리'는 건축사를 말합니다.) 남북 정상이 판문점에서 손을 맞잡은 그 날, 이 나라 모든 국민은 TV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만찬장에서 제주도 소년 오연준의 목소리..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14 - 1980년대 이후

5) 1980년대 이후 - 4 아파트의 대중화는 주거설비의 획기적인 변화를 불러왔다. 아파트 사용자들은 첨단시설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가장 큰 변화는 주방시설에서 비롯되었다. 주부의 가사노동을 줄여줄 뿐 아니라 세련된 디자인과..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13 - 1980년대 이후

5) 1980년대 이후 - 3 2002년 말 우리나라 주택 보급률은 100%를 넘었다. 1인 가구를 포함하는 신주택보급률 역시 2008년에 100%를 상회(100.7%)함에 따라 주택의 양적 공급이 부족한 상태는 아니라고 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