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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13 00:00

통합창원시가 배워야 할 창조적 도시디자인 사례(7) - 슈투트가르트


통합창원시가 배워야 할 창조적 도시디자인 사례

(1) 8년동안 만든 도시계획-도쿄 도심재개발 
(2) 도시정비계획 수립후 협의만 10년, 독일 에슐링겐
(3) "빌바오 효과"... 15년전 예견된 성공사례
(4) 민관협력으로 성공한 토리노의 도심 재개발 정책
(5) 도시의 색채는 작은 안내서에서 부터... '오다와라의 경관색채계획'
(6) 프랑스 신도시 '라데팡스', 알고보면 그 시작은 1958년 부터
(7) 40여년 동안 바람길 만들어 대기오염 극복한 슈투트가르트, 또 앞으로의 도전
(8) 작은계획(하천정비)을 시작으로 큰 그림(도시계획)을 완성하다. '물의 도시 오사카'
(9) '미나토 미라이 21'은 20세기 중반에 세워진 계획?
(10) 23년동안 10개의 다리를 10가지 각기 다른 테마로 만드는 도시, 들어보셨나요?
(11) 25년만에 완성된 하펜시티(함부르크) 프로젝트

최근 친환경에 대한 관심이 매우 뜨겁습니다.
도시들이 이제서야 도시개발과 산업화에 대한 후유증을 깨닫고, 자연환경이 지속될 수 있는 방향으로 도시계획을 조정, 시행하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슈투트가르트가 있습니다.

도심내에 대규모 녹지를 조성하고 분지의 지리적 특성과 공업도시라는 태생적 특성을 도심내 녹지조성으로 극복하고자 한 것입니다.

바람길을 열어주는 도시계획이 그 주요내용입니다.
도시외곽에서 부터 도심내부로 바람이 잘 통과할 수 있도록 9개의 공원을 U자형으로 조성하여 지속적으로 그 변화를 관찰하고, 건물의 외부상한선을 엄격하게 규제하는 일련의 과정입니다.

이 시작은 문제점의 발견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슈투트가르트는 3면이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이며 평균풍속이 0.8m/s~3.1m/s로 타지역에 비해 바람의 흐름이 느렸습니다.
그 때문에 대기오염이 심각했으며, 스모그의 피해도 많았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바람의 계획'을 수립하였습니다.
도시에서 바람이 다니는 길을 파악하여 그 곳에 녹지를 조성, 바람길에 따라 녹지축을 형성하고자 한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나라의 도시기본계획에 해당하는 F-Plan과 지구단위계획에 해당하는 B-Plan을 통한 규제방안이 제도적으로 뒷받침되었습니다.

대표적인 내용으로는 바람길의 연결을 위해 9개의 공원으로 이어진 바람길을 조성한 '그뤼네 U프로젝트', 주거지역인 '아젬발트 지역정비' 그리고 도심지인 '중앙역사 지역 재건축'등이 있습니다.



1. 그뤼네 U 프로젝트
바람길을 연결하는 녹지축의 모양이 알파벳 'U'자 모양을 닮았다는 뜻입니다.
총 8km의 길이 정도로 생태다리, 숲길, 재단 등의 다양한 길입니다. 이 길을 통해 각각 떨어진 녹지를 연결하며, 도시의 정체된 공기를 순환시키는 허파기능을 함으로써 도시기후에 긍정적인 역할을 하도록 한 것입니다.

2. 아젬벨트 지역 정비
1968~1972년, 약 3,000명이 거주할 수 있는 20층 건물 3동을 건립하는 계획으로, 처음에는 녹지를 피하고 단독주택을 건설하는 내용이었으나, 녹지를 보호하고 바람길을 고려하여 고층으로 변경하였습니다.
고층건물임에도 불구하고 찬 공기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도록 건축한 고층건물의 모범사례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3. 중앙역 지역 정비
이 프로젝트는 1988년부터 슈투트가르트시가 주정부와 (주)독일철도와 함께 논의해 온 슈투트가르트 21프로젝트의 일환으로서, 중앙역의 기능을 개조하고, 철도교통을 지속적으로 개선하며, 화물역사를 신축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슈투트가르트시는 SLAS 프로그램을 자체 운영하여, 2년마다 시 차원에서 항공기를 이용하여 촬영하는 항공사진을 통해 어디에 어떤 건물이 들어서고, 녹지율이 어떻게 변하는지 등 도시를 지속적으로 관리,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법적으로 안정적인 녹지지역, 공사 및 건축금지지역, 공공녹지, 정원용 부지 등으로 분류하여 숲을 지키기 위한 강력한 규제를 시행중이며, 시행중인 규제 사항은 다음과 같습니다.

더보기

슈투트가르트에서 바람길 활용계획에 따라 수림지가 전체 도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23.9%에 이릅니다. 이러한 결과를 얻기 위한 프로젝트의 추진은 사실상 1968년부터였습니다.

 1968~1972년 : (녹지보전과 바람길 보전하면서) 주택건설 : 아젬발트 지역
 1976년, 1979년 : 독일연방 건설법 개성(바람길조성과 활용에 관한 법적 근거 마련)
 1988년 : 중앙역 지역 재건축 결정(슈투트가르트 시와 [주]독일철도 공동시행)
                * 슈투트가르트 21프로젝트의 일환
 1997년 : 슈투트가르트 중앙역 재개발 설계안 공모(126개 접수)
                * 도르프 건축설계사무소의 안으로 최종선정
 2020년까지 : 모든 기차역의 지하화(바람길을 완벽하게 형성)
 2040년까지 : 지속적인 토지이용계획
                 * Sutainable Brownfields Development Stuttgart(NBS) 프로젝트 

2020년까지 기차역까지도 바람길 활용계획에 따라 지하화 한다는 계획, 그리고 2040년까지 지속적으로 토지이용계획에 따른 NBS 프로젝트로 녹지율 20% 이상 향상을 목적으로 매진하고 있습니다.

슈투트가르트가 다른 도시와 차이를 보이는 점은 숲이 끝나는 지점과 도시의 시작지역(주택지역)을 녹지로 연결한 점입니다.
고질적인 대기오염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시외곽으로 부터 바람이 자연스럽게 도시로 들어와 순환할 수 있도록 한것입니다.

자연에 대한 인간의 간섭을 최소화하면서도 도시의 형성에 있어 알맞은 균형을 이루어 가는 도시계획.
이러한 노력으로 슈투트가르트의 수림지 ('암랭크', '그린비웬' 호수)는 자연보호구역으로 유럽의 조류보호구역으로도 지정되어 있기도 합니다.
 
'도시계획이 지향해야 하는 것은 인간과 자연의 균형이 아닌가
'
하는 생각을 하면서...  <<<


Trackback 1 Comment 9
  1. 선비 2010.08.13 14:52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창원은 78년 신도시설계시 바람길을 분석하여 공업지역과 주거지역을 배치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사실을 알고 있는 공무원이나 시민은 몇이 되지 않지요.
    하여 저는 박완수시장이 읍면동 순시시에 창원의 인구밀도 조절과 바람길 조성을 이야기 하였더니 다음 도시기본 공청회에서는 바람길을 어쩌구 저쩌구 하여 참석한 도시공학자들로부터 극찬을 받았지요.
    그런데 그 이후 바람길에 대한 계획은 언제나 글귀만 있고 도시계획 어디에도 흔적을 볼 수 없었습니다. 창원39사단 이전부지에 대한 저의 견해는 그 연장선에서 이야기 한 것인데 아예 들으려 하지 않고 있습니다.
    말로는 그럴싸, 실속은 전혀 없는 환경수도, 생태도시, 자전거 도시의 창원을 보면서 실망만 늘어갑니다. 아마 앞으로도 박완수는 변함이 없을 것이3ㅂ니다.

  2. stuttgart21 2010.09.07 04:20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지금 이 슈투트가르트에서 이 모든 상황을 고려하지않은
    Stuttgart21프로젝트가 큰 문제로 대두되어 몇만명씩 데모를 하고 있는상황입니다.
    조류보호지역이자 여러 희귀동물의 서식지였던곳을 다 밀어버리고 몇백년 된 나무들도 가차없이 베어지게될 운명입니다.
    바람길이라 할수 있는곳에 버젓하게 서있는 지방은행의 건물 또한 가관이구요
    몇몇 정치인과 경제인들이 연합하여 시민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거짓 조사자료를 바탕으로
    아주 볼만한 쇼를 하고 있습니다.

    • 허정도 2010.09.07 08:46 신고 address edit & del

      놀랍습니다.
      현 상황을 조금 더 자세히 알고 싶은데 도와주실 수 있는지요?

  3. stuttgart21 2010.09.07 19:51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하나하나 나열하자면 끝도 없지만 몇가지만 말씀드리면,
    60년간 바뀐적이 없는 바덴뷔르템베르크 주 지방 정치권에서
    거짓자료를 바탕으로 이 결의안을 통과시켰고
    시간이 갈수록 불어나는 예산은 이미 공사가 시작도 되기전에 우려의 목소리를 자아내고있으며
    그들이 말하는 바람길을 위해 몇백 그루의 나무들이 베어져야하며
    공사가 끝날때까지의 15년에서 20년간의 환경오염은 말할것도 없고
    그 후에도 그지역에 나무가 자라기까지의 시간은 최소한 몇십년이 걸리며,
    게다가 그 지역을 상업적으로 이용할 가능성 또한 높습니다.
    그들이 내어놓은 터널계획은 예산을 줄이기위해
    14cm 가 모자란 벽의 두께로(정상 두께일경우 예산을 넘게됨) 안전성을 위협하고 있고
    완성된 플랫폼의 경사는 6,5미터로 여행가방과 달리기 경주를 하는 사태가 벌어지기 쉽구요
    그밖의 여러가지 일들이 시민들을 분노에 휩싸이게하고 있지요
    그래서 처음부터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건축가가 한 지리학자의 연구자료를 바탕으로
    작년에 손을 떼는일도 발생했습니다.( 슈투트가르트의 지형은 구멍난 치즈와 같아서 건물에 금이 가는정도가 아닌 건물 자체가 사라지는 엄청난 위험부담이 있음) 이미 독일 쾰른에서 그와같은 참사가 일어나기도 했구요.
    그밖에 고위 정치인이 고문자리에 있는 담당 건축회사도 문제였고,
    프로젝트를 위해 역사적보호건물로 지정되어있던 중앙역을 법을 바꿔가며 해지시켜
    지금 열심히 무너뜨리고 있구요.
    여러 지리학자와 환경청에서 경고를 하고 있음에도 서둘러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이제 어쩔거냐는 식의 배짱을 튕기는 몇몇 정치인의 오만함을 그대로 보여주는 프로젝트가 이 Stuttgart21 입니다
    www.kopfbahnhof-21.de
    www.parkschuetzer.de
    에 많은 정보가 있습니다.

    • 허정도 2010.09.07 22:57 신고 address edit & del

      탐욕에 가득찬 자본가들과 악한 정치인들이 빚어낸 슈투트가르트의 비극이군요.
      시민들은 어떤 입장인지 궁금합니다.

  4. stuttgart21 2010.09.08 01:51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조사결과에 의하면 시민의 3분의 2가 이 프로젝트에 반대를 하고 있고
    애초에 이 결의안이 통과된것도 조작된 자료와 진실을 숨기는 방법으로 가능했던것입니다.

    독일인들이 길거리에 나서서 시위를 하는일이 얼마나 드문일인지는 말할 필요도 없겠지요.
    정치인들도 이정도의 파장은 예상치 못했구요
    이런 시민들의 시위에 대한 TV 토론이 벌어졌을 정도니까요.
    신가한것은 보란듯이 기차역을 무너뜨리기 시작한 시점부터
    데모에 참가하는 시민수가 급 증가 했다는겁니다. 비오는 거리에 5만여명이 모인것을 비롯하여 그때부터 데모는 더 가열되고 있고 점점 더 전 독일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집권당의 대표적인 표밭으로 알려진 이곳에서 선거때 보자고 벼르는 대형플랜카드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메르켈 독일수상이 언제까지 침묵할수 있는지도 관심거리중 하나이구요.

    말이 많이 길어졌군요...그래도 진실은 알리고 싶어서 아는대로 적고 갑니다.

    • 허정도 2010.09.08 08:28 신고 address edit & del

      감사합니다.
      도시를 지키려는 슈투트가르트 시민들의 행동이 경이롭습니다.
      진정한 시민정신이 느껴집니다.

  5. harpiai 2011.11.15 04:53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잘보고 갑니다. 약간 퍼가도록 하겠습니다. 좋은 글과 좋은 이야기 담아주셔서 많이 배우고갑니다.

  6. 2015.05.05 16:18 address edit & del reply

    비밀댓글입니다

2010.08.06 00:00

통합창원시가 배워야 할 창조적 도시디자인사례(6)-파리 라데팡스

통합창원시가 배워야 할 창조적 도시디자인 사례

(1) 8년동안 만든 도시계획-도쿄 도심재개발 
(2) 도시정비계획 수립후 협의만 10년, 독일 에슐링겐
(3) "빌바오 효과"... 15년전 예견된 성공사례
(4) 민관협력으로 성공한 토리노의 도심 재개발 정책
(5) 도시의 색채는 작은 안내서에서 부터... '오다와라의 경관색채계획'
(6) 프랑스 신도시 '라데팡스', 알고보면 그 시작은 1958년 부터
(7) 40여년 동안 바람길 활용계획으로 대기오염을 극복한 슈투트가르트, 또 앞으로의 도전
(8) 작은계획(하천정비)을 시작으로 큰 그림(도시계획)을 완성하다. '물의 도시 오사카'
(9) '미나토 미라이 21'은 20세기 중반에 세워진 계획?
(10) 23년동안 10개의 다리를 10가지 각기 다른 테마로 만드는 도시, 들어보셨나요?
(11) 25년만에 완성된 하펜시티(함부르크) 프로젝트


프랑스 파리는 계획된 도시로 유명합니다. 또한 그 면적은 0.25%에 불과하지만, 프랑스 인구의 1/6이 집중되어 있고, 세계적으로 4위의 인구밀집지역입니다.
또한 오랜역사를 통해 형성된 도시로, 각 시대별 특징이 나타나는 건축물들이 모여있는 도시로서 하나의 도시건축 박물관과도 같은 도시입니다.

그러나 파리는 전통만을 고집하지는 않았습니다. 전통의 보존과 더불어 현대와의 조화를 끊임없이 시도해왔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19세기부터 도시계획이 시행되어 본격적으로 도시를 가꾸기 시작한 것입니다.

미테랑 대통령시절, 프랑스혁명 200주년을 기념하여 국책사업으로 아랍문화원(Jean Nouvel), 국립도서관(DOminique Perrault), 루브르 유리피라미드(I.M.Pei), 라빌레뜨공원(Bernard Tschumi) 등 10여개 사업을 시행하였습니다.

굵직한 건축 프로젝트들, 그것도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건축가들에 의해 디자인된 건축물은 오랜(낡은) 도시의 전통과 어우러지며 도시의 새로운 면모를 갖추게 된 것입니다. 전통도시 파리를 현대화된 젊은 도시, 변화하는 도시로 발전시키기 위한 노력이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프로젝트가 그랑프로제(Grand Project)로서 파리외곽 신도시인 라데팡스를 조성하는 도시계획 사업입니다. 파리의 구도심과 신도시(라데팡스)를 연결하여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 낸 것입니다.

그랑프로제(Grand Project)를 통해 라데팡스 개발은 1964년 마스터플랜 수립에 따라 단계별로 진행이 되었습니다. 최근 2007년까지 주거기능이 보완되었습니다.

그랑프로제의 추진경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제1시기
(1958~1969년)
 라데팡스 개발청(EPAD) 설립
 제2시기
(1970~1980년)
 RERA선 개통 및 라데팡스 순환도로 개통
 Aurore 타원, Defence 2000타워, Manhattan 타워 완공
 제3시기
(1980~1990년)
 Les Miroirs 타워, Scor 타워, Athena 타워, Descartes
 타워 완공, 쇼핑센터 Les Quatre Temps오픈
 신개선문 완공
 2000년 이후~  기타 각종 무수의 타워 건립
 지하철1호선 개통 및 완공
 트램 개통 및 완공

라데팡스 개발은 총 750ha 지역에 해당하는 것으로 비즈니스지구와 공원 및 주거복합지구로 구분되어 계획, 시행되었습니다.
라데팡스 개발청은 1958년부터 준비 및 설립이 이루어졌고, 운영비는 라데팡스 지역에 건물을 지을 수 있는 건축권을 판매하는 것으로 충당하며, 건축권 판매비는 개발청의 유일한 수입원이었습니다.





2005년부터는 신도시 라데팡스의 혁신을 주제로 다시 또 한번의 라데팡스 부흥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신도시로 계획하여 추진하였지만 70,80년대부터 들어선 건물들이 낡아버린 셈이지요.
따라서 '라데팡스 2015-미래의 감각'이란 프로젝트를 발표해서 "낡은 라데팡스를 혁신한다"는데 초점을 두고, 사무공간과 주거공간을 확장하는가 하면 기존의 낡은 빌딩들을 개보수하는 것을 주요내용으로 하고 있습니다.

끊임없이 계획하고 노력하는 것.
이 노력으로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혼재된) 파리는 매년 400만명이 넘는 관광객이 찾으며, 그로인한 80억유로의 경제이익을 챙기는지도 모르겠습니다. 

1958년 부터 시작된 파리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공존하는 도시계획'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도시의 지속가능성을 지켜나가기 위한 그들의 '끝 없는 도전과 비전',,,,,,,
우리가 배워야할 점입니다. <<<






Trackback 2 Comment 1
  1. sammy 2010.08.06 10:21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소중한 글들 잘 보고갑니다 ^ ^*

2010.07.30 00:00

통합창원시가 배워야 할 창조적 도시디자인사례(5)-오다와라

통합창원시가 배워야 할 창조적 도시디자인 사례

(1) 8년동안 만든 도시계획-도쿄 도심재개발 
(2) 도시정비계획 수립후 협의만 10년, 독일 에슐링겐
(3) "빌바오 효과"... 15년전 예견된 성공사례
(4) 민관협력으로 성공한 토리노의 도심 재개발 정책
(5) 도시의 색채는 작은 안내서에서 부터... '오다와라의 경관색채계획'
(6) 프랑스 신도시 '라데팡스', 알고보면 그 시작은 1958년 부터
(7) 40여년 동안 바람길 활용계획으로 대기오염을 극복한 슈투트가르트, 또 앞으로의 도전
(8) 작은계획(하천정비)을 시작으로 큰 그림(도시계획)을 완성하다. '물의 도시 오사카'
(9) '미나토 미라이 21'은 20세기 중반에 세워진 계획?
(10) 23년동안 10개의 다리를 10가지 각기 다른 테마로 만드는 도시, 들어보셨나요?
(11) 25년만에 완성된 하펜시티(함부르크) 프로젝트


오다와라시는 가나가와현 서부지역 도시입니다.
오다와라는 경관색채계획에 따라 코카콜라 자판기 고유의 붉은 색을 고유의 경관에 맞추기 위해 아이보리색으로 변경하도록 설득했다는 에피소드로도 유명합니다.

2005년 12월 경관법에 의거해서 경관색채계획과 경관조례를 결정하였습니다.
장소의 특징을 살린 경관형성, 시민의 참여가 함께하는 경관형성 등 지역특수성과 함께 시민 자체의 협력을 유도했다는 점에서 성공적인 결과를 보여준 사례이기도 합니다.

오다와라시는 경관을 아름답게 정비하기 위해서 도시의 색채에 대해 관심을 가졌습니다.
우선, 경관색채계획에 앞서 도시의(개별건축물 포함) 색채현황을 먼저 조사하고, 이와 동시에 시민들의 색에 대한 기본적인 생각과 도시에서의 색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하는 독특한 방식의 작업을 시작하였습니다.
다시말해, 색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건물입지, 규모에 따른 바람직한 색채와 바람직하지 않은 색채(피해야할) 색채를 알기쉽게 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내용들을 경관계획과 경관조례에 담고,  색채에 대한 방침과 제한의 내용으로 하되, 이를 시민들이 쉽게 알게 하는 작업들을 한 것입니다. 
간단한 일이지만, 도시의 색에 대해 총체적인 책임을 지고 있는 행정에서는 좀처럼 쉽지 않은 일입니다.
쉽게 볼수 있는 색채 안내서 말입니다..


개별 건물 색채선정 때 참고가 되는 내용을 종합적으로 소개한 안내서입니다.

주로 건축물과 공공시설물의 기조색에 대한 내용과 구체적인 사례를 소개하고, 그리고 액센트가 되는 강조색에 대한 것이 주요 내용입니다.

도시, 가로와의 조화를 우선시하고, 그 다음으로 건축물의 기조색과의 조화를 생각하는 것.
더욱이 면적과 위치 등을 고려하여, 이를 시민들에게 권장한 것인데, 이러한 과정이 현실화 되는데에는 시민의 눈높이에 맞춘 색채안내서가 큰 몫을 해냈습니다. 

오다와라 경관색채계획의 주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 오다와라 경관색채계획

1. 바다에서 산까지 연속되는 풍부한 자연의 존재감과 두드러지는 경관색채
2.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계승한 안정과 품격이 있는 경관색채
3. 계절 꽃들과 축제의 색채가 반영되는 변화와 활력이 있는 경관색채

** 경관색채의 기초지식과 배려사항으로
1. 눈에 띄게 하는것, 어울리게 하는 것
2. 건축물의 관례색
3. 색채 이미지 효과와 그 한계
4. 지역과 지구의 특성과 타인의 의도
5. 주위의 건축물 등의 색채조화
6. 고모와 형태에 어울리는 색채, 배색
7. 색채의 내구성과 메인터넌스

이러한 주요내용을 큰 틀로 하고, 오다와라의 몇군데 지역을 색채에 대한 중점관리지구로 지정하였습니다. 그리고 개별건축물 > 가로 > 지구의 순서대로하여 도시색채를 변화시키기 시작했습니다.
아니, 다시 말해 도시의 색을 바르게 사용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오다와라는 건축물들의 색채뿐만 아니라 공공시설물의 색채는 지구의 상징이 되고, 그외 무채색과 극저채도색으로 구성된 지역의 배경이 어우러지면서, 차분한 색으로 일체감을 주는 동시에 거리에 활기를 불어넣게 된 것입니다.
 
가로의 기조색은 황색과 황적색을 기본으로 안정된 저채도로 유도하였으며, 건축물의 지붕색은 지역의 공원녹지와 어우러지는 연출이 되도록 저채도 게통으로 하는 동시에 중후함을 주기 위해 저명도를 지향했습니다.

 <건축물 등의 외벽> <건축물 등의 지붕>  <옥외광고물, 차양>  <자동판매기>
현재 마을의 기조색인 황적, 황색계를 기본으로 안정된 저채도 색 지향  녹색과 융화된 독특한 멋이 있는 경관을 형성하기 위해 저채도, 저명도 지향  안정감과 독특한 멋을 내는 편안한 색을 지향  지정색으로 통일


또 다른 색채 중점관리지구에 대해서는 수목의 녹지색이 반영되도록 하였습니다.
이를 위해 난색계열을 많이 쓰면서 명암대비가 확실한 기존의 거리색상특징을 조화롭게 하기 위해 사용색 범위를 좀더 넓게 활용하도록 융통성을 발휘하였습니다.
난색계에 반대되는 한색계열의 색채나 기타 색상이 대비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대비책이기도 한 것입니다.

이를 통해 '오다와라'는 기존의 도시색상을 존중하면서도 질서와 품격이 있는 도시경관색채를 형성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명도에 대해서는 기존에 명암의 구분이 선명하게 나타나는 가로가 있을 경우, 거리특성을 살리면서도 명암에 대해서 제한을 두지 않았습니다.
다시말해 명암의 다양성을 살려 거리의 기존 특성을 살려둔 것입니다.

건물과 옥외광고물에 대해서는 건물 전체적으로는 제한된 범위내의 색채를 기조색을 사용하도록 권장하되, 저층부에 이목을 집중시키도록 하였으며, 옥외광고물은 중채도 색을 사용하도록 하였습니다. 이 또한 가로를 구성하고 있는 건축물과 광고물에 기존의 특징을 살리면서도 융통성있는 권장기준을 적용한 것입니다.

장소의 특성을 살리는 경관색채를 형성하는 것. 
행정에서 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방식으로 추진하여 성공적인 도시의 색채를 만들어가는 것.
여기에는 시민이 이해하기 어려운 (경관)계획보다, 한번보고 쉽게 이해할수 있는  컬러가이드라인을 중한 오다와라의 독특한 방식이 있었습니다.

배울만한 도시디자인 사례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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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23 00:00

통합창원시가 배워야 할 창조적 도시디자인사례(4) - 토리노

 
통합창원시가 배워야 할 창조적 도시디자인 사례

(1) 8년동안 만든 도시계획-도쿄 도심재개발 
(2) 도시정비계획 수립후 협의만 10년, 독일 에슐링겐
(3) "빌바오 효과"... 15년전 예견된 성공사례
(4) 민관협력으로 성공한 토리노의 도심 재개발 정책
(5) 도시의 색채는 작은 안내서에서 부터... '오다와라의 경관색채계획'
(6) 프랑스 신도시 '라데팡스', 알고보면 그 시작은 1958년 부터
(7) 40여년 동안 바람길 활용계획으로 대기오염을 극복한 슈투트가르트, 또 앞으로의 도전
(8) 작은계획(하천정비)을 시작으로 큰 그림(도시계획)을 완성하다. '물의 도시 오사카'
(9) '미나토 미라이 21'은 20세기 중반에 세워진 계획?
(10) 23년동안 10개의 다리를 10가지 각기 다른 테마로 만드는 도시, 들어보셨나요?
(11) 25년만에 완성된 하펜시티(함부르크) 프로젝트





토리노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피아트(Fiat) 자동차 공장이 있는 도시입니다.
이 공장이 도시 외부로 이전함에 따라 필연적으로 도시재생을 선택한 도시입니다.
토리노의 성공적인 도시재생에는 민관협력이 열쇠였습니다.


** 토리노 민관협력의 구성
(1) 토리노 국제협회 : 시 + 시민단체 + 기업체 + 노조
(2) 협력투자 유치단(ITP) -> 시 홍보와 투자유치

토리노의 도시재생사업은 먼저 민관협력의 구성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 다음 피아트 본사(1899년~)가 있던 공장을 리모델링하고 주변정리를 시작하였습니다.

** 피아트 in 토리노 (1899년~ )
- 종업원 : 22만명
- 이탈리아 전체의 85% 자동차 생산

>>  피아트 공장 이전후 인구 17.5% 감소

그 후 쇼핑센터, 교육기관, 주거공간 등으로 개발하였습니다.
또 이에 그치지 않고, 산업유치와 토리노 홍보를 위한 국제행사(올림픽)을 유치해서 도시를 활성화 시키고자 하였습니다.


피아트 본사가 이전한 후 공장건물은 고스란히 흉물로 남게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찾은 돌파구는 오래된 건물을 활용하여 관광도시로 탈바꿈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계획에는 창조적인 전략이 있었습니다.
공업도시의 역사성이 담긴 전통 건물의 외관을 보존하면서 내부를 개조했던 것입니다.
이 방식에 피아트 공장의 건물도 포함되었습니다.

이 일은 토리노시와 민관협력단이 협력하여 진행하였는데, 이 협력단은 1997년에 설립되었으며, 본격적인 활동은 2000년부터 한 것으로 '토리노 국제협회'와 '민관 협력 투자 유치단(ITP)'이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1997년부터 구체적인 기획활동을 시작했는데, 2010년을 목표연도로 정했습니다.
1차 계획에 따라 도심재생프로젝트들이 성공하자, 2002년에 이르러서는 2020년까지의 제2차 전략계획을 마련하게 됩니다.

** 2차 전략계획의 내용
- 시내 곳곳의 공장부지를 포함한 도심 재개발 내용
- 올림픽과 같은 국제경기 유치

토리노의 도시재생을 위한 사업은 살펴보면 크게 세가지로 나뉩니다.

(1) 리고트지구의 재개발
- 피아트 공장지구 (3만명 근로자 수용, 1920년 조성)
- 내용 : 건물보수, 주변정리 -> 쇼핑센터 조성
- 쇼핑센터의 구성 : 상품전시장 + 8개 쇼핑센터   --> 컨퍼런스센터 신축(1994)

(2) 미라포리 지구 재개발
- 피아트 본사지구 (5만명 근로자 수용, 현재 15천명)
- 내용 : 신산업공간으로 재개발
- 첨단 정보통신업체 유치 + 자동차 산업 클러스터 조성

(3) 스피나 사업
- 철도역 주변 등 기존 도심의 재개발 -> 연구개발, 쇼핑, 업무, 여가 등의 공간 조성

** 혁신사업
- 사업명 : The Gate 사업 (시장재개발사업)
- 도심상가지역의 물리적 환경 개선 -> 범죄 및 환경오염 완화, 고용창출, 전통시장의
                                                     열악한 환경 개선 --> 노점상정비
   --> 접근성 확보(대중교통, 주차, 자동차 교통량 조정 등의 추진 : 컴퓨터 통신체계)

※ 신동호, 선진공업도시의 지역재생정책에 관한 연구, 국토계획, 제43권 제2호, 2008. 4
                                          토리노 도시재생 사업지구
                                        (Citta di Torino, 2006 : 18-19)
        
- A (스피나 1지구),  B (스피나 2지구),  C (스피나 3지구),  D (스피나 4지구)
- 붉은 실선 : 지하화 되는 도심철도
- 1 (링고트),  2 (미라피오리),  3 (스피나 2,3지구),  4 (스피나 3지구)
   5 (토리노 중앙역전 역사경관지구)


그 과정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1992년  도시마케팅 대회 개최 
 1993년 '국제 도시 토리노' 도시부흥 전략계획 제안 (시장)
 1994년  컨퍼런스센터 신축(링고트지구) - 9천명 수용규모 
 1997년  토리노 국제 협회 결성 
   제1차 토리노 전략계획 수립(2010목표)
 - 6개부문, 총84개 사업
   재래시장 재개발사업 (The Gate) (1997~1999)
 1998년  민관협력 투자 유치단 (ITP) 조직
 2002년  제2차 토리노 전략계획 수립(2020목표)
 - 3개부문 
 2006년  철도역주변 재개발(스피나) 1, 2단계 완료


토리노는 알다시피 2006년 동계올림픽, 2007 동계 유니버시아드 그리고 2008년 국제 건축대전 등과 같은 세계적인 행사를 유치하였고 지금도 제2의 전성기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제20회 토리노 동계올림픽

토리노는 기존 도시의 역사적 증언인 건축물(공장 포함)을 보존하면서 도시를 새롭게 탄생시켰습니다. 도시경관도 개선했고 도시의 정체성도 지켜나갈수 있었습니다.

                                              (구) 피아트 본사

                                                (현) 피아트 본사

토리노의 교훈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민관협력을 통해 모든 것들이 이루어졌다는 점입니다.
시장의 강력한 지지를 받는 국제협회가 비전을 정립하고 사업을 기획하는 한편, 사업추진과정을 모니터링까지 한 것입니다. 다른 주체들은 국제협회가 지정해주는 역할을 수행하면서 정책추진을 가능하게 하는 거버넌스 체계였습니다.

민주적으로 정책을 기획하고 집행하는 체제가 진정한 민관협력체계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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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빡빡이 2010.07.23 21:35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오늘 너무 감사드립니다^^

    조언까지 해주셔서 너무 좋은 정보를 받았네요~

    더욱 열심히해서 좋은 결과 만들겠습니다^^

    • 허정도 2010.07.23 22:31 신고 address edit & del

      나도 반가웠어요.
      좋은 작품만들어 마산도심재생에 멋진 아이디어를 제시해 보세요.
      빡빡이 화이팅!!

  2. 정대호 2010.07.30 22:47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수많은시간 건축에대한애정과 폭넓은식견이 언제쯤행정과 연계되어 맘껏 펼칠날을 기대해 봅니다

    • 허정도 2010.07.31 08:40 신고 address edit & del

      오랜만이네, 반가워.
      방문 고맙고, 하는 일 잘 되기 바라네.

  3. bluelizard face sunscreen 2011.10.11 12:08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좋은 기사. 정말 멋진 사진

2010.07.16 00:00

통합시가 배워야 할 창조적 도시디자인 사례(3)-빌바오의 도시재생


<통합창원시가 배워야 할 창조적 도시디자인 사례>

(1) 8년동안 만든 도시계획-도쿄 도심재개발 
(2) 도시정비계획 수립후 협의만 10년, 독일 에슐링겐
(3) "빌바오 효과"... 15년전 예견된 성공사례
(4) 민관협력으로 성공한 토리노의 도심 재개발 정책
(5) 도시의 색채는 작은 안내서에서 부터... '오다와라의 경관색채계획'
(6) 프랑스 신도시 '라데팡스', 알고보면 그 시작은 1958년 부터
(7) 40여년 동안 바람길 활용계획으로 대기오염을 극복한 슈투트가르트, 또 앞으로의 도전
(8) 작은계획(하천정비)을 시작으로 큰 그림(도시계획)을 완성하다. '물의 도시 오사카'
(9) '미나토 미라이 21'은 20세기 중반에 세워진 계획?
(10) 23년동안 10개의 다리를 10가지 각기 다른 테마로 만드는 도시, 들어보셨나요?
(11) 25년만에 완성된 하펜시티(함부르크) 프로젝트


빌바오(Bilbao, Spain).
면적 41.3㎢, 인구 35만의 중소도시가 세계적인 도시로 부각되었습니다.
스페인 북부 비스카야주의 주도인 빌바오.

※ 월드맵파인더 캡쳐


광장을 중심으로 뻗은 방사형 주간선도로와 중정형의 블럭을 가진 정형적인 중세도시의 모습입니다.


네르비온강변으로 3km에 이르는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습니다.



비스케이만(灣, Bay)에서 10km 내륙으로 들어오 네르비온강에 면한 빌바오의 이곳.
철광산업의 부흥을 이어오던 이곳에 새로운 도시디자인을 통해 일약 월드스타급의 도시로의 도약을 이뤄냈습니다.




"빌바오 효과"는 1995년에 수립한 '메트로폴리탄 빌바오 계획'으로부터 이뤄낸것입니다.
물론 1991년에 '구겐하임미술관'의 유치가 확정되면서부터 그 신조어(Bilbao Effect)가 톡톡히 효과 본것이기도 합니다.

그 효과를 정량적으로 계산한 자료를 보면, 과거 10년동안의 관광객이 986만명. 수익은 약 2조 1,000억원에 이른다고 합니다.
중소도시인 빌바오는 도시규모에 대비되는 엄청난 도시브랜드를 일궈냈습니다.

우리나라 관광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방안외래관광객 수 =  약 780만명.(2009년)


이렇게 되기까지는 위기를 기회로 바꾼 역사가 있었습니다.

빌바오는 1970년대까지 45만명의 인구가 거주하는 활기찬 도시였습니다.
철강, 조선산업의 중심지 (빌바오는 스페인 최대항구)로 급성장해오던 이곳에
1970년대 말, 유럽의 산업위기로 인해 그간 이루어낸 경제적 성장이 멈춘것은 물론이고
중공업과 그 부속되는 산업, 이와 견주는 서비스업 마저도 붕괴되고 맙니다.

70년대말부터 80년대 중반까지 관련 산업의 고용이 25%나 감소되고,
이에 따라 실업율도 30%까지 치솟습니다.
인구감소현상은 눈에 띄게 늘어나고, 각종 사회문제들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빌바오의 위기 앞에서,
시는 산업위기 등으로 도시침체를 맞은 타도시사례(피츠버그, 글라스고우 등)의 정황과 유사한 것으로 보고, 그 원인을 '도시의 구조적 문제'로 규정합니다.
즉, '산업도시 빌바오'의 도시재생방안으로 '탈산업화'를 시도하게 됩니다.

탈산업화를 통한 빌바오의 도시회생을 위해 '문화와 예술적인 도시'를 목표로 한
 '메트로폴리탄 빌바오 계획'이 1995년에 수립됩니다.
문화와 예술을 통한 경제 활성화가 이 계획의 궁극적인 목표였습니다.

도시디자인을 통해 도시를 아름답게 꾸미는 일로 시작해서, 문화와 예술관련 부문을 활성화시키고, 자본을 끌어들인 것입니다. (영국 글래스고우 도시재생전략 벤치마킹)

빌바오의 도시재생의 특징은 지역공동체에 대한 지원입니다.
대표적으로,
1991년에 설립된 '빌바오 메트로폴리탄 30'공공과 민간의 활동이 도시재생 과정을 주관하도록 하였고,
1992년에 설립된 '빌바오 리아 2000'은 중앙정부와 주정부가 50%씩 공동으로 출자하여 도시재생프로젝트를 실행하는 공기업을 만들었습니다. 이 기관은 독립성을 보장받고(정치적 개입 방지), 운영도 독립적으로 하되, 경제활성화를 위한 프로젝트를 추진하였습니다.

메트로폴리탄 빌바오계획은 실제로 빌바오항만청에서 외부 항구의 확장공사계획에 따라 네르비온강 주변지역을 활용할수 있었던 것이 가장 큰 기회였습니다.

현재 마산지방행양항만청에서도 부두를 도시의 유휴공간으로 제공할 계획이며, 이에 대한 '마산만 르네상스 정책'의 일환으로 워터프런트 계획을 현재 창원시 도시디자인과에서 추진중입니다.
이 구상이 통합창원시의 기회로 작용하면 좋겠습니다.



현재까지 메트로폴리탄 빌바오계획에서 사용된 자금은 신공항에 190백만유로, 빌바오전철 900백만유로, 외부항구 600백만유로, 지상궤도열차(트램)에 20백만유로를 투입하되었습니다. 
이 거대한 프로젝트들의 계획은 지금으로 부터 15년전에 되어졌던 것입니다.
빌바오 메트로폴리탄 30의 설립시기로 보면 20년전입니다.

 1991년  빌비오 메트로폴리탄 30설립 
 1991년  바스크 주 '구겐하임 미술관' 유치 확정 
 1992년  빌바오 리아 2000설립 
 1992년  외부항구 확장공사 시작 
 1995년  메트로폴리탄 빌바오 계획 수립
 소로사우레 마스터플랜 통과 
 1995년  지하철개통, 네르비온강 인도교, 수변지구 재개발공사 
 1997년  구겐하임미술관 완공 
 1998년  Aalborg 법규 통과 - 21 지방 의제
 2005-2008년 활동 계획 수립
 1995년
 2001년  소로사우레(Zorrotzaurre) 도시발전관리위원회 구성 
 2002년  에우스꼬뜨란 완공 
 2003년  소로사우레  
 2004년  아메촐라 공원 개장
 2007년  사로사우레 마스터플랜 완료
 마스터플랜 목적과 지침 목록서 계획

빌바오의 트램 

구겐하임 미술관 

네르비온강변 워터프런트 1

네르비온강변 워터프런트 2

네르비온강변 워터프런트 3

스비스리 다리(Pasarela Zubizuri), 보행전용교
※ 산티아고 칼라트라바(Santiago Calatrava) 디자인


 에스칼두나 다리.
보행자와 자전거이용자를 배려한 캐노피 디자인인 돋보입니다.


기업의 생명이 30-50년이라고 본다면, 도시의 생명은 무한대일 것입니다.
그런 도시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계획에 따라 실천해나가는 것.
절대 서둘러서는 안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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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노래 2010.07.16 17:58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관광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빌바오는, 스페인이 관광대국이기에 관광이 중심이 될 수 있으나
    창원은, 한국이 관광으로는 스페인에 못미친다.
    따라서 제조업을 더 중요시 해야 한다.

    • 허정도 2010.07.17 11:34 신고 address edit & del

      맞는 말씀입니다.
      도시를 조금 고친다고 관광객이 오는 것은 아니니까요.
      하지만 워터프런트나 도시재생 프로그램을 통해 생활환경이 좋아지고 도시에 생기가 넘치면 마산에 사는 사람들의 삶의 질은 많이 높아지지 않겠습니까.

  2. 똥곰 2011.04.24 23:33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도시공학을 전공하는 학생입니다. 구글링중에 좋은정보 많이 얻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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