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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01 00:00

마산YMCA회관 설계

 

랜만에 해본 일입니다.

 

2005년 경남도민일보 입사 후에도 간혹 이일 저일 만졌지만, 기획 단계부터 개입해 마무리한 일은 아주 오랜만이었습니다.

'마산YMCA회관 건축설계'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저는 1980년 건축사 시험에 붙어 다음 해 6월 마산 창동에서 건축사 사무소를 열었습니다.

개업 후 적지 않은 건축물을 설계하였습니다.

볼만한 건물도 간혹 있었지만 부끄러운 건물이 훨씬 더 많았습니다.

하지만 직업으로서의 건축설계는 천직처럼 제 몸에 착 붙었습니다. 재미있게 만족하며 일했습니다.

 

2005년 봄 뜻하지 않게 언론사 대표가 된 후 손을 놓았다가 '마산YMCA회관 건축설계' 때문에 다시 펜과 종이를 들었습니다. 작년 늦여름이었습니다.

오랜만에 하는 일이었지만 워낙 몸에 배였던 터라 낯설지는 않았습니다.

 

1946 창립한 마산YMCA는 뿌리가 깊은 시민사회단체입니다.

 

저는 1975년 입회했습니다. 20대 초에 시작해 올해로 42년째니 YMCA는 제 인생 한복판을 관통한 셈입니다.

 

자체회관이 없었던 마산YMCA가 지난 70여 년간 회관 때문에 겪은 부침은 말할 수 없이 컸습니다.

91년부터 근무한 이윤기 사무총장이 지난 520일 개관식 날 이번 이사가 10번 째하는 이사라고 했을 정도입니다.

 

건축비가 모자라 빚은 좀 남겠지만 70년 만에 가진 자체회관이라 마산YMCA 회원들은 요즘 많이 즐겁습니다.

 

토지를 구할 때부터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YMCA는 시민사회단체이지만 어린이와 청소년 교육도 주된 목적 중 하나입니다.

YMCA는 자연을 매개로한 인성교육을 중요하게 봅니다.

그래서 자연환경적 입지조건을 염두에 두고 땅을 찾았습니다.

 

1~2 걸려 마침내 찾은 곳은 마산 회원동 앵지밭골에 있는 땅이었습니다.

 

뒤로 700m 거리에 편백 숲이 있고 옆으로 300m 쯤에는 수백 년 된 마을 숲과 회원천 상류가 있는 곳이었습니다.

뒤편으로 무학산이 버티어 섰고, 왼옆으로는 시인 이선관이 마산 민주정신의 발현지로 꼽았던 봉화산이 눈 앞이었습니다 

 

 …… 가부좌한 참 스님답게 턱 버티고 / 앉아있는 봉화산의 돌 틈새에 / 지금까지 꺼지지 않고 살아있는 불씨 / 식어질 줄 모르는 그 불씨 ……

 

터의 모양새는 그리 좋지 않았지만 주변의 자연조건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반풍수 눈에도 좌청룡 우백호에 남주작 북현무까지 어느 정도 갖춘 길지다 싶었습니다.

 

200여 평이라 넓지는 않지만 인접한 낙락장송이 땅의 가치를 높여주고 있어서 아이들과 엄마들이 좋아할 곳이었습니다.

이사장과 이사들도 터를 본 뒤 선뜻 동의해 거금(?)을 치르고 매입했습니다.

 

계는 제 몫이었습니다.

 

어떤 건물을 앉힐지 구상이 시작되면서 이런 저런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마산YMCA회관을 꼭 내 손으로 설계하고 싶었던 젊었던 시절도 떠올랐습니다.

좋은 건물을 짓고 싶은 마음과 넉넉하지 않은 자금 때문에 머리가 복잡해지기도 했습니다.

 

순리대로 공간을 자르되 치수를 아꼈습니다.

비용 때문이었습니다.

 

형태는 기능을 따랐습니다.

루이스 설리반을 추종했다기보다 기능에 충실하면 단순해지고 단순해야 오래가기 때문이었습니다.

 

평범함에서 답을 찾았습니다.

사람 눈에 익숙하고 안정감을 주는 사각형 몇개를 엮어 정면을 완성시켰습니다.

 

집의 가치는 좌측의 낙락장송과 병풍처럼 뒤에 선 무학산에서 나오도록 했습니다.

건물은 그저 먹물로 찍은 한 점 손장난에 불과합니다.<<<

 

 

epilogue

 

공사는 태림건설 박현관 이사가, 감리는 마산Y 이사인 류창현 건축사가 맡아 고생했습니다.

그 덕에 집이 잘 지어져 지난 달 20일 개관식까지 가졌습니다.

 

본관은 진작 옮겨왔고 교방동 유치원도 이사를 마쳤습니다.

매일 아침 아이들의 재잘대는 소리와 함께 마산YMCA의 하루하루가 활기차게 열리고 있습니다.

 

당분간 공간문제 때문에 어려운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이제부턴 시민사회단체 역할을 다하는 데만 집중하면 될 일입니다.

 

앞으로 이 집에서 마산YMCA 사람들이 무슨 일들을 해낼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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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윤기 2017.06.01 16:22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이사장님...수고 많으셨습니다.
    수고해 주신 덕분에 넉넉치 않은 자금으로도 멋진 건물을 완공하였습니다.

  2. 워킹마미 2017.06.01 18:37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멋진 건물 감사합니다♡
    글을 찬찬히 읽어보니 이사님의 고민과 애정이 느껴지네요. 최대한 많이 활용하고 아끼며 살겠습니다.

  3. 회원 2017.06.01 21:08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이윤기총장이 빈 그릇을 잘 채울겁니다

  4. 허정도 2017.06.02 09:04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설계를 제가 했을 뿐, 이 집을 있게 한 것은 마산YMCA와 관계하고 있는 모든 분들이죠.
    감사한 일입니다~

  5. 안희정 2017.06.02 14:32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몰랐던 사실을 알게됐네요
    고생많았습니다.
    시간되면 함 들렸다 감상하고싶네요
    오랫동안 좋은일들을 많이했네요
    축하합니다

2009.12.17 06:00

중매 세 번하면 천당 간다는데



두 번째 중매에도 성공했습니다.
두 번 시도에 두 번 성공, 확률 100%입니다.


첫 중매가 1993년이었으니 16년만의 중매입니다.
경남은행에 다니던 총각 오공환과 마산건축사회에 근무하던 처녀 안경희를 이어 주었습니다.
1월에 중매를 섰는데 그 해 10월 결혼에 골인했습니다.
지금 창원에서 아들딸 쌍둥이 낳아 네 가족이 행복하게 잘 살고 있습니다. 아이가 벌써 중학교 3학년입니다.
오공환은 결혼 후 건축사 시험에 합격, 현재 창원 다몬건축사사무소 대표입니다.
이 부부, 지금도 얼마나 서로 사랑하는지 설 추석마다 우리 집에 찾아 옵니다.
와서는 ‘좋은 사람 만나게 해주어 고맙다’고 인사합니다.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은, 저의 첫번째 중매입니다.


          <아들 딸과 함께 창녕 화왕산에 올랐던 사진을 보내왔습니다>

                           <올 여름에는 서울 한 복판까지 갔네요>


두 번째 중매의 주인공 신부 최은영은 제가 활동하고 있는 마산YMCA 간사입니다.
영민하게 보이는 얼굴에 실제 일처리도 잘하는 마산YMCA 일꾼입니다.
영어를 잘한다는데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해보지는 못했습니다.
여자 나이 밝히는 게 좀 그렇긴 합니다만, 중매까지 섰는데 봐주겠죠, 뭐.
갓 올라온 사학년입니다.

결혼 안했다는 걸 처음 알았을 때 ‘독신주의자인가?’ 라고 생각했습니다.
작년 언젠가 한 번 ‘최 간사님, 결혼은 왜 안 해요?’ 물은 적이 있는데, 웃기만 했을 뿐 별 말이 없었습니다.

신랑 이진규는 고등학교 후배로 최 간사보다 다섯살 위입니다.
처음 만났을 때 이 친구가 총각이란 건 상상도 못했습니다. ‘결혼했느냐’ 물어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작년 가을 우연한 자리에서 아직 미혼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뭘 하고 살았는지, 지금까지 연애다운 연애 한 번 못했다고 다른 후배가 귀띔을 해주었습니다.
선후배 사이에 인간성 좋다는 평판을 받는 전형적인 경상도 사나입니다.
건설관련업을 하는데, 해병대 출신이라 화통하고 몸도 건강합니다.

지난 1월 ‘최은영과 이진규, 둘이 어울리려나?’ 는 생각이 들어, 우선 최 간사에게 넌지시 물어보았습니다.

‘다섯살 위 총각 한 번 소개할 테니 만나보겠느냐’ 고.
거절을 한 건 아니지만 별로 반가워하는 기색이 아니었습니다.
나보다 다섯살이나 많은 총각? 농담일거라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비슷한 질문을 받은 이진규 후배는 ‘회장님 소개라면 만나봐야죠’ 라고 냅다 대답을 하더군요.

‘회장’이란 호칭은 제가 창신고등학교 총동창회장이라 후배들이 절더러 그렇게 부릅니다.

좋은 커플이 되겠다 싶어 최 간사에게 몇 차례 더 권했더니, 나중에는 못이긴 척 ‘결혼을 전제하기보다는 좋은 친구가 될 수도 있으니’ 라는 조건을 달고 맞선에 응하더군요.

2월 중순, 시간은 오후 여섯 시로 기억합니다.
제가 경남도민일보 사장으로 있을 때라,
신문사 건너편 사보이 호텔 커피숍에서 만났습니다.
20분 쯤 함께 자리하다가 저는 중매쟁이 각본대로 일이 있다며 자리를 떴습니다.

다음 날, 이진규 후배에게 전화해 어떻더냐고 물어보니
'정말 멋지고 매력적인 아가씨였다, 과분한 사람같더라' 면서 하루새 최 간사한테 푹 빠졌더군요.
그래서 제가,

‘최 간사는 자넬 어떻게 생각하는 것 같더냐?’ 고 물으니 감이 잘 오지 않는다고 아리송한 답을 했습니다.

최 간사가 결혼에 관심이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저는 이 중매가 성사될 거라는 기대를 별로 안했습니다.

하지만 둘이 더러 만난다는 소문은 바람결에 듣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진규 후배가 들떤 목소리로 ‘은영 씨와 결혼하기로 했다’ 고 전화를 해왔습니다.
이 친구, 결국 아가씨의 마음을 돌려 세웠더군요.

그 뒤부터는 일사천리,
6월에 약혼식을 하더니 드디어
 지난 일요일 오후 한 시, 창원 인터내셔널호텔에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두 사람 손잡고 '동시입장'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주례는 신랑의 고등학교 은사 창신고 강호환교감께서 맡았고,
결혼식에서 흔히 있는 축가 대신 중신애비인 제가 축사 한마디했습니다.

늦은 결혼이라 그런지 축하객들 얼굴도 모두 환했습니다.
특히 나이 많은 신랑 이진규는 싱글벙글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결혼 안할 거라던 늦깎이 신부 최은영도 만족스럽고 기쁜 표정이었습니다.
'제 짝 기다리느라 둘이 저렇게 늦었나?' 생각하니 절로 웃음이 나왔습니다.
하객 중 권영길 국회의원이 눈에 띄어 혼주와의 관계를 물었더니, 신랑 어머니가 창원 상남동에서 운영하는 '오동동 부엉이식당' 단골손님이라고 하더군요.

행복해하는 신랑 신부,
흡족한 표정의 양쪽 어머니,
왁자지껄한 축하객들의 웃음소리,
분위기 참 좋았습니다.

신랑 신부 두 사람 모두 아버지를 여의고 지금은 홀어머니만 계십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번 중매를 가장 기뻐하며 감사하는 분은 두 어머니였습니다.
신랑의 어머니는 특히 더 했습니다.
제게 고맙다고 인사하는 말씀과 표정 속에 그 마음이 짙게 묻어 나왔습니다.

그 동안 나이 든 딸과 아들을 둔 어머니 마음이 얼마나 썩었으면 중신애비한테 그렇게 고마운 표정을 짓겠습니까.

이 신혼부부,
제주도로 3박4일 신혼여행을 갔다가 어제 돌아왔습니다.

남들보다 한참 늦었으니 많이 뜨거웠겠죠?

한 해가 저물어 갑니다.
모두들 그렇겠지만 저 역시 올해 이런 저런 일들이 많았습니다.

나빴던 일도 없지 않았지만 보람 있었던 일과 재미있었던 일들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마흔 넘은 노총각 노처녀를 짝지어준 것이 그 중 잘한 일 같습니다.

이 두 사람,
남들보다 많이 늦었습니다.

늦은 대신,
이 부부 하루는 다른 부부 한 달 사랑 한 것만큼, 이 부부 한 달은 다른 부부 일 년 사랑한 것만큼, 서로 아끼고 사랑하며 살아가기 바랄 뿐입니다.

애써 날 찾아 올 필요는 없지만,
첫 번째 중매한 부부처럼 ‘좋은 사람 만나게 해주어 고맙다’라는 인사는 꼭 듣고 싶습니다.

중매 세 번하면 천당간다는데, 저는 이제 한 번 남았습니다.


                                               <신랑 신부 어머니들>



                                          <잘 어울리는 한 쌍입니다>


     <나는 신랑 옆에서 주례선생님은 신부 옆에서 축하사진 한 장 찍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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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신삼호 2009.12.16 10:55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두번째 커플 사진도 좀 올리시죠!

  2. 세미예 2009.12.17 06:26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중매 잘하기가 참 쉽지않은데 잘하시네요.
    보기 좋습니다. 잘보고 갑니다. 고운 하루 되세요.

  3. 실비단안개 2009.12.17 08:47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숨가쁘게 읽었습니다.

    신랑신부의 나이를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습니다.
    건강하시고
    모두모두 행복하셔요.^^

  4. 유림 2009.12.17 11:15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중매는 아무나 하는게 아니라는데..
    중매해서 다들 잘 사신다니 선배님의 또 다른 능력같습니다 하하

    교감선생님은 꽤(?) 낯이 익습니다 ㅎ

    • 허정도 2009.12.17 11:47 신고 address edit & del

      반갑습니다.
      감기는 다 나았나요?

    • 유림 2009.12.17 18:36 신고 address edit & del

      아닙니더..
      감기란 놈이 아주 질기게 붙어있는가 했는데
      아마도 빈혈때문에 감기가 쉬이 떨어지지 않나봅니다.
      조금 심하다고 하네요 ^^
      그래서 체력이 급격히 저하된 것 같아요
      너메 피좀 묵고 기운 차리겠습니다.ㅎㅎ

  5. 괴나리봇짐 2009.12.17 11:24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오호.... 천국행 티켓이 바로 코앞이군요.
    정말 보람된 일 하신 것 같습니다.
    읽는 내내 행복했습니다.^^

    • 허정도 2009.12.17 11:47 신고 address edit & del

      저도 참 흐뭇합니다.

  6. 한가비 2009.12.22 11:58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회장님.이진규후배 결혼상대자 만나고 있다고 했을때 저역시 무척 기뻣습니다.멋쟁이 후배가 노총각으로 있다는게 믿기지 않았으니까요.큰일 하셨습니다.두사람 알콩달콩 행복하게 잘 살거라 생각합니다.정말 감사합니다.좋은글들도 잘 읽어 보고 있습니다.

    • 허정도 2009.12.22 14:59 신고 address edit & del

      나도 참 흐뭇합니다.
      두 사람 잘 살아가도록 주위에서 도와 줍시다.

  7. 윤종수 2010.02.03 15:53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오공환이와 고등학교 동기됩니다.
    이런 인연이 있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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