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2011.11.30 00:00

군산, '근대문화도시'를 꿈꾸다.

지난주 녹색창원 21사람들, 그리고 진해 중앙동 '근대역사가로 만들기' 추진위원들과 군산을 다녀왔습니다. 진해구 중앙동의 으뜸마을 살리기 사업으로 진행된 '근대 프로젝트'를 벤치마킹하기 위해서 였읍니다.


사실 '근대'라는 용어는 역사적으로 볼 때 일제 강점기를 통해 '강제된 근대'라는 개념이 강하여 '식민지'라는 개념과 동시에 진행되어 껄그럽게 여겨온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역사가 어디 호호낙락한 좋은 역사만 역사인가요?아픈 고난의 역사도 우리가 되셔기며 잊지 말아야할, 극복해야 할 대상이기에 외면한다는 것은 오히려 진실을 외면하려는 태도와 같다고 할 수 있겠지요!
암튼 군산은 우리 진해와 같은 시기에 개항을 맞게되었고, 도시의 구조도 비슷하여 참고로 할 것이 많았읍니다.


군산은 '근대문화도시'라는 도시정책을 통해 도시 미래의 명운을 '근대'라는 역사적 자산을 최대한 활용하려는 노력이 돗보였읍니다.

1. 근대문화 및 산업유산을 도시재생의 콘텐트로 잡아서 출발하였읍니다.
-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이 군산에 남아있는 근대건축물들의 실측을 통한 자료정리를 하였다고 합니다. 170여점의 적산가옥을 비롯한 공공건축물들의 실측조사 및 분포도 조사를 통해 향후 도시재생의 자산으로 활용 가능하도록 기초조사를 하였다고 합니다.

2. 다음으로 한 작업이 이러한 자산의 활용 가능성을 모색하였다고 합니다.
- 우선 근대건축물들의 매입작업이 우선되었다고 합니다. 우선 공공의 성격을 가지는 관공서 건물에서 부터 창고에 이르기까지 하나, 둘씩 매입하여 단순히 전시용이 아니라 이러한 노후건축물들의 수선을 통해 역사관, 자료관, 체험관으로 활용하기 위한 사전작업을 하였다고 합니다.

3. 다음으로 이러한 건축물을 활용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공모를 통해 설계안을 공모하고, 순서에 입각해 사업을 진행중에 있었읍니다.
- 가장 먼저 진행된 작업이 근대역사박물관을 건립하여, 앞에서 수집된 자료들을 전시하고 경험하고, 학습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 박물관의 기능뿐만 아니라 군산학을 위한 연구소의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군산에 관계되는 모든 논문과 학술저서를 모으는 규장각의 기능도 같이 겸하고 있다고 합니다.

4. 다음으로 진행되는 사업이 앞서 매입한 근대 공공건축물들의 활용방안을 모색하여, 근대역사관, 체험관, 휴게 및 정보제공기능을 하는 편의시설로 대수선하는 중이었읍니다.
- 사실 새로 짓는 것보다 공사비나, 노력이 훨씬 많아듬에도 불구하고, 원형을 유지하기 위해 재래식 공법으로 수선공사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읍니다. 이것은 앞서 실측을 통한 자료정리가 되었기에 가능한 일이겠지요.

 


5. 다음 사업으로 점차 범위를 넓혀서 적산가옥이 즐비한 중앙동 지역일대를 근대가로경관지구로 설정하여 일부 공공시설물을 짓고, 기존의 주택들은 대수선 및 보수를 통해서 정비하는 방식으로 진행중에 있었읍니다.
- 단일 건물을 짓는것 보다, 사람이 살고있는 집을 동의를 구해서 수리를 한다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만, 근대유산시설계 직원들과 박정희 시의원님과 같은 열혈 리더들이 앞서서 주민들을 설득하고 동의를 구해서 현재 공사에 진행중에 있었읍니다.


6. 이와 같이 근대라는 역사문화적인 컨텐츠를 가지고 도시의 미래를 향한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활용한다는 것은 타 도시에서 억만금을 주어도 따라 할 수 없는, 아픈 역사를 가졌던 도시만을 선택할 수 있는 콘탠츠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 특히 마산과 진해지역은 이와 유사한 노후지역이 많읍니다. 참조할 점이 엄청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개발과 보존이라는 동전의 양면성과 같은 현대사회상에서 도시의 미래상을 그 도시만이 가지고 있는 역사성, 근대성에서 찾는다는 것은 결국 인문학이 우리의 미래를, 우리의 도시를 먹여살릴 콘텐츠의 보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Trackback 0 Comment 0
얼음장수의 뜨거웠던 하루 : 3.15의거 한 참여자에 관한 미시사적 분석 - 3

Ⅱ. 얼음장수의 정체, 증언 및 평가 2. 녹취와 증언록 다음은 하상칠이 2010년 7월 21일 14시 3 15의거기념사업회 회의실에서 당시 백한기 회장 앞에서 2시간여에 걸쳐 진술한 증언 녹취록을 풀어 그해 말 동 사업회에서..

얼음장수의 뜨거웠던 하루 :  3.15의거 한 참여자에 관한 미시사적 분석 - 2

Ⅱ. 얼음장수의 정체, 증언 및 평가 1. 연구 대상자 프로필 (이 부분은 연구 대상자가 필자의 장인이어서 평소 필자가 그에게 들어서 알고 있는 사항과 그의 사망 후 필자가 이 글을 쓰기로 마음먹은 후 그의 가족, 일가, 지인..

얼음장수의 뜨거웠던 하루 : 3.15의거 한 참여자에 관한 미시사적 분석 - 1

이 글은 1960년 3․15의거 당일 야간 시위에 주도적으로 참가했던 한 개인의 증언을 바탕으로 그의 개인사를 하나의 창으로 삼아 역사적 사건을 재조명한 경남대학교 경제금융학과 서익진 교수의 논문이다. 연구는 사적 기록이나 증..

걸작 - 이집트 룩소르 구르나 마을 - 4

구르나 마을이야기 - 2 《극장》 극장은 아름다운 내부공간과 무대를 가지고 있었다. 햇빛을 가리기 위해 담쟁이가 덥혀있었다는 객석 회랑 목조 파고라 위의 담쟁이는 이미 찾아볼 수 없었지만 흙으로 빚어진 구조물은 모두 원형대로 ..

걸작 - 이집트 룩소르 구르나 마을 - 3

구르나 마을 이야기 - 1 일행이 나일강변에 자리한 경관 좋은 호텔에서 휴식을 취하던 오후. 안내자와 함께 조그만 배를 타고 나일강을 건너 구르나 마을로 향했다. 구르나 마을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은 현지 안내자 덕분이었다. 그..

걸작 - 이집트 룩소르 구르나 마을 - 2

위대한 건축가 하싼 화티(Hassan Fathy) - 2 하싼 화티가 구르나 마을을 건설할 1940년대 중반, 그 당시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고 있던 이집트는 서양식 건축이 판을 치고 전통적인 이집트 양식의 건물들은 사라져가고..

걸작 - 이집트 룩소르 구르나 마을 - 1

위대한 건축가 하싼 화티(Hassan Fathy) - 1 (이 글은 이집트 여행 중 우연히 만났던 하싼 화티의 구르나 마을 경험담이다. 오래 전 일이다. 지금 생각해도 그 우연은 내게 축복이었다. 울렁이는 감격으로 구르나를 둘..

걸작 - 중국 사천성 도강언(都江堰) - 4

도강언(都江堰)에 올라 이빙(李冰)을 생각하다 저명한 중국의 역사학자 위치우위(余秋雨)는, 중국역사상 가장 감동적인 건축물은 만리장성이 아니라 도강언이라고 했다. 도강언의 외관상 규모가 만리장성처럼 거대한 것은 아니지만, 많은..

걸작 - 중국 사천성 도강언(都江堰) - 3

위대한 목민관 이빙(李冰) 도강언 주변 일대는 성도나 인근 지역 사람들이 쉴 수 있는 아름다운 공원이기도 했다. 울창한 숲 속에서는 특유의 목소리를 내는 사천 매미가 왕왕거리며 울어댔고, 서북쪽의 산록에서는 시원한 고원 바람이..

걸작 - 중국 사천성 도강언(都江堰) - 2

5백 갈래로 나누어진 민강(岷江) 도강언의 시설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어취(魚嘴)와 비사언(飛沙堰), 보병구(寶甁口)가 그것이다. 이 세 시설은 따로 있으나 서로 긴밀하게 연관되어 결과적으로 하나의 유기체적 결합..

걸작 - 중국 사천성 도강언(都江堰) - 1

천부지국(天府之國) 언젠가 중국 사천성 일대를 여행하였다. 그 동안 십 수차례 중국을 드나들었지만, 보면 볼수록 놀라운 것은 수천수만 겹 녹아있는 역사의 층위다. 대륙은 깊고 넓었으며 언제나 새로운 것을 보여 주었다. 지구상에..

노회찬의 추억
노회찬의 추억 2018.07.30

노회찬 의원과 저의 인연은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매체를 통해 저만 그를 알았을 뿐 그는 저를 몰랐습니다. 노회찬 의원을 직접 만난 것은 2016년 2월쯤이었습니다. 그해 4월 선거를 앞두고 창원에 내려왔을 때였습니다. 처음 만..

북한건축 - 건축은 건축의 눈으로 보아야

(지난 5월 29일 「건축사신문」에 실렸던 글입니다. 글 중 '우리'는 건축사를 말합니다.) 남북 정상이 판문점에서 손을 맞잡은 그 날, 이 나라 모든 국민은 TV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만찬장에서 제주도 소년 오연준의 목소리..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14 - 1980년대 이후

5) 1980년대 이후 - 4 아파트의 대중화는 주거설비의 획기적인 변화를 불러왔다. 아파트 사용자들은 첨단시설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가장 큰 변화는 주방시설에서 비롯되었다. 주부의 가사노동을 줄여줄 뿐 아니라 세련된 디자인과..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13 - 1980년대 이후

5) 1980년대 이후 - 3 2002년 말 우리나라 주택 보급률은 100%를 넘었다. 1인 가구를 포함하는 신주택보급률 역시 2008년에 100%를 상회(100.7%)함에 따라 주택의 양적 공급이 부족한 상태는 아니라고 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