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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12 00:00

기억을 찾아가다 - 21

21. 동(洞) 대항 줄다리기대회

 

마산시 동 대항 줄다리기대회가 시작된 건 초등학교 때였던 것 같은데, 내가 몇번 구경한 건 중학교 때였다. 대회 장소는 주로 무학초등학교였다.

마산의 30여 동이 토너먼트로 겨루어 하루에 마치는 행사였으며, 선수 수는 30, 경기 시간은 30초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전술한 바처럼, 청수(淸水)들판 오른쪽 동네(봉덕동, 봉암2)와 봉암다리쪽 동네(봉암동, 봉암1)를 시에서 떼었다 붙였다 하는 통에, 한 팀이 되었다 분리되었다 했지만, 성적은 분리되었을 때의 성적이 훨씬 좋았다.

여러 번 우승한 것도 그때였다. 그때 우리 동네는 비록 떨어졌어도 한동네라는 의식이 강했기에 함께 모여 응원도 하고 밥과 술도 같이했다.

아침 일찍부터 운동장 군데군데에 각 동의 선수와 응원꾼들이 자리들을 잡았었는데, 중심지 동네 사람들과 변두리 동네 사람들의 입성과 모습, 준비물들엔 차이가 많았다.

특히 우리 동네보다 더 가난하고 외진 봉암1동 사람들은 첫눈에 드러날 정도로 그랬다.

선수들의 덩치도 별로 없는데다가 얼굴들은 대체로 새까맣고 깡마르고, 밥함지와 반찬통 이고 들고 온 부녀자들도 깡마른 몸에 검누른 얼굴, 입고 있는 저고리와 몸빼(もんぺ , 일본여성들이 일할 때 입는 헐렁한 바지), 몽당치마들에선 땟국이 묻어날 것 같았다.

그런 잔칫날인데도 함지 밥은 거무스럼했고, 반찬은 풋고추와 생된장, 열무김치가 주를 이루었다. 사이다 한병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쪽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엔 활력이 넘쳤었다.

백여호 남짓밖에 안 되는 동네에서 칠팔십명도 넘어 뵈는 사람들이 왔다는 것부터가 그랬고, 평소엔 시내 중심가에 들어설 때부터 쭈뼛거리던 사람들(특히 아낙네들)의 모습과는 대조될 정도로 그 장소에서만은 생기들이 있었다.

비쩍 마른 아지매들도 이쪽 남정네들이 건네는 막걸리잔 스스럼없이 받아 단숨에 들이키고는 우승을 확신하는 큰소리를 주위에서 들으란 듯이 외쳤다.

그도 그럴 만했다. 마산시에서 가장 작고 가난하고 외진 그 동네가 다른 동네 사람들이 의외라고 화제로 삼을 정도로 우승을 독식하다시피 해왔던 것이다.

아마 선수들의 몸무게 평균을 내어봤다면 80:60 정도거나 그 이상의 차이가 났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런 결과가 나온 것에 대하여 그 동네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때 눈여겨 본 장면들을 떠올려보면서 나는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줄다리기는 고대부터 있었던 인간이 만든 게임이었다>

 

그들은 모두 어부들이었다. 작은 어촌에 큰 배는 없었기에 모두 노젓고 그물 끌며 살아온 사람들이었다.

특히 대다수가 꼬시락잡이를 주업으로 했기 때문에 꼬시락 몰이용 줄(‘방줄이라 불렀다.) 끄는 데는 이골이 난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줄을 몸에 붙일 줄도 알았고, 줄에 힘을 싣는 요령도 몸에 배어있었다.

준비 신호를 듣자 모두 줄을 겨드랑이에 끼웠다. 나중에 보니 모두 적삼 겨드랑이에 두꺼운 천을 대었다.

새 짚신 신은 두 발은 오륙십센티 정도의 폭으로 좌우 수평을 잡았다. 몸은 약간 뒤로 기대듯이 하는 듯하더니 땅!하는 신호와 동시에 전신을 45도 정도로 뒤로 일제히 눕히면서 버텼다. 다리에서 어깨까지 거의 일직선에 가까왔다.

상대방처럼 영차! 소리도 내지 않았다. 모두 그런 자세로 버티니, 상대가 영차!할 땐 이쪽 선수들의 등줄기만 약간 구부러졌다가 다음 순간 재빨리 한치나 두치 정도 발바닥을 뒤로 옮겨 자세를 잡고, 그 다음 순간 또 그렇게 하고...... 한 치도 끌려가는 일 없이, 한 명도 옆으로 쓰러지는 일 없이, 특별나게 끌어들이려는 모습도 없이, 전신이 하나되어 끌었다.

흙투성이 선수들의 손에 우승기와 상금이 들려지는 순간 우리동네 사람들도 모두 하나로 어울렸다.

그때쯤이면 응원꾼들 대부분이 얼큰한지라, 자연스레 춤들이 나왔다. 곧 폐회가 되면 장구와 꽹과리가 나오고 막걸리통을 실은 수레가 나오면 퍼레이드가 시작되는 것이었다.

평소에는 주눅이 들어 지나다니기를 꺼려하는 남성동 오동동 대로를 거쳐 동네까지 이십리길을 그렇게 마시고 춤추며 가는 것이었다. 상당수의 아이들도 막걸리나 떡을 얻어먹으며 따라가고......

어느해인가 나도 그 광경을 보며 따르다가, 그러나 삼백 미터도 못 가 슬그머니 빠져버리고 말았다. 후줄근한 차림의 촌사람들 따라가기가 챙피하게 느껴졌으리라.

그랬다. 나는 남성동이 가까워지면서 중학교나 초등학교 친구들이 볼 것 같은 느낌에 따를 수가 없었던 것이 확실했다.<<<

박호철 / 창원미래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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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18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67) - 강점제1시기

<마산시의 시작>

사라져버린 ‘마산시’,,,,
오늘은 그 ‘마산시’의 시작을 알아보겠습니다.
마산이라는 지명은 이미 오래전부터 사용하였습니다만 이 글은 행정구역명칭으로서의 ‘마산’에 대한 내용입니다.         <2010/06/07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9) - 고려시대>

1895년 을미개혁으로 태종13년(1413년) 이후 480여 년간 지속되어온 8도제가 폐지되고 부제(府制)가 시행되었습니다.
전국에 23부를 두고 336군을 부의 관할로 두어 종래의 부, 목, 군, 현 등으로 다양하게 불리던 하급행정구역들을 군으로 통칭하였습니다.
이때 마산은 진주부 관할의 21개 군 중 창원군에 속했습니다.
그러나 이 제도는 부제(府制)의 인위적인 행정구역획정이 마찰을 빚어 실시 1년 3개월 만에 폐지되고 말았습니다.

이어서 1896년 병신개혁(丙申改革)으로 13도제가 채택되었습니다.
이때의 13도는 종래의 8도를 바탕으로 경기․강원․황해의 3개도를 제외한 나머지를 남북 양도로 분할한 것이었는데 오늘날의 도(道) 구역은 이때 결정된 것입니다.
13도 밑에는 7부(광주․개성․강화․인천․동래․덕원․경흥), 1목(제주), 331군을 두었는데 마산은 경상남도 창원군에 속했고 경상남도의 수부도시는 진주였습니다.

3년 뒤인 1899년(광무3년), 창원군은 개항에 따른 조치로서 창원부로 승격되어 창원감리서를 두었고 개항장의 관리업무를 감리가 처리하였습니다.

그러다가 1903년(광무7년)에 창원부는 다시 창원군으로 바뀌었는데 이 때 전국은 3부, 1목, 339군으로 변경되었습니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일제는 통감부와 이사관 관제를 발포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1900년에 설치된 일본영사관을 1906년 9월 1일자로 이사청으로 바꾸고 일본 거류민에 대해서는 치외법권적 행정권을 행사하는 거류민단제(居留民團制)를 실시하였습니다.
이 조치에 따라 우리 정부는 같은 해 9월 24일 개항장의 감리서를 폐지하고 창원군을 다시 창원부로 개칭하여 감리의 소관 업무를 부윤에게 인계하였습니다.

여기까지의 복잡한 변화가 한일병합 이전까지 일입니다.

한일병합으로 한반도를 식민지로 만든 일제는 통치기구에 관한 일련의 관제(官制)를 발포하면서 강점 직후의 과도기적 체계를 발포하였습니다.
조선총독부 개청 하루 전날인 1910년 9월 30일이었습니다.

이 때 종전 13도 1수부 11부 317군에서 수부였던 경성부(京城府)를 격하하여 13도 12부 317군으로 개편하였습니다.
이 개편에서 마산은 이전의 창원부에서 마산부라는 명칭으로 바뀌게 됩니다. 마산이 최초로 행정구역명칭으로 되었습니다. 경남에는 부산과 마산이 부(府)가되었습니다.

이전의 11개 부(府)는 모두 개항장 혹은 개시장이었던 곳이었지만 다시 개편된 부(府) 12개는 모두 통감치하의 일본이사청과 일본거류민단이 있던 지역이었습니다.
부(府)의 명칭, 예컨데「마산부」는 ‘마산’이사청과 ‘마산’일본거류민단의 ‘마산’을 그대로 딴 것이었습니다.

아래 그림은 1908년 마산이사청으로 건축하여 1914년 마산부청이 된 건물 사진과 당시 이 건물이 있었던 자리(노란 점)입니다. 지금 경남대학교 평생교육원으로 사용하고 있는 이 터는 옛 창원군청으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정문 기둥의 현판을 자세히 보면 '馬山府廳(마산부청)'이라는 한자가 보입니다.


부청은 1910년 10월 1일 개청하였습니다.
이사청은 이 날로 폐지되고 전국의 이사청 청사가 각각의 부청 청사로 이름을 바꾸었는데 마산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다시 말해 창원부가 마산부로 바뀌었지만 호칭이 달라진 것 외 지방행정단위로서의 성격은 전혀 달라진 것이 없었습니다.

또한 1899년 시행되었던 마산의 개항도 1911년 1월 1일 진해 일본군항을 보호한다는 구실로 폐지되고 개항과 함께 시작된 각국공동조계지도 1914년 3월 31일자로 폐지되었습니다.
한국 땅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으니 조계지 폐지는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합방 후 3년이 지나고 어느 정도 식민통치의 틀이 잡히자 총독부는 본격적인 식민통치를 위해 대대적으로 지방행정을 개편합니다.
1913년 10월과 1914년 4월에 걸쳐 단행된 이 개편은 1914년 3월 1일과 4월 1일을 기해 일제히 실행에 옮깁니다.

마산은 이 지방제도 개혁 때 경성․인천․군산․목포․대구․부산․평양․신의주․원산․청진․진남포 등과 함께 관하에 면(面)을 가지지 않는 지방행정의 기초단위로서의 부(府, 지금의 시)가 되었습니다.
이 때 결정된 마산부의 관할구역은 마산부의 각국거류지와 창원군 외서면의 완월리․신월리․월영리․자산리․서성리․성호리․중성리․성산리․동성리 및 오산리․상남리․교방리.회원리의 일부였습니다.
지금으로 보자면, 동쪽으로 마산만 해안선을 경계로 서쪽으로 대곡산과 무학산 정상, 남쪽으로 밤밭고개, 북쪽으로 오동동다리를 경계로 노비산까지의 범위였습니다.

그러다가 1942년 9월 30일자로 마산부의 행정구역이 크게 확장됩니다.
창원군 내서면의 교방리·회원리·산호리·석전리·양덕리와 창원면의 봉암리, 구산면의 가포리 등 7개리가 마산부에 편입됨으로써 마산부 행정구역이 크게 확장되었습니다.

이때의 마산부가 해방 4년 뒤인 1949년 지방자치법제정 때 부(府)에서 시(市)로 바뀌면서 마산시가 되었습니다.

19세기 말에 시작된 마산의 행정구역 개편은 이처럼 창원군(1895년)-창원군(1896년)-창원부(1899년)-창원군(1903년)-창원부(1906년)-마산부(1910년)-마산부(1914년)-마산시(1949년)로 바뀌는 변화를 겪었습니다.

이와 같은 곡절을 겪었던 마산시는 2010년 7월 1일 진해 창원과 합쳐 창원시가 되었습니다.
마산부로 시작된 독립 시(市)의 백년 역사에 종지부를 찍었죠.

‘마산시’가 없어진지 그새 1년이 되었습니다.
평생 ‘마산시 회원동...’으로 시작되는 주소를 사용했던 저로서는 제 의지와 상관 없이 갑자기 ‘창원시.....’로 시작되는 주소를 사용하자니 아직 뭔가 어색합니다.
별로 내키지도 않습니다.
차라리 마산 창원 진해가 아닌 다른 이름, 예를 들어 ‘경남시’였다면 ‘마산’이 없어져버렸다는 느낌보다 세 도시가 통합되었다는 느낌이 더 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통합시의 명칭을 세 도시 중 하나였던 창원시로 결정해버린 것은 사회통합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름을 잃은 진해와 마산시민들의 상실감 때문에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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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30 23:17

'내 고향 마산'이 없어집니다


'2010년 6월 30일 밤 11시 10분입니다'


내 고향 마산....

까마득한 시절에 내면화되어 떼놓을 수 없는 ‘내 고향 마산....’

인간의지로 불가능한 일이 ‘탄생’이라면 ‘내 고향 마산’ 역시 ‘탄생’처럼 숙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밤이 지나면 나의 숙명 ‘내 고향 마산’이 없어집니다.
내일부터 누가 날더러 어디 사느냐고 물으면 무어라 대답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고속도로 이정표에서도, 지도 속에서도, 주소를 적을 때도 내 고향 ‘마산시’는 내일부터 없어집니다.
수몰로 송두리째 고향을 잃은 사람들보다는 낫겠지만, 텅 빈 가을들녘처럼 가슴 깊은 곳이 허허롭습니다.

말로는 마산 마산하면서도 ‘내 고향 마산’이 갖는 의미와 ‘내 고향 마산’이 내게 주었던 것들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지 못했던지,
마산의 마지막 밤에 ‘마산’이 더욱 그립습니다.

“무학산 뻗어 내린.....”으로 시작해 “....살기 좋은 이 고장 마산이라네”로 끝나는 ‘마산의 노래’를 초등학교에서 배웠습니다.
“....보아라 십육만 단란한 가족....”이 가사였던 60년대 초반이었습니다.
소풍갔던 서원곡,
헤엄쳤던 회원천,
연애했던 가포길,
취하고 떠들었던 어시장 홍콩바,
창동 네거리,
오동동 뒷골목,
신마산,
구마산,
북마산,
무학산과 봉화산....

내 몸과 영혼이 그 속에 녹아있었음을 오늘 다시 실감합니다.

철들고 어른되어 오늘까지 나는 ‘마산’을 몇 번이나 썼고 몇 번이나 말했을까?
그렇게도 통합을 원했던 사람들은 오늘 밤 기대감에 설레고 있을까?
생각 같잖은 생각들이 꼬리를 뭅니다.

이 밤 자고나면 마산은 창원이 되고, 새 출발을 축하하는 온갖 행사들이 열릴 겁니다.
축하를 하기는 해야겠는데 통합창원시의 출범이 곧 마산시의 사라짐이니 축하가 기쁘게 나오지는 않습니다.

내일은 달라질지 모르지만 오늘 밤은 공허하고 서운합니다.
‘마산시’는 없어지지만 사람들과 산과 땅은 그대로인데, 그래도 오늘 밤은 서운합니다.
깊은 곳에서 배어나오는 허전함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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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삼식 2010.07.01 01:07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우리가 살았던 이 시기는 분명히 역사상 혼돈기를 살아간 사람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쉽지는 않겠지만, 잘 기억하고, 잘 마무리하는 것이 마지막 도리이겠지요---
    ㅅ-ㅅ

  2. urbandesign 2010.07.01 08:10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문득 잠에서 깨어난 느낌입니다.

    "일생을 마친 다음에 남는 것은 우리가 모은것이 아니라, 우리가 남에게 준것이다(미우라 아야코의 빙점 중)"는 말이 생각납니다.

    이제 도시의 이름 "마산"은 바뀌게 되었지만, 그 도시의 공간, 그곳에서 선생님과 뜻을 같이 하시는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이제 시작입니다... ^^

  3. 강창덕 2010.07.01 11:20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통합으로 인해 형편이 조금 나아진들 내 영혼속에 고향이 사라지는 판국에 통합이 뭐 대수겠습니까? 통합만이 살길이라고 외친 정치인들과 관변단체 그리고 일부 공무원들은 지금은 후회하고 있을 겁니다.

    수십년을 사용해 왔던 내 이름을 버리고 남의 이름으로 살아간다는 것과 다를게 뭐가 있겠습니까?

    저는 조금 적게 먹고 배가 고파도 가족끼리 살고 싶은 생각 입니다. 통합으로 인해 상실되는게 돈으로 환산이 되겠습니까?

    마산을 팔아먹은 자들은 다음 선거에 반드시 심판을 해야 합니다.
    이번 지방선거에도 많은 위증자들이 당을 엎고 당선이 되었습니다.
    4년동안 지내다 보면 잊혀질게 따로 있지 마산을 팔아먹은 자들을 어찌 잊겠습니까?

    • 허정도 2010.07.01 16:26 신고 address edit & del

      막상 '마산시'라는 명칭이 없어지니까 서운한 마음이 들어 포스팅해보았습니다.
      오랜만입니다. 잘 계시죠?

  4. 강창덕 2010.07.01 11:20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통합으로 인해 형편이 조금 나아진들 내 영혼속에 고향이 사라지는 판국에 통합이 뭐 대수겠습니까? 통합만이 살길이라고 외친 정치인들과 관변단체 그리고 일부 공무원들은 지금은 후회하고 있을 겁니다.

    수십년을 사용해 왔던 내 이름을 버리고 남의 이름으로 살아간다는 것과 다를게 뭐가 있겠습니까?

    저는 조금 적게 먹고 배가 고파도 가족끼리 살고 싶은 생각 입니다. 통합으로 인해 상실되는게 돈으로 환산이 되겠습니까?

    마산을 팔아먹은 자들은 다음 선거에 반드시 심판을 해야 합니다.
    이번 지방선거에도 많은 위증자들이 당을 엎고 당선이 되었습니다.
    4년동안 지내다 보면 잊혀질게 따로 있지 마산을 팔아먹은 자들을 어찌 잊겠습니까?

  5. 나그네 2010.07.01 12:16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이곳 저곳 연재하고 있는 글 잘 보고 있는 사람입니다.
    자고 나니 세상이 바뀌었더라는 옛말이 실감나는 날입니다.
    마산 시민이 창원 시민으로 변해 있더라고요~!
    전 아직도 왜 통합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일반 시민에게도 좋아지는 정량적인 무엇이 있는지 말입니다.
    아마도 마산이라는 단어가 쉽게는 잊혀지지 않을 것이지만
    당장 주소를 적으라고 하면 정신이 많이 헷갈리겠지요!
    시간의 뒤안길로 사라지더라도 가슴 한 구석에는 남겠지요!

    • 허정도 2010.07.01 16:28 신고 address edit & del

      감사합니다.
      오늘 큰 길에서 이정표를 보았는데 '마산시청'이라고 쓰여있던 것이 '마산합포구청'이라고 바뀌었더군요.
      실감납디다.

  6. 최정건 2010.07.01 19:09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다른 지역에 있는 사람들이 합포구, 회원구, 성산구, 의창군이라 하면 잘 익숙해지겠습니까.

    행정을 하다 보면 분당구, 일산구 처럼 구의 이름을 홍보할 경우가 있는데

    제 생각은

    마산구, 진해구, 창원진구 이렇게 해야 했습니다.

    • 허정도 2010.07.01 23:23 신고 address edit & del

      글쎄요,,,
      그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기왕 결정된 일이니 주어진 조건 속에서 최선을 다해야겠죠.

  7. rose2919 2010.07.02 06:16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선생님, 안녕하세요? 가끔 들려 좋은 글을 읽고 있는 독자입니다.
    진주와 마산은 오랫동안 경남의 대표하는 도시였고 학창시절을 돌아봐도 그러했었는데
    창원시로 불릴 마산을 생각하니 한쪽날개를 잃은 느낌입니다.
    친구들도 생각나고 왠지 샘의 글이 공감되어 덧글을 남깁니다.

    • 허정도 2010.07.02 10:39 신고 address edit & del

      방문감사합니다.
      그래요,,, 참 서운합니다.
      하지만 이제는 다시 시작해야죠.

  8. 이선규 2010.07.02 09:57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정말 아쉽네요
    마산이란 명칭이 없어진다는게
    정말 선생님 글에 공감이 갑니다.

    • 허정도 2010.07.02 10:41 신고 address edit & del

      반갑습니다.
      마산 분이신가요?
      마산 사람치고 서운하지 않은 사람있겠습니까?

  9. 지나가는 사람 2010.07.05 14:30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창원이 싫습니다...마산....도청만 창원으로 이사 안갔더라도.... 아쉽네요..마산 영원할 것입니다.

    • 허정도 2010.07.05 15:53 신고 address edit & del

      싫다고 받아드리지 않을 방법이 없습니다.
      아쉽고 안타깝지만 넋놓고 앉아 있을 수도 없습니다.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가아죠,
      하지만 마산이 그 동안 만들었던 역사와 문화와 마산사람들 삶의 발자취는 살려 이어가야되겠죠.
      '시'로서의 이름은 없어졌지만 '마산'은 영원하지 않겠습니까?

  10. 2010.07.11 16:02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마산이라는 이름 사라지는 상황, 저도 상실감이 엄청 큽니다. 내 고향 남쪽바다의 마산, 멀리서 항상 생각하는 고향입니다. 제가 다닌 초,중,고 앞에 있던 마산이라는 이름이 없어집니까? 하지만 역사속의 마산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역사에 헌신한 '마산'이기 때문입니다.

    • 허정도 2010.07.11 23:12 신고 address edit & del

      그러게 말입니다.
      안타깝고 또 안타깝지만 돌이킬 수 없으니 어쩌겠습니까.
      마산의 역사, 마산의 문화, 마산사람들이야 영원하지 않겠습니까.

2009.12.27 22:42

이럴 때는 뭐라고 해야 합니까?



4대강사업은 국회예산통과고 뭐고 공사부터 시작했습니다
만, 정작 서둘러야 하는 생활주변의 재난복구공사는 팔짱 낀 채 나 몰라라 세월만 보내고 있습니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차이가 바로 이런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이 옹벽 무너진 지도 꽤 오래되었습니다.
여름가고 가을도 가고 겨울이 왔습니다. 며칠 후면 해가 바뀝니다.

지난 가을, 이웃에 사는 아주머니 한 분이 제게 물었습니다.
"저 복구공사는 언제쯤 해줄까요?"
저는 깊은 생각 없이 쉽게 답했습니다.
"해 바뀌기 전에는 하겠죠, 뭐."

그러고는 아침저녁 이 앞을 지날
때마다 '언제쯤 하려나' 기다렸지만
아무런 변화가 없었습니다.
그럭저럭 시간이 흘러 겨울.
영하의 날씨라 어젠 제대로 된 공사도 어렵게 되었습니다.

사진에서 보듯이 주위가 곧 허물어 질 것 같아 걱정도 조금 되었지만, 타이밍을 놓쳤으니 내년 봄에 착공할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랬는데,
오늘 아침에 지난 가을 저에게 '저 공사 언제쯤 해줄까'라고 물었던 이웃 분을 다시 만났습니다.
절 보시더니 반갑게 웃으며,

'전에 말씀하신대로 해바뀌기 전에 하긴하네요, 내일 쯤 시작해서 내년 4월까지 완공한다네요...' 라고 하시더군요.
해 바뀌기 전에 시작할거라 했던 제 말은 정확히 들어 맞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공사시작한다는 그 말이 별로 달갑지 않았습니다.
새털같이 좋은 날 다 보내고 엄동설한에 시작하는 공사라서요.

날씨 때문에 겨울공사는 가능하면 피하는 게 상식입니다.
콘크리트 옹벽이든 견치석을 쌓던 시멘트는 사용할텐데, 언 시멘트는 강도가 광이라 어지간히 조심해도 부실해지기 십상입니다.
옹벽 뒷면에 채울 흙다짐 때도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면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높습니다.
특히 사고 지점은 산밑 응달이거든요.

그 좋은 날 다 보내고 왜 한겨울 지금에야 시작하느냐고 물으면,

‘절차 때문에, 예산 때문에,,,,’라고 답할 겁니다.
하지만 뭔가 아쉽습니다.
좀더 합리적인 대처방법을 찾아야 되는 것 아닌가요?

그래서 물어봅니다.

이럴 때는 뭐라고 해야 합니까?
지금이라도 시작하니 잘한다 해야합니까?
지금에야 시작하니 잘못한다 해야합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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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utism26 2009.12.28 01:35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무너진 옹벽 바로앞이 인가인가보군요;;
    저정도라면 갑자기 비가많이왔을때 흙이무너지면 큰일날수도있는데,
    불편하면 직접하라는걸까요..;;?

    • 허정도 2009.12.28 10:33 신고 address edit & del

      글쎄 말입니다.
      저 상태로 반년 가까이 지냈으니 동네 분들 참 사람이 좋죠?

2009.08.11 18:12

'마산 해양신도시' 지금 중단해야한다

오는 11월 착공예정인 마산 앞바다 해양신도시는 재고되어야 한다. 이곳에는 마산도시를 바다와 단절시킬 고층 아파트 1만 가구가 계획되어 있다. 아파트 외에 다른 구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 계획은 이로움보다 해로움이 많을 것 같다.

바로 잡아야 한다. 석 달 남았으니 아직 기회는 있다. 선진해안도시를 보라, 생산적이면서도 바다를 즐길 수 있는 고품격 수변공간이 얼마나 많은지. 가포에 항만공사를 하면서 발생할 준설토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되돌릴 수 없는 것이 도시정책이니 지금이라도 계획을 바꾸어야 한다. 왜 그래야만 하는가?



첫째, 현 마산 도시상황에서 1만 가구의 대규모 아파트 건설이 옳지 않기 때문이다.

마산 곳곳에서 추진되는 재개발 사업은 총 48개 지역, 3만7000 가구이다. 이들의 소박한 꿈은 어쩔 것인가. 지금도 걱정이 태산인데 바닷가 좋은 자리에 1만 가구가 들어서면 이들은 어떡하란 말인가. 신포동 매립지의 고층아파트와 한일합섬 터의 아파트 분양도 시원찮다는 소문이 들리는데다가, 한국철강 터까지 기다리고 섰는데 말이다.

본래 신도시개발은 인구를 분산시켜야할 정도로 포화상태가 된 도시에서 선택하는 정책이다. 과연 마산의 도시상황이 그런가. 발전 동력이 부족한 이 도시에 신도시 만들어 대규모 아파트가 들어서면 결국 기존 도시의 희생이 따를 것이다.

인구 감소하는 마산은 신도시가 필요없다

신도시를 만들기보다는 기존도시의 획기적인 개발로 주거환경을 개선하고 상권회복을 도모해야 한다. 그것이 마산 도시정책의 정도다.

혹 신도시가 마산발전을 가져올 것이라고 믿는 분도 있겠지만, 그것은 발전이 아니라 풍선효과임을 알아야 한다. 이쪽을 누르면 저쪽이 불거지고 저쪽을 누르면 이쪽이 불거지는 풍선효과. 신도시 1만 가구의 분양이 성공하면 누군가는 피해를 보게 된다는 말이다. 재개발 주민들의 피해는 불 보듯 뻔한 일이지만 신도시의 상업시설과 경쟁해야 할 창동 오동동 월영동 상권도 크게 위축될 것이다. 자명한 이치다.

두 번째는 도시환경과 경관에 관한 걱정 때문이다.

신도시가 차지하는 해안선은 약 2킬로미터다. 자유무역지역을 제외하면 이 도시의 해안 절반을 틀어막는 엄청난 규모다. 선진 도시처럼 도시 속에 대규모 바람통로는 못 내더라도 기존 도시의 입과 코를 틀어막는 고층 아파트 계획은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 바닷가에 지도에서 보는 것 처럼 거대한 매립지가 생길 예정이다.

해양신도시 조감도

▲ 매립지에는 1만 세대의 아파트가 들어설 예정이다.

바닷가에 들어선 현대아이파크가 780가구, 아파트가 숲을 이룬 한일합섬 터 아파트가 2,100가구이니 1만 가구가 얼마나 큰 규모인지 알 것 아닌가.

앞으로는 고층 아파트, 뒤로는 무학산에 막혀버린 폐쇄된 공간 한 복판에서 살아갈 시민은 누구일까 생각하니 걱정이 앞선다. 결국에는 사람들이 이 도시를 떠나지나 않을까 두려운 생각마저 든다.

신도시의 설계도를 보면 환상적인 그림이 그려져 있다. 언젠가 '태풍 매미가 와도 신도시는 염려 없다'고 설명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림은 그저 그림일 뿐이라지만 '신도시만 좋으면 기존 도시야 어찌되든 상관 없는가'라고 되묻지 않을 수 없다.


기존도시는 어찌되든 상관없나?

논의를 조금 더 넓혀보자.
현재 조성 중인 가포 신항만의 수익성에 대한 의문은 착공 전부터 있었다. 필자 역시 공개석상에서 여러 번 물었다. 하지만 중앙정부도 마산시도 뚜렷한 답을 못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저 묵묵히 공사만 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최근 신항만 예측 물동량이 협약 당시에 비해 3분의1 밖에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알려졌다. 그러자 일각에서는 기왕 매립한 이 터를 제2자유무역지역으로 하자는 주장도 있었다.

따라서 지금이라도 정확히 검토하여 수익성에 자신이 없다면 저 매립지를 항만이 아닌 다른 용도로 바꾸어야 한다. 로봇랜드와 관련한 산업단지도 좋고 제2자유무역지역도 좋다. 그렇게만 되면 준설토가 안생기니 신도시 문제도 다시 생각할 수 있지 않은가.

절차가 복잡하겠지만 시민들의 합의가 있으면 못할 일도 아니다. 결정하고 시행되면 되돌릴 수 없는 것이 도시정책이고 도시환경이다. 아직 시작하지 않았으니 늦지 않았다. 이 도시가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는 중대한 문제인 만큼 지금이라도 재고하기 바란다.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는 마지막 찬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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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괴나리봇짐 2009.08.13 09:29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허정도선생님 안녕하세요. 저 김태훈입니다. 블로깅을 하다보니 이렇게 만나뵙게 되네요. 너무너무 반갑습니다. 앞으로 자주 찾아와서 인사 드리겠습니다. 건강하세요~

    • 허정도 2009.08.13 12:56 신고 address edit & del

      반갑네요, 김태훈씨.
      오랜만입니다.
      요즈음은 무슨 일을 하고 있지요?

  2. 괴나리봇짐 2009.08.13 16:53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지금은 콘텐츠 기획사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드라마도 만들구요, 지자체 문화사업 컨설팅도 하구요. 그리고 딸 둘 낳아 재미낳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 허정도 2009.08.14 01:05 신고 address edit & del

      화면보니 딸들 모습이 참 재미있네요.
      이뻐요.
      내 아이도 저런 때가 있었나,,, 싶네요.
      아무튼 반갑습니다.
      혹시 마산 오실 기회 있으면 연락 주세요.
      무학소주에 회 한 접시 준비하겠습니다.

  3. 박력 2009.10.15 13:13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10년만에 마산을 다녀 왔습니다. 생각보다 발전 하지 않았더군요.... 그런데 아이파크를 보고 매우 놀랐습니다. ... 아이파크에 사는 사람은 그런데로 살겠지만 다른 사람은 좀 불편하겠더군요.... 마산만의 캐릭터가 필요한데 개발 논리로 타인의 행복을 가로채는 것은 아닌지....
    허정도님의 반대의 의견은 충분히 공감이 갑니다.
    그런데 마산의 해안을 어떻게 주민에게 돌려줄 것인지... 아이디어는 없을 까요..
    만약 마산의 바다를 주민에게 돌려 준다면 그것이야 말로 마산의 경쟁력이 아닐지...
    타지로 떠난 사람이 돌아오고 싶은 고향이 아닌지....
    마산시장님은 일은 많이 하셨지만 마무리는 저렇게 지으면 안되겠죠...
    시장님을 바꿔야 해결되겠군요

    • 허정도 2009.10.18 00:18 신고 address edit & del

      늦었습니다.
      댓글을 살펴보는 게 습관이 되지 않아, 최근 올린 글만 보다가 글을 못 읽었습니다.
      마산 해안을 살릴 수 있는 아이디어는 몇가지 있습니다만 마산시의 의지는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최근, 해안에 있는 각종 공공업무시설을 한 곳에 묶어서 옮기고 그 자리를 공공 공간으로 사용할 계획을 마산시가 밝혔습니다.
      매우 좋은 발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식의 발상이 계속된다면 참 좋을텐데,,,
      해양신도시라 일컫는 해안아파트건설공사 계획도 수변공간 위주로 변경되면 좋은 결과가 있겠죠.

  4. 그런데 2010.05.04 14:54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말씀은 옳지만 대안은 부족합니다.
    해안에 있는 각종 공공시설을 한 곳으로 묶어 옮기고 그 자리를 공공 공간으로 사용할 계획을 세울 수 있는 건, 바로 해양신도시를 전제로 하기에 그렇습니다. 해양신도시를 반대하면서 그 긍정효과만 따로 떼어내서 다른 일인양 다룬다면....;
    해양신도시를 저밀도로 개발하자는 주장엔 공감이 갑니다. 다만, 무슨 돈으로? 이렇게 묻자면 쉽지않는 문제입니다. 다른 곳에 쓸 세금을 끌어모아서? 아님, 낭비를 줄여서? 아님 투자기업인들을 설득해서?
    그리고 마산인구가 줄어들어 신도시가 불필요하다는 주장엔 수긍이 안됩니다. 마산시 인구가 줄어드는 건 연담도시인 창원이나 김해나 진해에 비해 쾌적한 주거지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신도시가 불필요한 건 차라리 창원 김해 진해이지 마산이 아닙니다. 마산에서 창원으로 진해로 김해로 빠져나간 인구들을 다시 불러오지 못한다면 인구감소는 가속됩니다. 인구가 늘어나도록 유인해야지 줄어드는 것에 맞추다 보면 더 빨리 줄어듭니다.

    • 허정도 2010.05.04 16:49 신고 address edit & del

      일리있는 말씀입니다.
      제 글은 해양신도시에 들어설 대규모 아파트 건설이 부적절하다는 것과 마산도시의 특성으로 미루어 신도시개발보다는 기존도시를 살리는 쪽으로 도시정책을 집중시켜야된다는 뜻입니다.
      의견 주셔서 감사합니다.

  5. 그런데 2010.09.28 14:16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답변 감사드립니다.
    본문은 마산지역을 너무 폐쇄적(고립된 도시)으로 보는 느낌입니다. 연담도시들간 인구이동이 별로 없다는 전제하에선 '풍선효과' 지적이 맞습니다. 대규모 신시가지가 들어선다면 초기에 구시가지에 악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해양신도시가 매력적인 주거지로 부상한다면 연담도시에서 인구가 들어옵니다. 결국 구시가지에도 지속적으로 개발 자극을 줍니다. 창동,오동동 일대 상업지가 살고, 구주거지의 재개발 사업을 촉진하기 위해서라도 해양신도시같은 촉매제(동력)가 필요합니다. 요즘 젊은 세대들은 주거지 가까이에 학교,은행,병원, 공원,문화시설등 생활편의 시설이 집중된 곳을 선호합니다. 해양신도시같은 규모의 경제여야 합니다.부산 해운대 센텀신도시 사업이 해운대구 전체에 자극을 주는 것처럼요. 이런 선순환 효과없는 창동 오동동 도심살리기와 구주거지 재개발 사업은 헛구호에 세금낭비로 끝날 가능성이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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