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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14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209) - 강점제3시기

<강점기 마산의 도시화과정 특징>

도시는 인구․생활욕구․교통체계․경제여건 등 내적 상호작용에 의해 그 구조가 변화되기도 합니다. 그런가하면 지역과 국가 나아가서 국제사회가 기능적으로 상호 긴밀하게 얽혀있는 생태의 장(ecological field)에서 도시가 그 중심적인 구성체이기 때문에 도시와 외부 영향 사이의 관계 및 입지조건 등 외적자극도 중요한 변화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이런 변화요인에는 도시의 역사적 배경을 비롯하여 문화적․사회경제적 조건 등 일체의 상황이 포함된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은 지금까지 몇 주 동안 올린 강점기 마산의 도시화과정을 요약 정리합니다. 내용은 1) 시가지 확산, 2) 도로망 패턴, 3) 토지 이용 순입니다.

1) 시가지 확산

마산의 시가지 확산은 한국인이 살던 원마산과 일본인이 살던 신마산의 두 도시가 각각 다른 조건과 형태로 생성․변화․확산을 거쳐 마침내 하나로 연결되는 과정으로 다음과 같이 전개되었습니다.

① 도시의 규모는 개항 전 약 0.19㎢에서 해방 시기에 4.37㎢로 무려 23배나 넓어졌습니다.

확산 시기는 신마산이 1910년 이전인 개항기, 원마산은 1910-1920년대에 많이 진행되었으나 두 도시 모두 1930년대 이후에 그 강도와 속도가 강하게 나타났습니다.

③ 도시구성 형태는 원마산과 신마산이라고 하는 각각의 두 개 도시가 1930년대 중반에 연결됨으로써 남북 장축의 대상형(帶狀型)으로 변했습니다.

④ 두 도시의 연결은 단지 두 도시가 지형적으로 연결되었다는 것 외에 한국인과 일본인의 공간적 경계가 완화되고 식민정책을 관장하는 공공업무지역 형성 등 사실상 마산 도시에 있어서 최대의 변화였습니다.

시가지 확산의 방향과 강도를 나타낸 그림입니다.

2) 도로망 패턴

① 근대적 도로가 개설되기 이전에 원마산은 자연취락에서 나타나는 부정형 세도(細道)와 부정형 격자의 일부 도로가 혼재하고 있었으며 창원과 진주를 잇는 가도(街道)가 관통하고 있었습니다.

② 개항으로 조성된 신마산에는 도시의 특수한 자연조건과 향후 원마산과의 연결을 고려하여 남북축으로 중심가로가 조성되었습니다.

③ 1910년경 신마산의 중심가로가 북쪽의 원마산까지 연결되었으며(현 장군로) 이 때 원마산에도 격자형 도로가 처음으로 조성되었습니다.

③ 1930년대 이후에 도시범역이 확장되면서 해안의 매립지를 따라 제2의 중심가로인「해안로」가 기존의 도로와 평행하게 조성되었습니다. 이어서 중앙마산과 신마산지역 산지(山地)의 허리를 지나는「고운로」도 조성되어 마산은 두 개의 중심가로와 동일 축의 보조도로 등 총 세 개의 남북축 도로가 형성되었습니다.

④ 따라서 중심가로 형태로서 유형을 분류한다면 선상(線狀)구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중심가로망 변화패턴을 나타낸 그림입니다. 

3) 토지 이용

① 개항기 원마산은 마산창을 중심으로 남쪽 해안일대에 강력한 상권이 형성되어있었고 주위의 상당한 지역까지도 상업용지로 이용되고 있었습니다. 일부 도로 안쪽의 대지와 동성동의 동쪽 일대는 주거용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사정 당시의 시기를 기준으로 할 때 이들 중심상권의 토지는 어선창 일대를 제외하고 대부분 일본인의 소유였으며 중국인의 소유도 제법 있었습니다.

② 원마산의 이러한 토지이용구조는 매립과 도로개설, 그리고 역세권의 영향으로 상업기능이 확산되었으며 1930년대 이후에는 해안지역의 매립지가 공업시설용도로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③ 신마산은 도로망 패턴과 마산 역 건설의 영향으로 노변상권이 형성되었으며 1920년대 이후 중앙마산 조성으로 중심가로를 따라 노변상권은 더욱 길어졌습니다.

④ 공업관련시설은 초기에는 시가지 전역에 흩어져 있었는데 1920년대 들어 매립이 시작되면서 해안으로 집중하기 시작하였습니다.

⑤ 1945년 당시 도시공간 중 해수면을 접한 대부분의 토지가 공업용지로 사용되고 있었다. 상업용지는 원마산은 남성동 중심부 일대와 구마산 및 북마산 역 주변을 중심으로, 신마산에서는 두월동 3가를 중심으로 노변상권이 형성되었다.

⑥ 신마산의 두월동 상권은 원마산의 남성동 상권에 비해 그 기능의 밀도가 훨씬 미치지 못했습니다. 남성동의 도심권 기능은 개항 이전부터 해방 때까지 지속되었으며 현재까지도 그 위상이 변하지 않고 있습니다.

개항되었던 1899년과 해방 때인 1945년의 토지이용상태의 변화를 간략히 그림으로 나타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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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10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200) - 강점제3시기

지난 글에 이어 도로망패턴에 대한 내용입니다.

2) 강점 제1시기(1911년-1920년)

강점 제1시기인 1910년대 초기에는 신마산과 원마산을 연결하는 중심가로가 약 15m 폭으로 준공되었으며 이 무렵 진주가도의 확장공사도 완료되어 두 도로가 연결되었습니다.

신마산과 원마산을 연결하는 중심가로는 원마산의 시가지 한복판까지 이어졌고 때를 맞춰 원마산에 다수의 근대식 격자형도로가 개설되었고, 이 도로는 남성동 매립지의 격자형 도로와 연결되었습니다.

이로써 최초로 신마산과 원마산을 연결하는 근대식 중심가로와 두 시가지에 격자형의 도로망이 개설되어 도시의 도로망 패턴이 근대적 형태를 띠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일정한 체계를 가지고 계획된 신마산과 달리 원마산의 도로망은 격자 체계가 명쾌하게 조성되지 못했습니다.

이런 현상은 다음 그림 ‘1920년 원마산 토지이용도’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기존 시가지의 도로는 신마산과 연결되는 중심가로와 축을 같이하고 있었지만 매립지의 도로는 해안선과 축을 맞추었기 때문에 그 접점이 사형(斜形)으로 형성되었던 것입니다. 

3) 강점 제2시기(1921년-1930년)

강점 제2시기인 1920년대에는 중앙마산이 조성되기 시작하면서 도로망의 남북축이 강화되어 선상(線狀)의 도로망이 보다 뚜렷이 나타났습니다. 중앙마산을 지나는 이 중심가로변에 격자형 소도로가 형성된 것입니다.

한편 원마산은 도로망의 확산기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격자형 도로망이 전 지역으로 확산되었습니다.

1920년대에는 신마산에서부터 매립이 시작되었기 때문에「해안로」의 조성도 이 때부터 시행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4) 강점 제3시기(1931년-1945년)

원마산과 신마산을 연결하던 남북축의 중심가로인「장군로」외에 1935년 신포동의 매립이 완료되었습니다.

그리고 1939년 중앙부두 건설까지 완공됨으로써 해안을 따라 남북축을 잇는 제2의 중심가로인「해안로」가 추가 조성되었습니다.

또한 강점 말기에는 산복도로인 현「고운로」가 완성되어 자산동에서 조계지 중심부까지 남북축의 제3의 가로가 조성되었습니다.

이로써 원마산과 신마산을 연결하는 중심가로 두 개와 서쪽 산사지(山斜地)에 보조 가로로서 도로망의 패턴이 형성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중앙마산지역, 즉「장군로」와「고운로」사이의 장군동․완월동․자산동 일대에 도로망이 조성되었는데 1930년대 이후 조성된 이 지역의 도로망은 일정한 형식보다는 각 주요시설과 기존의 도로를 연결하는 양상을 띠었습니다.

같은 시기 원마산의 도로망은 1920년대 보다는 미미했지만 북쪽 방향으로 보다 더 확산되었으며 구마산 역과 북마산 역을 잇는 도로도 개설되어 두 지역의 시가지화를 촉진하였습니다.

이상과 같은 도로망 변화 패턴 중 원마산의 도로망을 시기 별로 나누어 간략히 나타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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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03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99) - 강점제3시기

<도로망 패턴>

도시는 교통망, 즉 도로를 중심으로 배치․형성되며 이들 도로의 얽힘 상태를 일컫는 것이 바로「도로망 패턴」입니다.

도시의 형태 구성은 크게 방형상형(方形狀型)․대상형(帶狀型)․방사환상형(放射環狀型)으로 구분하기도 하는데, 이들 세 가지 도시의 도로망 구성을 보면 방형상형은 격자(格子)와 장방형(長方形), 대상형은 선상(線狀), 방사환상형은 방사동심원형(放射同心圓形)입니다.

다음 그림은 현대도시계획의 선구자로 불려지는 소리아 이 마타 (Soria Y. Mata)가 1882년 제안한 선상도시입니다.

 

 

도시의 형태가 특정한 양식으로 결정되는 과정은 그 도시의 역사적 배경과 사회적 성인(成因) 및 입지조건이 작용합니다. 특히 자연조건은 도시형태를 결정하는데 있어서 어느 요소보다도 능동적으로 작용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도시구조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자연구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인위적인 구조는 도로와 철도 등의 교통망 체계와 상하수도․전력․통신 등의 도시의 기반구조(infrastructure)체계 등입니다.

글에서는 교통망체계인 도로망 중 마산도시의 중심가로(中心街路, areal main street)를 중심으로 당시 도로망 패턴의 특징이 각 시기별로 어떻게 나타났는지에 대해 알아 보겠습니다.

중심가로(中心街路)란「도심부 도로의 공간적 특성과 유형을 파악하기 위하여 설정한 가로(街路)로서, 가로 양변의 공간이용과 도시 활동에 따라 형성되는 가로의 특성을 파악하기가 비교적 용이한 주가로(主街路) (김선범, 도시공간론, 1996)」를 말합니다.

1) 개항기(1899년-1910년)

개항 이전 원마산(마산포)의 도로는 시가지 내의 위치에 따라 마산창 주변에는 격자형이 그 외의 지역은 세도(細道)가 얽혀있었지만 대체적으로 보면 자연발생형의 세도가 복잡하게 얽혀있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다음 그림은 1908년 제작된 마산전도의 원마산 도로모양입니다.

 

원마산의 외방과 연결되는 도로는 북쪽으로 창원가도(昌原街道)가, 남으로는 진주가도(晋州街道)가 외길로 연결되어 남북으로 이어지고 있었는데 도로의 폭은 2m-3m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개항이 되어 일본인들에 의해 신마산이 조성되면서 마산에는 그 때까지 없었던 근대적 직선상도로(신작로)가 설치되었습니다.

그 형태는 남북방향의 중심가로를 중심으로 변형된 격자형의 도로망이었습니다. 변형된 격자형이란 격자의 형태가 일정한 형태가 반복되거나 격자의 각이 90도가 아니라 자연조건, 즉 하천과 해안선의 형태에 따라 격자의 변형되었다는 것을 뜻입니다.

신마산 지역에만 형성된 이 남북축의 주 도로는 마산 역 부근에서 기존의 진주가도와 연결하기 위해 사형(斜形)으로 꺾기도 했는데, 이렇게 된 것은 다음 시기에 원마산과 직선으로 연결할 것을 염두에 둔 조치였습니다.

따라서 합방을 앞두고 이 도로를 북쪽의 원마산과 직선으로 연결하기 위한 도로개설공사가 본격 시작되었습니다.

1905년 철도 마산선도 도시의 남북방향으로 설치되었는데 이 철도의 방향성도 이후 마산의 도로망 패턴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습니다.

마산의 도로망이 선상(線狀)의 형태를 갖춘 것은 자연적 조건이 가장 큰 이유이지만 철도의 축도 중요한 변수로 작용했던 것입니다.

강점 제1,2,3 시기는 다음 회에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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