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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28 01:16

도시를 가로지르는 녹색길

전국 곳곳에서 용도폐기되거나 이용빈도가 극히 적은 철도터를 활용해 자연친화적인 공간으로 활용하는 사례가 늘고있다.
마산역에서 마산항에 이르는 임항선도 '그린웨이'라는 큰 구상하에 다양한 사례와 공모등을 통하여 추진중이다.


기차길의 추억

임항선은 어릴적 추억이 제법 깃든 곳이다.
기차가 지나갈때 레일위에 못 같은 쇠붙이를 올려놓고 납작하게 만들어 놀고, 선로위에 깔린 자갈에 붙어있는 금속을 금가루라며 주워서 오곤했다.
하천이나 도로와 교차하는 고가철도를 지날때는 침목사이로 아래가 훤히보여 양팔을 벌려 균형을 잡고 건너며 담력을 키우기도 했다.
좀 커서는 집이있는 회원동에서 시내인 창동까지 걸어갈 때 신호등이 없어 빨리 갈 수 있는 지름길로 이용하곤 했다. 
요새는 철로의 주인인 기차는 일주일에 한번밖에 이용하지 않고, 그 자리를 주민들이 일군 텃밭과 노점하는 상인들, 이름모를 야생화들이 차지하고 앉았다.






현재까지 임항선 활용에 대한 뚜렷한 청사진은 아직 나오지 않았으나, 친환경적 일 것, 산책로로 활용 가능할 것, 역사성을 보존할 것 정도의 공통분모는 제시된것 같다.


다른도시는 어떻게?

마산과 비슷한 조건을 가진 광주의 경우 시민이 직접 폐선부지를 가꾸게 하기위해 지역주민, 사회단체, 전문가들이 모여 2002년 3월에 '푸른길운동본부'를 결성해 계획과 설계는 물론 공원조성까지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여 푸른길을 가꾸어 나가고 있다.

이를 위해 어린이, 청소년, 대학생, 일반 시민들에게 다양하고 참신한 아이디어를 공모하고 지역주민이 푸른길가꾸기의 주체로 나설 수 있도록 주민위원회를 구성했다.
 100만그루 헌수운동을 전개하며, 시민활동을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지원하도록 조례제정과 푸른길의 녹지공간을 확대하고 주변지역과 연결시키는 녹색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운동도 진행하고 있다.

특히 시민들이 푸른길에 나무를 심고 가꾸는 자원봉사 활동으로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함께 진행된다.

이런 고민은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닌가 보다.
얼마전 미국 뉴욕의 옛 철길이 주민들의 산책로로 탈바꿈한 기사가 소개되었다.
주민들은 낡고 오래된 고가철도를 철거하지 않고 새롭게 도시에 활력을 넣어 줄 수 있는 공원과 산책로로 만들기로 했다.
당장 보기싫다고 해서 전체를 걷어내고 개발하기보다 그 자체의 장소성과 역사성을 유지하며 그 위에 녹색을 입히기로 한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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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뉴욕타임즈(이하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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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게, 그러나 천천히

주민의 삶고 밀접하게 연관된 이런 사업은 행정기관에만 맡겨서는 안될 일이다.
가시적 성과를 위해 급하게 진행해야할 일은 더욱 아니다.
뉴욕의 경우 공사에만 4년이 걸렸고, 광주의 경우 폐선부지에서 2002 광주비엔날레 공공예술 '프로젝트4 Connection' 진행을 시작으로 꾸준히 시공과 계획을 이어가고 있다.

주민이 참여하여 만든 녹색길이 숨통이 되어 내고향 마산이 활기넘치는 도시로 거듭나기를 희망해 본다.

2009/06/08 - [도시 이야기] - 하천 옆 카페에서 커피 마실날 올까?

Trackback 0 Comment 14
  1. urbandesign 2009.07.28 11:36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마산 몽고정 위를 지나는 철교가 있습니다.
    밑으로 쌩쌩지나는 차량이 훤~히 보이는 그 위를
    엉기적 엉기적 조심스레 건너는 것이 어릴적 친구들과의 담력시험의 무대이었지요.
    철길은 우리사회 도시의 발전에 있어 '시간'과 '공간'을 극복하게 된 견인역할을 해왔다고 봅니다.
    이제는 문화를 통해 도시에게 내어주는 창조적인 전환이 필요한것 같습니다. ^^

  2. 신삼호 2009.07.28 14:43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아주 삭막한 철길 사례로는
    마산철길 중에 회원동인가요?
    구.공동탁주 앞에 있는 고가철도는 주변환경을 상당히 황폐화 시킨 사례로 볼수 있지요.

    마산 철로의 역사는 마산선이 1905년 개통되었으니 상당히 오랜 역사를 가진다고 할 수 있읍니다. 벌써 100년이 지났군요.
    그럼 지금의 레일이 혹시 100년전 제작된 것인지 확인이라도?

  3. urbandesign 2009.07.28 17:23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이참에 마산지역의 철도 현황과 그 구간별 특징 등을
    답사 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네요.
    사진으로 현재를 남기는 것만으로도 좋은 자료가 될 것 같습니다. ^^


    유창현님. 추진한번 해보세요~
    뜨끈뜨끈한 여름날의 철길답사.
    옛추억이... 이글 거립니다.

    • urbandesign 2009.07.29 21:29 신고 address edit & del

      기왕하는것 광복절로 하지요. ^^
      죄송합니다. 8일이 되는 주말은 선약이 있군요.

  4. 허정도 2009.07.29 08:25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기왕 임항선 이야기가 나왔으니 몇 년 전에 쓴 임항선관련 제 글을 한 편 소개하겠습니다.
    딱딱하고 재미가 별로 없습니다.


    〈경부선과 같은 해 개통된 철도 마산선〉


    1899년 마산은 열강에 의해 개항되었다.
    개항장 마산은 러시아와 일본의 야욕이 노골화 되었던 치욕적인 역사 현장이었다.
    이들 두 제국은, 서로 먼저 대한해협의 군사적 요충지를 확보하기 위해 마산을 무대로 갈등을 빚었다.
    러일전쟁 종전으로 세력 다툼이 끝나자 이 도시의 운명은 일본의 손아귀에 들었다.

    마산에 철도가 처음 개통된 것은 바로 그 즈음, 1905년 5월 25일이었다. 경부선 개통과 같은 해였으며 ‘마산선’이라 불렀다.
    원래 마산선은 1904년 1월에 영남지선철도회사가 착공한 마산포와 삼랑진 간 철도였다.
    영남지선철도회사는 한국정부의 외부참사를 지낸 바 있는 부산 태생의 박기종이 황족인 완순군 이재완을 앞세워 1902년 6월 한국정부 농상공부 대신으로부터 설립 허가를 받은 회사다.
    이처럼 한국인에 의해 설립된 철도회사를 일본 군부가 러일전쟁을 빌미로 그 사업권을 강제 접수한 다음, 자국의 중요 인력을 동원하여 개통시킨 것이다.
    이 때 철도노동자와 함께 일본 창기(娼妓)가 이 도시에 들어왔으며 철도건설에 힘입어 한 때 건설 붐이 일기도 했다.

    개통 직후에는 군용철도로 사용하였으나 같은 해 11월 1일부터 민간인도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마산선의 종착역이었던 마산 역은 일본인들이 사용하기에 편리하도록 조계지 가까운 곳에 설치하였다.
    그러다가 1910년 7월 5일 한국인들이 모여 살던 마산포 인근, 즉 현재의 상남동에 구(舊)마산 역을 개설하였다.
    구(舊)마산 역의 위치는 현재 중앙로의 6호 광장자리인데 개설 후 67년간 사용하다가 1977년 12월 폐쇄되었다.

    철도의 개통은 마산의 도시화를 촉진시켰으며 일본열도와 한반도 내륙을 연결하는 도시기능도 갖게 하였다.
    마산선의 철도건설공사는 전(全) 5공구로 나누어 일본인들에 의해 시행되었는데 이 과정서 한국인들은 단순노무자로만 참여했다.


    〈진주와 호남까지 연결한 철도 경남선〉


    마산선이 개통된 20년 뒤, 진주 방면으로 연결되는 또 하나의 철도가 놓였다.
    경남선이라 불린 이 철도는 사설(私設) 조선철도회사에 의해 마산과 진주를 잇는 대 공사였다.
    1923년 12월 1일 마산과 군북 간을 우선 개통했다가 2년 뒤인 1925년 6월 15일 진주까지 연결되었다.
    당시 사설철도 건설은 자국의 유휴자본을 식민지에 투자함과 동시에 식민지 기반시설을 확충한다는 두 가지 목적으로 일본 정부가 나서 적극 장려한 정책이었다.

    경남선은 마산 역을 시발역으로 북마산, 중리, 산인, 함안, 군북 순의 역이 있었으며 기존의 마산선과 함께 도시의 남북을 가로지르는 새로운 축이 되었다.
    이로 인해 인근 함안․군북의 농촌 지역이 마산 권역으로 편입되었다.
    또한 북마산 역 주변인 상남동과 교방동 지역에 역세권이 형성, 새로운 상권이 생겼을 뿐 아니라 마산을 호남지방과도 연결시켜 주었다.
    철도 건설공사에서 생긴 흙은 마산만 매립공사에 사용하기도 했다.

    1931년, 조선총독부는 식민지 철도 정책을 변경, 전국의 사철을 국유로 흡수하면서 70㎞ 경남선도 국철로 변했다.
    철도의 명칭도 기존의 마산선과 경남선을 합쳐 경전남부선(慶全南部線)으로 개칭했으며 마산선과 경남선의 시발역이던 마산역은 통합 경전남부선의 중심 역이 되었다.


    〈요요히 남은 격랑의 흔적 임항선〉


    북마산 역 부근에서 소년시절을 보낸 필자는, 설 추석 전날 진주 방면으로 향하는 기차의 그 기이함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마치 안이 꽉 차 밖으로 터져 나온 것처럼 기차문 밖에 고향 가는 사람들이 뒤엉켜 붙어 있었다.
    지붕 위에 올라앉은 사람도 적지 않았다. 유난히 흰 옷 입은 사람이 많았는데 기차가 출발하면 어린 내 눈에 마치 거대한 사람덩어리가 지나가는 것처럼 보였다.
    가족을 떠나 이 도시로 온 그들에게 북마산 역은 고향으로 통하는 큰 문이었다.

    1970년대, 수출자유지역과 한일합섬 등에 힘입어 도시지역이 팽창하고 인구가 증가하자 한 때 도시 성장의 상징이었던 두 철도가 오히려 도시 발전을 저해하는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이에 따라 도심을 관통하던 철도를 변경, 외곽지역에서 도시를 경유하는 형태로 바꾸는 공사가 대대적으로 시행되었다.

    이 과정에서 기존의 세 역이 없어지고 하나로 통합되었는데 그 결과가 1977년 12월 16일에 개통된 현재의 마산역이다. 이름 하여 ‘삼역통합’이었다.
    이 때 1905년부터 마산을 횡단했던 철도 마산선은 역사 저편으로 사라졌고 철선은 자동차가 다니는 길로 변했다. 부림동과 합성동을 잇는 중앙간선도로다.

    그러나 한 때 경남선이라 불렀던 현재의 임항선 철도는 항만과 내륙을 연결하는 산업용 철도로 사용한다는 이유로 철거하지 않았다.
    언제나 사람들로 붐볐던 북마산역도 그 때 사라졌다. 하지만 그 번성했던 흔적은 쇠로 만든 육교와 함께 지금도 남아 근대기 이 도시가 겪었던 격랑의 시간들을 회상케 한다.

    도시 복판에 요요히 누워있는 이 두 가닥 쇠길 위로, 지난 세월 얼마나 많은 애환들이 오고 갔을까.

    • 이윤기 2009.07.29 09:25 신고 address edit & del

      출처를 밝히고...사진과 함께 정식으로 포스팅하시지요

  5. 허정도 2009.07.29 16:38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그럴만한 가치가 있을까요, 이 글이?
    괜찮다면 류창현씨가 한 번 올려보던지.......

  6. 허정도 2009.07.29 23:13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옛 사진은 없는데''''''

    • 이윤기 2009.07.30 09:05 신고 address edit & del

      몇년전에 마산Y 시민사업위원회에서 수 차례 걸쳐 임항선을 답사하고 만든 '임항선, 80년 역사의 발자취'라는 책에 사진이 여러장 있습니다. 이 글도 그 책에 실렸었지요.

  7. 이인안 2009.07.30 12:04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그 사진은 저희 회사에 있는데요. 필요하면 드리지요..

  8. 전성환 2009.07.30 13:20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허이사장님. 안녕하세요. 전성환입니다. 도시이야기에 관심있어 서핑하다가 블로그발견했네요. 부지런도 하십니다. 쿠리찌바 글과 여기있는 글들 잘 읽었습니다. 저는 지금 미국 인디아나에 있는데 미국 도시계획에 대한 논문 다썼고 귀국준비하고 있습니다. 위 글에 나온 뉴욕사진은 2005년에 뉴욕설계공모전에 나온 그곳이네요. 저도 그곳 설계사진이 하나있는데 임항선과 같이 폐선부지를 새롭게 만드는데 많은 상상력을 주는 사진입니다. 종종 들러겠습니다. 건강하시고요. 한국들어가서 연락드리겠습니다.

    • 허정도 2009.07.30 15:31 신고 address edit & del

      아이구,, 이게 누구신가?
      전 실장 아니요.
      근데 왜 전 실장이 도시계획에 대한 논문을??
      나는 동명이인인 후배인가 해서 한 동안 얼떨떨 했어요.
      아무튼 반갑습니다.
      건강하시죠?
      공부 실컷하고 귀국 하세요.
      마산오시면 도다리 한 접시는 내가 책임질께요.
      보고 싶네요.

    • 이윤기 2009.07.30 16:57 신고 address edit & del

      남의 시간은 내 시간 보다 더 빨리 지나가네요.

      벌써 귀국인가요?

      한국은 대통령 잘못 뽑아 반대할 일, 싸울 일 지천입니다. 얼렁오세요.

  9. 전성환 2009.08.02 13:44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도다리만 사주실건가요? 소주는요??
    뭐 도시계획에 대한 거창한 논문은 아니고요. 공간을 둘러싼 시민의 이해를 높이기위한 활동이 한국시민운동에서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건축을 전공한건아니지만 건축에 관심이 많고요. 이윤기 간사님 지리산도보여행 잘하시고 한국가면 뵙시다.
    차총장님께도 안부전해주시고요.

2009.05.25 12:09

달팽이의 기상천외한 발상

- 달팽이는 왜 집을 지고 다닐까요?

세상구경하기를 좋아하는 달팽이가 한 마리 있었습니다.
비록 자신의 이동 속도는 늦지만, 보고 싶은 것도 많고 알고 싶은 것도 많은 달팽이였습니다. 하지만 그 달팽이는 자신이 그토록 보고 싶은 세상을 구경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동속도가 너무 느려 멀리까지 갈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가다가 쉬고 가다가 쉬는 것이 달팽이 걸음입니다만, 쉬지 않고 계속 움직여도 1분에 12센티, 한 시간에 고작 7.2미터 정도가 달팽이의 최고속도라 합니다. 그러니 하루 여덟 시간 동안 안간힘을 다해 움직여도 최고 50-60미터밖에 이동할 수 없었습니다.


여덟 시간 움직이고 나면 다시 집으로 돌아와서 제 놈도 쉬어야 하니까요.
결국 세상구경 좋아하는 그 달팽이는 집을 중심으로 반경 50-60미터를 벗어나지 못하고 오늘은 이쪽 내일은 저쪽, 방향만 바꾸어 다니다가 해가지면 집으로 돌아오곤 했습니다.


 


달팽이의 기상천외한 발상

그러던 어느 날, 세상구경 좋아하는 달팽이가 깊은 생각에 빠졌습니다. 어떻게 하면 보다 넓은 세상을 더 많이 구경할 수 있을까? 50-60미터 밖의 세상을 구경할 방법은 없는 것일까? 날쌘 족제비의 등을 타고 다니자니 자신을 해칠 것 같아 안 되겠고, 산새의 등에 올라 하늘을 누비자니 어디까지 갈지 몰라 그것도 안 될 것 같았습니다. 그렇다고 자전거를 만들어 탈수도 없었습니다. 고민 고민 끝에 세상구경 좋아하는 그 달팽이는 기상천외한 발상을 해냈습니다.

“그래, 집을 지고 다니자”

“집을 지고 다니면 다시 돌아오지 않아도 되니 얼마든지 세상구경이 가능할거야”




달팽이가 집을 지고 다니게 된 이유는 바로 이 때문입니다. 어떤 동물도 생각하지 못했던, 생각하지도 않았던 발상을 달팽이가 해낸 겁니다. 거북이와 나무늘보도 느릿느릿하게 움직이는 동물이지만 그들이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던 발상이었습니다.

더 넓은 세상을 구경하고 싶었던 달팽이가 ‘집은 어딘가 정착되어 있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탈출’하면서 만들어낸 ‘발상의 대전환’ 이후 달팽이는 집을 지고 다니게 되었고, 더 넓은 세상을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발상의 전환’이 달팽이의 꿈을 이루어 주었습니다.


 


달팽이들이 만들어가는 도시이야기


- 팀 블로그, '허정도와 함께 하는 도시이야기'를 시작하며...

‘달팽이와 같은 생각으로 도시를 바라보는 사람들’과 함께 이 블로그를 세상에 내어 놓습니다. 여기서는 ‘도시 이야기’를 할 것입니다.
기존의 통념에서 탈출한 ‘발상의 대전환’………, 인간적이면서도 미래지향적인 도시담론을 나누고 싶어서 시작하는 ‘도시 이야기’입니다.

 

저를 포함하여 네 명의 친구들이 의기투합하였습니다. 모두 도시와 건축 전문가들입니다. 밝고 재미있게 만들어볼 생각입니다.

 

도로, 건물, 공원………, 도시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물리적인 시설들에 대한 이야기와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체온이 묻어있는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 싶습니다.

 

현실을 바꿀 수는 없겠지만 미래를 그려볼 수는 있다는 믿음으로 시작합니다. 바람이 나뭇가지를 스치고 지나갈 때처럼 안팎으로 거리낌 없는 이야기가 이 블로그에서 나누어지면 좋겠습니다.



"…… 파리에서 달팽이 요리를 먹어본 적이 있는데 느끼한 게 별 맛은 없었습니다. 네 개의 홈이 파진 두터운 주철 식기에 달팽이 네 마리가 각각 한 구멍에 들어 앉아 잘 익혀져 있더군요. 자칭 교양 높다는 프랑스인들은 왜 달팽이를 먹는지 모르겠습니다. 개고기는 질색을 하면서 말입니다……"


(허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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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세미예 2009.05.25 12:37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달팽이의 지혜군요. 달팽이도 살아가는 독특한 방식이 있군요. 잘 보고 갑니다.

    • 허정도 2009.05.26 15:04 신고 address edit & del

      방문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앞으로 열심히 활동하겠습니다

  2. 호수 2009.05.25 16:26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좋은글 잘 읽고 갑니다.

    우리 인간도 달팽이와 마찬가지 같아요.

    느릿느릿 자신의 집을 짓고 인생길을 가지요.

    먼저 가나 나중에 가나

    도착점은 하나입니다 ^^

    • 허정도 2009.05.26 18:29 신고 address edit & del

      반갑습니다.
      재미 있는 이야기, 유익한 도시이야기 올려볼테니 자주 들어 오셔서 좋은 글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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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작 - 이집트 룩소르 구르나 마을 - 3

구르나 마을 이야기 - 1 일행이 나일강변에 자리한 경관 좋은 호텔에서 휴식을 취하던 오후. 안내자와 함께 조그만 배를 타고 나일강을 건너 구르나 마을로 향했다. 구르나 마을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은 현지 안내자 덕분이었다. 그..

걸작 - 이집트 룩소르 구르나 마을 - 2

위대한 건축가 하싼 화티(Hassan Fathy) - 2 하싼 화티가 구르나 마을을 건설할 1940년대 중반, 그 당시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고 있던 이집트는 서양식 건축이 판을 치고 전통적인 이집트 양식의 건물들은 사라져가고..

걸작 - 이집트 룩소르 구르나 마을 - 1

위대한 건축가 하싼 화티(Hassan Fathy) - 1 (이 글은 이집트 여행 중 우연히 만났던 하싼 화티의 구르나 마을 경험담이다. 오래 전 일이다. 지금 생각해도 그 우연은 내게 축복이었다. 울렁이는 감격으로 구르나를 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