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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02 00:00

마산 창원 역사 읽기 (41) - 문화운동공간, 「집현전」과「책사랑」

5. 삶과 문화로 보는 마산·창원의 역사

5-6  문화운동공간, '집현전'과 '책사랑'

 

근대 대중도서관 사상은 지적 자유에 바탕한 비판의 자유를 확립하려는 데서 비롯됐다.이 사상은 1600년대 프랑스의 노데가 기초를 닦고, 1789년 프랑스 대혁명에 의하여 완성되었다.

여기서 비롯된 근대 도서관 운동은,

첫째, 도서관은 모두에게 개방되어야 하고, 일반대중의 접근이 편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근대 이전의 도서관은 일반인들에게 비공개로 운영되었고, 위치도 일반인이 접근하기 쉬운 곳보다는 지배계층이 거주하는 비공개적인 곳에 있는 것이 보통이었다.

째, 책에 대한 접근이 자유로워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많은 책을 소장했다고 해도 일반인이 자유롭게 장서에 접근하지 못한다면, 그 장서는 사회적으로 유용하다고 볼 수 없다.

셋째, 장서 구성에서 지식과 사상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주류 지식에 반하는 이단적인 책조차도 비치하여 이를 이용하는 대중들에 의하여 평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공공도서관은 강요된 근대 지식의 상징이었다-

한일수호조약 체결 후 마산을 포함, 서울·부산·인천·목포·원산 등지에 일본인들이 대거 입국, 거주하게 되었다.

당시 일본인이 중심이 된 도서관 설립 및 활동은 극소수이기는 하나 개화기의 도서관운동에 적지 않은 자극을 주었으며, 처음으로 한국인에게 새로운 도서관상을 심어주었다.

이에 자극을 받은 마산의 유지들은 재산과 자료들을 내어서 ‘마산서적종람관’을 19134월 설립, 민족의 계몽과 지적 활동을 통해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 데 힘써 왔다. 이것이 마산 최초의 근대적 대중도서관에 대한 기록이다.

그 후에도 마산에서는 근대적 대중도서관을 만들려는 시도가 있었는데, 1924년 마산노동 동우회에서 이발소에 ‘노동문고’를 설치하였고, 1926년에는 창원청년회가 ‘창원간이도서관’을 만들었다.

그리고 마산자유노동조합이 1929년에 구마산 추산정 및 동서양의학연구회관을 빌려 많은 비용을 들여 수선하여 ‘노동문고’를 재건하여 도서대여를 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이들 도서관은 무산자(노동자, 농민, 청년 등)를 위한 평생교육시설이었다. 이를 민중 도서관운동이라고 한다.

그러나 일제는 도서관 운영자금 모금금지, 민족·계급해방을고취시키는 책의 압수 등 다양한 탄압으로 우리의 근대적 대중도서관운동의 싹을 잘랐다. 그 자리에 자신들의 사상과 지식을 전파하기 위한 공공도서관을 만들어 나갔다.

마산부립 공공도서관도 이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던 민중도서관운동에 대응하여 일제의 동화정책을 위한 시설로 1928년에 만들어진 것이었다. 이들 공공도서관은 오로지 도서관 직원을 통해 책을 빌려보는 폐가식으로 운영하였다.

이같은 도서관의 틀은 해방 이후에도 그대로 이어져 학생들의 공부방 역할과 교양도서 중심의 장서 구성은 현재에 이르기까지 거의 그대로 이어지고있다.

 

-양서 보급회와 집현전-

식민지적 공공도서관에 대항한 근대적 대중도서관 운동이 1970년대와 1980년대 마산에서 시작되었다.

1970년대 대중도서관운동은 1976년 서울에서 마산출신 대학생들이 사회과학 학습 소모임을 구성한 데 이어, 1977년 경남대의 일부 학생들이 이들과 결합해 마산지역 소모임을 만든 것이 모태가 되었다.

이 소모임은 1978년 경남대 최초의 이념 서클인 사회과학연구회의 발족으로 이어졌고,  여기서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민간도서관 운동이 논의되기시작했다.

“지난 시대 당대 지성의 집결처로서 집현전이 있었다. 여기서는 폭넓은 독서와 연구가 이루어졌으며 활기찬 토론이 전개되었다. … 그 성과는 강한 민족적 성향을 띠면서 광범한 민중지향적인 훈민정음 창제로 대표되어 나타났다. …우리는 지금 여기서 지난 날의 집현정신을 새로이 이어 받고자 한다.”

 

1978812일 경남양서보급회와 그 직영서점 집현전은 기관지 <집현보> 창간호에서 목적을 이렇게 밝히고 있다.

<집현전 기관지 <집현보>

 

박진해(당시, 마산MBC PD / 후에 사장으로 재직)씨가 쓴 창간사는 이어 마산 시민의 항일운동과 3·15의거의 저항정신을 소개한 후 당시 마산의 현실을 이렇게 진단하면서 양서보급회의 나아갈 바를 밝히고 있다.

“경제건설에 따른 고도성장을 지고의 가치로 내세우고 총매진하는 과정에서 이 고장은 많은 공장들이 속속 들어서고 숱한 사람들이 밀려들면서 급격히 팽창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수많은 노동자들이 형편없는 저임금지대에 방치되어 있는 일방 이른바 호화맨션 아파트와 유흥접객업소의 현저한 등장을 목격한다. … 더 이상 뿌리를 뽑힌 채 갈피를 잡지 못하는 이 고장의 부끄러운 전락을 방치해둘 수 없다.”

 

이처럼 양서보급회는 단순한 서점이나 독서모임이 아니었다. 요즘처럼 이렇다 할 시민·사회단체나 노동단체가 없는 상황에서 양서보급회는 지역사회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시민·학생이 자발적으로 연대한 운동단체의 성격을 띠었던 것이다.

토요일인 812일 오후 630분 YWCA 강당에서 열린 창립총회에 참석한 회원들은 53명이었으나, 사흘 후에 발행된 <집현보> 창간호에는 128의 회원 명단이 수록돼 있다. 이들의 직업은 대학생이 가장 많고, 교사와 노동자, 공무원, 자영업자등의순이다.

양서보급회는 창립총회에서 회장에 이광두, 총무에 윤성도, 감사에 김진식·최향이 등을 선출한다. 또한 사실상의 시민운동단체에 걸맞게 홍보위원회, 양서선정위원회, 도서운영위원회, 사회문화위원회 등 4개 분과위원회가 구성되었다. 그 명단은 다음과 같다.

△홍보위원회:박진해(위원장·연세대 국문과 졸), 한옥진(경남대 사학과), 박애련(경남대 미술과), △양서선정위원회:정성기(위원장·경남대 경제학과), 주정숙(창원여중 교사), 장미영(경남매일 교열부 기자), △도서운영위원회:이혜란(위원장), 김경옥(경남대 도서관 사서), 정현섭(경남산업전문학교), △사회문화위원회:유위종(위원장·한국감정원 마산지부), 김장희(건국대 화공과졸), 이정화(마산YWCA).

이렇게 출발한 양서보급회는 마산시 장군동에 집현전이라는 직영서점을 개설하고, 회원과 일반 이용자를 위한 양서 구매, 회원에 대한 도서대출사업은 물론 사회봉사사업, 장학사업, 문화예술사업, 독서인구 확대 및 악서추방운동 등 다양한 운동을 벌여 나가게 된다.

양서보급회는 특히 회칙에 ‘매 회계 연도마다 집현전 순이익금의 10% 이상을 대출도서 확보금으로 하고, 10% 이상을 사회문화사업비로 확보’토록 규정해 단순한 서점으로 변질되는 것을 막았다.

이같은 계획에 따라 양서보급회는 1979년부터 여성회원을 대상으로 김행자의 <인격의 자유화를 위한 서장>,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 등을 교재로 매주 세미나를 계속해나가는 한편 하우저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를 교재로 시민을 대상으로한 목요세미나를 개최한다.

성지여고 밑 소화보육원에서 열린 이 세미나에서는‘마르크스 경제학의 휴머니즘적 접근’(박재석), ‘리얼리즘문학 소고’(황성권), ‘분단의 역사적 배경’(박진해) 등 한국 근대사와 노동운동 등에 대한 토요발표회도 이뤄졌다.

 

19791월말 중성동으로 집현전을 이전한 양서보급회는 2월 중순 월남성당에서 당시 대표적인 저항인사였던 김지하씨를 초청, 많은 회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김지하 문학의 밤’을 열었고, 3월에는 3·15의거 관련 자료와 서적을 수집하고 기념일에는 회원 10여 명이 의거탑 앞에 모여 꽃다발을 바치고 묵념을 하는 등 단절된 3·15정신을 이어나가려는 노력을 벌였다.

이날 저녁에는 김진식, 박재석씨가 발제자로 나선 가운데 ‘3·15의거 추모 세미나’를 개최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가운데 집현전의 주요 멤버였던 주대환씨가 서울에서 긴급조치 위반으로 구속됐고 박진해씨가 19793월 해군에 입대하면서 활동이 점차 뜸해졌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재정이었다. 797월 이광두씨는 “번듯한 서점을 차리든지 획기적인 재정확보 방안을 마련하든지 대책이 없다면 현실적으로 계속 꾸려나가기 어렵겠다”는 입장을 회원들에게 밝혔다. 77일 집현전 임시총회 자리에서였다.

결국 그동안 회원들이 기탁한 도서를 반환하고 공식활동 중단을 결의했다.

이로써 약 1년간에 걸친 양서보급회의 유의미한 실험은 끝났다. 그러나 이 모임의 회원들은 대부분 그해 10월 부마민주항쟁의 중심인물로 참여하게 된다.

 

-책사랑으로 이어지고-

집현전의 민간도서관 운동은 80년대말 ‘민간도서관 책사랑’을 통해 보다 발전된 형태로 이어지게 된다.

책사랑은 1988625일 마산시 남성동 154-1(3층)에서 약 60평의 공간으로 출발했다.

회원제 도서관 형태였던 책사랑은 그동안 지식과 정보에서 소외된 노동자들의 이용을 쉽게 하기 위해 오10시까지 개관하고, 설, 추석, 메이데이를 제외하고는 연중 무휴로 개관하였다.

그 결과 마산시민 뿐 아니라 인근 창원시민들까지 이용했는데, 개관 후 6개월만에 가입자가 1만 명을 넘었다. 하루 이용자는 200명을 넘었고, 대출량도 300권을 넘고 있었다.

1990년 당시 마산의 공공도서관 하루 대출량이 120권수준이었으니, 얼마나많은사람들이 이용했는지 알 수 있다.

또한 모든 장서는 이용자 모두가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도록 개가식으로 운영하였다. 지식과 정보가 통제되던 시절에 소장된 모든 자료를 개방하여 이용하게 한 결과, 마산·창원지역의 노동조합을 비롯한 시민사회단체를 구성하는 데 필요한 지식과 정보를 제공하는 정보사랑방 역할을 하였다.

당시 경찰의 공안사건 기록을 보면 노동운동과 학생운동을 비롯한 사회운동에 필요한 자료를 책사랑에서 수집하여 활용했다는 내용이 많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책사랑의 역할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지식과 사상의 자유시장을 마련했다는 것이다.

개관 당시 6,000여 권으로 출발하였으나, 이후 마산시 합성동과 창원시 대방동으로 분리되어 운영된 19994월에는 2만 권 정도로 장서도 늘어났다.

이 장서 중에는 공공도서관에서 지금도 금기시하는 이른바 이적도서나 진보적 서적 등을 수집, 보관, 대출했다. 그렇다고 운동권 서적만 구비한 것이 아니라 대중들의 교양수준을 높일 수 있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역사, 철학 등 다양한 종류의 서적을 구비했다.

경찰이나 안기부가 늘 시비거리로 삼았던 책이 책사랑 장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10% 정도였다. 그러나 이것이 빌미가 되어 실무운영책임자인 총무가 구속되는 등 탄압을 받기도 했다.

<신경림 시인 초청 책사랑 10주년 행사>

 

<소설가 조정래 초청 강연회, 책사랑 행사>

 

책사랑이 다른 지역에 미친 영향도 컸다.

책사랑에 대한 기사가 전국 일간지에 보도되면서 전국적으로 회원제 도서관이 1990년 약 100여 곳을 넘을 정도로 확산되었다.

그리고 이 경험은 199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마을도서관 형태로 발전되었다. 창원의  동마다 생겨난 마을도서관도 책사랑의 영향이 없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책사랑은 상업도서관인 도서대여점이 만들어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책사랑과 다른 지역의 회원제 도서관이 일정정도 회원을 확보하는데 성공한 것을 본 사람들이 동네마다 도서대여점을 만들기 시작하여 2000년 현재 약 7,000여개의 도서대여점이 개업했고,  이는 책을 집으로 배달해주는 방문도서 대여업의 형태로 발전하고 있다.

책사랑은 또 공공도서관의 장서 개편에 대한 필요성을 인식시켜 주었다. 공공도서관이 단순한 지적 유희를 위한 공간이 아니라 근대정신의 핵심인 비판정신을 각성시켜 주는 대중의 평생교육기관임을 인식시켜 주었던 것이다.

지금 책사랑은 창동과 합성동 시기를 거쳐 신도시로 개발되고 있는 내서지역으로 옮겨져 마을주민들의 문화공간으로 자리잡고 있다. 

<마산 내서읍 코오롱 아파트에 있는 책사랑 내서 마을도서관>

 

전세중 / 당시, 민간도서관 책사랑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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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03 09:06

마이크로소프트를 떠나 도서관을 세우다

존 우드 / ‘히말라야 도서관’



안녕하십니까. 허정도입니다.

오늘 소개해 드릴 『히말라야 도서관』은 책에 대한 책입니다.

저자 「존 우드」는 네팔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 3000개의 도서관을 짓고, 150만 권의 책을 기증한 자선사업가인데, 이 책은 그의 에세이입니다.

도서관을 짓고 책을 공급하기 전의 존 우드는, 세계적인 기업 마이크로 소프트의 촉망받는 임원이었습니다. 30대에 이미 마이크로 소프트 중국지사 서열 2위에 오른 성공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저자의 인생이, 휴가 때 찾은 네팔 히말라야 트레킹에서 바뀌었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그곳 학교를 찾게 된 그는, 책도 변변히 없이 흙바닥에서 공부하고 있는 네팔의 청소년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 순간 존 우드는, 시설과 책이 없어 배우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교실을 지어 책을 읽게 해주는 일이, 수백만 달러의 컴퓨터프로그램을 파는 일보다 훨씬 보람 있고 가치 있는 일이라고 깨닫습니다.

책 내용 중 내 마음에 오래 남은 것은 존 우드의 아버지입니다.

그 좋던 직장을 그만두겠다고 했을 때도, 돈 안 되는 일 때문에 아름다운 애인과 헤어졌을 때도, 아버지는 아들의 판단을 믿어주고 용기를 주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그랬습니다.

저도 두 아이의 아버지이지만 존 우드의 아버지는 놀랄 만큼 훌륭했습니다. 훌륭한 아버지에 훌륭한 아들이 나온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친구 마이크의 진정한 우정도 돋보였습니다. 사직문제로 고민하는 우드에게 최고의 답을 줍니다.

“반창고를 떼어내는 두 가지 방법이 있지. 천천히 고통스럽게, 또는 빠르고 고통스럽게. 어떻게 할 거냐는 너의 선택이야.”

 

존 우드는 아버지와 친구의 의견대로 즉각 결정합니다. 회사를 그만두기로.

저자 존 우드에게 인상 깊었던 점 하나는, 상대적으로 교육기회가 적은 여자아이들에게 장학금을 우선 지원한 것입니다.

그는 남자아이들과 달리 여자아이가 교육받으면 그 가족은 물론, 다음 세대까지 교육의 효과가 이어진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의 이러한 판단이 어린 나이에 공부를 그만두고 시집을 가거나 심지어 돈 때문에 사창가로 가야했던 많은 여자아이들을 구해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어머니의 말투, 어머니의 행동, 어머니의 식습관, 심지어 가치기준까지도 대부분 어머니를 닮습니다.

회수 이남에 심은 귤은 달콤한 맛이 나지만 회수 이북에 심은 귤은 작고 떫고 시고 써서 먹을 수 없게 된다는 중국의 고사처럼,

환경이 사람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세계적인 기업의 임원자리를 버리고, 책 없고 시설이 없어 공부하지 못하는 어린이들을 돕고 있는 ‘존 우드’에게 오늘 밤 박수라도 한 번 보내주면 어떻겠습니까?



 

※ 책 읽어주는 남자 9월 2일 방송입니다.

 

히말라야 도서관 - 10점
존 우드 지음, 이명혜 옮김/세종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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