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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19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01) - 강점제2시기

<마산포와 신마산이 연결되다 - 중앙마산의 형성>

5) 중앙마산의 형성과 의미

시작부터 거리를 두고 자리 잡은 신마산과 원마산은 일제의 강점이 진전되면서 확산되었지만 두 도시의 도시 공간 확산 방향은 완연히 달랐습니다.

원마산이 교방동과 상남동 방향, 즉 신마산의 반대방향으로 확산된 반면 신마산은 그와 반대로 원마산 방향으로 도시공간이 확산되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도시공간은 확산되었지만 이미 자리 잡고 있던 마산부의 행정기관들은 대부분 조계지, 즉 마산도시의 남서쪽 끝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이 건물들은 개항기 혹은 강점 초기에 건설되어진 것들로서 미래의 도시변화를 고려하지 않았던 결과입니다.

행정기구를 담당하고 있었던 일본인들만의 편의를 위해 그들이 집중해 있던 조계지에 자리 잡았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1920년대 들어서는 부민들 사이에서 도시의 가장자리에 부청 등이 위치한 것을 불만스럽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지금처럼 교통과 통신체계가 발달하지 못했던 시절에 도시의 끝에 관공서가 집중해 있었다는 것은 사용자들 입장에서 불편한 점이 많았을 것입니다.

치자(治者)의 입장에서도 사실상 둘로 나누어져 있는 도시를 관장하는데 난점이 많았을 것입니다.

거기다가 비록 허울에 그쳤지만, 3․1운동 이후 펼쳐진 문화정치의 대 전제 아래에서 볼 때도 원마산을 격리시킨 듯한 관공서건물의 위치가 적절하지 못하다는 부담도 있었을지 모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그 때까지 철도용지로 남아있던 중앙부는 국유지였기 때문에 마산부로서는 손쉽게 대형 토지를 구입할 수 있다는 호조건까지 갖추고 있었습니다.

이와 같은 내외적 조건에 따라 철도용지가 마산부로 불하되고 1920년대 이후부터 서서히 중앙마산이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개항기에 이미 조성되어 있었던 마산 역과 그 관사․마산소학교․마산고등여학교․자혜의원․창원군청․마산지방법원지청․전기회사 외에 1922년에는 마산경찰서, 1930년에는 마산우편국, 1936년에는 현재의 마산시청 자리에 부청이 이전합니다.

이러한 중앙 마산의 출현은 관아 건물의 위치적 편향에 대한 주민들의 불만에 대한 해소책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동시에 규모와 내용 면에서 강점 초기와 완전하게 달라진 마산도시를 보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확대 개편하기 위한 식민지 통치기관의 공간적 이동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현재는 원마산․신마산․중앙마산의 범역이 특별히 구분되지도 않지만 중앙마산의 공간적 기능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이 지역은 마산(지금은 창원시 마산합포구)의 공공업무지역으로서 마산시청(마산합포구청)․중부경찰서․마산세무서․전매청(KT&G)․우체국․소방서(이전)․법원지청․도립의료원 등을 비롯하여 고지대에는 다수의 교육시설들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중앙마산에 건설된 공공건물 - 위;도립마산병원(1927), 아래;마산부청(1936년)>

원래는 한국전력과 교육청도 있었으나 각각 합성동과 봉암동으로 이전하였으며 교육시설로는 마산고등학교․마산중학교․마산여자고등학교 등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중앙마산이 조성, 두 도시가 연담화되는 과정에서 시행된 신포동의 매립(현 대우백화점 일대)은 병목형의 도시 지형이 선형으로 해소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2011/11/21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85) - 강점제2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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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02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91) - 강점제2시기

<문화정치가 시작되다>

3․1운동을 정점으로 시작된 문화정치가 마산에도 영향을 미치면서 마산에서도 소위「문화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문화운동이란 실업과 교육 장려를 맨 앞자리에 내 세워 회사와 학교의 설립과 확충을 통하여 대중을 조직화하고 강연회․토론회 등을 통해 민족의식과 서구적 근대의식을 계몽한다는 사회운동입니다.

이와 같은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1920년 6월경, 마산지역 문화운동의 구심점을 표방한 마산구락부가 300여 명의 회원으로 창립되었습니다. 참여자 중 간부들의 상당수가 원마산 어시장의 객주를 비롯한 상업자본가였습니다.
이들은 세대와 이념 전력 등의 차이로 갈등을 빚기도 했지만 교육․체육․계몽․교류활동 등에 많은 힘을 쏟아 그야말로 문화운동을 실감케 했습니다.

이 문화운동의 연장선상에서 마산의 경제인들은 학교설립에도 관심을 가졌습니다.
대표적인 사업이 1922년에 수학연한 3년제 실업계학교로 설립한 마산공립상업학교의 설립을 지원한 일입니다.
비슷한 시기에 마산학원(마산구락부에서 1920년 설립), 배달학원(불교진흥회에서 1921년 설립), 월영노동야학교(신마산청년회에서 1921년 설립)도 들어섰습니다.

이 밖의 교육시설로 1924년에는 의신유치원이 개원되었고, 1915년 개교했던 마산공립실과여학교는 1921년 마산고등여학교로 변경되었습니다. 마산고등여학교는 현 마산여자고등학교의 전신입니다.

       <1922년 설립된 마산공립상업학교 / 전 마산상업고등학교, 현 용마고등학교>

                      <1921년 개교한 마산고등여학교 / 현 마산여자고등학교>

교육운동 뿐만 아닙니다.
19세기 말 유럽을 중심으로 시작하여 일본에서도 전개된 폐창(廢娼)운동도 마산에서 전개되었습니다. 1
1924년 마산청년회에서 미신타파 및 공창폐지운동을 한 것이 그것입니다.

마산청년회는 일본인 송본다장(松本多藏)이 설립한 민간단체로, 회원 수가 많았고 회원간의 친밀도도 높았다고 합니다. 명치절에 운동회를 개최하기도 하고 벚꽃이 필 무렵에는 마산시내에 벚꽃 장식을 하기도 하는 등 전형적인 일본인들의 사회봉사 단체였습니다.
동아일보 1924년 7월 20일자 3면 7단에 「마산청년회, 미신타파․공창폐지 결의」라는 제목으로 마산청년회의 활동이 기사로 나와 있습니다.

러시아 혁명 이후 세계적 추세였던 사회주의자운동과 노동운동 및 청년운동이 마산에 그 첫 선을 보인 것도 이 때였습니다.

개항 이후 지속적으로 전개된 일본인의 포교에 힘입어 1920년대에는 상당한 규모와 종류의 일본 종교가 마산에 들어와 있었습니다.
마산신사(1909년 3월)를 필두로 조동종 무학산복수사, 서본원사파 승원사, 마산정토종 포교소, 일련종 묘국사, 환주산 홍법사, 일련정종 등이 그것입니다.

                                             <일본 사찰 복수사>

이처럼 문화운동이 활발했지만 1922년 후반부터 마산학원의 경영난과 기독교회의 보수화, 특히 1920년경부터 시작된 전후 불황이 지역경제계에도 영향을 미치면서 마산지역의 문화운동도 조금씩 침체양상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2011/11/21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85) - 강점제2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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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04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65) - 강점제1시기

<요보?>

<한 시기의 마산사회상황을 짧은 글로 표현할 수는 없습니다만 1910년대 마산상황 중 종교와 교육 그리고 당시 사회분위기의 일편을 간략히 포스팅합니다>

합방 2년 후인 1912년 4월 8일 당시 양산 통도사 주지인 천보(天輔) 김구하(金九河) 큰 스님이 마산지역의 포교를 위해 사답(寺畓)을 팔아 현 추산동 포교당(정법사) 터에 설법전(說法殿)을 창설한 것이 근대 마산불교의 시초입니다.

1년 후인 1913년 서울 각황사에서 전국 30본사(本寺) 주지들이 조직한 ‘불교진흥회’의 발기 간사인 위암(韋庵) 장지연(張志淵, 1864년-1921년)이 진주에서 마산으로 이주하여 8년 동안 살았습니다.
이 때 위암은 마산불교진흥회를 조직하여 불교 발전에 진력을 다했으며 천보(天輔)스님과 자주 교류하였습니다.

아래 사진이 1912년에 건축한 추산동 포교당입니다.
 

새 건물을 짓는다고 최근 헐었습니다.
 마산에서 가장 오래된 불교건축이 사라진 겁니다. 우리 지역 불교사의 상징적인 유산이 없어진다고 일각에서 안타까움을 표하기도 했지만 소리가 너무 작았습니다.

1901년 조선예수교 장로교회 공의회가 조직되면서 마산교회를 태동시킨 기독교는 이후 노산 이은상의 부친 이승규 등이 입교하는 등 교세를 넓히다가 1903년에는 마산포교회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1919년에는 추산동에 신축예배당을 준공하고 명칭을 문창교회로 고쳤습니다.
아래 사진이 당시 신축한 문창교회의 사진입니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석조 건물입니다.

 20세기 벽두에 들어온 가톨릭은 완월동에서 천천히 세력을 키워가고 있었고 개항직후 들어온 일본불교도 확장되어 갔습니다.

그 시절 마산의 교육기관으로는 합방 이전부터 있던 마산공립보통학교(현 성호초등학교), 마산공립심상고등소학교(현 월영초등학교), 사립 창신학교, 노동야학을 비롯해 1910년에 설립해 1911년 학생 50명으로 인가를 받은 외서면 완월리의 사립성지학교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1913년에는 창신학교의 여학생들로 구성된 의신여학교가 독립하여 개교하였고, 1915년에는 장군동 2가에 마산공립실과여학교가 개교하였습니다.
사립여학교는 의신과 성지가 있었지만 공립으로는 마산실과고등여학교가 최초였습니다. 이 학교는 1921년 실과여학교에서 고등여학교로 바뀌었는데 현재 마산여자고등학교의 전신입니다.
 

이 중 사립창신학교는 당시 신교육을 접한 많은 양심적 지식인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안확을 비롯한 민족지도자들이 학생을 가르쳤고 고루 이극로 같은 선각자들이 이분들에게 배웠습니다.
창신학교는 식민지 백성의 혼을 일깨우고 민족독립을 위한 저항정신을 불어 넣는 신식교육기관으로 마산사람들의 자존심이었습니다.

뿐만아닙니다.
개교할 때 호주선교사들의 도움이 컸던 탓에 학문, 체육, 예술 등 서양문물도 창신학교를 통해 많이 들어왔습니다.
한 예로 1914년 한강이남 최초로 창신학교 고등과에 7인조 밴드부가 창설되어 서양음악을 경남지역에 보급하기도 하였습니다.
아래 사진이 당시 창신학교밴드부입니다.


당시 창신학교를 말할 때 유독 ‘사립’을 강조하며 접두어로 붙였습니다.
식민지시대라 ‘공립’은 사실상 일본인 것이었고 '사립'만 한국인들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밖에 1907년 마산의 유지들에 의해 개교된「노동야학」은 1914년 10월, 1,300엔이라는 당시로서는 큰돈으로 창동에 교실 여섯 개를 가진(140평) 교사를 마련하였습니다.
마산의 노동야학활동은 전국적으로도 이름이 높았습니다.
1921년 한 해 동안 동아일보가 마산의 노동야학에 대해 보도한 것이 열일곱 번이나 될 정도였으니까요.

강점제1시기인 1910년대는 이질적인 두 나라의 문화충돌이 심했습니다.
지배자의 오만과 피지배자의 절망이 낳은 충돌과 갈등이 전국을 뒤덮었습니다.

식민지정치적인 문제가 아니더라도, 식민지 땅에서 일어난 지배민족과 피지배민족 간의 차별과 탄압, 그리고 전혀 다른 가치관과 문화에서 오는 이질적인 생활 습관 때문에 전국적으로 두 민족 간의 갈등과 마찰이 노골화되었습니다.

당시 일본인들은 한국인을 ‘요보’(‘여보세요’에서 ‘여보’의 일본인 발음으로 한국인을 놀리는 표현)라고 불러대며 모욕하였습니다.
공중목욕탕에서는 일본인들이 목욕을 마친 다음에라야 한국인의 입탕이 허용되었습니다.
기차나 전차에서 일인의 옆 좌석이 비어있더라도 한인은 앉을 수 없었으며, 길 가던 일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는 이유로 함부로 구타하는 횡포가 일상화되어 문제도 되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마산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런 상황을 알 수 있는 그 시기 언론보도 몇 가지를 소개합니다.

① 매일신보 1915년 2월 6일
「중전(中畑)이라는 일본인이 인천나무시장 근처를 가다가 나무바리가 길가에까지 차서 통행에 지장이 있다고 하여 성냥불로 이 나무 저 나무에 불을 질러 불이 크게 번짐」
② 동아 1920년 4월 19일
「시야(矢野)」라는 부산의 일인 운수업자가 노임 시비 끝에 한인 노무자 수백 명에게 권총을 난사」
③ 동아 1920년 6월 21일
「여름철만 되면 일인들이 벌거벗고 길거리를 횡행하여 큰 사회문제화」
④ 동아 1920년 8월 6일
「서울 황금정(을지로) 4가 공동수도물을 먼저 길러가겠다고 일인 우체국원 조천(早川)이 한국 부인을 군도(軍刀)로 위협」<<<



2011/05/16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58) - 강점 제1시기
2011/05/23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59) - 강점 제1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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