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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05 00:00

김형윤의 <마산야화> - 127. 청년들의 방역운동

 

127. 청년들의 방역(防疫) 운동

 

 

1920 (원문에는 1929년으로 되어 있지만 본문의 여러 정황으로 보아 대정 9년인 1920년으로 추정되어 바로 잡음) 즉 일치(日治) 대정 98월경에 마산시내를 엄습한 콜레라로 인해서 아침에 만난 사람이 저녁이 되면 피병원(避病院, 격리병원)으로나 묘지로 가고 만다.

 

1918년에 전 세계를 휩쓴 이스파니아독감의 맹위에 굴복된 민중들은 환자가 발생하면 약보다 기도하는 것이 만배 이상의 효능이 있다는 미신이, 현대의 예방치료나 과학을 억누르고 집집마다 샤머니즘에 젖어서 밤이나 낮을 가리지 않고 야단법석을 떨었다.

 

여기에 호역(虎疫)의 예방주사 같은 것도 일본인의 병원에는 편협한 민족 감정으로서 고의로 한인 환자에게는 차별을 하고, 심지어는 절명케 한다는 최극단의 유언(流言)이 횡행하여 일의(日醫)의 치료와 시료(施療), 격리 병사의 수용 등을 완강히 거부하던 일도 비일비재하였다.

 

이때에 마산민의소 간부를 중심한 중견 청년들로 결속된 마산구락부 청년회에서는 화급히 마산 호역방역대(虎疫防疫隊)를 편성하여 긴급 동원을 하였는데, 방역에 소요되는 일체의 비용은 한 푼도 당국(일본인 각 기관)의 지원을 받지 않기로 한 것이다.

 

그 당시 청년들의 방역태세를 보면, 본부의 명령에 일사불란 신속 출동으로 적십자 완장의 가운(소독복)을 입고 환자가 발생한 상당 거리를 교통 차단과 동시 석회 소독을 하여 출입제한, 혹은 이 마을 사람이 이웃 마을로 갈 때라도 예방주사 필증을 정시(呈示)치 않으면 통행은 절대로 용인치 않았다.

 

수도 시설이 없던 시절이라 공동우물과 우물주변을 소독한 뒤에는 부녀자의 접근을 금하고 대원 자신들이 급수 공습하였으며, 각 가호호(家戶戶)의 음료수에 희염산(稀鹽酸)을 타서 먹게 하는 일방 출입문전에 가마니 위에다가 당시 유일한 소독약이었던 석탄 산수(酸水)를 뿌려 반드시 소독한 가마니를 밟고 출입토록 하는 등,

 

방역에 치중하던 이들의 애족심에는 감개무량할 뿐이며, 당시 활약하던 대원들 명단을 기억으로 더듬어 보자.

 

대장 ; 김무경(金武敬, 일명 태권)

대원 ; 이영재, 명도석, 나인한, 김용환, 김용선, 김태곤, 김치수, 김철두, 손문기, 김기호, 김계호, 오호봉, 명상수, 김지철, 이정찬, 김명규, 김형오, 전 석, 황태현, 이우문, 최대규, 김기성, 여병섭, 황장오(이상 전원 고인), 최철용(무순)

* ; 이상 명단 중에서 누락된 분이 있다면 양해 바람<<<

 

 

<마산민의소 회관이 있었던 옛 시민극장 / 지금은 다른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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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14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49) - 개항이후

<한일병합 전, 마산포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오늘부터 마산포(원마산)의 옛 모습에 대해 7회로 나누어 포스팅하겠습니다.

근대적인 계획도시였던 신마산과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된 전통도시 원마산의 사정은 사뭇 달랐습니다.

당시 마산포(원마산)의 규모입니다.


1900년-1910년 경 마산포는 인가(人家)가 조밀하고 상점이 번화했으며 2,000여 호의 재래식 건물들이 들어서 있었습니다. 상점가는 주로 해변에 면해 있었습니다.

마산포의 중심부인 현 제일은행 마산지점 자리에는 정사각형의 1,500여 평의 부지에 150여 년 동안 존속해 온 마산창이 개항과 함께 감리서아문(監理署衙門)으로 변해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마산창은 100여년 전까지 존재했던 건물로서 규모․위상․역사성이란 측면에서 가장 상위의 관아였습니다.
마산창에 대해서는   <2010/06/28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 - 조선시대> 에서 이미 소개하였습니다.

마산창 주변은 좁은 길가에 잡화상과 미곡상 등의 상점으로 가득 차있었으며 주위 안팎에 마산창과 관련된 공덕비를 비롯한 석탑들이 많이 있었다고 합니다.
일제기에 창동을 석정(石町)이라고 불렀는데 이 석탑들 때문에 지어진 지명이었던 것 같습니다.

기록으로 당시 마산포 상황을 짐작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1901년 창동 구 시민극장 뒷골목에 있었던 황영택 장로의 집에서 마산의 기독교가 시작되는 최초의 모임이 있었다는 『문창교회백년사』 기록과
같은 해 마산 최초의 천주교 신자 김달시시오의 집이 오동동에 있었다는 『
天主敎馬山敎區設定10주년기념집』이 그것입니다. 
이 두
기록을 보면 도로변을 제외한 골목 안쪽은 대부분 주거용 건물로 사용되었던 것 같습니다.

이 밖에 창동의 옛 시민극장 자리에 마산민의소가 1908년 건립되어 사용되고 있었으며 1898년 마산창 내에 마산포우편물취급소가 설치된 후 1909년에 구마산우편소로 개칭되어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이 외에 남성동 일대에 마산금융조합과 진주농공은행마산지점 등의 금융시설이 있었으며 1909년에는 수성동에 동양척식주식회사의 출장소가 생겨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1906년 조창부지 서쪽에 일본인 등기공수(藤崎供秀)가 한인가옥 사이에 일본식의 점포를 2-3채 지어 세를 내주고 그 지역이 마치 제 지역인양 등기정(藤崎町)이라 부르기도 했습니다.
 

1908년에 마산포 영역인 서성동에 길천(吉川)이란 일본인이 사는 목조2층의 요정 '명월루'에 화재가 났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등기공수(藤崎供秀)와 길천(吉川)에 대한 두 기록은 을사조약 후 일본인들의 마산이주가 본격화되고부터 원마산에도 일본인들이 건축물도 짓는 등 상당한 진출이 있었던 것을 보여주는데 더 이상 자세한 정황은 알 수가 없습니다.


마산포의 시장은 번화했던 것으로 유명합니다.
당시의 마산포(원마산) 사정을 엿볼 수 있는 사진 두 장을 소개합니다.

조선통감부농상공부수산국에서 1910년 펴낸 『韓國水産誌』에 수록된 사진입니다. 책의 간행연도가 1910년(隆熙4년)이니 사진촬영 시기는 1908-1909년 혹은 그 이전일 수도 있습니다.




「구마산예시의 건염어점(舊馬山例市の乾鹽魚店)」이라는 설명과 함께 소개된 두 사진을 보면 좁은 시장통에 초가의 상점이 늘어서 있는 정경과 사람 수를 보아 상당히 성황을 이룬 거리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목조 흙벽에 초가를 얹었지만 늘어선 품새로 보아 시장이 번성했음을 한 눈에 알 수 있습니다.
아마 마산포 시장의 이런 모습이 조선 후기 내내 이어져 왔을 것입니다.

다음 글은 1908년 일본인 전연우언(田淵友彦)이 쓰고 박문관(博文館)에서 펴낸『한국신지리(韓國新地理)』254쪽에 수록된 마산관련 글입니다. 

**************************************************************************************한인가(韓人街, 마산포)는 마산만 안쪽의 북쪽에 각국거류지로부터 20여 정(丁, 1丁은 109.1m, 町이라고도 함)에 있으며 구마산이라고도 칭한다.

수 천 여 호에 인구가 약 4,500에 이르는데 옛날 조공미를 모은 집산지로서 함경도의 원산, 충청도의 강경과 더불어 팔도 3대 항구 중 하나로 일컬어 온 곳으로서 경상남도에서는 시가(市街)로서 제3위를 점한다.

마산 개항 당시에는 일본 상인들이 모두 여기에서 조선인들과 혼거하여 살았다. 또한 본 항 무역의 대부분을 점하고 있는 미곡은 가을과 겨울, 출하의 계절에 오직 여기에서 모든 것이 이루어지므로 일본인들도 여기서 거주하는 사람이 많은데 1904년 6월 현재 호수는 42호이고 남자89명․여자 56명이다.

구마산의 개시일(開市日)은 매월 3회로 5일․15일․25일에 열리는데 장날에는 부근 10 리 내지 20 리 떨어진 지역으로부터 주민들이 모인다. 특히 쌀이 출하되는 계절에는 조선화폐 취급고가 50,000관(貫, 관은 ‘괘’의 뜻으로 엽전 열 꾸러미, 곧 열 냥을 하나치로 계산하는데 쓰는 말이므로 1관은 10냥(兩)을 말한다) 이상 달하기도 한다.

구마산은 또한 어류집산지로서 염장어(鹽藏漁)를 위시하여 해삼․명태 등의 건어물을 취급하는 상점이 20여 호이며 매년 취급고가 수 십 만원까지 오른다. 어류는 일본어선 및 한국어선으로 공급하고 판로는 경상도․전라도로부터 충청도 방면까지 이른다.

일본인 중에서 구마산에서 일본어 학교를 열어 한국인 자제의 교육에 착수한 사람이 있다. 현재 학생이 수 십 명에 달하며 점차 발전하고 있다.




다음 글은『한국신지리(韓國新地理)』보다 6년 먼저 나온『韓國 案內』의 마산기록 중 마산포의 도시상황을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이 책은 일본인이 쓴 근대기 마산관련 최초의 문헌으로, 일본인
香月源太郞이 쓰고 東京 靑木嵩山堂에서 1902년 출간했습니다.

서울대 중앙도서관에서는
『韓國 案內』를 '대한제국기에 한국을 방문하는 일본인 여행객들을 위하여 한국의 개항장 등의 경제발전상황을 통계자료를 이용하여 소개하고 관광할 만한 명승고적과 은행 등의 위치를 기록하고 있는 책자이다'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구 마산포(舊 馬山浦) p.322

각국 거류지를 지나 약 10리 거리의 창원가도(昌原街道)에 있고 인가가 조밀하고 상점이 번화한 곳이다. 호수는 2,000여호이며 감리서(감리는 창원군수가 겸임), 경찰서 등이 있고 시가는 해변에 면하여 선박화물의 폭주가 매우 빈번하다.

옛날에는 이곳이 일본상인(행상)의 근거지였지만 마산개항에 즈음하여 신마산으로 이전하였다. 지금도 20여 호가 있고 대부분 조선가옥에 기거하고 있다.
 
**************************************************************************************

에 나오는 한국인과 일본인의 숫자는 다른 자료와 차이가 많아서 정확도에 의문이 생기지만 당시 마산포가 얼마나 활발했었는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산포의 세밀한 상황은 복원도를 포스팅할 때 소개하겠습니다.<<<




2010/10/04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26) - 개항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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