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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19 00:00

김형윤의 <마산야화> - 52. 돝섬의 전설

52. 돝섬의 전설

 

돝섬은 마산 앞바다에 떠 있는 조그마한 섬, 일명 월영도(月影島)라 부르기도 한다.(행정구역 상 월영동에 속해 있기 때문)

1910년경에는 인가가 불과 7,8호였으나 지금은 20여 호. 아동 10여 명의 초등학교 분교장이 있고, 주민은 대개 영세 어민으로 섬의 동남 비탈에 보리와 채소를 가꾸기도 한다.

멸치 어장막이 있어 신·구마산 어판장과의 사이에 배의 왕래가 잦고 여름 한 때는 낚시꾼들과 피서객들이 득실댄다.

섬의 형상은 서쪽에서 바라보면 오리()가 먹이를 구하는 것 같기도 하고 인도산 코브라가 염소()를 삼킨 것과 흡사하다.

 

일본인들은 이 섬이 일본의 비파(琵琶)와 같다 하여 그 어음(語音)에 비겨 미화(美和)라 했으며 마산만의 공원지로 지정하고 매번 벚꽃 묘목을 심었으나 바다의 염풍(鹽風)관계(?)로 자라지 않아 실패한 적이 있다.

이 섬을 어찌하여 돝섬(猪島)이라 하였는지 이 섬에 얽힌 오랜 전설을 소개한다.

옛날 김해 가락왕의 총애를 받던 미희가 있었는데 어느 날 밤 홀연 그 흔적이 없어졌다.

왕은 낙담 번민한 끝에 사람을 사방에 파송하여 상금을 걸고 수색을 벌였는데, 우연히 바다에서 고기잡이 하던 어부가 골포(骨浦, 마산의 古名) 앞바다의 조그마한 한 섬에서 세상에 둘도 없는 절색 미녀를 봤노라 하기로 왕에게 상주했다.

왕은 급히 특사를 파견하였더니 과연 이 섬의 등()에 미희가 배회하고 있음을 보고 환궁하기를 재촉하였으나, 미희는 눈을 부릅뜨고 홀연 금빛의 늙은 도야지로 화하더니 일성(一聲) 포효와 동시에 먹구름이 충천하는 가운데 두척산(무학산) 상봉의 큰 바위 틈으로 사라져 버렸다.

특사는 기급하여 왕에게 자초지종을 상주했다. 왕은 의심이 덜컥 났다. 당시 백성 가운데 온데간데 없어지는 예가 자주 생겼는데 밤마다 금도야지가 나타나서 사람을 잡아가되, 특히 어린 계집아이나 젊은 부녀자를 좋아한다는 풍설이 퍼져서 왕의 귀에까지 들린 터였다.

왕은 느낀바 있어 군병을 동원하여 두척산의 바위를 포위했다.

활과 창을 비껴들고 일제히 산이 진동하는 고함을 지르며 포위망을 압축, 바위에 육박해 가자 홀연 암상(岩上)에 염연(艶姸)한 자태의 미희가 나타났다.

군병들은 엎드려 환궁할 것을 청하자 순간 늙은 도야지로 화하여 영악한 형상에 날카로운 이빨로 군병에게 달려들 기세라 군병들은 활, , , 돌로써 쏘고 찌르고 내리쳤다.

드디어 도야지는 바위 밑으로 굴러 떨어졌고 한줄기 요운(妖雲)이 아지랑이 같이 그 섬으로 뻗어 사라지고 말았다. 바위 틈 굴 안에는 인골이 수북히 쌓여 있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모골이 송연케 했다.

그 후 그 섬 근방에는 밤마다 도야지 우는 소리와 함께 괴이한 광채가 일기 시작했다.

신라 거유(巨儒) 고운(孤雲) 최치원 선생이 골포의 산수를 즐기려고 월영대에 향학(鄕學)을 설치하고 기거하던 무렵 어느 초승달 밤에 이 괴이쩍은 현상을 보고 그 섬을 향해 활을 쏘았더니 괴이한 광채는 별안간 두 갈래로 갈라져 사라지고 말았다.

이튿날 고운 선생이 그 섬에 건너가 화살이 꽂힌 곳에 제를 올린 뒤로는 그러한 현상은 없어졌다 한다.

이 섬이 바로 돝섬(猪島)인 것이며 고운 선생이 제를 올린 곳(위치 미상)에 기우제를 올리면 영험이 있다 하여 후세에 오랫동안 그 풍습이 이어졌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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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15 00:00

김형윤의 <마산야화> - 23. 203고지의 거포, 24. 돝섬의 위장 적기

23. 203고지의 거포(巨砲)

마산 신사(현 제일여중·고) 정문 앞 공지에 녹슨 대포 일문(一門)이 거치되어 있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해방된 몇해 안가서 포대와 동시에 흔적이 없다.

이 대포는 1904년에 발발한 일로(日露)전쟁시 일본 최고의 군벌인 대산(大山), 내목(乃木) 등 원수급에 의하여 일본 조병창에서 건조, 군함으로 여순항에 인양하여 격전장이던 203고지에서 공을 세운 것으로,

일본의 군사력을 과시하기 위하여 마산만 입구이며 중포병 대대 입구 까치나루(鵲津) 산정에 두었다가 1935년 대대장이던 굴구중좌(掘口中佐)가 마산부에 기증하였던 바,

부 당국은 이것을 전기 장소에 이전 거치함으로써 마산만을 일모(一眸)에 보고 일본의 군국주의 사상을 환기했던 것인데,

그대로 보존해 두어서 하등 해될 것도 없고, 도리어 외국 침략의 유물로서 하나의 교재가 될 법도 하였는데 누구의 소행인지 분해 도취(盜取)되고 말았다.

또 진해도 그러하다.

마산은 육군이 쓰던 구포(臼砲)였지마는 진해는 일 해군이 울산만과 울릉도 연안에까지 러시아의 발틱 함대를 격침한 대포를 탑산 아래에 거치한 것이 고철상의 손에 도취(盜取)되었다는 것이다.

주 ; 203고지(일본어: 二〇三高地, 중국어: 二零三高地)는 중국 랴오닝 성 다롄 시, 뤼순커우 구에 있는 언덕이다. 러일 전쟁 당시, 1904년 ~ 1905년의 여순항 포위 때 가장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다. 해발 고도가 203 미터(=666 피트)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녹슨 대포가 있었다는 마산신사 정문. 지금일여중고 정문 위치이다>

 

24. 돝섬의 위장 적기(敵機)

1944년 태평양 전체가 나날이 패색이 짙어가는 7월 어느 날 밤,

마진(馬鎭) 양부읍(兩府邑)에 아무 사전 경보도 없이 산야가 진동하는 대 폭음이 일어 마산부 주위 40리 거리를 흔들어 놓았다.

일본군 당국이 발표하기로 B29기가 ‘돝섬(猪島)’을 일본 군함일줄 오인하고 맹폭한 것이라 했다.

이날 밤의 폭격으로 돝섬 남단의 암석파편이 등 넘어 20여 호 인가를 휩쓸었을 뿐 인축(人畜)에는 피해가 없었다.

이것은 귀축영미(鬼畜英美)에 대한 적개심을 앙양시키기 위한 일본군의 단말마적 광태(狂態)에 불과했던 것인데 일본인들은 적개심은 고사하고 백이면 백 모두가 공포에 떨기만 했을 뿐이다.

진해만에 산재해 있는 섬들이 몊 개가 있는지를 지리에 밝은 미군이 몰랐을 리 만무했고, 섬과 군함을 식별하지 못할 리 만무했건만 돝섬을 군함으로 알고 오폭했다는 선전은 소지천만(笑止千萬)으로 국민을 우롱한 처사도 그러하거니와 일본군 자체가 적군으로 가장한 자작 연출은 더욱 얄미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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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11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87) - 강점제3시기

도시변화 관련 기사 두 개 소개합니다.

8. 1938년 2월 24일 동아일보 7면 기사입니다.

이 기사는 돝섬을 새 명소로 만들기 위해 마산중포병연대에서 돝섬공원화 계획을 수립하였다는 내용입니다.

돝섬공원화 계획의 의도는 진해요항부와 비봉리에 해안도로를 조성한 후 진해와 돝섬을 연결하여 진해를 찾은 관광객이 돝섬을 거쳐 마산으로 오도록 한다는 겁니다.

또한 진해 부산 간 계획하고 있는 자동차도로가 개통되면, 돝섬이 연결점이 되어 1시간 3-40분내에 부산-진해-돝섬-마산이 이어질 것이므로 돝섬공원화 계획에 마산부민들도 적극 협력할 것이라 보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사처럼 돝섬이 개발되고 부산에서 진해와 돝섬을 거쳐 마산으로 연결되는 교통로가 실제로 만들어지지는 않았습니다.

9. 1938년 6월 3일 동아일보 7면 기사입니다.

이 기사는 남국수향(南國水鄕) 마산의 유명한 월포해수욕장이 마산만 매축으로 폐지 된 후 새로운 해수욕장을 조성하기 위해 설계 중이라는 내용입니다.

새로 설계 중인 해수욕장의 위치는 신마산 근위빈(近衛濱)해안이며 이 해수욕장이 완성되면 금년 여름부터 전국적인 명승지가 될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이 해수욕장은 근위빈(近衛濱)해수욕장이라는 이름으로 강점 후기 마산의 피서지가 됩니다.

기사 아래 사진이 해수욕장이 들어설 근위빈(近衛濱)공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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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07 15:50

24시간 만에 마산 제대로 보여주기

먼 곳에서 10여 명의 손님이 왔었다. 역사를 공부하는 현직 교수와 젊은 대학원생들이었는데 모두 마산이 초행이었다.

오후 3시 경 버스 편으로 양덕동 터미널에 도착한 이들의 마산 여행은 이 도시에 얽힌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멀게는 여몽연합군의 정동행성으로부터 조창과 개항, 식민지 시대를 거쳐 가깝게는 3·15의거에 이르기까지 무려 1000년을 넘나드는 마산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저녁식사는 신마산 두월동에 나가 해결했다.

‘통술거리’라 명명된 두월동 거리는 개항 직후인 100여 년 전, 일본인들이 차지한 조계지에서 최고 번화가로 쿄마찌(京町)라 불렀던 곳. 거리의 내력을 안 여행자들은 자신들이 100년 전 조계지 한 가운데 앉았다는 것만으로 매우 즐거워했다.

통술집 특유의 신선한 해물과 풍성한 양 때문에 모두들 낯선 도시의 밤을 한껏 즐겼다.


▲ 마산 통술거리와 통술집의 기본차림상

숙박은 돝섬에서 했다.
세련되지도 않고 고급스럽지도 않았지만 정성들여 꾸며 놓은 다양한 시설들이 있었고, 섬에 왔다기보다 마치 큰 유람선을 탄 듯해서 항구도시의 소박한 낭만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무엇보다도 섬에서 도시전체야경을 한눈에 바라 볼 수 있다는 것이 자랑이었다.

다음 날 아침, 일본인들이 조성한 개항장 거리를 걸어 마산이사청과 신동공사 터를 찾았다. 합방 직전 융희황제(순종)가 마산에 왔던 이야기와 개항 직 후 이 도시를 농단한 일본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이미 오래 전에 사라져 버린 역사의 흔적을 더듬었다. 하지만 우리는 단지 시간의 흐름과 공간의 의미만 되새겼을 뿐, 어느 것 하나 눈과 감성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단지 마산에 살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참담하게 사라져 버린 문화유산들에 대한 질책을 그들로부터 받았고, 현존하는 일본헌병대 건물만이라도 보존하라는 당부에는 책임 못질 약속을 했다.

100년 도시를 주마간산(走馬看山)으로 둘러보고 남성동으로 이동했다.
조창이 있던 남성동 네거리와 창동·동성동의 수백 년 된 골목길은 여행자들에게 지나간 시간의 신비한 체험이었지만 이곳 역시 매 마른 설명 외에 달리 보여줄 게 없었다.

다음은 어시장. 퍼덕이는 것은 도다리와 볼락만이 아니었다. 생선과 뒤섞인 사람에게도 생명이 퍼덕이고 있었다. 우리가 모두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항구시민에게는 마음의 고향과 같은 곳이다.

 


▲ 마산 어시장. 싱싱한 해산물 만큼 언제나 활기가 넘쳐난다.


점심은 중성동 생선국 집을 찾았다. 장사를 시작한지 무려 40년 가까운 이 식당은 고객의 평균연령이 전국에서 가장 높을 것으로 추정될 만큼 오래된 단골손님이 많다.

특이하게 생긴 생선 모양을 보고 웃고, ‘탱수’니 ‘아구’니 하는 이름 때문에도 웃었지만, 시원하고 담백한 국물 맛에는 모두들 신기한 듯 놀랐다. 그들에게는 생선국 한 그릇도 새로운 문화체험이었다.

떠나면서, 시간을 가지고 다시 찾겠다는 약속도 하고, 뭐니 뭐니 해도 엊저녁 ‘통술집’이 제일 좋았다는 평가까지 있었지만, 모두들 한결같이 “이렇게 재미있는 여행은 처음이었다”는 말은 잊지 않았다.

이 행사는 기왕 마산을 찾는 분들에게 이 도시의 생생한 현장을 체험시켜주자는 친구의 제의로 만든 작은 이벤트였다. 개항장, 조창지, 수백 년 된 골목길, 돝섬과 바다와 어시장, 그리고 통술집과 생선국.

오직 마산에서만 만날 수 있는 이들 문화 컨텐츠의 위력은 예상했던 대로 놀라웠다. 24시간 동안 벌어진 이 작은 이벤트를 통해 그 동안 막연히 생각만 하고 있던 이 도시의 가능성도 찾을 수 있었다.

진정한 의미에서 마산 도시 발전을 원한다면, 그래서 사람 살만한 도시가 되기를 바란다면, 24시간 마산 여행이 성공한 까닭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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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은진 2009.09.07 16:08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이야기가 없는 것은 사람들이 없는 것이지,
    땅은 이야기를 감추고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 선조들을 잘 모르고,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모습을 모르니 이야기가 없는 것 같습니다.

    허정도 선생님 알려주신 코스는 괜찮은 것 같습니다.
    전에 저도 돝섬에서 숙박하는 것을 고려해 보았는데
    배가 일찍 끊어진다고 하던데
    통술 먹고, 내 짐작에는 배가 없을 텐데
    의문이 드는 군요.

    돝섬의 숙박시설만 잘 해도 좋은 추억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 허정도 2009.09.07 16:37 신고 address edit & del

      방문 감사합니다.
      당시에는 늦은 시간까지 배가 있었습니다만 지금은 사정이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여행이 별겁니까?
      낯선 공간에서 낯선 체험을 하는 것이 최고의 여행아니겠습니까?
      소박했기 때문에 더 좋았던 추억입니다.
      감사합니다.

  2. 林馬 2009.09.07 23:40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블로그도 운영하십니까?
    몰랐습니다.
    그리고 하루의 마산기행, 저가 이곳저곳 디다본 느낌이군요.
    마산에 살면서 마산을 이야기하지만
    이 글을 읽고 정말 저는 아는 것이 없구나를 느꼈습니다.
    우리 고장의 좋은 역사공부 잘 했습니다.
    기회되시면 중성동 생선국집 한번만 안내해 주십시요.
    그 댓가로 저가 쏘겠습니다.
    이 글로서는 도저히 감이 잡히질 않으니 말입니다. 하하~

    • 허정도 2009.09.08 08:21 신고 address edit & del

      환영합니다.
      ‘林馬’라고 하니 괜찮은데 ‘임마’라 하니 조금 미안하네요.
      어쩔 수가 없네요, ‘임마’를 ‘임마’라 하니,,,


      별 것도 아닌 글을 좋게 봐주어 고맙습니다.
      소박한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면, 우리 주변에 늘려있는 역사와 문화가 의외로 많다는 것을 철들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마산 같은 올드시티에는 더 말할 것도 없죠.
      언제 기회 되면 함께 둘러보시죠.
      제가 아는 대로 안내해 보겠습니다.
      저보다 아는 게 훨씬 많은 친구들도 있으니,
      제가 모르는 부분은 친구들에게 물어서라도 해결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근데 ‘임마’가 누굴까????

    • 林馬 2009.09.08 15:16 신고 address edit & del

      '임마'를 모르신다고요???
      위 林馬를 함 눌러보시면 금방 알 수있을텐데요?
      울 대표님을 넘 존경하는 소박한 마산시민입니다 하하~

  3. 유림 2009.11.13 10:20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부끄러운 말입니다만 마산 토박이면서 정말 마산에 대해
    아는 것이 없습니다.
    아니 알 기회가 없었다고 하면 변명이 될까요?

    타지 생활을 하다 보니 고향이 너무나 그리워
    다시 돌아왔지만
    추억은 떠올릴뿐 보이지 않습니다.

    저도 공부 많이해서 친구들 마산오면 이야기 해주고 싶네요

    • 허정도 2009.11.13 11:23 신고 address edit & del

      방문감사합니다.
      다음 카페 '유장근 교수의 도시탐방대'에 가셔서 마산도시탐방에 참여해보시기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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