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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10 00:00

런던도시이야기 20. 중세 자본가조합 '길드홀'을 가다.

♪ 런던 도심에 민간단체에서 지은 고건축에 해당되는 건물중의 하나가 '길드홀'입니다. 길드제도는 중세의 중소상인집단 동업조합제도로 지금의 '상공회의소' 같은 기능을 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이 건물은 1411년에 지어진 건물로 그들의 사교의 장으로 활용된 건물로 지금까지 활용되고 있는 건물입니다. 중세의 분위기를 간직한 '그랜드홀'에서는 지금도 시장의 만찬회와 강연회, 정례 시의회가 개최되는 등 런던의 시의회 의사당으로 쓰이고 있다. 이외에도 '길드홀 아트갤러리'와 '클록메이커 컴퍼니 뮤지엄'이 있습니다.

- 그랜드홀 : 건물 본체는 중세시대 양식의 건물이며, 주출입구 부분은 후대에 증축한 형태로 보여집니다. 좌측면에 덧 붙여진 경사진 형태의 아케이드도 후에 붙여진 모습처럼 보입니다. 고전적 양식과 현태적인 형태가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는 것 같습니다.

- '길드홀 아트갤러리' : 광장 오른쪽에 별도으로 지어진 건물이 전용 미술관인 '길드홀 아크겔러리'입니다.

 

- 광장을 중심으로 다양한 기능의 건물들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입구쪽에 있는 교회의 모습입니다.

- 이 건물은 교회와 길드홀 사이에 있는 관리동 건물처럼 보여집니다.

♬ 아트갤러리 관람

실내전경입니다. 마침 런던타워브릿지 특별전을 하고 있었습니다.

-런던타워브릿지를 주제로 그려진 그림들을 모아서 특별전을 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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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22 16:48

런던도시이야기 7. 템즈강의 명소 '타워브릿지'

 ♪  런던타워에 인접한 '타워브릿지'는 런던을 상징하는 랜드마크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일반 교량과는 달리 중앙부에 설치된 2개의 타워에 의해 다리 상판이 들어올려지는 도개교라는 점과 2개의 타워가 상징하는 시각적 인상이 강하기 때문이죠. 참고로 템즈강 연안에 20여개의 다리가 있지만 키 높이로는 가장 큰 다리인 셈입니다. 이 다리가 지어진 시기는 1894년으로 지금으로부터 120년에 건립된 다리입니다. 참고로 당시 설계지침에 요구된 사항으로 다리 중앙부의 주각의 길이(스판)가 60미터이고, 높이는 약 40미터 이상이 될것을 주문하였다고 합니다.

* 타워브릿지의 탄생과정 : 당시 출품된 아이디어를 살펴보는 것도 재미가 있습니다. 그림 상단의 첫번째 출품작의 아이디어는 키큰 배가 지나갈 경우에 다리 일부를 슬라이딩되게 하여 배가 지나가도록 하는 안이랍니다. 그 밑에 있는 그림들은 아예 배가 지나갈 수 있는 높이를  확보해서 구조의 형식을 달리하여 디자인을 한 것들입니다. 이러한 출품작 중에 유일하게 평상시에는 타워에 의해 상징적 조형성을 가지며, 배가 지나칠 경우 들어올려지는 안이 당선되어져서 현재의 타워브릿지가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당시 세상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도개교가 이러한 현상공모과정을 통해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 타워브릿지의 단면도 입니다. 타워부분입니다. 하단에 부면 원형궤적이 표시되어 있습니다. 큰 다리부분을 들어올리는 반대편 축에 해당됩니다. 도개교의 작동원리는 다리 남측에 있는 당시 석탄보일러에 의해 만들어진 스팀 펌프를 통한 구동되는 기어에 의해 가동이 됩니다.

- 주 단면도입니다. 주각 사이의 구조는 현수된 강재에 의해서, 중앙의 타워는 입체철골 트러스에 의해 지탱되는 구조입니다.(12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템즈강의 타워브릿지)(현재 상층부와 연결통로는 전시장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다리 진입로의 탑문 : 마치 성곽의 출입문을 연상케합니다. 맞배지붕의 장식하며 ~~~) (만곡형의 아치장식과, 성곽형태의 지붕이 볼만합니다.) (아치를 통해본 중앙부의 타워부)(중앙탑문은 5층규모의 높이로 타워로서의 기능을 합니다.)(현수구조물의 철골의 접합부크기가 엄청납니다.)  (핀접합모습 : 사람보다 큰 크기죠!) (120년이 경과헤도 튼튼해 보입니다.)(중앙브릿지 상부 : 통로기능보다는 양측타워를 고정시켜주는 기능이 우선일 듯!)

♬ 한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이 다리가 경과과정은 1883년 당시 구조 공학자인 존(John Wolfe Barry)에 의해 시작되어 이후 건축가 조지(George Daniel Staven)이 건축관련 디자인을 총괄하여 11년 후인 1894년에 완공된 다리입니다. 물론 그 전단계에인 설계공모과정을 빼고도 10년 이상 걸려 탄생한 작품입니다. 당시 영국은 1863년에 지하철을 건설할 정도로 토목 및 구조공학이 발달되었기에 가능하였다고 봅니다. 앞에서 설계공모에서 여러가지 안을 보았듯이, 이러한 공모가 없었다면 이러한 랜드마크의 탄생도 어렵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1세기 이상이 지났지만 디자인의 힘은 강력함을 잃지않고 있습니다. 이것이 건축디자인의 힘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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